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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62화 (262/317)

262화

상층의 히든 퀘스트

고작 마법. 거인들에게 있어서 마법이란 몸으로 때우면 그만인 것들이었다.

드래곤이 아닌 이상에야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마법은 정말 없다시피 했을 테니까. 특히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은 더더욱 얕보는 기색이 있었을 터다.

하지만 이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 수련자들이고 거기에 더해 그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재능을 가졌으며 스킬과 능력치, 아이템의 보조를 받으며 성장한, 평범한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을 가진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개발한 합동 마법에, 수백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보조해준다. 깊이는 몰라도 위력만큼은 드래곤의 마법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 마법이 셋이다. 마수를 경계할 뿐 마법사들에 대한 경계가 늦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끄아아악!”

“뭐 이런…!”

미친 듯한 비명과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

대부분의 거인들은 저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한들 엄청 큰 피해를 받지는 않는다.

최상위 종족이고, 그 튼튼함이 최고 수준인 거인들이 고작 저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죽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다만 그건 멀쩡한 상태일 때이다. 이연솔의 파이어 레인 덕분에 상처를 입었던 이들은 추가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성벽이 무너졌다고 한들 마법이 끝난 것도 아니다.

어스퀘이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대지는 여전히 요동치며 뒤틀리고 있었다.

지형 자체가 변해버린다.

최상급 마법의 위력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거인의 도시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이런 상황에 대부분의 거인들은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잠시 뒤 마법이 종료되었고 거인들은 대부분 무너진 건물에 깔리거나 그 주변에서 반쯤 널브러진 상태였다.

지형은 완전히 변해버려 곳곳의 땅이 침식된 것마냥 움푹 파였고 어떤 곳은 마치 언덕처럼 솟아오른 상태였다.

“공격.”

그 틈을 놓칠 이유가 없었다.

방금 마법이 끝났지만 이미 종속된 마수들을 부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상급 마법사 셋은 즉시 내 지시를 따라 마수들을 돌격시켰고,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길드원들이 그들 뒤를 따라 움직였다.

지금 상황 자체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쯤 되면 마수들이 불필요한 경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도 피해가 열에서 스물은 나온다. 안전하게 움직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행동이 느려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전사 계급이 움직이던가 아니라고 해도 시민 계급이 뭉쳐 저항하기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수들을 이용한다면, 저돌적으로 자신의 몸은 돌보지도 않고 달려들 저들이 있다면 이쪽의 위험부담은 온전히 마수들에게 떠넘기고 알맹이만 취할 수 있었다.

“막아! 뭉쳐라! 물러서지 마라! 고작 마수와 소인들이다!”

한 전사의 외침. 평소라면 옳은 말일 터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자들이고 저들은 종속된 마수들이다. 이미 어떻게 움직일지 계획까지 되어 있는 마당에 우리를 얕보는 말은 되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시선을 돌리는 와중 눈에 띄는 이들이 보인다.

지배자인 후룸과 그를 지키는 전사들의 무리.

내 목표였다.

전사 계급의 거인은 아홉. 그들 중 한 개체에는 우리 쪽 오우거 마수를 포함한 상위의 마수들이 달라붙었고 다른 한 개체는 소환된 라이칸스로프가 맡는다.

스릉.

‘다섯 정도면… 시간이 걸려도 가능하다.’

2등위와 1등위의 수준 차이는 그 정도로 크다. 인간과 싸워본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나름 1등위 전사였던 비셉을 가지고 놀 수 있었던 나다.

마수가 하나, 라이칸스로프가 하나, 거기에 내가 다섯. 남은 것은 두 개체. 그들 중 적어도 하나는 후룸을 지켜야 할 터다.

남은주와 한바다를 비롯한 일행들이 움직인다. 저들 또한 전사급 거인과 싸울 수 있는 인재들이다. 빠르게 인원이 분배된다.

“끄아아악!”

“빌어먹을 마수 놈들이!”

