316화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도시 한복판이었다. 설마 이런 곳으로 소환될 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당황한 상태였다.
의외로 주변 사람들은 그리 심하게 놀라지는 않았다. 분명 놀라기는 했지만, 당혹스러움 보다는 오히려 환영하는 느낌이 강했다.
“지, 지원군이다! 드디어 지원군이 왔다!”
“처음 보는 영웅들이군… 설마 파티누스가 아니라 더 상위 차원에서 온 건가?”
“드디어… 드디어!”
‘교류가 많기는 했나 보군.’
저들이 단숨에 우리가 지원군인 것을 알아챈 것을 보면 이전까지 교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금 지구만 봐도 연결된 차원들이 활발하게 교류하는 중이다. 단기간에 발전한 우리도 그런데, 장기간 교류를 해 왔을 거대 차원은 오죽할까. 익숙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꼭 자신들을 구해달라 외치는 사이 성직자로 보이는 이들이 헐레벌떡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헉, 헉. 지, 지구라는 곳에서 오신 분들… 맞으십니까?”
거칠게 숨을 내쉬는 성직자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계, 계시를 받았습니다. 혼다크 님께서 타 차원에서 구원자 분들이 오실 거라고…….”
성직자는 무척이나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내 확답에 성직자의 얼굴이 밝아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상황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도착만 했을 뿐인데 이리 격한 환영을 받을 줄은 몰랐다. 길드원들도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이다.
“…탑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주하연의 말에 나 또한 내심 동의했다.
제소시아에서도 우리가 마왕을 해치운 이후에나 이 정도의 대우를 받았지,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로 격한 환영을 받아 보지는 못했다.
우리는 곧바로 신전으로 안내를 받았고, 자세한 상황과 정보를 건네받은 뒤 하루간 휴식을 취했다.
딱히 이전처럼 따로 협조를 구할 곳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이곳은 성국이었고, 제정일치 사회인 만큼 확실한 지원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혼다크가 한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나를 포함해 길드원 전원은 상당히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어지간한 대접은 다 받아본 우리 길드원들이 부담과 거북함을 느낄 수준이었으니 말 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우리를 지원할 지원군이 편성되어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아쉽게도 이 차원의 주 전력은 본차원에서 산화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할 터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목숨을 바쳐 도와드릴 것입니다.”
고기 방패라는 소리다. 교황이라는 자가 할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진지한 표정이었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차피 나설 일은 없겠지만.’
20개체 정도라면 지금 우리들의 상대는 아니다.
다행히 제소시아 수준은 되는 차원이라 근처까지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었고, 어렵지 않게 목표 지점으로 향할 수 있었다.
“거인들과의 전투는 오랜만이라… 두근두근하네요, 형.”
“어차피 안정화 걸리고 나면 사실상 무방비 아냐? 솔직히 우리 없이 마수란 정예 길드원들만 나서도 20개체 정도는 잡을 거 같은데?”
“그만큼 발전하기는 했지. 마법사들도 같이 왔으니 더더욱 쉽겠고.”
하유진과 사샤의 대화에 나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구경만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저들은 이미 많은 경험을 한 상태였고, 돌아다녀야 할 차원들도 많은 마당에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은 없었다.
거인들은 한 장소를 거점으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파티누스로 향하는 게이트를 저들이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표만 있다면 저들처럼 그냥 이동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건 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혼다크 님께서는 이미 많은 힘을 소진하셨고, 현재는 그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유신후 님을 불러오시는 것이 한계가 아니었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가능한 영웅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영웅분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분들이나 가능한 일일 뿐입니다. 저희 카스시나 차원의 최고 영웅이신 바코너스 님께서도 불가능하셨었지요.”
나는 가능하다. 확실히 관리자도 아닌 이들이 차원을 넘나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군.’
오데르의 힘을 빼앗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지원군들을 뒤에 대기시킨 뒤 우리는 곧바로 거인들을 향해 접근했다.
“…또 인간들인가. …음? 이건…….”
이미 몇 차례 도전했던 듯 거인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표정이 굳는다.
“어떻게 이런 이들이… 설마 센터빌에서 내려온 건가? 그곳은 확실히 우리가 유리할 텐데… 어떻게 이런.…”
그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느새 우리 측의 후열이 준비되어 있었고, 수백의 마수들이 거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미 카스시나 차원은 지구와 연결이 된 상태다 보니 소환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비상 사태임을 직감했는지 다른 거인들이 빠르게 몰려온다.
‘전원 3등위라…….’
고작 이정도 차원을 막기 위해 보낸 것치고는 과도한 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둥지의 실제 저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괜히 손꼽히는 침략 종족이 아니군.’
