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강림>
‘이게 지금 열린다고?’
머지 않은 미래에 연결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타이밍에, 이 장소에서 연결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의도적… 인 건가?’
준비 자체가 지금 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되어 있었는데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가이아가 개입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침공? 지금 이곳에서?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설마… 동맹인가?”
오데르가 부상을 입은 몸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 강한 곳도 아니군. 어지간히 급하긴 했던 모양이야. 거대 연합도 아닌 주제에 동맹을 공개해? 허. 심지어 하나도 아니군. 반쪽짜리이기는 하지만 하나가 더 있었어. 이거 월척이로군.”
차원이 연결된 것만으로도 오데르는 많은 사실을 파악한 듯했다.
가이아나 브리니아가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이러한 수를 두었다는 것은 그 사실을 들키더라도 내 길드원들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열린 차원의 문에서 성직자 및 마법사, 제국의 군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 나나 나서윤이 했던 것처럼 거인들은 차원의 문을 노리고 공격을 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안정화가 걸린 것처럼 공간 계통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직접 공격을 하기에는 우리가 멀쩡히 버티고 있었다.
틈이 만들어지기 무섭게 주하연이 다시금 안정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데르가 외쳤다.
“하하하! 실수했구나, 관리자. 지금은 물러가나 훗날 반드시 지금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모두, 빠져나간다!”
오데르의 외침이 이어지기 무섭게 즉시 길드원들과 싸우던 이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붙잡아!”
지금이 기회다. 안정화가 펼쳐진 것은 아니기에 4차 전직 이상의 수련자들만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런 우리를 위해 마법사들이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난사한다.
피해는 사실상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방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자 아직 이전 마법 때문에 입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몇몇 부상이 심한 거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우리의 길을 막아섰다.
“크아아악!”
“오데르 님께서 우리의 복수를 해 주실 것이다!”
“막아라! 오데르 님만은 살려 보내드려야 한다!”
하나나 둘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몸이 멀쩡한 이들마저 목숨을 걸고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정화가 사용되기 전에 어떻게든 힘을 다 쓰겠다는 듯, 아군이 휘말려도 개의치 않고 공간 계통 공격을 난사한다.
사샤 또한 어떻게든 바다를 이용해 저들을 방해했고, 하유진은 단번에 상황을 역전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버리는 거인이 열을 넘어가자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오데르는 도주에 성공했고, 그런 오데르를 지키는 거인은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퇴로를 열어준 것. 곧이어 안정화가 펼쳐졌고, 남은 길드원들마저 달라붙어 그나마 남은 거인들이라도 처리하기 시작했다.
제소시아 차원에서 넘어온 병력들이 그런 우리를 도와주었고, 더는 길드원들을 잃지 않은 채 남은 잔당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한 사람이 다가왔다.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신후 님. 지원군 총사령관을 맡은 이오드 베라입니다. 이오드라고 불러주십시오.”
“갑작스레 연결되었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훈련 중이었는데… 급하게 계시가 내려왔다는 말과 함께 소집되어서요. 그래서 그 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뇨. 덕분에 살았습니다.”
사실이었다. 일단 길드원들의 목숨은 건졌으니까.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여긴… 바다 위군요. 차라리 빈 땅이라도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쉽다는 듯 이오드가 중얼거린다.
곧이어 신관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성자님을 뵙습니다.”
신관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여신께서 상황이 급박하여 이리 예고도 없이 문을 열었다고 하셨나이다.”
신관의 입을 통해 여신의 전언들이 이어졌다. 예상대로 이건 가이아의 요청에 의해 급하게 이루어진 연결이고, 따라서 더한 지원은 당장 어렵다는 것과 지금 열린 문은 옮기는 것이나 추가적인 개설이 어려워 꽤 오래 여기서 있어야 한다는 말 등이었다.
“성자님께서 모시는 가이아 님의 강림이 머지않았다는 말씀 또한 있으셨습니다.”
“…그렇군요.”
이번 전투도 그렇고, 최근 강해지는 신성력을 느끼며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때가 되면 나타날 터.
이야기를 전달받은 이후 우선은 미국으로 향할 필요를 느꼈다. 오데르가 도망치기는 했지만, 아직 미국 본토를 향하던 거인들이 진짜 물러났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고, 제소시아와 연결된 만큼 미국과 공조도 필요한 면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이오드가 이끄는 제국군과 상처가 심해 당장 거동이 힘든 길드원들을 남겨 놓은 채 곧바로 미국을 향해 이동했다.
* * *
‘물러났군.’
전달 받은 정보에 따르면 오데르가 도망친 시간과 거인들이 빠져나간 시간이 비슷했다.
레고스트를 비롯해 성군들이 일부 거인들을 죽이기는 했으나 고작 둘 정도에 불과했고, 각국으로 퍼져 나갔던 거인들 또한 넷 정도 잡은 것이 고작이었다.
이로써 남은 거인은 40개체가 좀 안 되는 상황. 이쯤 되면 우리가 먼저 공격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위기 상황이, 역으로 기회가 되어 버린 것.
게다가 3등위 이상의 거인이 이번에 내 길드와의 충돌로 상당수 죽어버렸다.
‘지원군도 왔고.’
