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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70화 (270/317)

270화

오데르의 이름을 알고 있기는 했다. 가이아도 말했었고, 내가 지구에서 죽기 직전, 단 한 번 덤벼들었던 거인이 칭송하며 외쳤던 이름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잊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거인 개개인의 이름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핵심 정보도 아니고 지구 소속인 내 입장에서는 그들은 침략자이며 죽여야 할 적에 불과했다.

그런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다.

‘동명이인… 인가?’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저놈이 말한 오데르와 지구를 침공한 놈이 같은 놈이라면 지구를 침략한 이들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알 수 있다는 거다.

가이아를 통해 받은 정보들은 어디까지나 지구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이다.

지구는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멸망한 만큼 알 수 있는 정보는 무척이나 제한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녀가 관리자인 덕분에 알 수 있었던 것들이 있어서 거인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는 알 수 있었지만, 그게 한계다.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역시 클라이디스가 유리하네.”

나서윤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3등위나 2등위의 수는 같았다. 하지만 1등위 전사들의 차이가 심했다. 10개체 이상이 차이 나고 있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같은 등위라고는 하지만 그 수준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전체적으로 클라이디스 쪽의 거인들이 더 전투에 능했으며 더더욱 강했다.

내가 개입하기 이전 3등위는 커니더 쪽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 균형을 맞춰주는 것은 저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커니더의 도시 이곳저곳이 빠르게 붕괴되고 일대의 지형이 완전히 무너진다.

여러 거인들의 비명과 고함, 흙먼지와 피,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의 마력이 끔찍할 정도의 비명을 질러대었다.

전사 계급이 수백이다.

즉, 수준이 낮아도 그랜드 마스터에 달한 이들이 수백이나 뭉쳐서 싸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2등위가 아닌 1등위만 되어도 어느 정도는 주변의 마력을 통제한다.

게다가 한 개체마다 갖고 있는 마력 또한 보통이 아니다.

시스템의 수치로 따지면 최소가 99에서 100이다.

게다가 전사 계급뿐만이 아니다. 이대로 패배한다면 커니더 쪽은 뒤가 없었다. 그런 만큼 시민 계급들 또한 나서서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투는 전사 계급이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우리야 도시 자체를 지워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주 싸워왔지만.

지형이 변하고 대기가 찢어진다.

그러는 와중에도 전장 중간중간 거인들이 차마 개입하지 못하는 공간들이 있었다.

2등위와 3등위 거인들이 맞붙는 공간이었다.

대기가 일그러지고 허공이 찢어진다.

내가 처음 싸웠던 3등위 거인, 두사사. 그 또한 3등위 거인이기는 했으나 공간을 다루는 기술은 상당히 미숙했었다.

그러나 저들은 아니었다. 그 못지않게 미숙한 이들도 보였다. 하지만 단둘. 단둘만은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찢어지고, 갈고, 튕기고, 피한다.

거대한 몸집이며 사방이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저 둘이 싸우는 곳만큼은 무척이나 고요한 것처럼 보였다.

움직임의 소리조차 거의 없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인다. 서로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허공에 무기를 휘두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곳에서 무기가 튀어나오고 공간 자체가 찢기고 갈라지며 상대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몸 자체가 공간을 지나다니지는 않았다. 방어조차 없었다. 정확히는 방어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공격이 겹치는 순간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어버린다.

그 위력이 심상치 않아 근처에만 있어도 전신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범위 자체는 넓지 않아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기는 했지만. 상당히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모양새였다.

우습게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더 빠르게 움직임에도 마치 허상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나와 나서윤의 시선은 그런 이들에게 집중되었다.

“…오빠, 저 둘이 그들이지? 지리얼과 게니치.”

“그래. 그런 것 같다.”

지리얼은 커니더 쪽의, 게니치는 그라이디스 쪽의 최강자라고 알고 있었다.

저 둘의 수준은 확실히 높았다.

다른 3등위 거인들이 싸우는 모습 또한 상식을 벗어났으나 저 둘은 특별했다.

저 둘은 항시 공간을 이용한 공격들을 쏟아내는 데 반해 다른 3등위 거인들은 저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격이 다르다. 그 말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방어조차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이쪽의 마법 병단의 합동 마법이 아니라면 쓰러뜨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조차 단신으로 저들을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다.

‘전조는 보이는군.’

심지어 반응조차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습게도 보이는데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나서윤 또한 전조 자체는 보이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너라면 어떨 것 같아? 이길 수 있겠어?”

“…가능할 것 같기도 해. 확실하지는 않은데…….”

나서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상대로였다.

그녀가 나보다 강하기에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상성의 문제였다.

나서윤이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며 해방된 스킬.

‘전설 죽이기.’

이제껏 봉인되어 있었던 그 스킬이 베일을 벗어 던졌다.

나서윤이 2등위 수준임에도 두사사의 영역을 침범하고 그 영역을 잡아먹으며 거기서부터 마법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낼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스킬의 효과는 간단했다.

최상위 종족을 상대로 할 때, 버프를 얻는다.

