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02화 (302/317)

302화

입구의 두 거인을 무너뜨리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와 나서윤이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당황한 상대가 무언가를 할 틈 자체를 주지 않았고, 이어 달려드는 길드원들의 지원 덕분에 상대를 수월하게 제압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적이다! 인간들이 쳐들어왔다!”

“벽이! 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렁우렁 울리는 거인들의 목소리. 자신들의 삶은 포기한 듯 우리들의 침입을 알리는 것에 목숨을 걸었고, 그 임무를 완수해 냈다.

거인들의 움직임이 저 멀리서 느껴진다.

“큰 공간이지만 한계는 분명하네요.”

차원을 다루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보다 컸다면 가이아에게 들킨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일대를 전부 안정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성군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럼 부탁드리죠.”

내 말에 애니디 성녀와 성군들이 일제히 안정화를 사용했고, 완성되기 무섭게 일부 호위 병력만을 남긴 채 내부로 돌입했다.

동굴의 통로를 조금 지나기 무섭게 거대한 내부 공동이 드러났다. 형태를 보면 자연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흔적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직접 확장한 모양이었다.

“…이리 빨리 오다니. 결국 관리자가 힘을 쓴 건가? 설마 이만한 고립을 유지하면서 세계 전체를 스캔할 줄은 상상도 못했군.”

오데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급하게 손을 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만한 힘을 모은 거지? 잠재력이 높은 차원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상상 이상이로군. 상처를 치료하는 데 걸린 시간이 너무도 아쉽구나.”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오데르에게는 그마저도 찰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이라…….’

다른 거인들의 재생력은 엄청나게 촉진할 수 있으면서 본인은 그렇게까지 재생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니면 장시간 사용할 수 없던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표정을 굳힌 오데르가 진지한 얼굴로 외쳤다.

“막아라.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분명 고립은 약해졌다. 반드시 둥지로 향하는 길을 뚫어내 보이겠다. 우리는 둥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버텨라, 나의 전사들아!”

“둥지를 위하여!”

“오데르 님을 위하여, 거인의 영광을 위하여!”

오데르의 말에 그의 친위대들이 소리높여 응한다.

곧바로 오데르의 손이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허공에 손짓하기 시작했다. 마치 저 손짓이 과거, 플로어 마스터들이 간섭력을 이용해 내 상태 창을 수정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력의 눈동자를 통해 상대를 바라봐 보았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군.’

어차피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나 또한 결사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미리 말씀드렸던 대로, 최대한 빨리 오데르를 처리합니다.”

“예!”

짧고 단호한 대답.

곧바로 결사대원들의 진형이 변한다. 미리 이야기되어 있던 대로 팀 단위로 나뉘며 거인을 공격하기 위한 진형이 형성된다. 일부는 뒤로 빠지며 후열을 지키기 위한 보루가 되어주었고, 동시에 후열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깊은 해저의 공동인 이상 너무 파괴적인 마법은 위험해.’

사용하고 난 뒤 우리까지 죽을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공동이 좁기도 했고.

버티기만 해도 결국에는 이쪽이 훨씬 유리하다. 마법사들이 있는 이상 저들의 전멸을 사실상 정해진 바였다. 하지만 시간제한이 있었기에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버티는 것은 거인들의 역할이 되어버렸다.

이제껏 있었던 전투와는 정 반대에 해당하는 상황.

나는 말 없이 정면의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고, 마치 내 행동이 신호탄이 된 듯 결사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각자 목표로 하는 거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죽어! 네놈들만 처리하면…!”

“명예로운 죽음을!”

“왕실에 충성을!”

인간의 고함과 거인들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뿜어낸다.

쾅! 콰앙!

공동이 흔들리고 사방이 폭발하며 강기가 부딪치고 폭발하는 소리로 인해 단숨에 전장이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그사이 나를 막아서는 거인을 바라보았다.

“반갑군. 유신후. 너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지. 이전에는 신세를 졌었다.”

“…이전에 살아남은 놈인가? 내 힘은 알 텐데?”

“물론이고말고. 오데르 님의 친위대 둘을 홀로 제압하는 모습,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말을 하기 무섭게 거인의 몸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뭔…….”

나는 급하게 상대에게 검을 휘둘렀다.

뭔가를 하려는 것을 방치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빛은 한순간이었고, 거인은 내 공격을 간단하게 막아냈다.

쿵!

우습게도 밀리지 않는다.

내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버텨?’

나는 돌입과 동시에 모든 힘을 해방한 상태였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내 신체 능력은 한 달 전 거인들과 싸웠을 때보다도 더 강해진 상태였다.

그때도 이미 거인들을 웃도는 신체 능력이었고 둘을 상대로도 우세할 수 있는 근원 중 하나였거늘, 지금은 어찌 된 것인지 한 명의 거인이 내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냈다.

비록 당시처럼 과하게 힘을 폭발시키지는 않았지만, 지금 신체 능력을 고려하면 당시와 비슷한 위력이었을 터다.

“…과거보다도 오히려 강해졌군. 두려운 놈이로다.”

파랗게 변한 눈동자로 중얼거리는 거인. 그의 몸 또한 은은한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력의 눈동자로 상대를 바라보자 그의 마력은 폭주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전 내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기술인 듯했다.

‘아니 오히려…….’

“너, 죽을 셈이군?”

“물론이다. 나보다 강한 자를 상대하는 일이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우리는 너희를 인정했다. 너희는 강하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상대하는 수밖에.”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마력과 함께 불사르고 있었다.

