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68화 (268/317)

268화

개입

나서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달라질 것은 예상한 바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 또한 막 그랜드 마스터에 달했을 때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서윤은 그 이상이었다.

“서윤… 아?”

나연이 어색한 눈으로 나서윤을 바라보았다.

나서윤은 겉모습부터가 약간 변해 있었다.

신체의 균형이 더 깔끔하게 변했고 키도 약간 큰 상태였다. 나 때처럼 엄청나게 변한 것은 아니지만 외모 또한 이전보다 아름다워져 있었다. 저 수준쯤 되면 외모는 이미 취향의 영역에 가까워지기에 크게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나서윤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저건…….”

“흐음…….”

주하연고 한바다가 특이하다는 듯이 나서윤을 바라본다.

나연의 반응이 이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둘 뿐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내왔던 모든 파티원들이 나서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후 오빠가… 막 벽을 깼을 때보다… 오히려 강한 것 같은데…….”

남은주의 중얼거림에 모든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다.

“이런 경우는 또…….”

주하연이 나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다들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다. 벽을 깬 것을 축하한다. 단순히 벽 하나를 넘은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유진이 너도 고생했다. 고맙다.”

“아 티 많이나?”

“별말씀을요, 형.”

둘이 각각 대답한다.

나서윤이 미궁 내부에서 뒤늦은 환골탈태를 마치고 신체를 재조정하는 동안 곁을 지킨 것은 하유진이었다.

뒤늦게 우리들이 참여했다가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까 봐 처음 부터 곁에 있었던 하유진이 나서윤의 곁을 계속해서 지킨 것이다.

“너나 나나 이제는 같은 수준이니까. 나나 유진이처럼 힘을 잘 숨기는 것도 아니고.”

남은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기운 자체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티가 난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서윤은 현재 1등위 거인이 아닌 2등위 거인과 비슷한 수준이다. 주변의 마력을 장악하는 능력은… 솔직한 말로 나 못지않았다. 나서윤의 주변 마력을 보고는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긴가민가하게 생각하는 다른 일행들과는 다르게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랜드 마스터에 머문 시간이라던가 그간 해 온 경험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거인들도 대부분이 1등위에 머문다. 막 벽을 넘은 나서윤이 2등위 거인 수준의 힘을 보인다는 것을 안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지 않을까. 그들 입장에서는 나나 나서윤이나 다를 바가 없겠지만.

“헤헤. 들켰네.”

숨길 일도 아니기는 하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나서윤의 표정이 가볍게 풀어진다.

아무래도 질투라도 할까 봐 조금 걱정한 모양이었다.

“마법 안 써도 2등위 거인은 잡겠네.”

내 말에 일행들의 얼굴에 뒤늦은, 소리 없는 경악이 깃든다.

내가 막 벽을 넘었을 때보다 강하다는 것은 대강 눈치챘지만, 그 수준이 저렇게 차이가 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뒤늦은 축하가 나서윤에게 쏟아진다. 나서윤은 평온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받았다.

‘마법 때문인가?’

단순히 그녀의 재능 덕분일 수도 있었다.

“어떻게 벽을 넘었지?”

한바다가 진지한 얼굴로 나서윤에게 묻는다.

그녀 또한 끝에 다다랐다. 그것은 하유진도 마찬가지다.

“3등위 놈의 공간을 뒤트는 공격을 당했을 때, 깨달음이 있었어요. 제대로 된 공간에 대해서 봤다고 할까… 마침 마법 쪽에서도 그쪽에 관해 추가적으로 공부도 하던 중이었어서…….”

최상급 마법 중에서는 원소 마법 말고도 여러 종류의 마법들이 있었다. 물론 최상급 마법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마법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신 마법과 같이 공간 마법 또한 그 수준이 높고 난이도 또한 있어서 최상급은 되어야 제대로 다루기 시작한다고 알고 있었다.

마침 나서윤은 그쪽으로 파고들어 가던 차에 3등위 거인의 높은 수준의, 하지만 분석하기 쉽도록 발현되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무영창도 그렇고…….’

주변의 마력 지배를 강탈해 허공에서 마법 자체를 생성, 거인인 상대의 마법 저항을 뚫어버리며 타격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기는 했다.

“마법…….”

한바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러난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실마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전사로서의 성장과 마법사로서의 성장. 그것을 동시에 이룩한 것이다. 그 빛나는 재능이 조금은 부러웠다.

질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나를 벗어날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강해진다면 내 부담이 덜어지며 동시에 무사히 상층을 지나 지구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일행들의 관심에 나서윤은 무형강기를 비롯해 여러 마법들을 보여주며 자신이 이룩한 것을 공유했다.

마법사들에게 또한 새롭게 깨달은 정보를 공유했고, 이연솔과 아멜리아는 그러한 정보가 가뭄의 단비와 같았던 모양이었다.

특히 아멜리아는 조금 분해하는 기색도 엿보였다. 그 이상의 존중도 있었지만.

