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나서윤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였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길드원들이 짓는 표정이 조금 거슬렸지만, 신경은 쓰지 않았다.
‘뭔가 흐뭇해하는 것 같은데…….’
이해는 간다. 나서윤이 타인에게는 선을 긋는 편이지만 내가 길드원들을 중히 여기는 것을 아는 것 때문인지 길드원들에게는 선을 지키면서도 은근히 잘 대해주었으니까.
특히 마법사들에게는 스승이나 다름없는 위치다.
“여기는 왜?”
한참이나 떨어진 공터. 나서윤은 가볍게 무기를 꺼내 들며 말했다.
“여러 기술들을 개발해서. 오빠한테 시험하려고.”
사실 공터로 나올 때부터 예상하기는 했다.
그녀의 기술을 받아줄 사람이라고는 나 말고는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랜드 마스터가 나와 그녀뿐이다. 지금의 그녀라면 라이칸스로프를 꺼낸다고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고, 그렇다고 마수를 포함한 길드원들과 싸우자니 그녀와의 상성은 별로 좋지 못했다.
나서윤이 불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유리했다.
‘거인들과 다르게 서윤이는 인간과 싸우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인간을 얕보지도 않으며 무영창까지 완성한 마검사. 게다가 경지가 그랜드마스터다. 근접전은 오히려 특기. 솔직한 말로 결점이 없는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나서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넘쳐 흘렀고, 나는 그 기대감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스르릉.
가볍게 검을 꺼내 든다.
“아, 흡혈검 아직도 변화 중이야?”
“응.”
내가 꺼낸 검은 흡혈검이 아닌 예비로 사용하는 슈퍼 레어급 장검이었다.
지금의 포인트로 전설급 검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전설급과 슈퍼 레어 급의 가격 차이가 많게는 수십 배 이상 난다. 아무리 포인트를 많이 얻었다고는 해도 길드원이 거의 일천에 달한다.
그들의 스킬과 장빗값을 생각하면 고작 임시 검에 그렇게 과한 투자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층에 우리에게 대적할 세력이 남은 것도 아니고.
조금 아쉽다는 표정의 나서윤. 하지만 곧바로 웃는 얼굴로 돌아온다.
그러나 표정과는 반대로 몸에 느껴지는 기세나 취한 자세 등은 결코 가벼운 마음가짐이 아님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오빠랑 단둘이 하는 대련은 오랜만이네.”
“그런가?”
“항상 상대가 안 되었었으니까.”
피식.
나서윤의 말에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사실이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런 것치고는 표정이 가벼운데.”
“그거야 나한테는 이게 데이트 같은 거니까.”
단둘이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모양이다. 솔직히 중층에서도 현대에 비하면 놀 것이 없었는데 상층은 더하다. 몇 년간 전투에 치여 살아온 우리들이 마음 편히 놀기도 쉽지 않았고. 아무리 쉬는 것도 휴식이라고는 하지만 나를 포함한 길드원들의 어깨에 지구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쉬는 것마저도 전투적인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최선을 다해야겠네.”
“당연하지 안 그러면 삐질 거야?”
나서윤의 애교 섞인 말에 가벼운 웃음이 터진다.
나는 곧바로 스킬들을 활성화하고 에고 웨폰을 꺼낸 뒤 혈신의 갑옷에 연동까지 순식간에 마쳐버렸다.
갑작스러운 기세의 변화에 나서윤의 웃던 표정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들어와.”
내가 가볍게 손을 까딱이며 말하자 나서윤이 주저 없이 달려들었다. 이미 전신에 오러를 통한 강화마저도 마친 상태.
허공의 마력이 흔들린다.
내 영역 내부의 지배권을 탐하는 모습에 나는 어림 없다는 듯 흔들리는 마력을 부여잡았다.
보통이라면 피하는 것이 편하다. 실제로 3등위 거인 둘, 지리얼과 게니치는 방어보다는 회피를 우선으로 두었었다.
그러나 그것도 비슷한 수준이 되었을 때나 허용되는 말이다.
그녀가 사용한 것은 어디까지나 마법이며 나에게는 전설 죽이기 스킬이 발동되지도 않는다. 그녀는 약간의 공간적인 깨달음을 갖고 있는 듯했지만 나에 비하면 그 수준이 명백하게 낮았다.
