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여신상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무섭게 서로 공명하며 빛을 내기 시작했고, 동시에 메시지 창이 튀어나왔다.
히든 피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는 곧바로 떠오른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다섯 개의 여신상]
―다섯 개의 여신상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간섭력을 습득합니다.
“…….”
메시지 창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간섭력.
어느 순간부터 간간이 등장하는 보상이다.
물론 쉽게 얻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모든 길드원들 중 간섭력을 보상으로 얻어본 자는 나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활용 자체는 플로어 마스터들을 통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거…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공명하며 빛나는 여신상들. 거기에서부터 기묘한 힘이 느껴진다.
제대로 다룰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사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여신상들이 모이면 둥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인들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타차원을 향한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섭력을 모조리 써야 할 것 같지만.
이 힘을 사용하면 지금이라도 지구로 귀환할 수 있을 거다.
‘병신같은 짓이지만.’
내가 지구로 돌아왔음을 인지한다면 가이아 또한 시간을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멈춰있던 재앙인 거인들이 움직일 터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은 시점에 그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간섭력은 여러 의미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플로어 마스터들을 불러야 하나?’
그게 가장 편하고 유용한 방법일 터다. 간섭력을 낭비 없이 사용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굳이 내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이들을 두고 내가 귀한 간섭력을 막 사용하는 것은 조금 꺼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걸로 지금 할 것이 딱히 없다는 것에 있었다.
상태 창은 이미 한계치에 달해버렸다.
스킬들 또한 숙련도가 필요한 것들은 이미 충분한 숙련도를 갖고 있었다.
쓸 곳이 무궁무진하지만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다고 할까.
‘나중을 위해 보관을… 잠깐.’
문득 예전 카바락과 전투 이후가 생각이 났다.
카바락의 감각을, 그대로 흡수했던 그때를.
‘지금… 한바다랑, 유진이도…….’
둘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길드원들은 레벨과 시스템의 보조 덕분에 마스터 최상급에 달한 상태였고, 하나같이 그랜드 마스터라는 벽에 가로막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한바다와 하유진의 경우에는 잠재력이 최상급이다.
내가 전사 직업군이다 보니 내가 가진 경험을 공유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전사 직군들이다.
솔직한 말로 하유진도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그 재능이라면 분명 가능성은 있었다.
‘…되겠네.’
기묘한 울림이 느껴진다. 왜인지 모르게 가능할 것이라는 대답을 들은 기분이다.
이것이 최선의 사용 방법인지에 대한 고민이 떠오른다.
‘어차피 벽을 넘은 인간은 최대한 많이 필요해.’
상대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다. 절반이 2등위 나머지 절반이 3등위인 일백의 친위대와 그들의 힘을 늘려줄 지배자는 한때 그들의 고향인 둥지에서 왕의 자리를 다투던 진짜배기 왕자였다.
초기에야 각개 격파가 가능하더라도 뒤로 간다면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만큼 이쪽의 전력은 언제나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이미 나는 3등위 전사 거인의 수준에 올랐다. 기초는 체득한 상태. 그 다음 단계는 알지도 못한다. 지금 가진 것을 체화하는 것도 한세월인데 그다음을 대비해 남겨두기에는 저것의 가치가 너무 컸다.
아끼다가 쓰지도 못할 수 있었다.
사용하기로 결심하기 무섭게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내가 간섭력을 다루는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내가 해야만 한다.
내 감각을, 내 경험을 뽑아내는 일이다. 그런 만큼 내가 직접 하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았다.
‘서윤이 보다는… 내가 낫겠군.’
그녀의 재능은 너무 뛰어나다. 직업도 마검사로 길드 내에서 일치하는 이들은 없었으니까.
그에 비해 나는 그녀보다는 재능이 떨어지고 다양한 경험을 한 편이다. 여러 시스템의 보조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력을 직접 본다거나 그것을 이용해 상대의 기술을 분석한다거나 그것을 직접 몸에 적용하는 등의 경험들을 다양하게 한 편이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 쉽게 할 수 없는 경험들일 터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처음 벽을 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카바락의 감각을 느낀 기억이 있었다.
나는 즉시 간섭력을 활성화하며 한 가지 기능을 생각해 내었다.
내 경험과 감각을 전달해 줄 아티팩트. 최대한 많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어야만 했다.
동시에 내가 전달할 경험들을 선별했다.
가장 중요한 경험은 역시 카바락이 벽을 넘던 기억.
영향은 받겠지만 우선 벽만 넘으면 천천히 정립할 수 있을 터다.
거기에 더해 여러 상대와 싸웠던 경험이나 내 파티원들과 대련했던 것, 스스로의 기술을 정립하며 홀로 연구했던 기억이나 처음으로 2등위 거인과 싸워 기술을 익혀내었을 때, 3등위 거인과 싸우며 실마리를 얻었던 것, 그리고 3등위 거인의 기술을 익혀낸 순간까지.
필요한 경험들을 추려내고 나자 간섭력이 오히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3등위는… 힘들겠고.’
