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86화 (286/317)

286화

마왕의 고함.

솔직히 말해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사성을 단번에 빼앗지 못했다면 그 특성상 나는 마왕으로부터 여러 개의 능력을 강탈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계속 재생하는 상황이 왔을 테고, 불사성을 빼앗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금 탐욕을 이용해 마왕의 심장을 찔렀을 터다.

그 때마다 탐욕은 마왕의 능력을 강탈할 테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왕의 능력을 몇 개나 강탈한 마검이 나를 잡아먹기 위해 도전을 해 왔을 수도 있었다.

물론 불사성을 빼앗았더라도 뱀파이어 로드 특유의 재생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 당장 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한계 이상의 타격을 받는다면 확실히 죽는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불사성을 강제로 빼앗기며 몸 전체에 강한 충격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애초에 상대의 종족 특성마저 빼앗는 힘을 가진 검이다. 종족의 고유 특성을 그대로 뜯기는데 심장마저 뚫리니 대게는 일격에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생명체인 이상 심장은 급소고 급소에 타격을 맞으면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비명을 질러대는 마왕을 향해 짧게 대답한다.

“불사성을 빼앗았지.”

“무슨 개소리를…….”

“당하고도 모르나?”

모를 턱이 없었다.

“그것을 어떻게… 쿨럭…….”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헛웃음을 지었다.

“더럽게 제 상식에 집착하는 놈이군.”

해줄 말이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휘하에 아직 저렇게 많은 뱀파이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로드의 특권인 불사성을 잃었다. 영혼의 일부가 뜯겨진 느낌일 터였다.

“크르르…….”

입 안에서 피 끓는 소리를 내는 마왕.

“크아아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듯 마왕은 크게 고함을 지르더니 없는 힘을 쥐어짜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마법 몇 개가 생성되고 내 목숨을 위협한다.

나는 차분하게 검을 빼 든 채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날아오는 마법을 에고 웨폰이 방어하고 몇 개는 몸을 뒤틀어 피한다.

“쿨럭!”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탐욕을 바라본다.

불사성을 강탈하고, 상대의 피를 미친 듯이 탐한 모습이다.

이걸 곧바로 소화시키기는 힘들겠지만 빼앗은 것만으로도 제 역할은 한 셈.

게다가 효과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침을 해대는 마왕의 피가 무척이나 검게 변해 있었다.

“독… 그 빌어먹을 검에는 별의별 기능이 다 있군.”

내 능력이다.

검의 기능으로 착각한 듯했지만, 저것은 내 능력이었다.

혈무(血霧). 오랜만에 사용하는 기술이다.

아군의 피해를 염려해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현재는 그 이용이 상당히 자유로웠다.

피의 주인을 통해서 자유롭게 범위를 조종할 수 있었으니까.

핏방울의 형태로 응축해 로드의 몸 안에 흘려 넣었다.

불사성을 빼앗기며 당황한 상태였기에 제대로 감지할 수 없었고, 덕분에 제대로 중독된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치명적이지는 않겠지만…….’

저쪽도 피를 다루는 놈인 만큼 어마어마한 효과는 기대할 수 없을 터다.

하지만 이렇게 큰 피해를 입힌 상황이다. 작은 피해도 저놈에게는 상당히 크게 느껴질 터였다. 게다가 이미 흡수된 마당이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마왕은 이대로 간다면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주변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도망치려는 생각인가?”

어차피 도망을 쳐 봐도 한계가 있었다.

이대로 이 차원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결국에는 내 손에 죽는다.

그것을 단번에 깨달은 마왕은 결국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고작 불사성 하나 빼앗았다고 다 이긴 줄 아느냐, 인간아!”

허세였다.

고작 불사성 하나가 아니었다. 상당히 비슷한 수준을 가진 나와 마왕이다. 마왕이 나와의 승부에서 가장 믿고 있던 것인 불사성을 파훼한 것이다.

“죽여버리겠다!”

전신을 피로 뒤덮으며 덩치를 키운 마왕이 마치 과거 라이칸스로프가 달려들었던 때마냥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무기가 형태를 바꿔 마치 발톱과 같은 모양이 되었고, 마왕이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마법들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빈틈이 보인다면 틈틈이 공간이 비틀렸고 도망칠 때마다 끝없이 나를 추격해 왔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

여유롭게 장기전을 대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나를 한시라도 빨리 죽이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탐욕을 끝없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더이상 탐욕으로 힘을 강탈할 생각이 없었다. 내 무기가 언제 나를 잡아먹기 위해 움직일지 알 수 없었다. 신화 등급의 무기는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강한 힘을 빼앗았을 때 탐욕이라는 마검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할 수가 없었기에 꼭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 반쯤 무너진 마왕에게는 더이상 탐욕을 사용할 가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리의 무게추는 내 쪽으로 기울었다.

마왕이 불사성을 잃은 것이 단순한 결과는 아닌 듯했다.

강해졌던 리베티의 힘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동시에 저 멀리서 어떻게든 버티는 듯하던 바럴드의 기척이 사라졌다.

하유진과 프레드를 포함한 레고스트 일행이 승리한 채 이쪽으로 합류했고, 리베티마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으며 마왕은 도망칠 마지막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왕?”

“어떻게 마왕이…….”

