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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85화 (285/317)

285화

사방을 짓누르는 강력한 압력에 마왕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공격을 견뎌내고는 곧바로 나를 밀쳐내 버렸다.

“이건 거인 놈들의… 네놈. 거인들과 무슨 관계지?”

마왕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놈들이 인간에게 기술을 전수할 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타 차원을 보호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애초에 인간의 몸으로 거인의 기술들을 쓴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것 마냥 마왕의 말에는 불신의 감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의 불신과 상관없이 내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마왕은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반격은커녕 막기도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와 마왕의 부딪침에 일대가 뒤집어진다. 사실상 공격을 하는 것은 나뿐임에도 이만한 위력이다.

일격에 협곡의 일부가 가루가 되고 무너지며 새로운 지형이 되어갔다.

다른 곳 또한 치열하기는 하나 이쪽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주도권을 쥐기는 했지만, 마왕은 수세에 몰리면서도 치명적인 공격은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몸 곳곳에 여러 상처들을 내고 근육을 뜯어 놓았지만 순식간에 재생해버린다. 심지어 피에 관한 지배력마저 강력한 뱀파이어 로드이기에 피를 갈취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전투가 점점 길어지며 상대가 내 기술들에 하나둘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여기보다 저쪽이 먼저 끝날지도.’

주하연은 아직까지는 공간 계열의 공격을 봉인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보호를 받으면서 나서윤과 한바다를 지원하고 있었다.

둘은 끝없이 연계하며 상대가 공간 계열의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방해해 내었다.

하지만 리베티의 얼굴은 생각보다 여유로운 편이었다.

마왕이 등장한 직후부터 리베티의 힘이 강해졌다. 마왕이 근처에 있음으로 인해 힘이 강해진 듯했다. 다만 그럼에도 이쪽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팔을 크게 휘저으며 해일을 사용하기 무섭게 마왕의 모습이 사라진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척.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에고 웨폰을 빠르게 뒤쪽으로 배치한다.

“흐압!”

강한 기합성과 함께 마왕은 피의 검을 바닥으로 꽂아 넣었다.

쿵.

촤악!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무수한 붉은 칼날.

나는 직감에 따라 곧바로 허공을 밟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래쪽에서 솟아난 무수한 칼날들이 쪼개진다.

이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듯이 수많은 파편이 하늘을 수놓았다.

혈신의 갑옷이 반응한다. 나는 즉시 피를 뽑아내 몸 전체를 감싸는 방어막을 형성했고, 그 위로 수많은 파편이 부딪쳐왔다.

강렬한 충격. 동시에 일대의 공간이 뒤틀리는 기척을 느꼈다.

“블링크.”

기척을 감추고 주변의 마력을 교란하며 최대 범위로 벗어난다.

몇몇 파편이 내 몸을 스친다. 모든 파편이 방어막 위로 쏟아진 것이 아닌, 일정 공간 자체에 쏟아진 모양이었다.

탈출하기 무섭게 재차 이동해 공격권을 완전히 벗어나고 나 또한 마왕의 몸 주변의 공간을 뒤틀어버렸다.

마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간다. 그러자 다시금 마왕이 모습을 감춘다.

“편리한 기술이군. 그것.”

“당연한 것을. 이만한 수준에 오르면 이런 기술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법이지. 내 것은 그중에도 우수한 편이다만.”

어느새 내 바로 아래쪽에 당도한 마왕이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공격 자체는 참 대단하군. 그에 비해 이동기는 한참이나 떨어지지만. 오래지 않아 죽을 놈이로다.”

묘하게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듯한 태도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유진이의 기술이랑 묘하게 비슷한데…….’

두 차례, 정확히는 세 차례의 이동을 보며 눈치챈 사실이었다. 아쉽지만 마력의 눈동자로 분석은 불가능했다.

‘제법 탐나기는 하는데 말이지.’

처음은 리베티 백작의 그림자.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자신의 기술이 만든 흔적의 주변이었다. 게다가 가장 확실한 회피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사용하지는 않았다.