시민 계급의 거인들이 학살되는 모습에 전사 계급의 거인 하나가 끼어든다. 단 한 번의 몽둥이질에 몇 마리의 마수들이 터져나간다.

인간과 다르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마수들은 전사 계급의 거인들에게는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라이칸스로프를 향해 지시했다.

“막아!”

“컹!”

몸을 돌려 다른 마수를 노리던 전사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라이칸스로프가 자신에게 달려들자 이를 갈며 라이칸스로프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다른 마수들과 다르게 라이칸스로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을 회피했고, 휘둘러지는 여파는 발산된 마력을 통한 실드로 간단히 무력화시켰다.

쾅!

거인의 공격이 허공을 때리기 무섭게 뽑아낸 강기 손톱으로 거인의 몸을 긁어버린다.

예전처럼 고밀도로 압축된 강기였다.

아쉽게도 치명상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분명한 상처였고, 일방적으로 입은 손해였다.

거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사이 상급 마수 넷을 이용해 전사 거인 하나를 더 틀어막았고 내 직속 파티원들 또한 몇몇 길드원들을 이끌고 이미 다른 거인에게 도착한 상태였다. 나는 추가로 움직이는 거인이 나타나기 전에 차례로 모든 스킬을 사용, 모든 힘을 개방한 뒤 후룸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검에 어마어마한 마력을 집어넣는다.

‘크기는… 더 크게…….’

카바락의 검술을 통해 강기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은 익숙했다. 거기에 더해 2등위 전사였던 제테스의 기술을 떠올린다.

무기는 다르다. 하지만 단 하나 배울 것은 있었다.

주변의 마력을 내 의지에 따라 다루는 기술. 그리고 그 힘을 공격에 싣는 것.

거인을 상대함에 있어 나름 키웠던 내 공격마저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10m 수준에서도 약간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지구의 20m에 달하는 거인들에게는 더더욱 부족할 터. 공격의 범위를 더 키우고 위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세 명의 최상급 마법사들이 마수를 길들이는 동안 나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 결과가 눈앞에 나타난다.

쿠쿠쿵.

주변의 대기가 급속도로 일그러진다. 이전에는 소규모에 불과했던 일그러짐이 현재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해 있었다.

“해일(海溢).”

작은 읊조림.

거인의 기술은 하나같이 자연재해의 이름이 붙었고, 나는 그것을 베껴내 내 기술에 접목시켰다.

이름은 그대로 쓰는 편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무기도, 그 위력도 차원이 달라져 버렸다.

나는 제테스의 기술을 완전히 익혀내었고, 오히려 당시의 놈보다 더 잘 쓴다는 확신이 들었다.

직접 마력을 볼 수 있었고 그를 통한 수련은 빠른 숙련을 가져왔다. 이미 사용할 자격은 충분했다. 나 또한 그만한 경지가 되었으니까.

무시무시한 마력의 격류. 세 명의 최상급 마법사가 동시에 합동 마법을 사용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강한 마력의 유동에 전사들이 기겁을 한다.

한 명의 전사가 빠르게 후룸을 챙긴 채 멀찍이 뒤로 물러났고, 다른 한 전사는 후룸을 쫓을 경로를 막아섰다.

훈련된 움직임. 그 행동은 옳았다.

단순한 횡베기. 하지만 일어난 현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일대를 일그러뜨리며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동시에 공격의 범위를 넓혀 왔던 기술이, 내가 사용하자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을 뛰어넘어 마력을 칼날 형태로 정련, 일정 범위를 갈가리 찢어버리는 효과를 발산했다.

그리고 그 위력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끄아아아아악!”

한 거인이 급하게 주변의 마력에 영향을 미치며 내 공격을 막아갔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대기의 마력을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 나였다. 말 그대로 지배력 차이가 심각했고, 상대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찍혀 눌려버렸다.

드높은 마법 저항력도 내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뭣…….”

나조차도 깜짝 놀랄 위력. 단숨에 거인의 전신이 찢어지며 처참한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내 공격의 범위가, 상대 거인 전신을 포함해 버렸다.