나서윤이 깨어난 뒤였지만 거인들의 상황은 점점 악화될 뿐이었다.

평소와 같은 국지전. 하지만 천천히 그 상황이 잦아들기는커녕 어째 점점 규모가 커져가고 있었다.

그들이 상상 이상으로 부딪치는 상황에 반란군과 우리 쪽 인원들은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이게 이렇게 잘 풀리는 건가요?”

주하연이 기쁘면서도 조금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의 감정이 상상 이상으로 나빴던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반란군을 통해 그 이유를 최대한 알아내려고 움직였다.

그 이유를 알아낸 것은 전쟁이 이대로는 멈추기 힘들어진 상황이 되었을 때였다.

“알아왔습니다.”

“…….”

나는 말해보라는 듯 상대를 바라보았다.

필요하면 저들의 싸움을 붙여야 하는 것은 나다. 그런데 내가 원인을 제공했다고는 하지만 저들끼리 저렇게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다. 전혀 물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일전에 알아오라고 하셨던 것이 더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푸른 여신상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그게 연관이 있다고?”

“예. 그게…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물품이었습니다.”

뭐 하는 물품이냐는 내 물음에 상대가 대답했다.

“여신상은 하나가 아닙니다. 색깔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몇 개가 더 있었습니다. 그걸 모으면… 탑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탑 밖으로 나간다고?”

‘열쇠. 최초의 둥지.’

두사사가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그게 진짜라고?’

하기야 우리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들이 나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이 곳으로 온 놈들은 버려지고 추방된 이들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본 차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평생의 숙원이라고.

“상상 이상으로… 귀향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

조금은 동질감을 느껴 버렸다. 이유는 다르긴 하지만, 목표는 다르니까.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전쟁 상황은 어때?”

“…커니더가 계속 밀리는 상황입니다. 저쪽에서는 계속해서 여신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원이 돌아가지는 못하는 건가?”

“인원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서로가 본 차원에 있을 때부터 전혀 다른 파벌이었다고 합니다.”

그냥 돌아가면 다시 추방될까봐 이곳을 접수하고 본 차원에 식민지로 갖다 바쳐버릴 생각이라고.

그 공을 나누기가 불안한 만큼 독차지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확실히 이유는 알았다. 나는 손을 내저어 내게 정보를 알려준 반란군 소속 놈을 돌려보냈다.

일행들에게 정보를 내주고는 입을 연다.

“일단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유리한 것은 클라이디스다. 그 차이가 압도적이지는 않기에 무리는 하고 있지 못했다.

산하의 도시들이 붙게 만들고 조금씩 도와주며 상대를 압박하는 중이었다. 이대로 완전한 전면전이 일어나도록 유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위험해요.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이쪽이 완전히 드러날 수도 있어요.”

“집중 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주하연과 한바다가 우려를 표했다.

“오빠 말에 동의해. 또 소강상태로 들어가면… 답답해지니까. 지금이야 저쪽이 급하니 우리에게 관심이 없을 뿐, 분명 여유가 생기면 우리에 대해 알아볼 거야.”

3등위 전사. 그가 우리에게 죽었다.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주하연과 한바다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리스크가 분명 크기는 하다.

“…이대로 기다리다가 정체가 들켜서 집중적으로 공격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이 기간 동안 더 깊숙이 숨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상층을 벗어나는 것에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릴 터다.

지금, 기세를 탔을 때 움직여야 한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너무 오래 걸렸어.’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마스터에 들었고, 그랜드 마스터라는 거대한 벽을 향해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시스템의 보정이라는, 그 힘 덕분에 거기까지는 올라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벽 앞에서 그것을 넘을 수 있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기세가 꺾여서는 안 된다.

결국 조금씩이지만 개입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우리는 조금씩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전쟁의 겉 부분부터였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양쪽에 피해를 누적시키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는 선에서 소규모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마법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수들을 길들여 새롭게 만들어진 마수의 영역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거인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도망칠 경로를 막아버리고는 나와 나서윤 둘이서 거인들을 썰어버리고는 했다.

철저하게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구분한다.

할 수 있는 것만.

작은 피해일지 모르지만 이게 누적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목표는 전쟁의 확대.

철저하게 싸움을 붙이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깨어가지도록 느끼게 만들어 결코 전투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바빠진 것은 역시나 반란군이었다. 그쪽에 전적으로 정보를 의존하고 있는 이상 당연한 이야기였다.

물론 우리들도 정보를 안 빼내는 것은 아니었다.

기껏 익힌 정신 마법이 있었으니까.

만만한 곳, 들키지 않을 만한 곳, 따로 행동하는 곳에 관한, 최대한 정확한 정보만을 선택해 움직인다.

완전히 숨어버리는 것보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개입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빠르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계속해서 개입에 집중했다. 그러는 기간 동안에도 클라이디스 측은 자신들이 계속해서 유리해지는 모습에 물러날 생각을 보이지 않았고, 커니더 측은 자신들이 불리해짐에도 결코 여신상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작업을 다했을 때,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한 클라이디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