“호오. 재생인가?”

몸에 입은 상처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왕이 감탄했다.

“너는, 정말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도저히 내가 아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군.”

‘결국 이것뿐인가?’

나는 내 검을 흘겨보았다.

내가 밀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내가 크게 앞서는 것도 없었다.

신체 능력도 비슷하고 마력도 밀리지 않는다. 사실상 둘 모두 밑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같았다.

공간 계통은 익숙해질수록, 정교하게 다룰수록 위력이 높아지는 만큼 마력 소모가 어마어마한데도 나나 저놈이나 부담 없이 쓰는 상황이었으니까.

대게 나와 싸우는 이들은 하나같이 전투 지속력이 내가 앞섰으며 자잘한 상처를 입을 때마다 내가 유리해졌었다. 신체 능력이 앞서거나 마력이 앞서는 등 적어도 뭐 하나 내가 내세울 것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마왕은 다르다.

‘상층에서처럼 차근차근 공략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고도 상당수의 길드원들이 상층에서 죽어나갔다.

혈족이 로드의 힘이 되는 특성이 있는 이상 차근차근 공략한다면 이쪽이 충분히 앞설 수 있었다. 게다가 귀족들마저 다 죽인다면 불사성도 사실상 깨지니까.

그러나 북쪽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마왕이 뜬금없이 나타났고 상대가 완전히 약해지지 않은 타이밍에 싸울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여유로운 이유도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인간 같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나는 인간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만 죽일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된다. 백작 둘을 잃는다면 큰 피해를 입겠지만 도주 후 정비한다면 하나씩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아무래도 다른 그랜드 마스터들의 실력을 보면서 그러한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우습지만 틀렸다. 내 전투 지속력은 마왕 못지않을 테고, 내 일행들은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자리에서 끝낸다.’

나는 혈신의 갑옷에 잠든 피를 상당수 꺼내 들었다.

아쉽게도 마왕이 사용하여 사방에 뿌려진 피를 내가 회수할 수는 없었다.

서로의 지배하에 있는 피는 쉽게 빼앗을 수 없다. 서로 동등한 격을 가진 이상 상대를 죽이거나 극도로 약화시키지 않는 이상 지배력을 빼앗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즉, 내가 다량의 피를 사용한다고 해도 저쪽이 강해지지는 않는다는 것.

허공에 화살 모양의 핏덩이들이 다수 생성되었다.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군?”

나름 짐작했다는 표정의 마왕.

나는 즉시 화살을 날려대었고 마왕은 도주 대신 곧바로 피로 벽을 세워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상대의 벽이 폭발했다.

“큭!”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모습에 나는 뒤로 튕겨져나가며 거대한 무형 강기를 형성, 그걸 그대로 늘려 상대를 향해 찍어버렸다.

“미친!”

마왕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설마 저 거대한 크기의 강기가 늘어나 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

급하게 몸이 분해되고 그림자로 빨려 들어간다.

쿠와앙!

바닥이 무너진다.

멀찍한 장소에 등장한 마왕이 중얼거렸다.

“마치 같은 로드를 상대하는 것 같군. 이 무슨 마력량이라는 말…….”

그러한 마왕의 몸 위로 미친 듯한 강기의 파편들이 쏟아졌다.

상대가 나타나는 즉시 초대형 무형 강기를 폭파시켜 사방으로 그 파편을 쏘아낸 것이었다.

이전 마왕이 했던 공격과 비슷한 유형의 공격이었다.

90% 정도의 파편이 엉뚱한 방향으로 쏟아졌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왕은 급하게 몸을 방어했지만 나도 남은 마력의 절반을 쏟아 부은 공격이다.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낼 수는 없었다.

급하게 만들어낸 피의 벽이 무너지고 전신이 꿰뚫린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충분히 치명상이 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뱀파이어 로드. 잠시 쉬는 것만으로도 회복할 수 있는 상처에 불과했다.

사용한 마력량에 비해 만족할만한 수준의 피해는 아니다. 다만 잠시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목적을 달성했다.

“블링크.”

