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운석 소환 마법.
적아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범위를 초토화 시키는 운석을 소환한다.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운석 하나가 소환된다.
하지만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지는 않았다.
실제로 저 정도 크기의 돌덩이가 제대로 속도를 가진 채 떨어진다면 이 일대가 파괴되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마법의 형태로 거대한 돌덩이가 소환되며 제법 빠른 속도로 바닥에 충돌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엄청난 물리력과 돌을 감싸는 거대한 불덩이는 그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동시에 지형을 변형시킨다.
대지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볼케이노의 영역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거인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그들의 표정에 허탈함이 자리했다.
“무슨 마법이…….”
그들에게 있어서 마법은 별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을 죽여대는 것은 마법이었다.
볼케이노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하게 된 지리얼과 게니치. 그 둘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막아라! 저걸 막아!”
변질된 마력. 그것으로 소환된 운석. 충돌하는 즉시 거인 대부분이 죽어나갈 터였다.
나는 슬쩍 커니더를 바라보았다.
범위가 아슬아슬하다. 필요할 경우 개입해 목숨은 살릴 생각이었다.
확실히 내 말 때문인지 나서윤이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드높은 상공에서, 미티어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낙하.
조금씩 속도가 붙는다.
3등위 거인들의 공간 마법이 돌덩이를 깎아낸다. 그럼에도 다 없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커니더와 클라이디스가 막아내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었고, 지리얼과 게니치는 그런 둘의 명령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두 거인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는 곧바로 엄청난 파괴음이 하늘로부터 울려 퍼졌다.
꽈르릉. 콰지직.
거대한 돌덩이가 천천히 부서진다.
내부에서부터 공간을 갈아버린 듯했다.
떨어지는 돌덩이는 스스로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수백 수천 개의 파편으로 쪼개져 버렸다.
그 파편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다.
초 고도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저 정도 파편들에 맞고 거인들이 죽지는 않는다.
위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위험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서윤의 전설 죽이기. 그 위력이 이곳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운석 파편조각들에는 아직까지 불꽃이 남아 있었고, 그 불꽃들은 거인의 몸에 달라붙는 즉시 몸 자체를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
지저 밑바닥에서 올라온 듯한 비명이 사방팔방에서 울린다.
이미 볼케이노로 인해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일어난 상황에 미티어의 파편은 치명타였다. 게다가 마법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과거와 다르다. 성장한 마법사들은 합동 마법을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력이 조금은 떨어지겠지만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
곧바로 아멜리아와 이연솔의 다음 최상급 마법이 작렬한다.
“토네이도(tornado).”
강력한 마법은 맞으나 그 위력이 화염 계통에 비하면 분명 떨어지는 마법. 하지만 지금 바닥에는 볼케이노의 흔적들이 수도 없이 깔려있었다.
최상급 마법의 연쇄작용. 단숨에 새빨간 토네이도가 전장을 휩쓴다.
내가 한 세력을 몰살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이유였다.
단숨에 남은 잔당들이 불타오른다.
적들은 마법의 연쇄에 넋을 놓아버렸다.
몇몇 3등위 거인들이 날뛰며 우리를 노려왔지만 수많은 부상을 입은 몸으로는 우리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마수들의 벽과 그들을 이용하는 길드원들, 거기에 더해 직속 파티원들과 벽을 넘은 나와 나서윤까지.
공간을 다루는 3등위 거인들은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거인들 간의 전투와 최상급 마법들, 거기에 더해 미티어를 막기 위해 마력의 대부분을 사용한 그들은 우리를 뚫어낼 수 없었다.
고작 마수 몇을 죽이는 것이 그들 최고의 성과였으면 우리들 손에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저 멀리, 운석을 막으며 지칠 대로 지친 두 거인, 지리얼과 게니치가 각기 자신들의 지배자이자 우두머리인 커니더와 클라이디스를 구출한다.
나는 나서윤에게 길드원들을 이끌고 클라이디스를 죽일 것을 명령했다.
저 상태라면 나서윤의 필승이다.
“알겠어요, 오빠. 꼭 처리하고 올게요.”
“부탁한다.”
나 또한 하유진과 남은주, 거기에 더해 길드원 한 무리를 이끌고는 커니더를 추적했다.
전장의 정리는 마법사들과 주하연에게 맡긴 상태였다.
지리얼은 멀리까지 도망치지 못했다.
몸 상태가 최악이기도 했고 그들의 도시는 이곳이다. 그들이 몸을 의탁할 곳은 없었다.
이곳을 수습해야 하는 만큼 멀리 갈 수가 없기도 했다.
내가 자신들을 추적하자 지리얼은 머지않아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리를 처리하고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훙.
머리 위를 지나가는 무기의 감각.
지리얼은 특이하게도 몽둥이가 아닌 검을 사용했다.
미세한 컨트롤.
딱 인간인 내 머리만을 노린 공격이었다.
내가 가볍게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자 지리얼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 저 몸뚱이로 얼마나 공간 계열 공격을 할 수 있을까.
“…너희들인가. 우리를 끝까지 방해한 놈들이.”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 우리들이지.”
“심상치 않은 놈들이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설마 인간들이라니…….”
처음이었다. 소인이 아닌 인간이라고 부르는 거인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순순히 대답해줄 성 싶은가.”
“그렇다면 뭐, 붙잡아서 알아내면 되지.”
“무엇이냐. 특별히 들어는 봐 주마.”
‘시간이 필요한가 보군.’
마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심산인 모양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오데르. 그에 관해서 알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말이지.”
“…네놈. 그분의 이름을…….”
오데르 뿐만이 아니다. 커니더 또한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닌가 보네.’
