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중국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가는 와중 한국에 한 차례 들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지구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가족이다. 돌아왔음에도 가장 먼저 찾지 못하는 상황도 억울한데, 한 차례 큰일을 치렀음에도 만날 수 없는 현실이 조금은 답답했다.
지금 당장 만나는 것보다는 우리들의 필요성을 세계에 인식시킨 뒤, 위치를 공고히 한 다음에 만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에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귀찮네.’
한국과 일본 상공을 지날 때 영공을 관통하는 바람에 우리를 추격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속도 자체는 마수가 더 우수했기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공격하려는 기색이 보이기는 했으나 직접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내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렇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곧바로 나를 마중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기척을 확인한 내가 접근한 것이었지만.
“반갑습니다. 조나단 화이트입니다. 편하게 조나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는 미국 정부 쪽에서 나온 것으로 보였다. 그를 경호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직급이 낮지는 않은 듯했다.
“유신후입니다.”
대화 자체는 탑에서처럼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중국에서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모든 탑 출신 수련자들의 공통적인 능력이었다.
상대 또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새. 내가 보낸 수련자들 때문에 이런 단순한 정보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중국의 신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중국 소속이 아닙니다. 그쪽은 필요에 의해 도왔을 뿐이죠.”
내 말에 조나단의 눈이 살짝 빛나는 듯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아마 알려졌을 터다. 내 길드원들이 파견된 미국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대강의 이야기는 프레드라는 분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일단 시킨 일은 제대로 한 모양인데…….’
“대통령 각하께서 초대하고자 하십니다. 직접 오고 싶어 하셨습니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현재 다른 수련자라는 분들과 함께 계십니다.”
상대는 상당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압적이지도 않았고 중국처럼 여러 제한을 걸려고 하는 모습도 없었다.
‘소식이 들어갔나?’
그것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가죠.”
“전용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냥 마수를 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기왕 준비해 준 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전용기 내부는 상당히 개조가 잘 되어 있어 마수의 등보다는 훨씬 편하기도 했고.
서부에서 동부로. 목표는 워싱턴.
현재 모든 길드원들이 그곳에 있다고 한다.
이동하는 동안에 조나단은 상당히 말을 아꼈다. 길드원들이 잘 지내고 있고, 덕분에 침략을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는 작은 감사 인사 정도만 입에 담았을 뿐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자신이 아닌 대통령과 하게 될 것이라고.
몇 시간이 걸려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하지만 내가 온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는지 내 길드원들은 공항에서부터 나를 맞이해 주었다.
“길드장 님!”
“형!”
나연 자매와 프레드, 하유진과 정식 계약 이후 뒤늦게 합류했을 주하연과 남은주까지. 한국에 있을 한바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원이 미국에 있었다.
성군들 또한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는데, 그런 모습을 여러 기자들이 찍어대고 있었다.
“들어가 있지.”
“네가 온다는 데 어떻게 그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리더 님아.”
우리들이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조나단은 잠시 누군가와 조용히 이야기하는 듯하더니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통령 각하께서 바로 만나 뵙자고 하십니다.”
시간이 시간인데도 상대는 만남을 청해왔다. 허락만 해 준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겠다는 듯한 모습. 그만큼 상황이 급박한 듯했다.
‘하기야 아무리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상 이런 경우는 없었을 테니까.’
당연하게도 고작 하루 정도 비행을 했다고 체력이 떨어질 몸도 아니다. 전용기 내부에서 생각보다 잘 쉬기도 했고. 나는 가볍게 허락해 주었다.
“얼마든지요.”
내 허락에 조나단의 표정이 밝아진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상당히 긴장한 기색이었는데,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다.
나는 백악관으로 이동하는 와중 일행들에게 물었다.
“대통령은 어땠어?”
“상당히 호쾌하고 직설적이던데요? 판단이나 적응도 상당히 빨랐어요.”
“적응이 빨랐다고?”
“판타지에나 있을 법한 상황인데,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더라고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혼란에 빠졌을 텐데…….”
하기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거다.
그래도 의외다.
“게다가 알려진 것보다는 정중한 편이었어요. 말은 그래도 선은 확실히 지켰고요.”
그거야 이쪽의 힘이 있으니 그런 것일 테고.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은 프레드 씨가 대부분 알려 주었어요. 탑의 등장이라던가 세계의 성장이라던가…….”
가이아가 했던 말들을 정직하게 알려준 듯했다.
“세계의 연결에 관해서는 레고스트가 설명했어요. 반신반의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형, 저쪽은 무슨 거인이 외계인인 줄 알던데요? 저희도 처음에는 외계인이냐고 물어봤었어요.”
‘…슈X맨이냐…….’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요.”
주하연이 재빠르게 덧붙인다.
생각해보면 거인의 차원을 외계라고 본다면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외계인인 것은 아니지만.
‘제소시아 쪽 사람들은… 뭐 틀리지는 않았네.’
대강의 상황 전달이 끝나기 무섭게 하유진이 미국의 거인들을 처리한 일들을 자랑스레 떠벌렸다.
