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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98화 (298/317)

298화

순교자. 그간 자격 부족으로 봉인되었던 마지막 스킬이었다. 정확히는 봉인 자체는 4차 전직과 함께 풀렸었다. 다만, 쓰기가 어려웠을 뿐. 악마의 층에서는 극히 드물게 사용되었었지만, 그마저도 정말 위험한 순간에만 사용되었을 정도였다. 그나마 이 스킬이 있기에 남은주가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스킬의 효과는 단순하다. 상태 창 없이 스킬이 몸에 완전히 체화된 지금도 그 효능은 같았다. 버프. 단, 그 수준과 효과가 보통이 아니었다.

탑에 있을 당시, 본인과 성녀에게 모든 능력치 상승, 각각에게 호신강기보다도 더 강력한 보호막을 씌워주고 일대를 뒤덮는 다른 보호막까지 같이 생성하며 보호막 내부의 인원에게 치유 효과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생명력이다. 아군을 회복시킬수록 본인의 신성력과 더불어 생명력이 감소하고, 1차 보호막인 광범위 보호막이 깨질 경우 제법 큰 데미지가 남은주에게 돌아온다. 다만 거기까지는 힘들지라도 회복이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는 성녀와 자신에게 씌워진 두 번째 보호막이었다.

그게 깨지면, 끔찍할 정도의 치명상이 돌아온다. 이전 탑에서도 주하연이 겨우 살리는 것에 성공했을 정도로, 지금 만약 같은 상처를 입는다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한다. 현재 주하연은 누군가를 회복시킬 겨를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남은주는 이 스킬을 써야 할 때라면 본인의 보호막 같은 경우에는 아예 스스로 해제해버린 뒤 높아진 능력치로 주하연과 본인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을 선택하고는 했었다.

1차 보호막이 깨지고 아군을 회복시킨 뒤의 좋지 못한 몸 상태일지라도 증폭된 그 신체 능력은 한바다를 앞서고는 했었으니까.

전투 뒤에는 꼼짝도 못 하고는 했었고, 장시간 사용하지도 못했지만, 단기적으로 그 효과만큼은 분명 발군이었다.

1차 보호막을 향해 떨어지는 거인의 일격. 일격에 보호막이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단숨에 깨어지지는 않는다. 일격을 내리친 거인의 표정에 천천히 경악이 깃들어갔다.

딱 봐도 벽조차 넘지 못한 인간이 자신의 일격을 힘들게나마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막는 남은주의 입에는 옅게 피가 흐르고 있었다.

“조금만 버텨!”

나는 빠르게 거인들을 밀어붙였다.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는 없지만, 이쪽이 유리한 만큼 틈을 만들어 낸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지원할 생각이었다.

“사샤!”

“흐아아앗!”

그사이 나연이 먼저 행동했다.

빠르게 바다가 갈라지며 솟아올랐다. 마치 거인을 삼키려는 듯한 모습.

거인은 슬쩍 뒤로 물러난 뒤 재차 보호막을 두드렸다.

“쿨럭!”

남은주가 옅게 피를 토한다. 하지만 1차 보호막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틈을 주기 무섭게 천천히 균열이 사라져간다.

다른 마법사 몇몇이 남은주에게 포션을 들이붓고 있었다. 하지만 이 스킬로 사용되는 생명력을 포션으로 대신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모두 그러한 사실은 알고 있는 만큼 남은주를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장시간 버티지는 못한다.

사샤가 거인을 방해하고, 거인은 어떻게든 보호막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깨지더라도 남은주 본인이 목숨을 걸고 막을 터다. 나는 그 시간 안에 이 둘을 처리해야만 했다.

내 몸에서 마력이 한층 폭주한다. 내 마력이 넘쳐난다고 한들 이 많은 거인들과 단기전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무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 기세가 달라지자 두 거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러나 그 굳은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급한가 보군.”

“쉽게 무너져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내가 둘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크어억!”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온다.

한 곳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러나 큰 상처를 입고 비명을 지른 것은 길드원이 아닌 거인이었다.

전체적으로 우리 길드원들이 밀리기는 한다. 하지만 모든 곳에서 우리가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나처럼, 우리가 우세한 전장은 분명히 있었다.