단순히 그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고작 소인이 자신들이 모시는 자의 이름을 함부로 내뱉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 표정만 봐도 순순히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뭐, 대답하기 싫으면 버텨 봐. 결국 입을 열게 되겠지만.”
붙잡은 뒤라면 정신 마법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지리얼을 붙잡는 것은 어렵겠지만 무력이 없다시피 한 커니더라면 붙잡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도망치지 못하게 견제하고 내가 위험하지 않으면 되도록 끼어들지는 마.”
“네, 형.”
“그럴게요, 신후 오빠.”
둘을 비롯해 이끌고 온 길드원들은 어디까지나 보험이다.
저 상태의 지리얼이라면 내가 홀로 상대해봄 직했다.
나는 즉시 무형 강기의 크기를 키우며 혈신의 갑옷과 에고 웨폰을 꺼내 들었다.
“보통 놈은 아니군.”
으득.
지리얼이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가볍게 공격을 피해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연속적인 공간 베기가 허공 이곳저곳에 생겨난다.
딱 나 하나를 끊어낼 크기.
섬세한 컨트롤이었다.
그런 공격들을 유유히 피해낸다. 확실히 게니치와 싸울 때보다 그 속도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곧바로 거대한 강기의 검을 휘둘렀다.
“해…….”
지리얼의 대응은 신속했고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그는 검을 들어 막지 않았다.
뎅겅.
내 강기 자체를 중간에서 베어버렸다.
한 순간 공간을 어긋나게 만든 것.
어처구니가 없었다. 보이기는 했지만 반응이 조금 늦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확실히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저 강기는 내 것. 나는 즉시 강기를 폭발시켰다.
콰콰쾅!
단숨에 수천 개의 강기 파편이 사방으로 쏟아진다.
지리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전신에서 강기를 뽑아내 내 공격을 막아낸다.
없는 마력의 낭비.
나는 쾌재를 부르며 강기 다발을 연속적으로 쏘아 내었다.
동시에 몇몇 개는 허공에서 폭발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콰콰콰쾅!
이제껏 잘 해오지 않았던 중거리 전투.
그러는 와중에도 빈틈을 노리는 공간의 참격이 나를 향한다.
“네놈, 어떻게 그것을 전부 읽어내는 것이지? 네놈의 수준으로 가능한 것이 아닐 텐데?”
상대의 의문에 짧게 대답했다.
“보이니까.”
동시에 느껴지니까.
상대의 공격이, 공간의 변화가 확실하게 인지된다.
내 영역을 침범하여 단숨에 나를 베어내는 공격들.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인지는 할 수 있었다.
상대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진다.
“살려둬서는 안 되는 놈이로군.”
“할 수 있다면.”
내가 보인다는 말을 하기 무섭게 상대의 움직임이 조금 움츠러들며 동시에 상대의 주변을 향한 지배력이 한층 더 강해졌다.
나는 즉시 상대가 무엇을 경계하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3등위 전사들이 싸울 때 보였던 모습.
그는 내가 공간을 넘어 공격을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보인다고 하기 무섭게 저런 반응이라면 가능해야 할 텐데… 어떻게 된 것이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진다. 상대의 반격은 내게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지켜야 할 것도 있는 그는 효과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다. 빈틈을 노려보지만 너무 공격이 뻔한 상태였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승기를 잡아가는 것은 나였다. 그는 단번에 상황을 뒤집을 카드가 있었지만 내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무리를 해대며 내게 달려들었지만 나는 여유롭게 받아쳐 버렸다.
내 신체능력이 자신 못지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상대의 표정에는 경악이 어려 있었다.
나는 전투를 지속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자세히 살폈다. 마력의 움직임, 공간의 떨림, 생성된 틈이나 변형된 공간의 모습 등을 관찰했다.
내 성장은 언제나 전투와 함께였고 나의 적은 늘 나의 스승이었다.
그간의 경험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나는 천천히 어떻게 저런 공격들이 이루어지며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알아가고 있었다.
2등위 거인들의 주변의 마력을 지배해 일종의 영역을 생성하는 것은 이것을 위한 발판이었다.
내가 인지하고 지배한 영역이 필요했고, 공간을 인식하는 감각을 갖춰야 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공간에 간섭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했다.
인식을 하는 것과 간섭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마력에 간섭하는 것과 공간에 간섭하는 것의 난이도는 천지차이였다.
사용되는 마력의 양부터 시작해서 집중, 사용할 방식과 상대의 영역 일부를 무력화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면서 어째서 지리얼과 게니치가 방어 대신 서로를 공격하는 것에 정신을 쏟았는지 알 수 있었다. 공격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쉬웠다.
넓은 영역 중 상대가 공격해 오는 것에 맞춰 빠르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감지하고 회피한 이후 상대를 공격해버리는 것이 더욱 빠르고 편했다.
그렇게 상대가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질 무렵이 되었을 때 드디어 나는 처음으로 공간을 어긋나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어렵군.”
지리얼이 하는 것마냥 공간을 넘어 검이나 참격을 집어넣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고작 일부를 어긋나게 하거나 일그러뜨리는 것. 그게 한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깨뜨리듯 충격을 주거나 직접 베어내지는 못해도 간접적인 공격은 충분히 가능했고 이것은 마법 저항력과는 무관하기에 상대에게 충분한 공격이 되어주었다.
지리얼은 내가 자신을 상대로 기술을 연습한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상태였지만,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뒤에 있는 커니더를 위해서라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고, 나와 끝까지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익히기는 했지만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상대가 지리얼일 필요는 없었다.
“쉬게 해 주지.”
지리얼의 표정은 치욕에 물들어 있었다.
그가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보았을까. 인질을 잡힌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고작 수련 상대이자 나아갈 발판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