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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00화 (300/317)

300화

가이아의 강림. 그것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그녀는 강림하기 무섭게 고생한 수련자들과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해 축복을 내렸고, 그들이 평온한 잠에 들었노라고 알렸다.

가이아는 지상에 강림하여 축복을 내리고 축언을 내뱉었으며 세계가 힘을 합해 자신의 대리자인 나를 도울 것을 알렸다.

거인은 자비가 없으며 패배하면 죽음뿐이다. 그것을 신의 이름으로 보증했다.

실제 신의 강림으로 세계는 또 다른 충격에 휩싸였다.

여러 종교들이 혼란을 겪었으며 직접 가이아를 목격한 이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진짜 신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말하고 다녔다.

가이아는 단순히 위령제가 있었던 곳에만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 곳곳, 주요 도시들에는 그녀의 환영이 나타났고, 그 환영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진정한 신이라고 칭송해댔다.

수련자들의 입에서만 나왔던 가이아. 수련자들이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그녀를 믿는 이들이 늘어가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 강림을 기점으로 개종하거나 새롭게 신도가 되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실존하는 신]

[사후 세계]

미디어의 초점이 거인과 희생자에서 단숨에 신으로 옮겨갔다.

나는 실시간으로 내 성흔이 강해지고 주하연과 남은주의 신성력이 폭증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가계약이 아닌, 완전한 가이아의 계약자가 되었기 때문인지 내 길드원들 또한 조금씩 마력이나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말을 해왔다.

가이아가 강해지며, 우리들에게 투자를 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탑에서 타 세계의 관리자들이 수련자들에게 스킬이나 직업을 내리는 것과 비슷했다. 시스템처럼 명료하게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영향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지구인 중에서 새롭게 신관이 생겨나고 그들이 힐이나 정화 같은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기존의 종교들이 단숨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이렇게 되네요.”

주하연이 조금 씁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종교 때문에 가족과 멀어진 그녀다. 기분이 이상할 만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잊혔군요.”

한바다 또한 다른 의미로 기분이 좋지 못한 듯했다. 고생한 이들이 단숨에 잊히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일단 저희 힘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고, 지구의 힘이 하나로 모이기는 했으니까요.”

주하연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인다.

종교의 힘은 예상 이상이었다. 우리야 가이아를 직접 보기도 했고 탑에서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과 동료들의 힘으로 여러 위기를 헤쳐나왔다.

도움이 아예 없다고는 못 하겠다만, 그래도 완전히 의지한 것만은 아니다. 가이아 또한 우리에게 기대하는 면이 있었고. 관리자인 그녀는 거인과 대적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구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실존하는 신과 그녀가 내리는 신성력에 빠져들었고, 그녀를 향한 외침은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간절한 외침들.

그것은 가이아의 힘이 되었고 동사에 우리의 힘이 되었다.

마치 세계가 광신도들이 된 것만 같았다.

세계의 위기 상황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분쟁이 단숨에 사라졌을 정도였으니까.

나를 통해 위기를 해결한다거나 거인이 쳐들어와 세계의 구성원을 죽이는 등 그녀가 전능하지 못하다는 사실 정도는 다들 알고 있을 텐데도, 그 광신은 전혀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최초의 신전이 건립되고, 성녀인 주하연이 그런 신전을 이끌어갔다.

나는 나대로 바빴고, 그녀 또한 성녀인 만큼 자격은 충분했다.

최초의 신전이 건립되기 무섭게 나는 제단을 통해 가이아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잘해 주었다. 승리가 머지않았더구나.”

말과 다르게 가이아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먼저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죽은 이들은 정말 편히 잠에 든 겁니까?”

“모른다. 지성체, 아니 생명체의 사후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미련이 남아 찌꺼기가 남을 수는 있어도 혼 자체는 차원 너머의 어딘가로 사라진다고. 그 흔적을 자신은 추적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소시아와의 연결을 서둘러 주신 덕분에 남은 이들이라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내 신도들이요, 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해 줘야지.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오데르의 말은 무슨 뜻입니까? 웃으면서 도망쳤습니다. 위치도 추적을 할 수가 없고…….”

“위치 추적이라면 내가 준비하는 것이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지구에 있다면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잠시 말을 멈췄던 가이아가 이어 말했다.

“그가 웃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이 상상 이상으로 좋은 먹잇감임을 확신했기 때문이겠지. 본래라면 자신이 완전히 지배한 이후 자신의 본 차원인 둥지로 돌아가고 싶었겠지만… 이만한 차원이라면 알려만 줘도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야.”

가이아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기실 지성체가 수십억이나 되는 차원은 정말 희귀하다. 특히 막 격이 올라 마력이 갑작스레 강해진 신생 차원 중에서는 정말 희귀하지. 제소시아만해도 마왕이 침략하기 이전 지성체의 숫자는 5억이 채 되지 못했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족이 있는데도 그 정도다. 게다가 차원 자체도 귀한 자원인데 그런 차원이 3개나 연결된 곳이다. 그런 주제에 무력은 부족하지. 그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체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그러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 차원이 될 수 있는 조건이고, 단기적으로는 지성체를 이용해 생명력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지. 현재 내 힘을 보거라. 브리니아만도 못했던 내가, 지금 이리 강해지지 않았느냐?”