한바다와 하유진. 그 둘이 자신들을 막던 거인들을 뿌리쳐 버렸다. 언제 둘이 힘을 합쳤는지 수준이 높아 각자 한 거인씩 맡던 둘이 한순간 연계해서 한 거인을 집중 공격, 단숨에 하나를 무너뜨리고 다른 한 거인을 수세에 몰아넣은 것이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거인이 다른 거인 뒤로 무너지듯 도망친다. 재생력이 있는 만큼 회복할 시간을 벌 생각인 듯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을 쫓든 하유진이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그건 페인트였다.

“감히!”

오데르를 지키는 친위대. 그 거인이 소리친다. 하유진이 치명상을 입은 거인을 쫓는 척하며 전장을 단숨에 가로질러 오데르를 직접 저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직전 그것을 눈치챈 하나 남은 친위대가 그런 하유진의 기습을 막아낸다.

“비켜!”

그리고 나서윤의 목소리가 그런 하유진에게 닿는다.

하유진의 신형이 단숨에 사라지더니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안정화 때문일까. 틈새의 단검도 영향을 받았는지 생각보다 멀리 이동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대 격노!”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모랄타. 거기에 더해 무영창 마법 몇 개가 그 궤적을 따라 함께 달린다. 그리고 나서윤이 그 공격을 하느라 생겨버린 빈틈을 어느새 근접한 한바다가 메웠다.

‘언제 저런…….’

한바다와 하유진이 연계하면서 나서윤까지 고려한 모양이었다.

유리한 곳끼리 연계해 큰 빈틈을 만든다.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대 격노가 전장을 가로지르기는 했으나 그 거리가 조금 있었던 만큼 남은 친위대 하나가 그 공격을 막아냈다.

“컥!”

하지만 멀쩡하지 못한 몸으로 그 공격을 막은 대가는 처참했다. 겨우 회복한 몸이 완전히 찢어지고 이어 도착한 마법이 직접 몸통을 헤집는다.

오데르를 지키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현재 유일한 호위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결국 사샤와 겨루던 놈이 슬슬 몸을 빼기 시작했다.

사샤는 최대한 방해하고자 했으나, 아쉽게도 바다 아래 쪽 주도권을 놓을 수는 없었기에 끝까지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방해가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크악!”

“오데르 님!”

오데르의 비명이 전장을 울린다.

몇몇 거인들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데르의 곁으로 움직인다.

나를 상대하던 거인들 또한 애써 짓던 미소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하유진이 빈틈투성이가 되어버린 오데르를 다시 습격한 것.

오데르의 가슴이 쩍 벌어지며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딱 봐도 제법 큰 상처다.

“쳇.”

그러나 완전히 마무리하려는 순간 다른 거인들이 도착했고, 하유진은 다시금 세계 동화를 이용, 몸을 빼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큰 의미가 있는 공격이었다. 밀리던 길드원들이 한숨을 돌린 것. 하유진이 물러나면서 마지막까지 그림자 칼날을 사용해 오데르를 노려보았으나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은 실패했다.

한숨 돌린 길드원들은 대부분 성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목숨을 잃은 길드원들이 그 짧은 순간에도 두 자릿수를 가볍게 넘어가고 있었다. 버티는 과정에서 하나둘 죽어갔던 것. 바다 위라 사용할 수 있는 마수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만약 하유진을 포함한 셋이 적절하게 반격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먼저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 남은주의 힘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 호위 하나를 직접 보낸 것은 오데르의 패착이었다.

‘본인이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

그 대가로 남은주가 완전히 리타이어해 버리기는 했다. 그리 긴 시간 힘을 쓰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순교자는 오래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도 보통이 아니었고. 겨우 서 있기는 했으나 더는 남은주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나는 아군이 숨을 돌리는 틈에도 최대한의 힘으로 남은 둘을 밀어붙였다.

강기가 폭발하고 일대의 바다가 뒤집어지며 나를 막는 거인들의 몸에 상처가 빠르게 늘어가기 시작했다.

설마 이렇게 엄청난 폭발력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한 모양인지 거인 둘이 연신 밀려나다 못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원을! 이놈, 지금만 막아 낸다면……!”

