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공간에 간섭하는 기술들을 틀어막았다는 결과에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지 저들은 내가 달려들 때까지만 해도 약간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달려들어 주자 곧바로 진영을 갖추며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걸 본 내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고, 결과는 뻔했다.
내가 공간에 간섭하는 기술에 관해 연구하고 최근 집중적으로 수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전에 배운 것들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밑바닥 시절에 사용하던 검술부터 이후 마스터 단계에서 익힌 검술 및 강기를 다루는 기술, 그랜드 마스터가 되며 할 수 있게 된 대기의 마력을 다루고 영역을 형성하는 법과 거기에 더해 거인에게서 빼앗은 그들의 기술까지 모든 것을 지금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었다.
단번에 일대의 영역을 장악하고 마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이며 동시에 몸 안의 마력을 아낌없이 사용해 거대한 무형 강기를 형성했다.
내가 상대에게 도달하는 그 짧은 찰나에 이루어진 공정에 저들이 자신만만한 태도가 무너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휘두르기.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거인의 기술이다. 일대의 마력이 휘몰아치고 안 그래도 거대한 크기의 강기가 단숨에 주변의 영역에 간섭하며 드넓은 공간을 휩쓸어버린다.
전위인 기사, 구알라사가 어떻게든 내 공격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용사인 레고스트와 검사 핑기나가 따라붙어 매달려 보았지만, 단숨에 진형이 붕괴되었다.
솔직한 말로 이 순간 강기를 폭발시키거나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면 최소 둘은 죽이고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고 나는 상대가 못 버티는 순간 힘을 빼버렸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 보르가의 습격을 에고 웨폰이 즉시 막아섰다.
팅!
이미 들킨 습격은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한껏 공격에 집중한 것도 아니었고. 직감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마저 깨닫고 있었다.
“젠장! 이건 또 뭐… 컥!”
곧이어 방패에서 솟아난 붉은 가시에 의해 보르가의 배가 꿰뚫린다.
급소는 피했지만 고통은 상당할 터다.
급하게 호신강기를 두르기는 했었지만 붉은 가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호신강기를 관통했다.
이미 완성된 혈신의 갑옷과 연결된 방패다. 그 위력은 이미 어지간한 무형 강기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었다. 만들어진 장비가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연동된 존재가 나였으니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보르가가 쓰러지기 무섭게 하늘에서 백색의 광선이 나를 향해 쏟아졌고, 보르가에게 반격을 가했던 에고 웨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서는 공격을 막아내 버린다.
위험한 공격은 아니었다. 신성 마법인 듯했는데 그 위력이 그리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다.
일격에 진형이 붕괴되었는데도 용케 제대로 반격을 한다 싶었다.
나는 다시금 내게 날아오는 화살을 튕겨내는 에고 웨폰을 슬쩍 바라본 뒤 말했다.
“안 통합니다.”
무너졌지만 사정을 봐 준 덕분에 몸은 멀쩡한 후열이 나를 견제하는 사이 붕괴된 전열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고, 필사적으로 나에게 화살과 마법을 날려대는 네세네와 애니디를 무시한 채 일어나려는 레고스트를 발로 차 버렸다.
“크억!”
이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핑기나의 검을 비끼듯 피하고는 그녀의 팔을 잡아 성녀인 애니디 옆으로 집어 던져버렸고 결국 공격을 포기한 네세네가 애니디를 대신해 핑기나를 받아내었다.
짧은 순간 진형이 붕괴되고 용사 파티가 와해된다.
죽이려고 했었다면 이 순간 이미 저들은 전멸이다.
핑기나를 받아든 네세네가 괴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저들은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컥… 커헉….”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급소는 피했지만 일단 몸을 관통당했으니까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보르가를 가리키며 말하자 애니디가 조심스럽게 그를 향해 접근해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완패입니다. 졌습니다.”
레고스트의 선언에 저쪽 인원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에 반해 내 길드원들은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이다.
“길드장 님과 제대로 붙으려면 간부급 이상 전원이 달려들어야 하는 판인데 고작 저 숫자로 어떻게 싸우겠다는 건지….”
한 길드원의 중얼거림에 구경하던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동의한다.
확실히 나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다수보다는 강력한 한 명이 더 효율적이기는 하다.
“파티 단위로 자주 싸우셨나 보군요. 특히 공간에 간섭하는 공격을 막은 그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성녀가 탑에서 배운 기술입니다. 여신님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터득한 것으로, 마력과 신성력 모두를 사용하는 특수 기술입니다.”
혼자서는 사용할 수 없노라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할 수 있다. 그것만 알면 된다. 이쪽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었다.
“저희 도움이 필요하시기는 합니까?”
레고스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당연한 말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 법이죠.”