2등위까지는 아슬아슬하다. 다만 여기까지는 나도 나서윤도 어렵지 않게 도달했다.
거인들은 1등위에서 2등위로 가기가 그렇게 힘든 것에 반해 우리는 어렵지 않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예상은 간다.
종족의 차이. 거인에 비해 벽을 넘기도 힘들고 강해지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그랜드 마스터에 달한 이들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다.
게다가 우리는 시스템의 보정까지 있는 몸들.
솔직한 말로 시스템의 보정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을 수련해도 그랜드 마스터가 되지 못했을 거다.
우리가 2등위에 손쉽게 오른 것은 아마 그러한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뽑아낼 경험들을 정하자 곧바로 여신상들은 한 차례 더 강한 공명과 빛을 내뿜었다.
간섭력을 다루는 감각은 마치 공간을 다루는 감각과 유사했다.
분명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을 감각으로 다룬다는 것은 유사한 느낌이었다.
덕분인 것일까. 다행히 생각보다 손해가 심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세 개의 여신상이 빛을 잃었고, 하나는 아티팩트가 되었으며 본래 제단의 역할을 하던 여신상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단의 기능은 잃지 않았군.’
하지만 다른 여신상들처럼 간섭력은 소멸한 듯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곧바로 아티팩트가 되어버린 여신상을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푸른 여신상이었다.
[유신후의 경험이 담긴 여신상]
―그랜드 마스터 유신후의 과거 경험이 담겨 있다. 사용 시 그 당시의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사용 가능 횟수 : 3/3
과거 내가 했던 카바락의 감각을 체험하는 것보다 한 단계 발전해 당시의 감각뿐만이 아니라, 생각 또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도록 조정했다.
그 대가로 사용 가능 횟수가 3회로 줄어버리기는 했지만 안 그래도 넘기 힘든 벽이다. 다양하게 얕은 감각을 체험시키는 것보다는 보다 농밀한 경험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완성된 아티팩트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3회다.
‘한바다, 하유진, 그리고… 프레드.’
프레드 또한 1회차 시절 랭커였던 만큼 그 재능은 충분했다.
나는 즉시 이것을 들고는 한바다를 찾았다.
“후우.”
마침 그녀는 휴식 중이었다.
‘답답한 모양이군.’
그럴만했다.
그사이 내 접근을 알아챈 한바다가 몸을 돌렸다.
“신후 님?”
그녀는 내가 나타나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쉬는 중이셨군요.”
“아, 네…….”
한바다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당히 앞서가던 그녀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그녀와 같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실제로 싸운다면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인원은 사실 없다시피 했다. 스킬도, 그 숙련도도, 아이템마저도 그녀가 가장 우수했으며 같은 경지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재능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서 발군의 전투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한바다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장 오래 벽에 막힌 채로 그 벽을 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여신상을 내밀었다.
“이건…….”
“이전, 제가 벽을 넘었을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아…….”
그녀의 얼굴에 조금의 부러움이 스쳤다.
업적을 통한 그랜드 마스터의 감각 체험. 나는 그것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입장이라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체험이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그때의 그 체험보다 지금 이것의 가치가 수배는 높았다.
“그때의 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것보다는 더 좋겠지만요. 사용하신 후 유진이와 프레드에게 전해주십시오.”
“…네?”
내 말에 한바다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기 무섭게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이건… 이걸 어떻게?”
그간 벽을 넘은 나와 나서윤이 그것에 관한 정보를 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분명 당시의 경험을 어떻게든 말로 표현해 보려고 했지만 그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신상을 이용해 타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덕분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비록 주관적인 경험이기는 하나 분명 도움이 되는 것이 있을 겁니다. 확실히 벽을 넘으실 수 있다고 자신은 못 합니다만…….”
“아뇨, 아닙니다. 아니에요, 신후 님. 너무,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작은 실마리.
이것을 통해 벽을 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이 수십 배는 높아진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해대는 한바다에게 말했다.
“동료이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보답을 원하신다면 하루빨리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세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정말, 예전부터 변함이 없으시군요.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작은 희망에 한바다의 얼굴에 결의의 감정과 작은 미소가 떠오른다.
수련에 힘쓸 수 있도록 그녀를 뒤로한 채 나는 수련장 밖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나서윤과 마주쳤다.
“…오빠? 오빠가 왜 거기서…….”
“아, 한바다 씨에게 줄 것이 있어서.”
“언니에게?”
“수련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얻어서. 너는 무슨 일인데?”
“나는 언니가 도와달라고 해서…….”
아무래도 벽에 막히자 답답한 마음에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오늘은 가지 않아도 될 거야.”
여신상을 사용하기도 바쁠 터다.
“그래?”
나서윤의 눈이 빛난다. 마치 잘 되었다는 표정.
“혹시 바빠?”
“아니. 급한 일은 없다만.”
할 일을 만들자면 얼마든지 있었지만 급할 정도의 일은 없었다.
“그러면 시간 좀 내줘, 오빠.”
기대하는 듯한 표정의 나서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서윤의 부탁이다.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