“바럴드 놈이 강해진 이유가 있었군. 마왕이 찾아왔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레고스트 일행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보이는 마왕은 다 죽어가며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니 더더욱 충격적이었을 터였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마왕을 무너뜨려 갔다.

딱 좋게 힘이 빠지기 무섭게 다시금 거인의 기술들을 사용해 상대를 수세로 몰아넣었고 저장된 피를 모조리 사용하도록 만들었으며 급해진 나머지 공간 계열 공격을 난사하려는 마왕에게 레고스트 일행이 공격을 봉인할 수 있도록 기회마저 만들어 주었다.

모든 승리 수단을 빼앗겨버린 마왕은 그러한 상태로도 한참을 더 버텨 내었지만 그게 한계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후의 마왕은 전신이 찢겨진 상태로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하, 하하… 다 이긴 싸움이 이렇게 되다니… 재수도 더럽게 없구나. 어디서 너 같은 인간이 갑자기…….”

허탈한 말을 내뱉는 마왕의 앞에서 나는 반쯤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쉬운 일 하나 없군.’

마왕. 한 세계의 재앙이 눈앞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상성상 제법 유리한 상대였음에도, 게다가 지구의 재앙에 비하면 격이 떨어짐에도 이만한 피로다.

쓰러진 마왕을 바라보면 레고스트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재기의 발판을 얻는가 했더니 결국 이렇게 쓰러지는가. 하하… 역시 패배자에게 두 번의 기회는 사치였나.”

허탈한 음성의 마왕은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이겼다. 축하하지. 네놈의 끝이 비참하기를 끝없이 바라주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탐욕을 상대의 머리에 박아 넣었다.

* * *

마왕의 무기와 피를 흡수하는 탐욕.

그 능력을 강탈하지는 못하지만, 그 힘 자체는 키워줄 필요가 있었다.

지금 옵션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기능은 남은 만큼 이 정도는 괜찮을 터였다. 영원히 사용을 안 할 수는 없었으니까.

‘뭐, 능력을 강탈하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이런 것은 흡수해 놓으면 내 마력을 강화하는 것에 다량 사용되기도 하는 만큼 그렇게까지 위험해지지는 않는다.

사실상 혼자 힘으로 마왕을 쓰러뜨리자 레고스트 일행이 찬탄과 경외감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런 짓을 해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

“어떻게…….”

무언가 입을 떼고 싶은 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모습.

끝내는 말을 마치지도 못했다.

“저희 세계를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신후 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입을 떼지 못하는 레고스트와는 다르게 다른 이들은 하나둘씩 우리를 향해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마왕을 쓰러뜨렸다는 실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한 가운데 튀어나온 감사 인사 같았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대륙 전역의 잔당들을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것은 시간문제죠. 가장 위험한 존재인 마왕이 쓰러졌으니…….”

뒤늦게 레고스트가 내 말에 반응을 보였다.

맞는 말이다. 사실상 열세 번째 꽃, 아니 브리니아 여신의 의뢰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근시일 내로 연락이 올 터였다.

‘지구인가…….’

감흥에 젖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구로의 귀환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갈 수는 없겠지만.’

주하연이 배울 것도 있었고 사샤 또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아마 잔당까지 처리한 이후에도 한동안은 여기서 머물러야 할 터였다.

게다가 마왕의 침공을 막아내고 대륙까지 되찾는다면 브리니아 여신의 영향력 또한 강해질 터였다.

온전한 힘을 가진 관리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지원군은 전투의 흔적을 보고는 반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두 명의 백작과 마왕까지 모조리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용사 레고스트의 선언과 망가진 마왕의 시체를 보고는 곧바로 일대가 환호성으로 뒤덮여 버렸다.

“유신후 만세!”

“레고스트 만세!”

“용사들이여, 영원하라!”

내가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하기는 했으나 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용사는 아직까지는 레고스트였다.

레고스트 본인은 자신을 찬양하는 말을 들으면서 얼굴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

내가 한 일에 비해 자신이 한 일이 별로 없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수 많은 병사들의 환호를 받으며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자 소식을 들은 황제가 버선발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정녕, 정녕 사실이라는 말인가? 마왕을 쓰러뜨렸다고?”

“예, 폐하.”

나를 대신해 레고스트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유신후 님께서… 단신으로 마왕을 쓰러뜨리셨습니다.”

“…단신으로?”

“예. 그렇습니다.”

단신. 레고스트 일행이 공간 계열 공격을 봉인해 주기는 했으나 솔직히 없었더라도 충분히 이길 자신은 있었다. 게다가 고작 그거 도와주었다고 숟가락을 얻기에는 레고스트가 생각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제국의 이름을 대표하여 그대들에게 감사하는 바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황제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왔다.

제국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고개를 숙이자 다른 이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마왕을 죽였다는 실감이 나는 것인지 용사 또한 제대로 정신을 차린 표정으로 황제 옆에서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왔다.

“…목숨을 걸고 저희를 도와주신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황제와 용사. 둘이 고개를 숙이자 한껏 당황해 하던 이들이 하나둘 우리를 향해 머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용사의 일행, 황제를 보필하는 기사와 귀족들, 멸망한 왕국의 왕족들과 병사, 제국의 시민들까지.

진심이 느껴지는 행동.

그들의 허리는 한동안 펴질 줄 몰랐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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