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히든 피스
상층의 가장 큰 거대 세력 두 개를 누른 대가로 우리는 막대한 포인트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평균 레벨이 하나 오를 정도였으며 나 같은 경우에 아예 3등위 거인의 힘을 손에 넣어 버렸다.
나서윤 또한 벽을 넘어섰으며 대 거인용 스킬마저 각성했다.
눈치를 볼 세력 두 개를 모조리 소탕했다.
더는 상층에서 우리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없어져 버렸다.
남은 잔당들 또한 무서운 수준은 되지 못했다.
저들을 따르던 세력들 또한 모조리 죽어버린 이상 우리를 막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죽여버린 지리얼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흡혈검이 죽어버린 지리얼의 시체서 피를 흡수하고 있었다.
흡수를 끝낸 흡혈검이 보여준 퍼센티지는 거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남은 잔당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면 곧 채워질 숫자.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세력을 잃고 홀로 남아버린 커니더를 사로잡았다.
‘무엇이라 설명한다…….’
커니더는 뒤늦게 도망치려는 시도를 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서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뒤에서 기다리던 이들 또한 있었기에 손쉽게 산 채로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
거인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낼 것을 미리 주문한다. 아마 일이 끝난 마법사들에게 전해줄 터였다. 특히 둥지 쪽에 있었던 시절의 정보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낼 것은 따로 언질해 두었다.
커니더의 도시였던 곳으로 향했을 때 보이는 것은 엉망이 되어버린 전장뿐이었다. 도시였던 흔적은커녕 변해더린 지형과 간간이 보이는 거인들의 시체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서윤 또한 멀쩡한 몸으로 돌아왔다. 쫓았던 거인들은 전원 사망한 상태였다.
“미안 오빠. 사로는 잡았는데… 자결했어.”
“다친 데는?”
“…없어. 길드원들도 죽은 사람은 없어.”
“그거면 충분해. 고생했다.”
정말 그것으로 충분했기에 내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 사실을 눈치챈 나서윤이 쑥스러워 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오빠.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아무래도 티가 난 모양이다.
나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허공이 일그러지는 모습에 나서윤의 얼굴에 경탄의 기색이 스쳤다.
“그거 익혔네?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3등위 거인들이 사용했던 기술을 일부나마 재현하자 다른 길드원들과 일행들이 감탄한다.
나를 따라왔던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감탄의 기색을 숨기지는 못했다.
길드원들이 전원 벽에 닿은 만큼 내가 이룩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
“오빠, 오빠. 그거 어떻게…….”
나는 호들갑을 떨어대는 나서윤을 막고는 우선 전장 정리를 할 것을 명령했다.
“나중에 알려줄 게. 시간은 많아. 일단은 정비부터 하자.”
“응. 꼭 알려줘야 해?”
당연하다. 모든 정보는 공유할 생각이었다. 길드원들은 더 강해져야만 한다.
전장 정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이전처럼 완전한 흔적을 지우고 정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사정이 달라졌다. 더는 상층에서 우리를 위협할 세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다음 행동은 무척이나 당당했다. 감출 이유가 없었다.
커니더의 영역을 초토화 시킨 이후 마치 클라이디스 놈들이 했던 것처럼 그들의 영역을 당당하게 활보했다.
이후 클라이디스의 도시 자체를 소멸시켰고 그 과정에서 저들의 산하였던 도시 두 개마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그렇게 되자 가장 신이 난 것은 드로퀴노 제국의 후손들이었다.
거인을 제외한 자신들의 종족 중 하나가 상층에서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숙적인 거인들이 별거 아닌 존재로 전락했다.
그들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중얼거리는 반란군 소속의 병사.
그 기분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줄 구원자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스스로 직접 일어나야만 했다.
제국의 부활을 선포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반란군들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거인들의 도시를 하나씩 지워가기 시작했다.
산하였던, 하지만 배신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았던 도시들이 가장 먼저 표적이 되었다.
산하가 될 수준인데다 중앙에 속한 이들이다. 뭉치더라도 이제는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미리 정리해 놓는 것이 이로웠다.
그렇게 하나둘 상층의 일이 끝나갈 때 나는 전쟁의 원인이었던 여신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퀘스트를 통해서 나갈 수 있었으니까. 다만 호기심일 뿐이었다.
여신상에는 은은한 신성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여신상이었군.”
우습게도 이 여신상들은 외곽 지역에서 발견한 여신상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었다. 퀘스트를 주고, 신전의 역할을 하는 기능.
즉, 마지막 여신상은 그 감옥의 여신상이라는 이야기다.
저들이 그렇게 찾아대었는데도 의외의 장소에 방치되어 있었다.
한 번 그곳에 들를까 생각하는 사이에 나서윤이 나를 찾아왔다.
이미 공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알려준 만큼 그녀의 용건은 그것이 아니었다.
“정보들 다 뽑았어, 오빠. 근데 생각보다 별거는 없었어.”
나는 그래도 알아낸 것들이 있다면 모두 말해달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둥지와 거인에 대한 정보들이 하나씩 쏟아진다.