단순히 버프라고 표현했으나 그 안에는 온갖 보정이 다 들어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더 자세히 읽을 수 있고, 마력 및 신체 능력이 극도로 강화되며 동시에 마력의 형질부터가 달라진다.

현재 나서윤의 신체 능력은 마력을 제외한 전 능력치 100에 마력은 표시 불가 상태다.

이 정도 능력치라면 주하연의 버프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시피 하다. 더더욱 나서윤은 오라를 사용해 신체 능력을 스스로 활성화 시킬 수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 전설 죽이기의 버프는 그대로 적용된다.

그 뒤바뀐 마력의 형질은 최상위 종족의 마력을 말 그대로 갉아먹으며, 상대의 마법 저항을 그대로 뚫어버린다. 완전한 카운터인 셈. 거인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현재 나서윤이 나보다 나았다.

그래도, 그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조금만 더 알면 될 것 같은데…….’

3등위로의 벽. 공간을 이용한 왜곡이나 파괴, 틈새를 만드는 전조들이 전부 보인다.

대충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알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당장 안 되니 문제지만.’

그사이 전투는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여져만 갔고,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다른 이들의 모든 전투가 한쪽으로 기울여져갈 때까지도 둘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승패는 개인의 기량이 아닌 전체적인 세력전의 결과로 갈릴 듯했다.

그대로 계속 전투가 이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둘의 공방은 그만큼이나 치열했다. 커니더 측의 2등위 거인들이 패배하고, 시민 계급의 거인들이 학살당하고, 전투에 끼어든 2위 거인들 때문에 3등위 거인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느리면서도 빠르게 진행된 전쟁의 결과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쪽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커니더가 죽을 판이었다.

‘그건 안 되지.’

“서윤아.”

“응.”

“출전이다.”

“벌써?”

“커니더는 살려야 해. 개인적으로 그에게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거든.”

“응. 바로 준비할게.”

나서윤은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그녀는 빠르게 움직였고, 길드원들이 하나둘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들킬 염려는 없었다.

두 세력이 전투를 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전투가 일어난 상황이었고 두 세력의 끔찍할 정도의 대규모 전투 덕분에 우리의 기운은 자연스럽게 가려졌다.

그렇게 길드원들이 도착했고, 즉시 진형을 잡기 시작했다.

“마법을.”

“네, 길드장 님.”

“응.”

“알겠습니다.”

아멜리아와 나서윤, 이연솔.

셋이 동시에 마법을 준비한다.

동시에 엄청난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화속 전투. 그것에 가까운 거인들의 전쟁이다. 전투 중에 우리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야 했다.

하지만 내 마법 병단의 합동 마법은 그런 신화 속 전투 가운데에서도 눈에 띌 정도였다.

몇몇 거인들, 특히 3등위 거인들을 중심으로 우리들을 목격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노예나 다름없는 인간들이 갑작스레 전장에 출현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의아해 하는 얼굴들이 눈에 띈다.

몇몇 거인들이 커니더 쪽 거인들을 도발하는 것이 보였다.

노예들까지 끌어들였냐고.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들도 알 터다. 이만한 마력의 움직임을 단순한 노예들이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순순히 노예가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그들은 우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서로 눈앞의 상대가 있었다.

유리한 쪽인 클라이디스 세력에서도 우리를 견제할 방법은 없었다.

전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 승리한 이들은 다른 쪽 전장에 개입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마법이 완성되기까지 그들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몇몇 거인들이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왔지만, 내 손에서 정리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셋의 마법이 차례대로 완성된다.

마법은, 전부 같은 종류였다.

“볼케이노.”

나서윤을 시작으로 아멜리아, 이연솔의 마법이 차례로 시전된다.

콰르릉.

대지가 흔들린다.

도시하나를 지워버렸던 마법이 무너져가는 커니더의 도시 아래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른 곳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전장 이곳저곳에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한다.

콰콰쾅!

대규모 마법이 일어난다.

“뭐야, 이게 무엇이냔 말이야!”

“드래곤? 드래곤이 이 차원에 나타났다는 말인가!”

“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에 거인들의 비명이 사방을 울린다.

자신들의 마법 저항이 종잇장마냥 찢어지고 전신을 불태운다.

적아의 구별도 없이 죽어가는 거인들.

대부분은 그 사이에서 전투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3등위 일부는 이것마저도 기회라 여겼는지 기습적으로 몇몇을 살해하기는 했으나 그게 다였다.

그들이라고 마법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신에 제법 큰 피해를 입어버렸고 더이상 전투를 지속할 힘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넘어버린 나서윤.

그녀는 현재 그녀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준비했다.

합동 마법은 아니었다. 아쉽게도 현재 그녀가 사용하려는 마법의 하위 마법은 없었고, 때문에 혼자서 마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규모를 증폭시키지 않더라도, 이 마법은 끔찍할 정도로 위험했으니까.

거인들의 전장이 무너지고 아비규환이 이어지고 있을 때, 나서윤의 새로운 마법이 사용되었다.

“미티어(meteor).”

운석 소환 마법.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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