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10화 (310/317)

310화

나서윤의 물음에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왜?”

“아니 그냥. 연결된다는 말은 있는데, 소식이 없어서.”

“골라야 하니까 그렇지. 우리 쪽도 신중할 필요가 있어서 그래.”

‘이미 알 텐데?’

충분히 설명해 주었을 텐데, 어째서 다시 묻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심심해? 싸우고 싶거나 막 그런 거야?”

10년 가까운 시간을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 보냈다. 게다가 나서윤은 묘하게 적응이 빨랐고. 그런 만큼 잠깐의 평화가 그녀에게는 길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다.

“조금 어색하기는 한데, 막 싸우고 싶다거나 그렇지는 않아.”

나는 가만히 나서윤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거짓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나서윤이 내게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괜한 우려였나?’

“그럼 왜?”

“그냥… 어렵지 않은 곳이라면 길드원들 없이 우리끼리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요새는 우리끼리 다닌 적이 없다시피 했으니까.”

“우리끼리라는 게…….”

“우리 파티 있잖아. 초기부터 같이 다닌 사람들. …우리 셋이서 가는 것도 가능하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고.”

“…….”

오늘과 같은 방식의 데이트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충분히 즐거워 보였고,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서윤에게는 그런 것보다는 함께 돌아다니며 싸우는 것이 더 익숙한 모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이런 평화보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환경이 더 익숙하다. 특히 중학생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서윤에게는 이런 평화보다 탑에서의 시간이 더 농도가 짙은 것이 당연했다.

나연이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꿈에 그리던 시간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가족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그리워하기는 했다. 솔직히 가족들과 언제든 만나고 그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식사하고 웃고 떠드는 것은 지금도 무척 즐거우며 행복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장소에 있는 것이 어색한 기분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 긍정적인 감각이 아니다. 무언가 공허한 느낌을 주는 감각이었다.

나서윤만 해도 내게 언제 타 차원이 연결되냐고 물을 정도다. 1회차부터 그런 삶을 살아온 나는 더했다.

“그래. 알아볼게. 아마 대답해 주실 거야. 당장은 힘들겠지만…….”

“응. 그걸로 충분해. 고마워 오빠.”

다 같이 가는 것도 괜찮지만, 기왕이면 옛날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나서윤의 사족에 나와 나연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 나연은 엄마와 이야기를 좀 나누겠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조금씩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요량인 듯했다.

그와는 반대로 나서윤은 갈 생각이 전혀 없는지 자신을 꾀는 나연을 뿌리친 채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다음 날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행적이 그대로 인터넷에 퍼져버렸다.

정확히는 이미 돌아다니던 시점에 이미 기사가 난 상태였고, SNS에는 얼굴 사진 정도만 제한 채 여러 사진이 뿌려진 상황이었다.

여러 반응들이 돌아다녔다.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부럽다거나 절조 없다며 욕하는 반응들이 익명으로 올라왔고, 전후 처리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애인이나 바꿔가며 놀러 다닌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 반응들은 오래 가지 못할 거다. 다음 차원이 열리는 순간 이런 스캔들은 묻히기 마련이었으니까.

-엄마가 싫어하기는 했는데, 다행이 큰일은 없었어. 찾아오길 잘한 거 같아.

“그거 다행이네.”

그래도 후폭풍이 아주 없지만은 않을 거다.

이후 쌓일 일정들을 소화하며 바쁜 시기를 보냈다. 거인들을 완전히 처리한 이후 한동안은 조용한 듯했으나 예상했던 대로 수련자들에 대한 견제들이 시작되었다.

여론이 나뉘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상황이었고, 어차피 이후 있을 타 차원과의 연결이 있는 만큼 우리들은 묵묵히 견뎌냈다.

그나마 예외는 영국 정도였는데, 엘리자베스의 영향인 듯했다.

그 중국이나 일본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고, 미국 같은 경우에는 여론이 좋지 못함에도 대놓고 수련자들에게, 특히 우리 길드에게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었다.

상황은 제소시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이아 때문에 브리니아는 나서지 않았지만, 제국 측에서는 대놓고 나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익도 이익이지만, 자신들의 영웅인 우리 길드가 그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것.

그나마 한국 쪽은 비교적 조용한 상황이었다. 견제하고는 싶은 것 같아 보였으나 내가 대통령의 약점을 잡고 있기도 했고, 타 국가에 비하면 나름 부정적인 여론이 적은 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성자라는 위치 덕도 조금 보기는 했다. 역으로 성자쯤 되는 인간이 중혼을 노린다고 욕을 더 얻어먹기도 했지만. 아직 성직에 관련된 고정 관념은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차원이 연결될 날을 기다리며 나서지 않았고, 첫 번째 차원이 연결되자 예상했던 반응들이 튀어나왔다.