“…적어도 저희 세계의 위기 정도는 혼자서도 해결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랬다면 저 혼자 왔겠죠.”
말은 저리 했지만, 솔직히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비슷한 적과 한 번 싸워 보았으니까. 상당수의 길드원들을 잃으면서 마족과 뱀파이어, 그리고 마왕 자체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분명 다른 개체이나 공통된 정보는 분명히 있을 테고, 이런 일들을 경험한 결과 내가 가진 것들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것들을 비교해 봤을 때 승산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을 뿐.
상성상 내가 우위인 것들이 몇 종류나 있었다.
“도대체 당신의 차원은 어떤 상황인지 상상이 안 가는군요. 당신 정도의 사람이 우리 같은 이들의 도움을 구해야 할 정도라니….”
위기 자체의 크기로 본다면 이쪽도 충분히 위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구에 비하면 그 난이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몰랐던 정보도 있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여러분이 강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전혀 위로를 받지 못한 표정으로 애써 대답하는 레고스트.
그 일행들은 하나같이 고개조차 쉽게 들지 못하고 있었다.
“후… 신경 쓰게 해 드렸군요.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신님께서 대단한 분을 모셔오신 것 같습니다. 든든하군요.”
그러자 저쪽 일행의 분위기가 조금 변했다.
확실히 나는 아군이다. 적도 아닌데, 아군이 강하다면 응당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보르가가 실수한 것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자신들이 그간 쌓아온 것을 나와 비교하며 자해하지 않는 한 내가 강한 것은 저들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저쪽의 분위기가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교류전이 끝났음을 선언하기 무섭게 서로 대련을 했던 상대에게 접근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강해진 비결이라던가 탑에서 겪었던 일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저쪽의 적극적인 태도에 우리 일행들도 나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보르가가 태도를 좋게 못 했을 뿐 동조한 인원은 딱히 없었으니까. 특히 핑기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보르가에게 한소리 하기도 했고.
역으로 우리 쪽에서 특히 적극적이었던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주하연이었다.
내 공격, 즉 3등위 거인 정도가 된다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다루는 힘을 봉쇄한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볼 생각인 모양이었다.
당연한 행동이다. 그것을 막을 수 있다면 확실히 전법 자체가 달라진다.
“와,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하면 그 정도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야?”
교류전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말을 놓아버리는 레고스트의 태도에 나 또한 짧게 대답했다.
“필요해서.”
못 하면 다 죽는다. 희망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내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일 뿐이다.
그 무게를 이해했는지 레고스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 또한 나와 비슷한 입장이었으니까.
“황제와 만났다고 들었어.”
“그래.”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물어도 될까?”
“큰 이야기는 없었다. 그냥 제국 내에서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더군.”
내 말에 레고스트는 곧바로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나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정치나 권력에 눈독을 들이면 상당히 위협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니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필요할 가능성이 높아 끈을 만들어 놓을 뿐 직접적으로 그런 것에 큰 욕심은 없었다.
그럴 짓을 할 시간에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이 이익이다. 정 권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그 때는 끈을 이용해 두면 되니까.
“그래… 그렇구나….”
문득 황제가 말했던 내가 용사와는 다르다는 말이 떠올랐다.
즉, 눈앞의 이놈은 그런 쪽에 발을 담갔다는 뜻이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레고스트는 더이상 황제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 또한 여느 일행들처럼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는지, 내가 강해진 과정은 무엇인지 물었을 뿐.
교류전이 끝나고 난 뒤에도 해산은 한참 후에나 이루어질 정도였다. 유일하게 일행들과 어울리지 못한 보르가는 미리부터 들어간 상태였지만.
사과 자체는 받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힘에 굴복하고 레고스트의 지시 하에 이뤄진 형식적인 사과였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하게 보르가는 우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이 날 이후 나를 비롯한 일행은 작전대로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설령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폭발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백작이 하나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동시에 다른 하나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자 레고스트가 나를 찾아왔다.
“둘의 움직임이 파악되었어. 이번에는…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평소라면 그가 직접 막기 위해 움직였을 테지만 지금은 다른 이들에게 맡겼다고. 용사 일행을 대신할 이들은 없는 만큼 큰 희생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준비 자체는 이미 철저하게 해 놓은 만큼 우리는 곧바로 그 왕족이 있는 장소로 달려왔다.
아드윈 로지우스 공주. 이번 목표인 로지우스 왕국의 공주였던 몸이다.
작전에 관계된 만큼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피 일부를 뽑았고, 곧바로 게이트 마법이 준비되기 시작한다.
“…조심해. 부탁도… 할게.”
“응.”
‘친한 사이였나?’
과거 왕족과 현재의 용사. 어쩌면 황제가 싫어하는 것은 이 조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들이 늘어나면 귀찮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는 사이 게이트가 완성되었고, 완성된 게이트를 향해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