일격에 죽어버린 동료의 모습에 거인들이 기겁한다.

“2등위!”

“소인이 지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말인가!”

인간에 불과한 내가 자신들이 닿지도 못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압도적인 마력에 어울리는 경지.

단순한 2등위 수준도 아니다. 내가 방금 한 공격의 위력은 내가 상대했던 2등위 전사의 공격력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나 또한 설마 이만한 위력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기에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마법과는 조금 다르지만 일단 마력을 사용한다. 그런 만큼 마법 저항이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전사 계급의 마법 저항을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게다가 상당히 튼튼한 육체임에도 일격조차 견뎌내지 못했다. 일단은 전사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도 가능했겠군.’

전사 계급이라면 혼자서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을 터였다. 그만한 위력이었다.

심지어 해일은 가장 위력이 강한 기술도, 범위가 가장 넓은 기술도 아니었다.

내 공격의 위력이 생각보다 뛰어남을 깨달아 잠시 주춤한 사이에 남은 전사 넷이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더니 곧바로 동시에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는 내가 도망칠 공간까지 선점하며 동시에 무기를 내리친다.

현명한 선택이다. 이전이었다면 방어를 선택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블링크.”

수준이 높아진 적들을 향해서 쓸 수가 없었던 기술.

쓰는 순간 마력의 유동에 의해 위치를 특정 당하고 무방비상태로 공격당한다. 그러나 현재 일대의 마력 지배권은 대부분 내 손안에 있었다.

흐름을 모조리 흩트려버리자 상대는 내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었고 나는 간단하게 공격을 빠져나왔다.

고작 10m에 해당하는 거리였지만 내가 빠져나갈 여유 공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하늘 걸음으로 허공을 밟으며 내가 쓰러뜨린 거인에게 접근했다.

곧바로 스킬 효과에 의해 피가 내 몸으로 빨려들어 온다.

흡혈검에 양보하는 대신 내 몸에 피를 축적하고 있었다.

‘많이 모자라기는 한데…….’

혈신의 갑옷. 그것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그것도 양질의 피가 필요했다. 흡혈검의 진화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방어구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러뜨린 거인에게 가는 것이 후룸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후룸을 호위하던 거인이 더 멀리 달아나고 거인들이 급하게 내 이동 경로를 막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사이 나는 내 직속 파티원들의 전투 장면을 살폈다.

‘이기겠군.’

한바다는 나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분명 주변의 마력에 영향을 끼치는 거인의 행태에 자신의 마력을 넓게 퍼트려 저항하고 있었다.

마력의 소모가 클 테지만 그러한 방해 공작 때문에 위력이 감소된 공격이 계속되었고, 남은주는 주하연의 도움을 받아 수월하게 공격을 견디고 있었다.

주하연이 그러한 남은주를 보조하고 나연은 사샤와 합신한 채 끝없이 공격을 계속한다. 미미한 상처이나 분명 피해를 주고는 있었다. 정령석을 통한 수련이 아주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 듯했다.

여러 길드원들이 최대한 일행을 지원했고 나서윤은 떨어진 마력 대신 오러로 버티며 어떻게든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의외로 하유진이었다.

절묘한 틈을 파고들어 급소를 노리는 하유진. 틈새의 단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중간중간 마치 허공을 노니는 듯한 움직임으로 서서히 거인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무난한 공략이다. 분명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확실한 승기를 챙기는 모습. 그에 비해 라이칸스로프는 겨우 버티고 있었고 마수들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마구잡이이기는 하나 분명 승기를 붙잡은 상태였다. 셋 정도는 죽겠지만.

내가 빨리 처리한 이후 도움을 준다면 한층 수월하게 거인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 듯했다.

무기를 고쳐잡는다.

경험을 위해서라도 늦게 끼어들 생각이다. 다만 그래도 언제든지 끼어들 수 있는 상황은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는 와중, 내 눈에 특이한 문양이 눈에 띄었다.

‘…퀘스트?’

보라색 느낌표. 히든 퀘스트를 알리는 표식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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