오데르가 마지막에 한 말이 걸린다. 그런 만큼 되도록이면 빠르게 오데르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또 모습을 감췄다는 거지…….’
자신들이 바다 깊숙한 곳으로 숨으면 우리가 찾기 어렵다는 것을 제대로 확신한 듯했다.
미국은 타 차원의 제국과 최대한 친하게 지내기를 희망했다. 레고스트와 그 휘하의 성군들은 제소시아와 연결되었다는 소식에 환호했고, 그간 이들을 잘 대해주었던 미국은 그들을 통해 제국과 거래하기를 원했다.
수련자들이나 성군들의 힘을 겪은 그들로서는 중세에나 나올 것 같은 장비를 사용한다고 저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레고스트는 로지우스 왕국을 번영시킬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무력은 몰라도 그 생산성이나 자원, 과학 기술 등은 제소시아 출신 사람들에게 엄청 충격적이었던 듯했다.
마력만 아니었으면 제소시아는 지구와 싸울 수도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차원의 문이 열린 것을 안 다른 국가들 또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제국과 거래할 수 있기를 원했다. 특히 마력을 다루는 기술들을 상당히 탐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게, 수련자들이 아니었다면 거인들에게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멸망했을 거다. 그 어떤 국가라도 안보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새롭게 등장한 차원과 교류를 원하는 국가 상층부들과는 다르게 전 세계는 거인들 때문에 입은 피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2차 습격. 수련자들은 무엇을 하는가.]
[수련자들, 정말 도움이 되는가?]
[새로운 차원의 등장]
[두 번째 비극.]
[도망친 거인들. 다음 습격은 어디?]
최초의 습격과 두 번째 습격으로 입은 피해가 장난이 아니었다. 최초 피해 때만 해도 100만에 가까운 인간이 죽었는데, 두 번째 습격은 미리 대비했음에도 그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이전처럽 여유롭게 행동하지 않은 거인들이 필사적으로 인간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했던 것.
그것을 막기 위해 움직인 각국 수련자들이 대부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고 패배해 죽임을 당하거나 물러나는 영상들이 퍼져버려 수련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끔찍한 자연재해]
게다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우리가 싸운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한참 떨어진 국가에도 피해를 줘버린 것.
이것 또한 거인과의 전투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버리자 전 세계인들의 비난이 가디언을 향했다.
그러자 우리의 힘을 제대로 파악한 각국의 수뇌부들이 기겁을 해버렸다.
특히 미국 같은 경우에는 지원해준 공군이 전멸하기 무섭게 이쪽을 관측했기에 우리가 오데르 쪽과 싸운 영상을 확보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정말 제대로 체험한 상태였다.
‘내가 군대를 상대로 싸운 적도 있으니까.’
미국은 우리가 분노하기 전에 그 영상을 각국에 보내 여론을 잠재울 것을 요구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태평양에서의 전투 영상을 풀어도 되겠습니까?”
결국 조나단 화이트가 나를 찾아왔다.
“이대로 간다면 여론을 걷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그런 취급을 받으실 수는 없는 겁니다.”
여론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수련자들은 거인들에게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다. 대부분 퍼진 영상이 패퇴하는 영상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수련자들이 애쓰는 것을 대중들은 모릅니다. 거인과의 전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희생당했고 전투에서 졌다는 것만 주목합니다. 심지어는 거인에게 항복하자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거인에게 항복한다. 나는 헛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설마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수뇌부에 있는 것은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말을 끄는 것으로 보아 아주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와신상담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항복하고 굴욕을 감수하며 훗날을 노린다? 어림도 없다.
“…푸시죠. 그 영상.”
어차피 이미 퍼진 영상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비난을 받는 이유는 대부분이 패배한 영상이니까. 상대가 괴물이라 진 것임에도 우리를 얕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영상은 차원이 다르다. 이번 영상이 풀리면 대중들과 극도로 멀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를 심각할 정도로 두려워하겠지. 견제도 들어 올 거다.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수련자의 가족들 중에서도 우리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생길 터, 그게 싫었다.
그렇지만 그 고생을 하면서 욕까지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우리들의 사기 문제도 있었고, 힘을 합쳐도 모자라는 판에 분열된 상태로 전투에 임할 수는 없었다.
우리를 지원하는 이들이 배신하면 골치가 아프다. 무엇보다 오데르가 숨어버린 것이 현실이니까. 수련자들의 힘만으로는 수색이 어려웠다.
결국 내 결단에 의해 태평양에서의 전투가 전 세계에 공개되었고, 우리를 비난하던 여론은 그 모습을 감췄다.
그 어떤 영화도 저 현실감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진짜배기 거인들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그것을 막는 수련자들이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과 대항할 수 있는 수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전 세계에 퍼져버린다.
우리를 비난하던 이들이, 정말 필요하냐고 묻던 이들이 입을 닫은 것이 정말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서인지 두려워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던 비난은 사라졌다.
그러나 원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죽은 길드원들의 가족은 통곡했고, 그들의 원망은 나를 향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생하다 돌아온 가족들이 전투에서 죽었다.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나는 최대한의 보상을 약속했고, 동시에 위령제를 준비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죽은 수련자들과 민간인. 그들을 위한 위령제가 준비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이아가 강림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