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재회>
[마침내 고국에 돌아온 가이아 길드]
[가이아 길드. 그들은 누구인가?]
[신인 유신후, 마검사 나서윤, 성녀 주하연]
[전설의 수련자들. 그들 모두가 한국인?]
“웃기네.”
가디언 소속의 가이아 길드. 그 길드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말에 한국 전역이 들썩였으나 막상 당사자인 길드원들은 무척이나 시큰둥한 기색이었다.
오게된 원인을 생각해 본다면 기분이 나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미국을 통해 경고를 받았음에도 길드원들의 가족을 찾아 계속 접촉하려 시도하는 한국 정부의 행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니까.
적어도 지금 시점에 할 일은 아니었다. 마음이 불안한 것은 이해하겠지만.
전용기에서 내리기 무섭게 군중과 함께 가이아 길드를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우리를 반겼다. 한바다는 없었다. 그녀는 현재도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 가족들을 살피고 있을 터였다. 지금이 방심하기 가장 좋은 때이기는 하니까.
일행들의 얼굴에는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는 달성감보다는 마땅치 않은 기색이 더 크게 느껴졌다.
“허허허. 드디어 찾아와 주셨습니까.”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듯한 인상의 남자가 그런 우리를 반겼다.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신후 님. 아시겠지만 제가 바로 전일승입니다.”
전일승 대통령. 오기 전 자료를 받기는 했다. 딱히 대단한 정책을 펼친 적은 없지만, 상상 이상으로 크게 말아먹은 적도 없는 무난한 대통령이라는 평이었다.
‘비리가 제법 있기는 하지만…….’
심각할 정도로 부패한 것은 아닌, 그냥 말 그대로 무난한 대통령 정도였다. 그나마 명예욕은 조금 있는 편이라고.
나는 나를 향해 손을 뻗은 전일승의 손을 가만히 보다가 마지 못해 마주 잡았다. 일단 이미지 메이킹 중이기는 했으니까.
“…유신후 입니다.”
찰칵, 찰칵.
“우와아아아아!”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것인지 내가 상대의 손을 잡기 무섭게 미친 듯이 플래시가 터지며 동시에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달려드는 기자들이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 된다.
“자리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나는 차가운 태도로 그가 안내하는 차에 탑승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길드원들을 위한 차들까지 빽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신경 쓴 티를 확 내겠다는 의도가 느껴질 정도였다.
“늦게라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빴습니다.”
단호하게 끊어내는 태도에도 전일승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계속 말을 이었다.
“같은 한국인이 가디언이라는 대단한 단체에서, 중심인물로 활약한다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르실 겁니다. 국격을 높이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국민 여러분이 언제나 길드장님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군요.”
“바쁘신 것은 알지만, 그래도 종종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국민들이 무척이나 기뻐할 겁니다. 게다가 그렇게 관심을 가져 주신다는 것을 안다면 한층 더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
“대통령님.”
“…말씀하시죠.”
“제가 왜 왔는지 정도는 알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셨더군요.”
“험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고개를 돌리는 전일승을 향해 나는 단호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지금 사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 알고는 계실 겁니다.”
“암, 알고 있지요.”
“그런데 그딴 식으로 행동한다는 말입니까.”
“…길드장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오해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다 국격을 높이는 여러분들을 돕고자…….”
“그 건에 대해서는 저희 길드원 일부를 파견할 생각입니다.”
정확히는 비밀리에 움직이던 이들이 공개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일 뿐이다.
“…길드원 분들은 세계를 위해 거인들과…….”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투자는 해야죠.”
전력 하나하나가 아쉽기는 하지만 후방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 물론 한바다는 다시 돌아와야 하겠지만.
무감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대통령은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다. 그는 전신을 가볍게 떨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볍게 기세만을 방출했을 뿐인데, 마력이 없는 인간은 그조차도 버틸 수가 없다. 솔직한 말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죽일 수도 있었다.
“행동을 조심하셨으면 좋겠군요.”
‘직접 습격을 안 받아서 현실 감각이 없는 건가.’
“그, 그 외에도 특별 예산을 편성해 두었습니다. 세계를 위해 노력하시는 우리 가이아 길드원들을 위해 여러 혜택을…….”
방문의 원인이 원인인 만큼 달래 보겠다고 준비한 모양인데, 지금 시국에 그딴 것이 도움될 리가 없었다. 솔직한 감정으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저희가 협조적으로 나온다고 만만히 보시면 곤란합니다.”
“…….”
“지켜보죠.”
한 번의 경고. 이후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동시에 전일승 대통령 또한 입을 열지 못하도록 옅은 기세를 계속해서 방출했다.
차에서 내릴 쯤에는 대통령의 시선에서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후 가벼운 식사를 대접받은 이후 나는 두 번은 없다는 말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런 나를 향해 주하연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어떻게 되셨나요?”
“경고는 했습니다. 청와대 쪽으로 그 사람 비리 적힌 서류 보내 주세요. 그거면 한동안 조용할 겁니다.”
단순히 말로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한 차례 경고했음에도 결국 선을 넘는다면… 그걸로 끝이겠지만.
“알겠어요, 신후 씨.”
