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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93화 (293/317)

293화

장거리에서 날아오는 탄두를 향해 가볍게 손을 휘젓는다. 일대가 일그러지고 꼬이며 내부의 탄두가 으스러진다. 폭발조차 없었다. 완전한 소멸.

벌써 수십 번. 외딴 무인도 한 곳을 지정해 이어진 실험에서 나는 단 한 번의 공격조차 당하지 않았다.

일부로 당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초기 몇 번의 핵이 막히자 미군은 내 허락하에 나를 테러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폭격과 지상, 해상에서 날아오는 수많은 미사일들. 작정하고 쏟아지는 화기의 위력은 분명 웅장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하나 나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빠른 듯하면서도 움직임이 모두 보인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손짓 한 번에 대부분의 폭격이 소멸하고 남은 공격들은 펼쳐진 피의 막 하나 통과하지 못한다.

“괴물…….”

누군가의 중얼거림. 부정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나는 저들이 보기에는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생화학병기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몸에 새겨진 내성들은 그런 것조차 대부분 무마할 수 있을 터다. 설령 뚫린다고 한들 내 몸이 무너지지도 않을 테고. 금세 회복할 가능성이 높았다.

흡혈로 인해 가려진 면이 없지 않아 있으나 내 몸은 불사의 육체 스킬로 단련된 몸이니까.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 부었는데도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딱딱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온 군인에게 대답하자 그가 흠칫 놀란다.

명백하게 겁을 먹은 듯한 모습.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곧바로 대통령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대니얼 클로버 대통령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자신할 만 하군.”

주변의 장성급 군인들 또한 완전하게 굳은 모습이었다. 상당히 무력감을 느끼는 듯했다.

“저희들이 없다면 전 세계가 총력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1년도 채 버티지 못할 겁니다.

“…모든 무기가 통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대통령은 부정하지 못했다.

1년도 엄청 잘 봐준 거다. 솔직히 과거 천사가 했던 말들이 사실이라면 1년이 아니라 한 달도 못 버틴다.

그 오랜 시간 쌓아온 인간의 문명이 아무 의미 없이 그 짧은 시간 만에 무너져 내린다는 뜻이다.

‘이제는 대부분이 알려나…….’

미군의 폭격을 견디는 내 모습을 전 세계에 공개하거나 하지는 않을 터다. 하지만 아마 어지간한 국가라면 다 알 수 있는 정보가 될 터. 실시간으로 확인한 이들도 분명히 있을 터였다.

“…길드장.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이런 쇼를 한 이유. 그것이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우선 저희는 수련자가 아닌 인간을 적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

그러나 상대의 얼굴은 그리 쉽게 펴지지는 않았다. 당장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이빨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눈앞의 존재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것도 괴물과의 싸움이 아닌 현대 무기들과의 싸움을.

그런 상황에 말 한마디를 믿고 긴장을 풀 수는 없을 터다. 이해는 한다.

“저희는 거인들과 싸우기도 바쁩니다. 이길 수 있다고 확신도 할 수 없는 마당인데 기껏 돌아와서 고향 사람들과 갈등 일으키고 싶지는 않군요. 물론, 그렇다고 무료 봉사할 생각도 없습니다.”

“대우해 달라?”

“당연한 말이죠. 수련자들의 조직을 만들 생각입니다.”

일종의 국제기구와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주권을 가진 국가는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 안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길드들의 연합. 당연하게도 내 길드가 주가 되겠지만. 그 힘과 세력이 격이 다른 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입을 열던 대니얼 클로버의 입이 닫혀버린다. 용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으며 우리들이 없으면 애초에 거인들에게 그대로 멸망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구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공멸을 유도하는 것 정도가 저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반인륜적인 끔찍한 행위. 그러나 그마저도 곧 있을 제소시아와의 연결 때문에 의미 없는 짓이 될 테지만.

게다가 힘을 회복하고 있을 가이아를 생각한다면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막아도 소용은 없을 겁니다. 그냥 협조해 달라는 뜻이죠. 애초에… 신이 이쪽 편인데, 거부하실 수 있습니까?”

“…신… 이라.”

“아마 오래지 않아 한 번은 그 모습을 드러내실 겁니다.”

그정도는 약속해 주었으니까.

“…협력하겠소.”

“각하…….”

한 장군이 안타깝다는 듯 목소리를 흘린다. 애초에 정해진 결말이다. 설마 바로 선택할 줄은 몰랐지만.

시간을 끌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단이 빠르군.’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만한 자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 이들이 우리의 적이다. 적대하지 않을 이들을 겁내서야 쓰나. 신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데.”

애써 밝게 말하는 대통령의 말에 호응하는 이는 없었다.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통령을 향해 통보했다.

“타 수련자들과의 연계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타국과의 조율이나 장비의 지원을 우선적으로 부탁드리죠.”

최우선으로 받을 대우는 면책 특권과 수련자들에 대한 뒷공작의 금지 정도였다.

“알겠소. 참고하리다.”

사실상의 통보. 자신들이 이런 취급을 받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인지 미 정부 측 사람들의 얼굴이 굴욕감에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이미 드러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수고해 주시는 만큼 대우해 드리죠.”