커니더는 정신 마법에 제대로 지배되었는지 여러 정보들을 뱉었고, 현재 거인들의 다음 왕이 되기 위해 왕자들이 현재 여러 파벌로 나뉘어 전쟁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공을 세우기 위해 여러 차원을 침략 중이라고.
“커니더가 소속되어있던 파벌이 오데르라는 왕자의 파벌인데, 그놈은 파벌 싸움에 밀려서 그대로 영토 확장이라는 명목하에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고 하더라. 휘하에 남은 세력이라고는 친위대 100이 전부래.”
마침내 내가 원하던 정보 또한 튀어나왔다.
“…그 친위대의 수준은?”
“절반이 2등위 끝자락이고 나머지 절반은 3등위라고 하던데?”
3등위가 절반 나머지 반은 2등위. 그것도 끝자락.
어마어마한 전력이다.
이 곳에서 가장 강하다는 세력 둘이 가진 3등위 거인이라고는 둘이 합쳐 총 11개체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오데르라는 놈은 파벌 싸움에 져서 쫓겨나는 주제에 휘하에 3등위 거인만 50이라는 얘기다.
‘역시 힘들군.’
“그런데 오빠.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지구로 가는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쉽게도 그건 아냐.”
내 부정에 나서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여기가 끝이 아냐?”
“그래. 우리는 이곳의 청소가 끝나면 바로 다른 상층으로 이동해서 마족들을 상대할 거야.”
“마족? 마족은 왜?”
“다들 레벨 100은 달성시킬 예정이고, 또 지구를 가기 전에 들를 세계가 있거든.”
“다른 세계? 다른 세계는 왜…….”
“내가 이중 계약 스킬을 가진 것은 알지?”
“응. 그래서 오빠가 그런 외모가 된 거잖아. 환골탈태의 영향도 분명 있겠지만…….”
나는 슬그머니 내 외향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확실히 나서윤 또한 환골탈태를 걸치며 외모가 상향되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나처럼 극적이지는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직업과 열세 번째 꽃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직업을 준 여신의 세계를 한 번 구하러 갈 예정이야.”
“…그건 왜?”
“그 세계의 신과 우리 세계의 신이 동맹을 맺었거든.”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아는 정보의 일부를 풀었다.
내가 회귀를 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보는 천천히, 자연스럽게 풀 생각이었다.
나는 끝까지 내가 회귀를 했다는 사실을 숨길 예정이었다.
상층에 도착한 이상 이전처럼 미래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이들에게 알릴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되어 가족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할 생각은 없었다.
탑을 나가면 길드원들이 플로어 마스터를 만날 일도 없을 터. 영원히 비밀로 할 수 있을 터였다.
“그쪽 세계를 침공한 것은 마왕이라고 하더라. 우리가 그 마왕의 처리를 도와주면 저쪽 세계의 전력이 우리 세계의 거인을 처리하는 것에 도움을 줄 거야.”
“…그래?”
나서윤의 눈에 나쁘지 않다는 표정이 자리했다. 지구의 상태는 모른다. 쳐들어온 거인의 수 또한 모른다. 적어도 수십이라는 정보 정도. 그런 만큼 전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저쪽 세계에도 전력은 있었고, 그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상층에서 상대해 본 거인들의 수준이 높았고 지구의 거인들 크기를 봤을 때 그 힘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항상 크기와 능력이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경험으로 깨달았지만 대체적으로는 맞아떨어졌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 안 거야?”
“생각보다 얼마 안 되었어. 상층에 오고 나서 연락을 받았으니까.”
거짓말이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내 말에 나서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계의 신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구나. 시간도 멈추고, 동맹도 구하고. 우리를 여기에 처박은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건 딱히 가이아의 탓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아는 척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적당히 넘기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 놓을게. 지금 다들 과하게 긴장하는 기색들이거든.”
확실히 상층에서 체험한 거인들은 만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다음이 지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긴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죽으면 끝이며 동시에 실패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곳이니까.
슬슬 알 필요가 있기는 했기에 나는 가볍게 허락을 표했고, 나서윤은 길드원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이후 상층은 가볍게 정리가 되어갔고 동시에 반란군들은 제국 부활의 첫걸음을 순조롭게 내디뎠다. 지금 당장은 조금 큰 도시 규모지만 노예들이 하나둘 해방됨에 따라 제국은 순조롭게 확장해 나갈 수 있을 터였다. 당장은 경쟁 상대도 없는 마당이었으니까. 새롭게 재건된 제국의 역사 첫 페이지에는 나와 길드원들의 이름이 수록될 예정이라고.
길드원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장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로 인해 다음 상대가 잠시지만 마족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무섭게 길드원들은 드높은 포인트를 이용해 정보 및 일부 아이템들을 구했고 동시에 도시들을 꾸준히 습격하며 외곽의 도시를 제외한 거인들의 도시 전부를 무너뜨리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습격에는 나를 비롯한 파티원들 또한 참가했지만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길드원들의 수준은 나의 개입 없이도 손쉽게 도시들을 정리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외곽 일부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리품으로 얻은 네 개의 여신상을 들고는 우리가 처음 도착했던 감옥으로 향했다.
미궁 조각과 연결된 게이트를 이용하자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연결된 지역에 발을 디디기 무섭게 시스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히든 피스를 발견하셨습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