지금 대화를 하는 이 순간에도 그는 조금씩이나마 죽어가고 있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죽어가는데, 계속해서 말을 하는 이유는 아마 시간을 끌기 위해서인 듯했다.

슬쩍 전황을 바라보자, 이처럼 자신을 불태우는 거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서윤을 상대하는 놈, 한바다를 막아내는 놈과 한 거인은 아예 하유진을 전담 마크하고 있었다.

이전, 셋이서 연계해 오데르를 상처 입힌 적이 있는 만큼 상당히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아군들 또한 그런 이들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일부 후열이 그런 셋을 지원하고 있었다.

나서윤은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었지만, 한바다와 하유진은 연신 뒤로 밀리는 중이었다.

그런 한바다를 조연은이 뒤로 빠져서 따로 지원하기 시작했고, 나연은 사샤와 함께 하유진을 보조해 주었다.

푸르게 빛나는 일부 거인의 힘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전황은 생각보다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일부 전장은 오히려 우리가 밀리고 있었다.

모든 거인이 몸을 태우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다.

‘다 같이 쓰러지는 것을 우려하는 건가?’

아니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솔직히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무언가 준비가 필요한 기술인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오데르는 빠르게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약간 다급한 것을 보면 상대 또한 초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 급하게 이어지는 손짓이 언제 상황을 뒤집을지 모른다.

‘안 되겠군.’

주변을 살피는 와중에도 내 눈앞의 거인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척이나 긴장된 기색으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을 뿐. 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력으로 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동시에 이전처럼 과다하게 마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몸을 태워버렸다.

상대처럼, 마치 생명을 불태우는 기세로.

혈신의 갑옷이 내 피마저 마셔대며 미친 듯이 폭주한다. 시야가 완전히 붉게 물들고 이성이 날아갈 듯 머리가 뜨거워졌다.

‘괜찮아. 버틸 수 있다.’

일변하는 내 기세에 상대 거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몇몇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을 느낀다.

불사의 육체, 신성력, 성자의 육신, 강해진 성흔.

탑에서 얻었던 힘들이 무너질 듯한 육체를 견고하게 받쳐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탐욕이 빼앗았던 마왕의 불사력. 휘하의 뱀파이어들이 없고 내가 인간인 이상 제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탐욕은 자신의 방식대로 그 힘을 가공해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거 마왕의 그것보다는 확실히 격이 떨어지지만.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는 놈이지만 지금은 내가 주인이다. 그렇기에 마검은 당장은 나를 돕고 있었다.

나는 한순간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몸이 흐릿하게 변한다.

거인의 시선이 나를 쫓는 것에 실패했다.

꾸웅.

공기가 응축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내가 내리친 일격이 상대의 머리를 그대로 찍어 누른다.

“커억!”

거인이 피를 토한다. 우연이었을까, 본능이었을까.

한순간 상대의 뒤로 이동해 내리친 내 일격을, 거인은 자신의 팔로 막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피해를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몸에 거대한 충격을 받은 거인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돌리며 방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무릎을 꿇어도 나보다 훨씬 거대한 거인은 나를 두렵다는 듯 내려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모로 꼬며 중얼거렸다.

“그게 최선이면, 오래 못 버틸 거다.”

나는 흔들리는 이성을 강제로 잡아 누르며 무릎 꿇은 거인을 향해 다시금 거대한 강기를 휘둘렀다.

* * *

‘거의 다 되었다.’

오데르는 떨리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견고하게 고립된 세계가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보다 확연히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있다면 된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그 괴물 같은 인간이 또다시 뭔 짓을 저지른 모양이라고, 오데르는 생각했다.

그를 맞상대하는 친위대장의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곳은 대부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일부는 오히려 인간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한 전력이 오기는 했지만, 충분하다. 버틸 수 있어!’

“으아아악!”

“안돼! 안돼!”

인간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여유를 찾은 친위대 일부가 괴물 같은 인간, 유신후를 향해 달려든다.

그만 막을 수 있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범위 지정! 블리자드!”

마법사들의 마법이 날아온다.

목표는 유신후를 방해하는 거인과 오데르 자신이었다.

오데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충실한 친위대 한 명이 그러한 마법을 향해 몸을 날린다.

자신의 영광을 부르짖으며 산화하는 친위대. 깊은 바다 속 공동임을 고려해 파괴력이 극도로 높은 마법은 사용하지 못했고, 때문에 친위대 한 명의 희생으로 한 번의 마법을 막아낼 수 있었다.

‘아무리 차원의 틈으로 만들어낸 곳이라고 해도, 그만한 파괴력의 마법은 사용하기 힘들지.’

대게 강한 마법일수록 일대에 가하는 피해가 컸고, 그렇게 된다면 거인들보다 인간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우려가 있었다.

‘조금 좁게 만든 보람이 있군.’

마법을 막아낸 친위대와의 연결이 끊기는 것을 느끼며 오데르는 필사적으로 둥지와 연결을 위해 노력했다.

‘…찾았다!’

한 순간의 틈. 그것을 찾아낸다. 가이아 또한 그것을 눈치챘는지 필사적으로 파고드는 오데르를 방해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약해진 고립이 한 차례 더 약해져 버렸고, 드러난 수많은 틈을 노리며 오데르가 바삐 손을 움직였다.

뚫는 것은 시간문제. 그것을 느끼는 순간, 한차례 거대한 신성력이 일대에 퍼져 나갔다.

‘지구의 관리자? 아니, 이건 다른 관리자의…….’

그리고 그 순간. 오데르는 자신과 연결된 모든 친위대와의 연결이 한순간에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