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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65화 (265/317)

265화

3등위

가장 치열하고 강한 세력들이 몰려있는 중앙.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편이고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한다.

그에 비해 외곽 지역은 생존에 급급한 편이고 서로 전쟁을 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스스로들의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거인들은 몇몇 마수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상층에서 천적이 없는 이들이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저들끼리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고.

상위 마수들이 백 단위로 뭉쳐서 공격이라도 하지 않는 한 거인들의 도시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타 종족을 배척하는 편이기는 하나 이미 상층을 완전히 점령한 시점에서 중앙 쪽 거인들이 외곽 쪽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외곽 쪽을 신경 쓰기에는 그 세력이 작았고 그 세력들이 커지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가 중앙 쪽으로 진출하면서 슬슬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했다.

외곽만 더 돌았다면 아마 조금 늦게 들켰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 더는 도시가 없는 것이지 더 멀리 이동한다면 남은 도시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렇게 된다면 너무 비효율적인 움직임이 되기에 우리는 과감하게 움직였고, 덕분에 양질의 거인들을 잡음으로써 우리는 한층 빠르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현재 우리가 다루는 마수들은 절반 이상이 상급이었고, 모은 포인트를 이용해 최상급에 달하는 아이템을 사용, 최대한 그들을 억제하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는 필요한 상황에만 불러낼 뿐 평소에는 미궁에 따로 보관한 채 구출한 노예들에게 평소의 관리를 시키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마수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네요. 중앙에 진출한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그만큼 어느 정도 세력이 있다면 감시를 한다는 거겠지. 확실히 외곽에 비해서는 강하기는 했으니까.”

외곽에서는 2등위의 전사를 보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거기서 벗어나기 무섭게 보이는 도시 족족 2등위에 해당하는 거인들이 최소 하나씩은 있었다.

반란군 쪽 정보를 이용해 만만한 곳부터 공략한 덕분에 지금까지 나름 수월했는데, 앞으로는 쉽지 않을 모양이다.

“신후 오빠, 괜찮을까요? 이대로 들키면…….”

남은주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 잡아는 봐야지. 들키더라도 최대한 늦어야 하니까.”

쉽지는 않을 터다.

“정찰대 놈들이 있는 장소가 어디래?”

“그게, 모맥 쪽이라고 해요.”

“모맥이면…….”

나는 즉시 기억을 떠올렸다. 2등위 전사 둘을 휘하로 둔 놈으로, 휘하 전사만 열다섯에 달하는 명백하게 외곽 지역을 벗어난 수준의 놈이었다.

우리의 다음 목표들 중 하나였기에 정보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 놈의 도시에 커니더의 정찰병들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걔들이 커니더에게 협조적인 세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굳이 따지자면 끼어들었다가는 죽기 딱 좋은 수준이라고 할까.

‘쯧, 역시 힘인가…….’

커니더는 가장 큰 두 도시 중 하나다. 전사만 백에 가까운, 명실상부한 패권을 쥔 도시. 아무리 정찰병에 불과하더라도 모맥 정도의 도시가 막을 수는 없었을 테니, 아마도 최대한 협조할 듯했다. 이런 점은 거인도 다를 바 없었다.

“정찰병들의 수준은 어때?”

“그게, 2등위 하나에 1등위 전사 열, 병사로 보이는 거인만 백 가까이 왔다고 해요.”

병사라지만 어차피 계급은 시민. 그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전투 경험이 많고 기술을 더 익혔다는 것이 다를 뿐. 현재의 내 길드원들에게 어려운 상대들은 아니다.

문제는 전사 계급의 거인들이었다. 어지간한 외곽의 도시 수준의 병력이었다.

확실히 세력이 보통은 아니었다.

‘2등위 셋에 1등위 스물셋, 거기에 병사가…….’

이제껏 상대해 본 거인들 중 가장 큰 세력이었다. 이대로 계속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미 우리가 무너뜨린 도시가 한둘이 아니고 모든 흔적을 다 지운 것도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 강해진 뒤에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저들은 분명 마수의 영역 그 너머까지 따라올 터다. 결국 우리가 들키는 시간만 뒤로 미룰 뿐이었다. 도망치며 성장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기회이기는 한데…….’

아무리 커니더 놈들이 강하다고는 해도 그들의 상대인 클라이디스는 비슷한 수준의 세력이다. 전사 계급 열하나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작은 균열이기는 하지만 분명 약해진 틈을 방치하지만은 않을 터였다. 크게 뭔가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저쪽의 균열은 이쪽에게는 무조건 이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틈을 봐서 가능하다면 균열을 벌리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싸울 수밖에… 없겠죠?”

남은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해. 모조리 죽이고, 한동안 빠진다.”

이후로는 반란군 놈들이 바빠질 터였다. 우리 대신 동향을 살펴야 할 테니까.

반란군들은 매일 같이 알아낸 것들을 전달해 왔다.

“…주변 도시들을 이용하려고 한다고?”