“마수 몇을 제외하면 저희 피해는 하나도 없어요!”
대강 알고 있던 사실이다.
“3등위에 해당하는 애들이 다섯이나 있었는데도요!”
그건 조금 자랑할 만했다.
‘좋은 소식이군.’
2등위는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3등위는 이야기가 다른 만큼 나는 고생했다며 하유진을 비롯한 길드원들을 칭찬해 주었다.
성군의 피해도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라 미국 쪽에서의 토벌은 완승이라고 볼 수 있었다.
중국 쪽 길드와 왕춘이 거인 아홉을 제대로 막지 못한 것과 비교된다.
우리가 떠난 이후 다른 시간 속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길드를 따라잡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조금 아쉽기는 하네.’
덕분에 쉽게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 같지만, 차라리 저들의 힘이 강했더라면 이후 전투가 더 쉬웠을 터다.
백악관에 도착하기 무섭게 대화가 끊긴다. 짧은 침묵. 나는 곧바로 일행을 향해 말했다.
“다녀올게.”
“네.”
“빨리 오세요, 형. 호텔 되게 좋더라고요.”
일부러 가볍게 말하는 하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이후 나는 곧바로 조나단을 따라 백악관 내부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으로나 보던 그 오벌 오피스였다. 대통령은 결단의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반갑군. 길드장. 나는 대니얼 클로버요. 수련자들은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지?”
조나단이 스스로를 화이트가 아닌 조나단이라고 부르라 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반갑습니다. 프레지던트.”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뜬금없이 하늘에서 괴물이 떨어지지 않나 군대의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무섭게 이상한 초능력자들이 나타나지 않나, 이제는 다른 세계와의 연결이라니. 설마 내 재임 기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소.”
말은 호들갑을 떠는 듯했지만, 확실히 표정이나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소. 당신이 이들의 대표라고.”
“정확히는 가이아 길드의 길드장일 뿐입니다.”
“그게 대표지. 사실상 모든 수련자들 중 당신이 최고라고 하더군. 그대의 길드는 그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고.”
“뭐… 틀린 말은 아니죠.”
“당당하군. 하기야 중국에서 보여준 모습을 본다면 그럴 만하지.”
역시 정보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우선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소. 탑에서, 미국의 시민을 지켜주었다고.”
“모두를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프레드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왔지.”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만 살려도 감사를 표해야 하는데, 한둘이 아니지 않소. 그리고 그 인연으로 국가 자체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고. 그래서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소. 이거 보좌관에게는 비밀이오. 분명 잔소리할 테니.”
잠시 웃음을 흘린 대통령이 다시금 입을 열었따.
“앞서 있던 곳의 수석이 참 속 좁게 행동했다지?”
“…….”
“우리는 그럴 일 없을 거요. 이미 행동으로 증명했지. 첫날 부터 직접 초대하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야.”
확실히 그랬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데, 이쪽으로 넘어올 생각 없소? 미국은 영웅을 환영한다오.”
“…그건 힘들 겁니다. 가족이 고향에 있으니까요.”
“한국이라고 했던가? 몇 명이 되었든 이민 승인이 곧바로 날 것이며 평생의 안락한 삶을 국가가 책임져 줄 거요.”
단순히 나 하나만이 아닌, 모든 길드원들의 가족, 친지까지 받아들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국방에 예민한 국가다웠다.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
우선은 운만 틔울 생각이었던 듯 곧바로 주제가 넘어가 버린다.
“그런데 거인이라는 존재들이 많이 남았다고 하더군.”
“아직 절반은 더 남았습니다.”
“돌겠군. 그들에게는 총도 미사일도 안 통하던데… 마력이라고 했던가? 그게 문제라고 하더군.”
죽은 시체에 대고 실험을 해 봐도 대부분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마력이라는 것은 살아 있을 때 더 강하다고 하던데, 죽은 이후에도 통하지 않을 정도라면 살아 있을 때는 어림도 없을 것 같더군.”
일부 화학 무기도 잠시 통하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거인들에게… 핵은 통할 것 같소?”
핵. 인류 최강의 병기.
나는 담담한 태도로 대답했다.
“직격한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에 죽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죽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대통령의 얼굴이 구겨진다.
“아마 그게 통하는 거인은 절반도 안 될 겁니다.”
쏘려면 연발로, 수십 개는 동시에 쏴야 할 거다. 그마저도 대부분 소멸시켜 버리겠지만.
나도 손쉽게 가능한 일이다. 3등위 수준의 거인들이 그것을 못할 리는 없었다.
“…그놈의 공간이 어쩌고 하는 것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그대의 힘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대는 핵의 위력을 직접 본 적도 없지 않소. 막을 수 있는지, 직접 직격한 장면을 본 것도 아닌데, 그리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이오?”
“보여 드릴까요.”
“…무엇을?”
“핵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저에게 쏴 보시죠. 핵.”
나는 담담한 눈으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대통령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