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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95화 (295/317)

295화

“그렇게 나와도 돼요, 형?”

“지금은 그게 나아. 너도 가족 얼굴은 봐야지.”

“전 딱히 안 봐도 되는데…….”

나는 곧바로 하유진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너 잃어버리고 걱정하셨을 거야. 정부 통해서 연락해 봐달라고 요청까지 하셨다고 들었어. 연락하셨을 때 엄청 기뻐하기도 하셨고.”

“…네.”

하유진은 얻어맞은 자신의 머리를 문지르며 어색한 듯 말했다.

가족들과의 가벼운 식사와 이야기가 끝나고 하루 정도만을 지낸 채 곧바로 집을 나섰다.

부모님을 비롯해 여동생 또한 아쉬운 기색이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내 말을 막지는 못했다.

‘꼭 너여야만 하냐고 하셨던가…….’

나여야만 한다. 내가 빠지면 수련자 전체에서도 큰 손해나 다름없었다.

아마 다른 수련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이들은 아니겠지만.

그만한 수라장을 거쳐온 이들이다. 나 하나라는 이유로 빠지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으로 돌아올 것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이건 패배하면 다 죽는 전쟁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국 떠나는 나를 가족들은 더이상 붙잡지 못했다. 이기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가족들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테고.

그나마 나는 잘 풀린 편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거북해하며 거부한 것도 아니고, 외형의 변화 때문에 어색해하기는 했지만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주셨으니까.

이후 하유진의 본가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부모님께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말에 조금 생각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미리 연락한 덕분에 하유진의 가족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유진의 양친은 모두 젊은 편이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그 정도로 보였다.

“…유신후 씨… 맞으시죠?”

“네 제가 유신후입니다. 유진이 어머님 되십니까?”

“네 맞아요. 유진이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두 분은 최대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두분 모두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하유진에게서 시선을 쉽게 떼지 못했다.

하유진과 부모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잃어버린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을 굳히는 듯 보였다.

그런 둘의 시선을 하유진은 멀뚱멀뚱한 얼굴로 받고 있더니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안녕하세요.”

“…….”

하유진의 인사에 두 명의 얼굴이 굳어버린다.

양친에게는 잃어버렸던 가족을 만나는 현실이나, 하유진에게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어색한 사람을 대하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나는 그런 하유진을 탓할 수가 없었다.

가족의 빈자리를 느끼며 절망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성장 환경이었다. 하유진은 놀라운 정도로 탑에 잘 적응했고, 부족한 가족의 빈자리를 나와 일행으로 대신했다. 그런 그에게 뒤늦게 만난 가족은 크게 감흥이 없는 모양이었다.

“…따로 이야기 좀 나누시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유진에게 말했다.

“두 분과 이야기 좀 나누고. 나는 나가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부르고.”

“…알겠어요. 일단 이야기는 나눠 볼게요.”

나는 곧바로 자리를 피해 주었지만, 하유진과 부모님과의 대화는 채 2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이야기가 그리 좋게 끝난 편은 아니었는지, 하유진의 표정은 조금 찌푸려진 상태였다.

“갈 필요 없어요, 형. 제 문제니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간 보호자 역할을 했던 만큼 다시금 하유진의 양친을 만나러 가려 하자 하유진이 그런 나를 말렸다.

“일단 지금 일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자꾸 미성년자가 싸울 필요는 없다고, 그런 건 어른들이 하게 두라고 하는데, 괜히 가 봤자 싸움만 날 거에요.”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금 하유진의 부모를 찾았고, 양친은 모두 힘겨운 표정이었다. 특히 어머니 쪽은 눈물을 흘린 흔적마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살피던 아버지 쪽은 내가 들어오기 무섭게 고개를 숙여왔다.

“…탑이라는 곳에서 유진이를 지키고 키워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솔직한 말로 필요에 의해서 구하고 키웠을 뿐이다. 내가 길드 차원에서 보호한 어린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길드원의 사기 진작이나 길드 자체의 이미지를 위해 지원한 것일 뿐이다. 하유진은 그 궤가 다른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본론은 다음이었다. 하유진의 아버지 쪽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유진이는 어립니다. 아직 어린아이가… 그런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부디 저희 아이는…….”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요!”

곧바로 나를 따라 들어온 하유진이 외친다.

“제 길은 제가 선택해요! 제가 빠지면 안 된단 말이에요!”

하유진이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여 저 말에 설득되어 자신을 놓고 갈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내가 평소에 가족들을 끔찍이 생각한 만큼 작은 가능성이지만 내가 자신을 놓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부탁드립니다. 그간 위험한 곳에만 있었던 아이입니다. 충분히 강하시지 않습니까.”

애원하듯 말하는 하유진의 아버지. 어머니 쪽 또한 애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는 한다. 솔직한 말로, 지금 이 태도만 보아도 이게 얼마나 침착한 대응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유진이는 어리기는 하지만 모든 수련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을 지녔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유진이는 빠져서는 안 됩니다.”

