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혈신의 갑옷 내지는 혈신의 피갑옷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과거 그 아이템과는 분명 다른 아이템이다. 현재 아이템으로 등록이 된 것도 아니고 일종의 스킬의 부가 효과를 이용해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충분히 저 이름을 붙일만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이름값을 하고 있으니까.
특히 상층에 와서부터 제대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만큼 대부분이 거인의 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항마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이건 부가적인 효과다. 혈신의 갑옷이 가진 강한 기능은 그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약간의 핏덩이가 떨어지더니 즉시 에고 웨폰을 잠식한다.
두사사는 그것을 두고 보지는 않았다.
“낙뢰.”
단숨에 내리쳐지는 일격. 20m에 다다르는 거인의 휘두르기다. 어마어마한 압력이 나를 짓눌렀다.
일대의 마력 대부분을 상대가 지배하고 있었다.
확실히 나보다는 윗줄이다. 그러나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피로 둘러싸인 에고 웨폰이 정면으로 몽둥이를 막아선다.
꾸웅.
공기, 대지, 마력. 모든 것이 짓눌리며 일순간 소리마저 잡아먹는다.
쩌적.
단숨에 핏덩이들이 굳어가며 산산이 부서진다.
하지만 그뿐이다.
대부분의 공격을 완전히 흡수하고도 에고 웨폰은 멀쩡했고, 나 또한 약간의 충격을 받았지만 큰 피해가 온 것은 아니었다.
갑옷이 감싼 몸에서 약간의 통증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파고드는 느낌.
혈신의 갑옷과 완전히 연결됨과 동시에 시야가 붉게 물든다. 살해 본능이 이어지고 단숨에 허공을 베어 간다.
“용오름.”
내 지배하에 있는 마력이 상대의 영역을 침범한다.
허공이 갈가리 찢어진다. 그러나 이미 두사사는 그 장소에서 빠져나간 뒤였다.
“…네놈. 그건…….”
자신들의 기술을 인간인 내가 쓸 줄은 몰랐는지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놈의 지배하에 있던 마력 중 일부가 내게 귀속되었으며 동시에 혈신의 갑옷이 그러한 마력을 끊임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역겨운 갑옷이군.”
단숨에 피가 증식하며 다시금 에고 웨폰이 피에 감싸인다.
두사사의 판단은 빨랐다.
그는 즉시 외쳤다.
“전원, 저 마법사 놈들을 막아!”
두사사의 외침에 요새 내부에 있던 전사들이 당황한다.
이제껏 대부분의 거인들은 마법이 준비된다고 해도 긴장하며 대기할 뿐 도시를 버리거나 선제공격을 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었다.
가끔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극히 드문 전사들이나 병사들이 무기를 투척해 왔을 뿐.
자신들의 마법 저항력을 믿는 것도 있었지만 인간인 우리의 마법 수준을 얕본 결과이기도 했다.
수준이 낮으면 어지간해서는 자신들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두사사는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한 모양이었다.
“뭣들 하나!”
재차 이어지는 재촉에 전사 계급의 거인들이 우르르 성 밖으로 튀어나왔고 그 뒤를 병사로 보이는 거인들이 따라붙었다.
나와 두사사를 피해 멀찍이 떨어져 있던 길드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막아야 했으니까.
‘짜증 나는군.’
주하연의 허락하에 빠르게 마수들이 소환된다.
최대한 안전하게, 평소와 같은 움직임을 갖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저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이쪽 화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법이 아직 준비되는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그간 전열들이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원 마스터에 일부는 중급 내지는 상급에 도달했고, 전설급 아이템을 적게는 2개, 많게는 4개를 가진 이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렇게 싸워대면 조금이라도 손실이 날 수 있었다. 그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장은 순식간에 난전으로 치달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와 두사사의 주변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없다시피 했다.
휘말리면 죽는다.
이 주변의 마력은 끔찍할 정도의 불길함을 머금고 있었다.
두사사는 우리에게 시간을 주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를 지나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기를 휘두른다. 뇌전, 해일, 용오름, 천둥, 태풍.
자연재해의 이름을 딴 공격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진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나는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회피하며 반격까지 해대었다.
마법으로 인한 마력의 유동이 심해질수록 두사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어떻게 이걸 다 막아내는 거지?”
분명 경지는 저쪽이 위다. 게다가 두사사의 지배자는 커니더. 분명 백에 가까운 전사 거인을 휘하에 둔, 강력한 왕족일 터였다.
즉, 두사사의 신체 능력은 경지나 종족 뿐만이 아니라 지배자의 도움까지 받으며 상승한 상태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단계 수준이 낮은 내가 버텨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앞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단순했다. 온갖 환골탈태와 시스템, 스킬 보정에 혈신의 갑옷이 육체를 더 강화시키고 있었다.
주변의 마력을 이용해 피를 무한히 생성하고 장비에게 영향을 끼치고 마법 저항력에 신체 능력 상승까지. 상대가 거인이기에 쓸모는 없지만 혈마법의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어차피 피는 무한히 만들어지니까.
심지어는 미완성이다. 여기서 더 기능들이 추가될 터다.
두사사가 주변을 빠르게 훑는다. 길드원들은 마수들을 이용해 잘 버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단 두 개체를 제외하고는 압도하고 있었다.
‘잘 버티는군.’
한바다와 남은주가 각각 메인 탱커로써 2등위 거인들을 막아서고 남아있던 마법사들과 사제, 암살자 등의 직업을 가진 길드원들이 최대한 백업을 한다.
정 위험한 순간에는 마수를 미끼로 사용하며 상당히 잘 버텨내고 있었다.
주변의 거인들이 죽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확실히 전투 자체는 지지부진했다.
