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01화 (301/317)

301화

<오데르>

약 한 달.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끝끝내 오데르의 위치는 파악할 수 없었다. 심지어 수색하는 동안 단 한 번의 습격조차 없었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색 의지는 조금씩이나마 떨어져만 갔고, 심지어는 타 차원으로 도망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가이아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결국 오데르는 아직 지구 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빨리 찾았으면 좋겠는데…….’

처음에는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들도 있었고 가이아가 지금처럼 차원을 고립시켜 방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상황도 아니었던 만큼 거인들의 위치를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가이아는 거인들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힘을 할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에는 이전 나에게 언급했던 시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가이아의 강림 자체가 워낙 대단했던 덕분인지 신도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 한 달 전인데 이미 신도의 숫자는 억 단위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그에 따라 사제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었고, 덕분에 신도들의 숫자는 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덕분에 주하연 같은 경우에는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은주 또한 몸을 완전히 회복하고 늘어난 신성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되자 그런 주하연을 돕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둘을 보기 위해서는 차라리 TV를 보는 것이 빠를 정도.

오늘도 수색에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보고를 듣기 무섭게 주하연이 직접 연락을 해 왔다.

“계시가 왔어요. 신후 씨, 가까운 신전을 찾아 주시겠어요?”

“바로 가겠습니다.”

저녁 무렵이었지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가까운 신전으로 향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아 중앙의 제단은 사용할 수 없었기에 나는 빠르게 기도실 하나를 배정받았다.

내가 왔다는 소식에 늦은 저녁임에도 사제와 신도들이 몰려왔지만 나는 그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적당히 받아준 뒤 곧바로 기도실로 들어왔고, 들어오기 무섭게 압도적인 신성력과 함께 성흔을 통해 가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이 많구나.

아무래도 내게 몰려드는 신도와 사제들을 본 모양이다.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때가 된 겁니까?”

내 말에 가이아가 긍정을 표해왔다.

―그래. 준비가 끝났다. 이틀 뒤, 곧바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게다.

“바로 소집하겠습니다.”

이전과 다르다. 다른 일도 없는 만큼 최대한의 힘으로 밀어붙일 셈이었다.

―계시는 이곳에서 내리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이틀 뒤 이 시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신성력이 사라진다.

기도실을 나서자 우글우글한 신도와 사제들을 볼 수 있었다.

“성자님! 여신님의, 여신님의 목소리를 들으신 겁니까!”

“계시입니까? 계시가 내려온 겁니까?”

“다들 진정하세요! 성자님 앞입니다. 이리 추태를 보이실 겁니까!”

‘…광신도들 같군.’

사제는 신도들을 말리면서도 은근히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계시 맞습니다. 내용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딱히 숨기지 않아도 되기는 하나, 혹시 모르기도 하고 알려줄 이유도 없기는 했다.

나는 곧바로 이 신전을 담당하는 사제를 찾아 당분간 신전을 폐쇄할 것을 명령했다. 현재 수련자들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하급 사제 수준에 불과했기에 느껴지는 신성력을 별거 없었다.

당황해하는 사제에게 필요한 일이며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사실상 이틀이면 되는 일이다.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사제는 당황하기는 했으나 그가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가 받아들이기 무섭게 나는 가디언의 이름으로 길드원들과 각국의 수련자들에게 빠르게 연락을 돌렸다.

이틀 뒤에 오데르의 위치가 파악된다는 소식에 실력이 되는 수련자들은 즉시 소집에 응했다. 응하고 싶지 않은 자들은 많았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피하는 이들은 없다시피 했다.

내 가이아 길드부터 영국의 왕실 길드와 엘리자베스에게 소개해 주었던 2대 권왕 폴루노, 바이에른 길드와 톰 뮐러, 갈리아 길드와 크리스토퍼, 중국의 왕춘과 휘하의 무인들, 야마모토 하지메, 과거 중층에서 황실 휘하에서 활동했던 이들 중 능력 있는 수련자들도 다수 참가했다.

그 외에 작은 파티 단위나 개인 단위로 활동하는 이들 중 나름 쓸만한 이들까지 합하면 3천이 가볍게 넘어가는 숫자였다.

거기에 성군과 레고스트 일행까지 더해지자 압도적인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지막 전투를 위한 결사대.

일정 수준 이상의 수련자들만 끌어모았는데도 이만한 전력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내 가이아 길드가 나서는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밀렸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거인 하나하나가 얼마나 강대한 괴물들인지 새삼 알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가이아 길드가 빠져버린다면 솔직한 말로 지금 남은 잔당들조차 이기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저들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소집조차 하지 않았을 터다.

‘보조는 필요하니까.’

저들이 있다면 전투가 훨씬 안정되고 수월해진다.

가디언이 소집을 명령하고 수련자들이 뭉치자 역시나 온갖 추측성 기사들이 터져 나왔고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달라붙었다.

내가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그뿐이었다. 계시 내용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외부의 일일 뿐이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들은 이틀간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들의 장비를 점검할 뿐. 대외적으로 사실을 알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거인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시간도 없는데 외부 안정시키겠다고 움직이는 것은 손해였다.