빠질 수 있다, 없다가 아니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야 집에 돌아온 어린아이입니다. 그런 위험한 곳으로 다시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 집이 무너질 겁니다. 이 집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집이요. 유진이가 빠졌다가는 모두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정도 위치다. 아마, 양친도 알고 있을 거다. 하유진이 얼마나 강한지, 이 애가 얼마나 중요한 전력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뉴스와 신분에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것이 수련자들의 이야기니까. 특히나 가이아 길드는 한국 출신들이 만든 최강의 길드인 만큼 한국에서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툭 하면 집중 조명되고는 했다.

대부분이 타 국가의 수련자들이 흘린 이야기라 꾸며진 것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맞는 이야기다.

“왜, 왜 우리 애가 희생해야 하는 겁니까. 왜 우리 애가, 그런 끔찍한 경험을…….”

딱히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제가 선택한 거에요. 제가 선택한 거라고요. 솔직히 형이랑 같이 가는 것이 제일 안전해요.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다 끝나면 다시 찾아뵐 테니까, 그러지 마세요.”

작은 의심이 사라지기 무섭게 하유진이 침착한 태도를 되찾는다.

양친 또한 그것을 확인한 것인지 슬픈 눈으로 하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하유진이 못된 것도 아니다. 살아온 삶이 이렇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결국 한동안 더 실랑이를 했지만, 하유진은 나를 따라오게 되고 말았다. 하유진의 양친은 끝까지 거부하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나 또한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이며, 하유진이 떠난다면 그 위험한 곳에서 자신의 자식을 지켜야 할 사람이 나라는 것을 끝까지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성적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자신의 자식을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는 나를 향해서 오히려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비록 눈에서는 눈물을 흘렸지만.

“저랑 같이 살자고 그랬어요.”

떠나오는 길, 하유진이 말했다.

“정말 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색해요, 형.”

“…그래.”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돌아오고 난 뒤에도 싸움만 할 수는 없었다. 나름 잘 풀린 나와 다르게 겉은 몰라도 속으로는 좋게 풀렸다고는 보기 힘든 하유진의 경우를 봐서일까. 다른 길드원들이 다시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 * *

약속된 기간이 다 지난 이후, 집결지에서 모인 길드원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반 정도는 그래도 나름 잘 풀린 편인 듯했다. 나름 후련하다거나 기쁜 표정인 것에 반해, 일부 인원들은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인원들 중에는 지구에 있던 시절 미성년자였던 이들이 있는 만큼 아예 같이 있자는 말을 무시하고 도망을 나온 이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같이 있고 싶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냐고…….”

누군가의 한탄에 많은 이들이 동감한다.

개들 중에는 설득에 성공하거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납득시키거나 자신이 성인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자신의 길을 간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오랜만입니다. 신후 님.”

“바다 씨. 잘 지내나요.”

“네. 가족들도 좀 보고… 뒤늦게 제가 수련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한걱정을 하시긴 했는데, 그래도 잘 풀고 나왔습니다.”

“다행이네요.”

그간 한국에서 수련자들의 가족을 보호하는 역을 맡았던 한바다가 복귀했다. 그나마 그녀는 나를 제외하면, 유일한 예외에 속했다.

남은주, 주하연, 나연, 나서윤. 넷 모두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정확히는 나서윤 같은 경우 사샤와 함께 나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오셨어요, 신후 씨.”

주하연이 좋지 못한 표정으로 인사를 해 온다.

나는 일행들의 얼굴을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 좋은 결과는 없었나 보군요.”

“네. 저는 집안과 대판 싸우고 나왔고… 연이도 좋은 꼴은 못 봤나 봐요.”

“…사샤랑 서윤이가 제대로 망쳤어. 너 데리고 오라고 하더라.”

“…나를?”

“어. 서윤이가 결혼할 사람 있다고, 결혼하면 어차피 성인이니까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엄마한테 소리쳤어. 사샤는 거기에 기름을 끼얹었고.”

“그게… 미안 리더. 아하하…….”

“나랑 네가 사귀는 것까지 폭로했어.”

“…그래.”

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번은 짚고 넘어갈 일이었다. 그걸 설마 첫 만남에서 터뜨릴 줄은 몰랐지만.

‘이미지 개판이겠네.’

지구에서는 충분히 난봉꾼으로 보일만 했다.

“그래도… 은주보다는 나아.”

그 말에 나는 나연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은주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곧바로 그런 남은주에게 다가갔다.

“…은주야?”

“…신후 오빠?”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신후 오빠… 나, 나 어떻게 하지? 나 어떻게 해?”

불안한 표정의 남은주가 내 팔을 잡고는 가볍게 흔들어온다.

“집에서, 나 집에서 쫓겨났어. 내가 나쁜 년이래. 내가… 내가 성훈이를 죽였다고… 내가 살인자라고…….”

남은주가 울먹이는 가운데, 주하연의 급박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신후 씨! 거인들이 움직였대요!”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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