나를 바라보며 급하게 입을 여는 거인. 하지만 늦었다.

나는 탐욕을 감싼 무형강기를 급하게 입을 연 거인의 입에 쑤셔 넣었다.

“컥!”

단숨에 들어가는 치명상. 급하게 다른 거인이 나를 공격해보지만 에고 웨폰과 혈신의 갑옷은 혼자서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단숨에 거인 하나의 모든 피가 빨려버린다.

곧바로 혈신의 갑옷을 이용, 반대손에 거대한 피의 검을 만들어 상대를 향해 휘두른다.

늦었음을 직감하고 도망치던 거인은 피의 검을 막아내기는 했으나, 막기 무섭게 피의 검은 형태를 잃고 혈마법으로 변해 거인의 전신을 두드렸다.

갓 뽑아낸 거인의 피는 상대의 마법 저항에도 불구하고 제법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고, 오데르가 급히 나를 막기 위해 파견된 거인이 도착하기 전에 상대를 찢어버릴 수 있었다.

그사이 나서윤과 한바다가 자신이 맡은 거인을 쓰러뜨렸다.

셋이 상대하던 거인 셋이 모조리 죽었고 내가 죽인 거인이 둘이며 근접 호위였던 놈들 중 하나도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게다가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되어버렸다.

이쪽 길드원들이 다수 죽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쪽의 우세다.

게다가 다시,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합동 마법이 오데르를 향해 날아갔다.

“토네이도!”

이전과 같은 마법. 오데르 주변에는 급하게 달려온 거인들이 뭉쳐 있었다. 상황이 달라진 만큼 저것이 더 옳은 판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전과 다르게 사샤 또한 오데르를 향해 해일을 일으켜 버렸다.

저들만 죽이면 사실상 승리다. 지금 당장 이쪽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거인은 없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패착이었다.

“하연 언니!”

남은주의 비명이 울리기 무섭게 나는 후열을 향해 달려갔다.

“블링크!”

동시에 주하연의 목소리가 울린다.

바다 아래에서, 아래로 가라앉았던 오데르의 호위가 올라오며 무기를 휘둘렀다.

콰앙!

단숨에 얼었던 바다가 깨지며 일부 마법사들의 몸이 그대로 터져 나간다.

그리고 뒤늦게 사샤의 반격이 이어진다.

얼음의 창이 상대 거인의 얼굴을 그대로 꿰뚫는다. 상대는 이미 치명상이었기에 반항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버렸다.

죽은 것은 일부 마법사들뿐.

주하연 또한 목숨을 건졌다. 남은주의 목소리에 반응해 전설급 목걸이에 내장된, 블링크 스킬을 통해 목숨을 건진 것. 하지만 그 대가로 안정화 스킬이 풀려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오데르 주변의 거인들 상당수가 목숨을 잃은 것이 보인다. 허나 오데르는 살아남았고 길드원들이 상대하는 거인들까지 포함해 열이 조금 넘는 거인들이 살아 있었다.

“…x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토네이도와 사샤의 해일이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열이 넘는 거인들의 제한이 풀려버렸다.

하늘이 요동친다.

뒤늦게 주하연이 안정화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견제가 들어왔다.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무섭게 나는 주하연과 리타이어한 남은주를 품에 안은 채 자리를 이탈했다.

콰아아앙!

공기가 터져나간다. 정확히는 일대의 공간 자체가 터져 나간 것.

마법사들이 빠르게 흩어졌고 일부 길드원들이 공간 계열 공격을 당하며 몸이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일 났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간다면…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오데르만은 죽여야 한다.

“…서윤아. 은주랑 하연 씨 좀 부탁해. 한바다 씨는 마법사들을 부탁하겠습니다. 유진이는… 나랑 같이 간다.”

“…응. 오빠.”

“네. 알겠습니다.”

“네, 형.”

일행이 빠르게 대답한다. 그들 또한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나연과 사샤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주하연은 죄인마냥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서윤 또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완전히 처리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누군가의 탓을 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공간이 흔들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타이밍에?’

차원이 갈라지고 그 너머의 풍경이 보인다.

제소시아. 그곳의 풍경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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