확실히 느껴지는 기운이 이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우선은 급하게 생성된 신성력과 간섭력으로 차원을 지키고는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가 둥지와 연락을 하기 이전에 어떻게든 막야아 한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되거든 알리겠다. 그간 신도들을 최대한 늘려다오. 그럴수록 더더욱 오래 버틸 수 있으니 말이다.”

“전하도록 하죠.”

종교의 관리는 거의 주하연이 맡고 있었다.

일행에게는 가이아에게 들은 바를 사실대로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각국의 군대를 통한 오데르의 수색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나중에 가이아가 위치를 알려준다고 한들 그 전에 찾으면 더더욱 안전해지니까.

타 차원과의 교류, 새로운 신흥 종교의 발생, 거인의 침공과 숨어버린 오데르의 수색.

여러 일들로 인해 지구가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데르의 위치를 찾아내기 전까지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다시피 해버렸다. 주하연은 현재 가이아에게 교리를 받아 교단을 키우기 바빴고, 대부분의 길드원들은 성장하는 힘에 적응하기 바빴다.

일부 인원들은 대기 상태지만 시간을 내어 가족들을 보는 경우도 생겼다.

특히 한국 같은 경우에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가장 우선 설치되었기에 그런 쪽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브리니아의 지시인지 가이아의 요청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예 준비 자체가 다 되어있었기에 개통은 정말 빠르게 이뤄졌다. 좌표만 조사하면 되는 수준. 미국과 한국만 연결되었고 사람 몇 명만 이동할 수 있는 작은 게이트였으나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덕분에 나 또한 가끔 가족들의 얼굴을 보러 갔었다.

거기서 의외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내게 길드원들의 가족이나 다른 이들의 비난이 집중되었을 때, 비난을 감수하고 내 변호를 해 주셨던 것.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개고생을 하고, 가족들 얼굴 얼마 보지도 못한 채 세계 구해보겠다고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에게 못 하는 말이 없어!

녹화된 영상에서는 아버지가 흥분한 모습으로 외치고 계셨다.

변해버린 내 외모나, 들려오는 고생담, 영상으로 보이는 수련자들의 전투 장면들.

그런 것을 보며 나를 받아들였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어색해했던 가족인데, 내가 모르는 곳에서 저리 위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잘… 돌아왔네.’

끔찍했던 기억들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아직까지 우울한 모습을 보이는 이가 있었다.

“…은주야.”

“아, 신후 오빠.”

남은주가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반긴다.

그녀는 태평양에서 있었던 오데르와의 전투 장면이 세계에 퍼진 뒤로도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다.

태평양에서 있었던 오데르와의 전투. 그곳에서 그녀의 희생적인 모습이 세계 전체에 퍼졌고, 남은주의 가족들 또한 그런 모습을 봤는지 연락이 왔었다. 무사한지 알고 싶다고. 그럼에도 남은주는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자신이 거부당했던 것이 어지간히 상처였던 모양이다.

“몸은 어때?”

“괜찮아요. 요즘에는 가이아 님의 힘도 강해진 덕분에 오히려 이전보다 건강해진 기분인걸요.”

확실히 현재 그녀는 개인 수련을 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아지기는 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회복이 빠르다.

“신후 오빠는… 안 가봐도 돼요? 예전부터 그렇게 그리워하셨잖아요. 매일 만나고 싶으실 텐데…….”

“나는 괜찮아. 너는 정말 아예 안 만나봐도 되겠어? 연락 왔었어.”

가끔 가족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나는 다른 길드원들처럼 한국에 상주하지는 않는다. 오데르를 수색하는, 타 국가의 군대들과 연락도 꾸준히 해야 하고, 제국과의 거래에 교두보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대부분 대리인이 처리하기는 하지만, 자리를 지킬 필요는 있었다.

“…무시해 주세요. 오데르 물리치고 나서, 탑이 열린 다음에 가 볼게요.”

이성훈의 생존을 먼저 안 뒤에 연락할 모양인 듯했다.

나는 그런 남은주에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떤 심정인지, 나는 모른다. 그녀 또한 나만큼이나 집을 그리워했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가 외면이다.

그 상처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남은주의 곁에 나 또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였다. 그러나 남은주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한 모양이다.

남은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그냥 이대로 완전히 남남처럼 지내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아요. 어차피 부족한 것도 없고… 독립했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고개를 숙인 남은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친구, 같이 함께한 길드원들, 언니들이나 서윤이, 유진이… 그리고 오빠를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하면… 저 힘 낼 수 있어요. 사실, 그걸로도 충분해요.”

다시 고개를 든 남은주의 얼굴에는 약간이지만 미소가 배어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정말 그걸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그들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나를 밀어내지 않을 테니까.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남은주의 미소가 조금이지만 슬퍼 보였다.

어쩌면 이성훈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것도 마지막 미련을 떨치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후 오빠.”

“…응.”

“오빠는, 저랑 계속 함께할 거죠? 그렇죠?”

“그래.”

나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같은 일을 경험하고, 같은 길드에서 지냈던 내 파티나 길드원들은 전쟁이 끝난 뒤로도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을 터였다.

내 대답에 남은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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