“그것보다, 기왕 왔으니… 가족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죠. 사정도 설명해야 하니.”
일부러 가벼운 단어를 선택한다.
“…….”
주하연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저는 따로 살고 있었어서… 지방이 있는데…….”
“내키지 않으시다면 상관은 없습니다.”
핑계일 뿐이다. 현재 우리 신체 능력, 아니 솔직히 마수만 이용해도 지방이고 뭐고 금방 다녀올 수 있었다.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나도 다녀올게.”
“드디어 보는구나.”
“사샤. 저번에 말했던 것 잊지 말고. 가자 서윤아.”
“…응.”
나서윤은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곧바로 나연의 곁에 바로 섰다.
남은주 또한 내키지는 않은 듯했지만 자신의 집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친구였던 이성훈은 탑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따르면 죽은 것은 아니지만, 수준이 부족했다고. 언제 올지, 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뭐 거인들을 모조리 쫓아낼 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나올 수 있으니까.’
세계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몰아낸다면, 죽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상층에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지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유진이는 남아. 나랑 같이 가자.”
“네, 형.”
그런 하유진을 나서윤이 조금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일단은 내 집으로 갔다가… 너희 부모님 뵈러 가자. 주소는 알아 놨으니까.”
하유진의 과거 모습과 기억을 토대로 미국 정보의 협조와 한국 정부의 수작을 통해 알아낸 정보다.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부모님이 계신 집이 더 가까운 만큼 그쪽을 우선하기로 결정했다.
길드원들이 각자의 집을 향해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부는 지방에 집이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 문제는 없었다.
“여기가 형 집 가는 길이에요?”
“…아마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솔직히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 했다.
확신을 위해 정보를 모으기도 했을 정도.
하지만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길이 맞다.
도로를 지나 주택가에 들어간다. 익숙한 골목을 지나치자 탑에서 그토록 그렸던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
한참, 주택을 바라보고 있자 하유진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는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익숙한 벨소리가 울리고, 그토록 그리던 목소리 중 하나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누구세요!”
“…접니다. 어머니. 신후.”
“…신후?”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곧바로 현관문이 격하게 열렸다.
“너, 왜 연락이……!”
오랜 기억 속에 묻혀 가물가물하던 얼굴이 내 눈에 비쳤다.
중년 여성. 평범하디 평범한 모습이었으나 그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신후…니?”
당혹스러운 표정의 어머니. 그 시선이 나와 하유진의 얼굴을 번갈아 지나간다.
이해한다. 지금 내 모습은 과거 기억하던 그 모습이 아닐 테니까.
‘과하게 변하기는 했지.’
게다가, 다른 의미로 익숙한 모습일 터다.
TV와 신문에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을 얼굴일 테니까.
어머니는 곧바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즉시 달려가 어머니를 부축했고, 하유진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너였구나, 너였어… 혹시나 했는데… 아니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기쁘고, 상상했던 것만큼 벅차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나 느꼈었던 따뜻한 기분이, 조금 느껴지는 듯했다.
* * *
세상이 난리이기 때문일까. 갓 대학에 입학했던 여동생 또한 집에 와 있었다.
“…오빠야? 정말? 그 얼굴이?”
놀랍다는 표정의 여동생. 확실히 지금의 내 외모는 인간 보다는 어지간한 엘프마저 씹어먹을 정도였으니까.
“…신후냐.”
아버지는 내 모습을 보며 눈을 가려버리셨다.
“설마 설마 했거늘…….”
대강 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상당히 알려진 상황인 만큼, 그간의 내 고생을 짐작하시는 모양이다.
“…10년이라고 했니?”
“대충… 그 정도 됩니다.”
정확히는 8년에서 9년 사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더 긴 시간이었다.
“…고생 많았다.”
“근데 오빠가 그 신인이면… 앞으로도…….”
과거 제법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던 여동생은 지금 상황이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옆에 얘가…….”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형 동생인 하유진입니다!”
뭔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조금 빠릿빠릿한 자세였다.
“…얘가 바로……. 너도 고생 많았겠구나. 어서 오렴.”
“아니에요! 형이 많이 도와주셔서…….”
하유진은 어렸을 때부터 내 옆에서 자랐고 내 유명세가 있는 만큼 8살에 소환되었다는 정보 또한 알려진 상태였다.
“후우…….”
하버지의 한숨이 더욱 깊어진다.
“그래.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힘겹게 들려오는 말에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가족들은 그간 어떻게 지내왔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냥, 돌아왔으니 되었다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보는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온종일,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 판국이었으니까.
금방 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며칠 못 지낼 겁니다. 제가 떠나고 나면… 길드원들이 호위로 붙을 거에요.”
많은 인원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만큼 거인과의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련자들 일부가 호위로 붙을 예정이었다.
“…그래. 네 위치라면 걱정할 만하지.”
“그런 것보다 밥은 먹었니?”
이미 대통령에게 대접을 받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기억 속에서 맛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집밥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즉시 주방으로 향하셨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러한 분위기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긴 시간이었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먼 과거처럼, 지금은 흐린 그때 그 기억처럼. 가족들은 나를 그렇게 받아주려 노력해 주었고, 나 또한 가족들 사이에 녹아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