“…그대는 그대의 조국을 중심에 놓지 않는군.”

시간도 없는 마당에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부터 초강대국이 있고 이들의 협력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데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내가 가볍게 웃어 보이자 대니얼 클로버 대통령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국가를 초월한 이들이라… 허.”

그러나 그는 곧바로 표정을 고친 채 내게 경고했다.

“그래도 이민 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군. 거인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모든 국가가 순순히 따르리라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하오.”

예상하고 있는 사실이다.

“고생하시죠.”

괜히 깽판을 부리는 대신 친절하게 힘의 차이를 보여준 것이 아니다. 제국과의 끈을 남긴 것도 전후를 생각한 면이 강했다. 거인들을 죽이는 것은 과정일 뿐이었으니까.

* * *

[수련자 연합, 국제기구로 발돋움하나?]

[클로버 대통령, 지금은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

[거인에게 화기는 통하지 않아]

[새로운 미래 에너지. 마나.]

[마나와 마력]

[유일신, 가이아? 종교계 충격]

미국의 행동은 빨랐다. 주요 선진국 지도자들과 빠른 회담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는 사이에도 수련자들을 위한 지원팀을 결성시켰다.

당장은 미군 혼자서 행동하고 있었지만, 차차 증설할 계획이라고. 무력은 큰 도움이 안 되는 만큼 수송과 정보 쪽에 주력하는 팀이었다.

그사이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던 길드원들이 하나둘 내가 있는 곳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가 나타났다.

[영국. 미국에 적극 협조.]

‘엘리자베스 공주로군.’

영국 입장에서는 수련자, 그것도 공주가 한 길드의 수장이 된 거다. 그들이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영국을 시작으로 여러 각국이 협조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나 독일, 일본처럼 주요 수련자들이 있는 국가의 경우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약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 인간이 뭉치는 사이 최초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거인이 그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남극.’

처음 왕자와 함께 그를 호위하는 거인들이 나타난 장소.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대지만이 존재하는 그곳이 그들의 거점이다.

물론 왕자가 존재하는 곳이 거점이나 다름없기는 하다. 그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가져온 것도 아니고, 처음 나타난 장소에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왜인지 남극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물러난 거인들은 전부 남극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도망쳤고, 현재는 다수의 위성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당장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만큼 사실상 대치 상태나 다름없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만에 세계는 많은 것이 바뀌고 있었다. 수 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인 피해뿐만이 아니다. 지구의 지배자인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와 그 대적자들, 거기에 더해 그들이 유일신을 보았다는 이야기까지.

게다가 최근 발견된 마나라는 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까지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특히 다수의 정부는 그것을 현대 병기, 즉 화기와 접목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솔직히, 성공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지만.

현재 세계의 주된 화제는 거인과 수련자들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수련자들에 대한 관심은 보통이 아니었다.

대중들은 핵조차 통하지 않는 거인의 존재에 공포를 느꼈고, 그런 거인을 막을 수 있는 존재인 수련자들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기는 했다.

탑에서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민간에 풀려나갔고, 뛰어난 실력을 보인 이들은 우상 내지는 영웅 취급을 받고 있었다.

종교계는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었고, 마법의 존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었다. 전 세계가 격동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뒤에서는 하나씩 협의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수련자들의 국제기구, 가디언이 출범했으며, 동시에 전 세계 국가들의 연합인 월드 유니온이 같은 시기에 창설되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가디언 소속 수련자들이 받는 혜택에 관해 많은 우려를 표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 * *

“…움직였다고요?”

“네. 바다 씨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한국 쪽에서 같은 시기에 행방불명된 이들의 가족을 중심으로 정부가 접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엉뚱한 이들도 많지만, 진짜 길드원들의 가족들도 다수 섞여 있어서…….”

가디언과 월드 유니온의 창설. 그것으로 인해 세계 전체가 떠들썩해진 사이 한국 정부가 길드원들의 가족에게 하나씩 접촉하고 있다는 정보가 내게 들어왔다.

전 세계 수련자 집단 중 가장 강력한 집단인 가이아 길드. 가디언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가이아 길드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한국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희생 전신을 찬양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솔직한 말로, 현재 수련자들의 이미지는 영화 속의 히어로마냥 이미지 마케팅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이었다.

“미국 쪽에서 알아채고 경고를 하기는 했는데, 들어먹지를 않는다고 하네요. 저희가 직접 가지는 않더라도, 가디언 차원에서 한 차례 더 경고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한국 정부에서 우리에게 방문을 요청한 적이 있기는 했다. 거인이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현재 상태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저렇게 움직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뇨. 경고할 필요 없습니다. 직접 가죠.”

“…네?”

내 말이 예상외였는지 주하연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눈치를 챈 듯 표정이 굳어버렸다.

내가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이런 국제기구를 만들면서까지 거인과 맞서려는 이유는 가족들과 재회하고 싶다는, 다시 만나서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건드리려고 한다.

‘멍청한 것인지, 대담한 것인지 모르겠군.’

괜히 중국에서 바로 한국으로 넘어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는 곧바로 일행들에게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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