단숨에 마법이 일그러져 허공에서 폭발해 버리자 나서윤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영역에서 마법을 생성해 내었다.
빠르게 여러 속성이 뒤섞인 마법의 화살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속성이 몇 개야?’
대충 봐도 열 개 가까이 된다. 그걸 무영창으로 뽑아낸 것이다.
거인의 마법 저항을 비교적 수월하게 뚫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이러한 마법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나는 빠르게 혈신의 갑옷에서 피를 뽑아내었다.
단숨에 완성되는 수십 개의 혈마법. 그 마법들이 나서윤의 마법과 충돌한다.
펑펑펑펑!
빠른 요격이었으나 마법에 있어서 나는 나서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앞서는 것이 아닌, 크게 못 미치는 수준. 그 계통이 다르고 거인의 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조금은 저항하는 듯했으나 곧바로 나서윤의 스킬 전설 죽이기가 발동해 마법을 부숴버린다.
퉁퉁퉁 쾅쾅쾅쾅!
내 마법을 역으로 요격하며 약간의 기세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위협적인 속도로 나에게 쏟아지는 마법들. 그러한 마법들을 에고 웨폰이 빠르게 막아섰다.
그리고 나서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 격노!”
연속적으로 쏟아지는 공격들. 대부분의 길드원들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을 공격이지만 나에게는 또렷하게 보일 뿐이었다.
스걱.
쾅쾅!
베어진 대 격노가 허공에서 폭발한다. 그 위력은 분명 나무랄 데 없었으나 내게는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 내 뒤통수에서 쏟아졌다.
‘제법!’
허공에 다수의 마법이 충돌하고 대 격노를 베어내는 사이 내 영역을 침투한 나서윤이 근거리에서 무영창 마법을 쏘아낸 것이었다.
대기의 마력이 요동치는 틈을 잘 노렸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숙여 마법을 피해내고는 동시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설마 내가 곧바로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는지 나서윤은 조금 당황한 상태로 뒤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시전되는 마법들.
이전과 다르게 대기를 흔들고 진로를 방해하고 주변 대기를 흔드는 등 간접적인 효과를 보이는 주문들을 쏟아내었다. 당황한 순간에도 하나같이 최소 4가지 이상의 속성을 추가해대는 것을 보면 나서윤의 수준이 정말 높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의미가 없었다.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공격들은 하나같이 마력을 장악해 마법 자체를 힘으로 찍어 눌렀고 타격을 주기 위해 비행하는 마법들은 에고 웨폰에 의해 자동 요격되었으며 작은 틈새를 노리고 날아오는 마법들은 검에 의해 베어져 나갔다.
나서윤의 마법이라고 해도 마력의 눈동자는 피해갈 수 없었고 보이는 것을 베지 못할 정도로 내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내게 거리를 허용하기 직전이 되자 무형 강기를 뽑아내 마법과 함께 쏘아내고 폭파시킴으로써 나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나는 그마저도 정면으로 뚫어버렸다.
나서윤의 얼굴에 질린 표정이 드러난다.
단숨에 내 검이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낙뢰.”
꾸웅-.
콰드득.
마치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단숨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나서윤을 짓눌렀다. 거인의 기술이기 때문에 그 범위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일대의 바닥이 모조리 박살 난다.
“큭!”
단순한 무형 강기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압축된 강기였고, 나서윤은 그 와중에도 내 빈틈을 노려 마법을 사용했지만, 마법은 생성조차 되지 못했다.
낙뢰의 넓디넓은 범위 내에서는 마법이 완성되지 못했다.
“용케 반응했네.”
솔직한 말로 반응이 늦었다면 무기를 비껴줄 생각이었다. 이건 대련이니까. 하지만 나서윤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랬기에 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다.
나서윤은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힘겹게 모랄타를 이용, 맞닿은 내 검을 흘리고는 베갈타로 나를 베어왔다.
순식간에 길어지는 강기. 그 익숙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익혔군.’
나조차도 보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습득할 수 없었던 카바락의 기술이다. 그런 것을 나서윤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나는 고개를 꺾어 강기를 피했고, 그 순간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위기감에 급하게 일대 마력을 뒤흔들었다.
“블링크!”
삭!
내가 있던 자리에 기역자로 꺾인 나서윤의 강기가 스쳐 지나간다.
“형상을… 바꾼다고?”