이전, 거인들과 싸웠을 때처럼 진형이 잡혀간다. 후열에서 마법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마력의 유동이 심상치 않자 거인들이 반응했다.
“…보통 마법이 아니다! 막아!”
자신들의 마법 저항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확실히 지금 느껴지는 마력의 유동은 저들에게도 위협적일 정도였다.
그들이 뛰쳐나가는 순간, 주하연의 스킬이 완성되었다.
“안정화.”
한결 능숙해진 솜씨. 주변 일대에 그녀의 신성력이 퍼진다.
공간 계통 공격의 봉인. 급해진 거인들이 빠르게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우리는 그런 거인들을 하나씩 죽여내기 시작했다.
실력이 성장한 현재, 마수들을 고기 방패로 사용하며 전투했던 이전의 방식에서 이제는 마수들을 어디까지나 보조로 사용하며 4차 길드원들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버티기와 역습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나서윤과 하유진, 한바다는 각기 홀로 거인들을 맡아 압도하는 무위를 보여주었다.
곧이어 완성된 마법이 저들 위로 떨어진다.
“헬파이어.”
최상급 마법의 경우 그 범위가 어마어마한 만큼 최대한 범위를 줄인 마법이다. 게다가 합동 마법이기까지 하니, 그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그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이연솔과 아멜리아의 마법이 각자 거인을 향한다.
거인들은 필사적으로 마법을 피하려 했으나 길드원들이 그것을 두고 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결국 마법에 그대로 적중 당했고,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아멜리아와 이연솔의 얼굴이 밝아진다.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일부 거인들이 상황을 알리려는 듯 자신들이 지키던 문으로 뛰어들려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즉시 마력을 운용, 안정화된 공간 중 일부를 살며시 뒤틀었다.
약간을 뒤틀었음에도 강한 저항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거면 충분하다. 나는 한순간 비틀린 공간의 틈에 몸을 던져 넣었다.
한순간 보이는 시야가 뒤틀리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도망치려던 거인의 경로를 틀어막았다.
내려쳐지는 강기의 기척에 기함한 거인이 빠르게 뒤로 물러선다.
“어느 틈에……!”
이전 디클로디히 차원을 침략했던 무신의 이동기였다.
무척이나 탐나는 기술이었고, 나와 나서윤은 이 기술을 연마했으며, 제법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완성하는 것에 성공했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행한 일이었다. 나서윤의 경우에는 더 안정적인 자신의 방식으로 개조한 편이었고, 나는 이정도만 해도 충분하기에 안정성을 위해 약간의 변형을 가했을 뿐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안정화에서도 쓸 수 있도록 훈련한 보람이 있군.’
주하연의 협력으로 어느 상황에서도 쓸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내가 막고 있음에도 거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차원의 문으로 몸을 날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나는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포기하고 죽어. 어차피 너희 수준으로는 절대 못 도망치니까.”
“…빌어먹을 인간 놈이…….”
이제껏 경험했듯 거인들은 인간을 얕본다. 그런 인간에게 이런 취급을 받으니 화날만했다.
나는 완전히 길목을 차단한 채 전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한바다는 거인 하나를 완전히 짓이겨 놓았고, 하유진 또한 자신이 맡은 거인을 처리한 뒤 다른 길드원들을 돕고 있었다. 나서윤의 경우 나처럼 새로 익힌 이동기를 시험해 보고는 만족했는지 후열로 돌아가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나연이었다. 그녀는 사샤와 합신한 채 전장 이곳저곳에 관여하고 있었다.
나연과 사샤의 보조를 받은 길드원들은 버티는 것을 넘어 아예 자신들의 힘으로 길드원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남은주는 냉정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며 만에 하나 있을 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광경.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에 약간의 뿌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눈앞의 거인이 커다란 고함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
그러나 현장에서 빠져나간 거인은 단 한 개체도 없었고, 그렇게 첫 번째 전투는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나버렸다.
* * *
“…대단하십니다. 이제껏 봐 온 어떤 영웅분들보다도 뛰어나신 실력입니다. 이 정도라면… 센터빌의 보듀가 님 정도는 되어야…….”
센터빌의 보듀가. 센터빌 차원의 대영웅이었다고 한다. 그 또한 탑 출신이었다고 들었다.
“이리 빠르게, 압도적으로 이기실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 문을 넘으면 2단계 차원인 파티누스 겁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제의 얼굴에는 불만이 어려 있었다.
자신들의 차원을 지켰던 영웅이 넘어간 곳이고, 자신들이 위험해질 때는 도움조차 주지 않았던 이들인 만큼 원망의 감정이 남은 모양이었다.
나는 가만히 저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어쩌면, 괜찮은 짓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이아와 이야기를 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