짧은 거리를 이동하고 동시에 최대한 몸을 가속한다.

걸리적거리는 지형은 하늘 밟기로 단번에 돌파해 순식간에 상대의 코앞에 다다른다.

마왕 또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일어나라! 막아라!”

급하게 일어나는 피로 이루어진 병사들. 알고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효율이 최악이고 저 짓을 할 바에야 차라리 휘하의 뱀파이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백번 나은 기술이다.

지능도 떨어지고 신체 능력도 사용한 피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발목이나 잠시 잡는 용도. 마왕이 사용한 마법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몇 겹의 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여러 공격 마법들 또한 병사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나는 내 검에 얇은 강기만을 씌운 채 앞으로 돌진했다.

서걱.

걸리는 것들을 단번에 베어낸다. 강기를 늘리고 줄이며 본능이 알려주는 약점을 헤집고 마력의 눈동자로 상황을 인지하며 익혀온 검술로 단번에 병사들을 돌파한다.

퉁! 텅!

날아오는 마법을 에고 웨폰이 빠르게 처리한다.

그리고 나는 단번에 몇 겹의 벽을 돌파해내었다.

“급하긴 했나 보군.”

“하, 헛수고……!”

공간 마법을 경계한 것인지 불사성을 믿은 것인지 내가 이렇게까지 접근했음에도 상대는 그림자로 도망치지 않았다.

애초에 매번 사용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쓰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나는 검을 들어 상대의 가슴, 정확히는 심장 깊숙이 박아 넣었다.

“컥……!”

마왕이 피를 토한다.

“후후… 이런 것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피를 토하면서도 마왕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직 백작들이 살아 있었다. 게다가 휘하의 수 많은 뱀파이어들 또한 살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한 얼굴이었다.

“탐욕이라고, 들어 봤나?”

“탐욕? 그게 무슨…….”

“흡혈검의 최종 진화 형태라고 할까. 이전에 너와 비슷한 놈을 하나 죽여서 먹이로 던져줬었지.”

마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게 뭔……. 커헉!”

마왕의 표정에 의문이 깃든다.

“어째서…? 어째서 회복이…….”

“다행히 잘 되었나 보군.”

단번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과거 상층의 마왕을 잡아먹었을 때 흡혈검은 최종적으로 진화를 마쳤고, 그때 본 상태 창은 잊을 수가 없었다.

[탐욕(貪欲)]

―등급 : 신화

―흡혈검이 마왕의 격을 손에 넣어 최종 진화한 형태. 베어버린 모든 것을 탐하는 마검. 그 욕망은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를 원하며 설령 검의 주인이라고 한들 그 표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공격력 : -

―옵션1 : 심장을 찌른 적의 힘 일부를 강탈.

―옵션2 : 강탈한 힘을 소화한 이후 일부 사용 가능.

―옵션3 : 일정 이상 힘이 쌓일 경우 재차 주인 의식을 치러야 한다.

―현재 강탈한 힘 : 없음.

심플한 상태 창.

그러나 간단한 만큼 그 범위가 어마무시했다.

‘힘’이라고 표시되었으나 그 대상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다. 그 검을 손에 넣는 순간, 그리고 최초의 주인 의식을 치르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거인의 괴력이나 마법 저항력, 드래곤 방대한 마력 저장고 같은 종족 특성부터 대마도사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마법 일부라던가 정령사가 정령과 했던 계약마저도 일부 강탈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실제 소화시키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가는 별개였지만.

게다가 이전의 기능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최초의 주인 의식은 별거 없었지만… 이후 강탈한 힘이 많을수록, 그리고 강해질수록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그런 만큼 강탈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다.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도 못한 마당에 검에게 잡아먹힐 생각은 없었으니까.

당분간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성공이군.’

불사력. 만약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날 수 있다면 불사력을 강탈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을 터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더라도 나는 검의 주인으로서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불사력을 잃은 이상 마왕 또한 한낱 뱀파이어에 불과했다. 무척 강하기는 했지만.

“네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마왕의 비명이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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