“네. 모맥을 시작으로 주변의 우루일로스나 웅고단의 도시들에 사람을 보낼 예정이라고 해요.”

“먼저 쳐야겠군.”

여기서 더 늘어나면 답이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공격을 서둘렀다. 원할 때마다 마수를 소환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우리는 도시를 비교적 손쉽게 습격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하유진을 통해 감시탑을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고 이후 성에 접근, 마수들을 대량 소환한 뒤 마법으로 전소, 이후 난전을 통해 항상 이득을 취해왔다.

간단한 방식이지만 그만큼 상대의 대비가 잘되지 않았기에 늘 효과를 봐 왔던 방식이다.

우선 정보를 획득한 만큼 모맥 쪽에서 우루일로스와 웅도간으로 향하는 길목을 노려 이야기를 전하러 가는 이들을 처리했다.

그들을 처리하기 무섭게 우리는 곧바로 모맥을 향해 움직였고, 평소와 같은 수순으로 모맥을 습격했다.

조금의 희생은 있을 수 있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2등위 전사 셋이서 작정하고 도망치려 한다면 하나 정도는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의 습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호오… 소인들? 최근 외곽을 무너뜨리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그게 소인들이었나?”

무척 신기하다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거인.

감시탑을 무너뜨리고 성에 제대로 접근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20m를 넘는, 거대한 크기의 거인이었다.

* * *

상대를 바라보며 몸이 저절로 긴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껏 느껴왔던 거인들과 그 강함의 질이 차원이 다르다.

“…3등위.”

“잘 아는군.”

작은 중얼거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 몸은 두사사라 한다. 반갑군. 소인이 벽을, 그것도 2등위 전사 이상의 힘을 지닌 것은 처음 보는군. 무척이나 흥미로워.”

20m를 넘는 거대한 크기의 거인.

주변에 있는 거인들에 비해 훨씬 커다란 크기와 덩치를 자랑하는 놈은 단숨에 내가 숨긴 힘의 크기를 파악해 버렸다.

빠르게 주변의 다른 거인들을 확인한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그를 제외한 다른 거인들에 관한 정보는 틀리지 않은 듯했다.

“흐음… 그대들이 그 드로퀴노라는 옛 제국의 망령들인가?”

드로퀴노. 반란군의 이름이자 과거 상층을 지배했던 제국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빠르게 상대를 관찰했다.

“그렇군. 우리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가. 망령들의 꿈이 우리를 몰아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게 가능하다고 믿다니… 소인들의 작은 머리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두사사라는 이름을 가진 놈은 가소롭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쉽지는 않겠군.’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상대의 반응을 무시한 채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마법. 빠르게.”

상대가 3등위인 사실을 안 시점에서 길드원들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몇몇 길드원들을 이번 전투를 잃을 수도 있었다. 3등위 전사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질 생각은 없었다.

커니더가 강대한 세력인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 정도는 우리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곧바로 마법이 준비된다. 대기가 흔들릴 정도의 마력이 움직인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 내가 커니더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기괴할 정도의 마력의 유동에 두사사의 표정이 일변한다.

“드래곤……? 아니, 이건…….”

가볍게 중얼거리는 두사사. 그러는 듯하더니 한순간, 그 모습이 사라졌다.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단숨에 시야가 붉게 변하고 모든 힘이 순식간에 개방된다.

쩌저저적.

나도 모르게, 한순간에 들어 올린 내 검이 허공 한 점을 틀어막는다.

동시에 전신으로 거대한 압력이 들이닥쳤다.

“미친…….”

“…막아?”

나를 지나쳐 후열을 곧바로 노리려던 두사사의 경로를 틀어막아 버리자 상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나서윤이 깜짝 놀란 듯한 비명을 지른다.

일순 경로를 틀어막았을 뿐인데 내 무형 강기에 금이 가 버렸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만큼 마치 허공이 어긋난 듯한 모습이다.

“빨리해!”

마법이 이루어져 도시 자체를 망가뜨린다면 이놈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혼자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도움이 있다면 한층 더 수월하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재밌군.”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과는 다르게 두사사의 시선은 여전히 마법사들에게 가 있었다.

다음 목표도 저쪽일 터. 나는 본능적으로 장비를 불러내었다.

허공에 에고 웨폰인 방패 하나가 떠올랐고, 동시에 몸 위로 피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흠?”

두사사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콰아아앙!

내가 장비를 소환하는 틈을 노린 일격을 다시금 틀어막는다. 방어에 사용된 에고 웨폰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버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천천히 떠올라 다시금 내게로 돌아온다.

다행히 파손은 되지 않은 상태. 확실히 막아낼 만하다.

어느새 솟아오른 피가 내 몸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아무래도 네놈을 죽이지 않고는 저것을 막을 수 없는 모양이군.”

당연한 소리다.

“곧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닌 듯하니… 잠시 놀아주마. 소인.”

합동 마법의 완성이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혈신의 갑옷.

“너를 죽이면 완성되겠지.”

거인의 피로 이루어진 갑옷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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