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강기를 날리거나 늘릴 수는 있어도 저리 강기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어렵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라고는 무공들에서나 발견될 뿐. 하나같이 비효율적인 기술들이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서윤은 강기를 채찍처럼 다뤄대며 나를 향해 휘둘러 왔다.
강기의 형태는 무기에 구애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채찍을 이용해 마스터에 이른 이도 본 적 없는 마당에 이것은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무리해서 하려면 못 할 것은 없었다. 다만 자연스럽게 되지는 못하고 효율도 극악이다. 지금이라면 차라리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효율적일 지경이다. 신기하기는 하나, 그뿐이었다. 이미 알게 된 이상 대처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단숨에 변형된 무형강기를 잘라내었다. 형태가 변형된 만큼 압축률은 떨어진다.
그리고는 살해 본능을 활성화, 곧바로 나서윤을 향해 파고들었다.
나서윤은 마검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높은 수준의 검술로 내게 맞서왔지만, 내 검술이 어디 가서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거인들과 싸우며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인 기술들 위주로 단련하기는 했으나 검술 자체를 소홀히 한 적은 없었다.
나서윤의 오러로 강화된 육신도 내 신성력과 성자의 오러, 혈신의 갑옷과의 연동과 같은 다수의 버프를 앞설 수준은 되지 못했고, 애초에 신체 자체도 내가 우수하다. 나서윤은 여러 마법들을 재차 사용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나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결국, 바닥에 쓰러진 채 목에 강기가 드리워지자 나서윤은 지체 없이 외쳤다.
“항복!”
후.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진짜 많이 늘었네.”
이만하면 3등위 거인에게도 덤벼볼 만했다. 실제로 게니치를 상대하기도 했었고.
“와, 오빠는 여전하네. 진짜 많이 준비했는데, 다 보여주지도 못했어.”
“…더 준비한 것이 있었다고?”
“응. 그래서 말인데, 조금 더 어울려 줬으면 좋겠어. 어느 게 더 거인들에게 잘 통할지도 궁금하고, 섞을 수 있으면 섞을 거라서. 아. 이번 것은 어땠어? 초반 마법 폭격은 3등위 거인에게도 제법 통하던데, 형태 변형은 이번이 처음…….”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이어지는 말들.
이번 전투에 대한 평가라던가 더 수준을 높일 방법이라던가, 다음에는 공간 기술을 보여달라는 등 나서윤은 끝없이 내게 무언가를 요구해 왔다.
그런 요구들을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나같이 강해지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고, 동시에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였으니까.
나서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진지하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표정.
그녀는 충분한 향상심을 보이면서도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정말로 즐기고 있었다.
차츰 나 또한 그러한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그날은 나서윤이 준비했던 모든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와 헤어질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대련하자는 약속과 함께.
* * *
며칠 뒤 한바다와 하유진, 프레드가 나를 찾아왔다.
하나같이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습을 보이는 순간 직감했지만.
“…죄송합니다. 신후 님.”
“죄송해요. 형.”
“죄송합니다.”
하나같이 죄송하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낮았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유진이 너도. 프레드 님도 고개를 드시죠.”
아쉽지만 셋 모두 벽을 넘는 것을 실패했다. 나와는 경우가 달랐다. 아쉽게도 내 기억을 체험하는 것으로는 벽을 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도움은 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셋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저희가 갈 상층은… 아직 하나 남았으니까요.”
내가 할 수 있게 해 준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라는 말에 셋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에도 불구하고 셋의 얼굴은 방을 나갈 때까지 어두웠다. 이해는 간다. 다른 길드원들은 받지 못한 기회를 얻었음에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저 셋이 못 하는데 다른 길드원들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이후 나는 주기적으로 나서윤과의 대련 및 길드원들의 지도를 멈추지 않았으며 특히 내게 기회를 얻었던 셋을 특별하게 관리해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거인의 층을 완전히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셋 중 누구도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실망을 일렀다.
나와 길드원들은 상층의 청소가 완전히 끝나 거인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게 되기 무섭게 탑을 나가는 대신 나의 주도하에 다음 상층으로 악마들의 영역을 택해 공략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그랜드 마스터 넷과 진정한 대마도사 셋을 얻었고 이들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은 성과들 또한 몇 개나 이룩했다.
동시에, 300이 넘는 마법사와 200여에 가까운 정예 길드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탑을 완전히 벗어난 우리를 열세 번째 꽃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맞아주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