가이아의 강림, 새로운 적의 발표, 아키밀리의 탑 개방.

여러 일이 빠르게 일어나자 이전의 부정적인 여론이 자취를 감춘다. 수련자들 중에는 몇 개월 새에 지구에 완전히 질려버린 이들이 나타났다. 기껏 이기고 났더니 배척하고, 필요한 상황이 되자 다시금 끌어들이려 한다. 결국 수련자들 중 일부는 지구를 버리고 제소시아 차원으로 아예 이주하는 이들이 생길 정도였다.

지구를 구한 주역이 지구를 버려버린 것. 수련자 출신 중 그런 이를 비난하는 자는 없었다.

첫 번째 차원은 보여주는 목적도 있었고 확실한 해결을 위해 가이아 길드 전체가 이동했다.

나서윤의 부탁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으나 일에는 순서가 있었다.

연결된 차원의 이름은 노그리. 노그리 차원의 관리자는 처음에는 조금 의구심을 가진 듯했으나 우리를 직접 만나고 우리가 해결하는 모습을 본 뒤로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력이 전력이었고 차원 자체도 가이아가 엄선한 만큼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차원의 위기를 정리했고, 노그리 차원의 관리자는 순순히 가이아의 아래로 들어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자 우리가 다시 지구로 돌아왔을 때 이전보다 훨씬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우리 길드원들은 그런 지구의 행태에 상당히 질린 모습이었다.

“…길드장님만 아니었으면 진짜 제소시아로 넘어갔다.”

“그래도 이런 차원 늘어나면 결국 변할걸? 조금만 견뎌. 어차피 직접 피해 보는 것은 없잖아? 이제는 이전처럼 함부로 대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기도 했고.”

“…그건 그렇지. 그래… 견디는 게 낫겠지…….”

안 그래도 결속력이 강했던 길드원들이 한층 더 신뢰를 확인했다.

지구는 결국 변할 수밖에 없다. 변한 지구에 더 어울리는 것은 수련자들이 될 터였다.

우리가 노그리 차원에 다녀온 사이 아키밀리의 탑이 첫 번째 수련자들을 받아들였다.

거인들의 사후 돌아온 수련자 중에는 하층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재능이 있는 이들도 제법 있었고, 그런 이들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탑에 초청되지 못한 일반인들이 초대되었다.

돌아온 이후 격려차 한차례 탑에 들렸고, 교관 중에는 익숙한 얼굴이 다수 보였다.

타 길드에서 유명한 이들이나 내가 후원했던 파티, 길드 출신들도 있었고 남은주와의 친분으로 알게 된 이성훈도 교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명목상 최고 책임자는 한바다였다. 그러나 내 직속 파티인 만큼 직접적인 어디까지나 이름만 올리는 수준이었고, 본인 또한 의욕은 그다지 없는 편이었다.

노그리 차원 이후 나타난 차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어려운 차원은 아니었으나 나서윤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성훈의 노력으로 남은주의 가족 관계가 조금은 개선되었고, 주하연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나서윤 자매의 어머니와도 한층 나아진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매의 어머니께 아직 제대로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나 천천히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시는 모양이었다.

내 가족들에게도 내 주변 사람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주하연과 나연, 나서윤, 남은주를 차례로 데려오자 떨떠름해하는 기색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세 번째 차원이 연결되었을 때, 가이아의 설명을 들은 나는 나서윤이 그토록 기다리던 차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 * *

“그러니까… 이번에는 적이 하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다. 그리 약한 존재는 아니지만… 솔직한 말로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놈이다. 개인이기도 하고.”

“개인이 침략도 합니까?”

`

맞는 말이다. 오데르의 힘을 흡수한 탐욕을 이용하면 나 또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네가 타 차원으로 넘어가서 그 차원을 망가뜨린다고 보면 된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차원의 관리자가 되는 방법 중에 하나기도 하다. 무척 비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하다만.”

“아무튼 그쪽에서 도움을 청했다는 말씀이시군요.”

“소규모 차원이기는 하나, 우리들처럼 막 격이 오른 상황이라 무력이 약하다. 잠재력은 나쁘지 않지. 대차원이 될 정도는 아니다만…….”

가성비가 좋다는 뜻이다.

“운이 좋았지. 이 정도면 다른 차원에서 탐낼 만도 한데, 내가 빨랐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죠.”

“이번엔 과다한 전력을 투자할 필요는 없을 게다. 개인으로 침공한데다가 실력도 별로니… 솔직히 네가 혼자 가더라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

가이아에게 보조할 사람 몇 명만 데리고 최대한 빠르게 가겠다는 말을 전한 뒤, 나는 곧바로 나연 자매를 불러들였다.

나서윤은 무척이나 기뻐하는 기색이었고, 나연 또한 조금 기대한다는 듯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세 번째 차원, 디클로디히 차원으로 진입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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