그리고 그건 이쪽이 원하는 바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작렬하면 그때부터는 압도적으로 이쪽이 유리해지니까.
순간적으로 강렬한 직감이 뇌리를 강타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저절로 입이 움직였다.
“블링크!”
내 지배하의 마력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내 이동 위치를 숨겨낸다.
아슬아슬하다고 해야 할까.
순간 내가 있던 장소의 공간이 깨어져 나갔다.
섬뜩한 기운에 등골 사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그것도… 피한다고?”
막지 않고 피한 것이 정답이었다.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플로어 마스터들이 가끔씩 보여주었던… 공간을 부수어 그 틈으로 이동하는 기술.
그것을 공격적으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나 또한 고민했었던 기술이다. 도저히 공간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포기했지만.
그런 기술을 저놈이 사용한 것이었다.
“뭘… 한 거냐.”
“네놈이 뭘 당했는지도 모르고 피한다고? 네놈, 정체가 무어냐? 네놈 같은 소인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제국의 망령 따위가 이러한 힘을 손에 넣을 리가 없다. 사실대로 말하라. 네놈은 누구냐?”
두사사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군.’
대답 대신 반격을 생각하고 있을 때, 두사사의 입이 열린다.
“푸른 여신상과 관련이 있는 놈이냐?”
“…푸른 여신상?”
알 수 없는 이름에 나도 모르게 반응을 해 버렸다.
“모르는가. 우리를 최초의 둥지로 돌려보내줄 열쇠 중 하나이거늘…….”
두사사의 얼굴에 약간의 실망의 빛이 감돌았다.
“너희가 보통의 소인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지. 아직 미숙하여 제대로 쓸 수 없다만… 어쩔 수 없구나.”
다시금 강렬한 경고가 머릿속을 스친다. 두 번째이기 때문일까. 순간적인 공간의 뒤틀림이 ‘보였’다.
목표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단숨에 뒤로 돌며 외쳤다.
“당장 뒤로…!”
마법사들의 주변 공기가 완전히 일그러진다. 완성이 가까웠던 마법이 뒤틀린다.
나서윤의 동공이 확장된다.
툭.
누군가가 그녀를 밀쳤다.
* * *
나서윤을 밀친 것은 하유진이었다.
나서윤을 향해 뻗은 하유진의 팔이 기괴하게 뒤틀린다.
그리고는 단숨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온갖 잡스러운 기술은 다 쓰는구나.”
틈새의 단검. 그것을 이용해 빠르게 나서윤을 구한 뒤 빠져나간 모양이다. 얼핏 보았지만 팔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밀쳐진 나서윤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공에서 하유진이 나타난다. 기괴하게 뒤틀린 팔. 그곳에 빠르게 포션을 붓더니 넋을 놓은 나서윤을 감싸 안고는 즉시 모습을 감췄다.
현명한 판단이다.
나는 즉시 두사사를 향해 돌진했다.
저 기술을 여유롭게 쓰게 해서는 안 된다.
자주는 쓸 수 없는 듯했지만 무척이나 위험하다.
단숨에 준비되었던 마법들이 취소되었다.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지만 재차 마법을 사용하기가…….
“볼케이노.”
그 순간 들리는 아멜리아의 목소리.
두사사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내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두 개의 마법은 실패했지만, 하나는 이미 완성된 모양이었다.
단숨에 바닥이 폭발하며 마그마가 분출된다.
단순한 용암이 아니었다. 마력이 깃든, 닿는 순간 거인조차 녹여버리는 끔찍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합동 마법을 통해 시전된 최상급 마법. 심지어 현재 아멜리아를 지원하는 마법사들은 최소 중급 이상의 마법사들이다.
목표는 도시 모맥. 하나의 마법으로 전멸을 시킬 수는 없겠지만 어마어마한 피해는 줄 수 있을 터다. 아쉽게도 전사들을 향해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길드원들의 피해가 막심할 터다.
나는 그쪽에 신경을 끄고는 두사사를 향해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순간적인 판단들의 향연. 그간의 전투 경험, 직감, 마력의 눈동자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해 빈틈을 향해 반사적으로 검을 꽂아 넣는다.
확실히 두사사의 움직임은 둔해져있었다.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슬금슬금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뜨린다.
‘미숙해.’
분명히 미숙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플로어 마스터들은 저 기술을 이용해 공간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두사사는 저 기술로 고작 허공을 터뜨릴 뿐이었다.
두사사의 얼굴이 진중해진다. 동시에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전장 전체가 밀린다. 도시는 마그마에 녹아내리고 전사 계급은 마수와 길드원들에게 완전히 봉쇄당했다.
2등위 전사들이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날뛰고 있었지만 한바다와 남은주는 주변을 적절히 이용해가며 둘을 절대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순간, 두사사의 눈동자가 빠르게 허공을 짚는다.
퇴로.
나는 두사사가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놓쳐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사방이 혼란스럽다.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었다.
나는 재빠르게 퇴로를 막으려 움직였지만 두사사는 희생을 각오한 모양이었다.
“블링…….”
일대의 공간이 크게 일그러진다.
나는 즉시 블링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보여준 것을 또 쓰려 하는가? 어리석군.”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
내가 주춤한 사이 두사사가 즉시 몸을 돌려버린다.
다른 전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
모두를 미끼로 홀로 빠져나갈 셈인 듯했다. 약간 반응이 늦었고, 즉시 따라붙으려는 순간이었다.
두사사가 빠져나가려는 경로를 향해 수십 개의 마법이 쏟아진다.
하나하나가 상급에 해당하는 마법.
“큭!”
두사사가 마법에 밀려난다. 3등위에 해당하는 거인이, 마법에 저지당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
허공이 흐릿해지며 두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유진과 나서윤.
그 둘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