이틀 정도는 괜찮았다. 그 정도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우리가 침묵하자 온갖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거인이 추가로 발견되었다느니, 그들이 같이 죽자는 식으로 달려들 거라느니, 우리가 지구를 버리고 제소시아로 넘어갈 거라는 등의 헛소리 같은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는 마침내 거인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라는, 진실에 한없이 가까운 기사도 있었다.

이틀 뒤 저녁, 마침내 가이아의 계시가 내려졌고 오데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습게도 이전에 우리와 전투한 곳에서 멀지 않은, 태평양 바다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심지어 그 깊이가 심각할 정도로 깊은 곳도 아니었다. 심해의 한 동굴. 그곳을 특수한 방법으로 개조해 거기서 버티고 있었던 것.

―…오데르라는 놈은 차원을 제법 잘 다루더구나. 관리자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평범한 거인은 아니야. 설마 신물이 아니라 본인이 타고난 능력이었을 줄이야…….

거인의 신물. 차원을 넘어다닐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편히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관리자도 아닌 주제에 차원을 넘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자체가 워낙 대단한 능력이었다. 괜히 신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설마 본인이 신물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다니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고. 오데르는 스스로가 차원 자체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 이가 도태된 곳이라…….’

거인들의 고향 둥지. 그곳의 정식 표적이 되어버린다면 정말 끝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확실히 교묘하구나. 아무리 내가 여유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저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줄은… 빨리 막아야 한다. 놈 또한 자신들의 위치가 들켰다는 것을 알아챘다. 차원에 구멍을 뚫으려고 애를 쓰고 있어. 당장은 괜찮지만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잠시 생각하던 가이아가 말을 이었다.

―하필 차원의 벽인가… 평범한 방법으로는 침투하기가 힘들 거다. 성녀에게 전달하거라. 내가 돕도록 하마. 하지만 알아두거라. 여기까지 힘을 사용하면 고립이 약해질 거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만 한다.

“저희끼리는 힘든 겁니까.”

시간 제한이 있다는 말에 되묻자 가이아가 대답했다.

―차원의 벽을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인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도 않을 테고. 차라리 내가 나서는 편이 낫다. 전투는 몰라도 이쪽은 내가 더 도움될 터이니.

“알겠습니다.”

결국 가이아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나는 가이아의 말에 따라 수련자들을 한 장소로 모았다. 그리고는 주하연에게 가이아의 말을 전달했다.

“…직접 강림하려고 하시는 모양이에요. 결국, 쓰게 되네요.”

남은주가 그간 봉인되어 쓰지 못했던 순교자 스킬이 있었던 것처럼 주하연 또한 그간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이 하나 있기는 했다.

‘초래(招來)… 인가.’

신화급 스킬. 여신 자체를 불러들여 온갖 기적을 일으키는 기술. 그간 가이아가 잠들어 있었고, 주하연 본인의 능력이 부족하기도 했기에 사용할 수 없었던 기술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이아도 깨어났고 주하연의 능력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 당장도 주하연의 신성력은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나 또한 성흔의 효율이 올라가고 있었고.

문제는… 이것을 사용하면 후유증이 보통이 아닐 거라는 거다.

여신을 직접 몸에 받아들이는 거다. 후유증이 단순하지는 않을 거다. 이번 전투에서 주하연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아마 최소 몇 달은 몸을 정양해야 할 터였다.

‘성군들이 애 좀 써야겠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하연이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전신에서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어서 뿜어지던 신성력이 한 점으로 모이며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극에 달했을 때, 주하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신이시여…….”

화아악.

신성력이 폭발하며 곧바로 여신의 환영을 형성한다.

주하연이 감았던 눈을 뜨자 그곳에는 더이상 주하연이 서 있지 않았다.

눈빛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많은 이들이 저도 모르게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수련자들이 과거 보았던 그 여신이 아니다. 느껴지는 힘과 거룩함의 차원이 달랐다.

―나의 아이들아,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나의 대리자를 따라라. 그를 따라 저 끔찍한 침략자들을 막으라. 그 끝에 평화가 있으리라.

말은 길지 않았다. 저 상태를 오래 유지할수록 주하연의 몸에 부담이 간다.

곧바로 신성력이 폭발하며 주변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 빛이 사라졌을 때 어느새 주하연을 제외한 모든 결사대원이 바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수면 위가 아닌 수면 아래. 주변은 신성력에 의해 무척이나 밝은 환경이었고 이곳에 있어야 할 물은 모두 신성력에 밀려 저 먼 곳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쩌저적.

곧이어 허공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마치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해저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들도 편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인간? 어떻게 이리 빨리……!”

그 앞에는 거인들이 한껏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나타난데다가 자신들이 지키려 했던 벽이 단숨에 무너져버렸으니, 당황할 법했다.

결사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깃든다.

나는 당황한 거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모두, 돌입합니다.”

나를 필두로, 결사대원들이 빠르게 거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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