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가능할 것 같다는 말에 기대감이 생겼다.
늑대 마수와 오우거 마수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럼에도 아멜리아는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수준 차이가 심해서 쉽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거인 수준의 마법 저항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시간 차이가 있을 뿐, 충분히 가능해요.”
마수를 지배하는 방법을 알아보면서 충분히 연구를 했노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취했다.
마법사들이 늑대 마수의 지배하기 위해 걸린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대강 방법에 대해서는 힌트가 있었음에도 얻은 정신 마법들 중 확실하게 사용할 마법을 정하고 실전성 없는, 합동 마법을 위한 하위 마법을 만들고도 몇 차례에 달하는 조정이 있었다.
그사이 나는 계속해서 오우거 마수를 관리했고, 그 과전에서 결코 무력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명체라면, 이 정도의 기간 동안 학대를 해대면 무언가 작은 변화라도 있어야 정상인데 저놈은 그딴 것이 전혀 없었다.
깨어나고, 주변에 다른 생명체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공격한다. 애초에 오우거는 대부분 홀로 활동하는 놈들인 데다가 스스로가 포식자이고, 마수화 되었기 때문인지 그 공격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나마 마기를 가진 마수들이라면 공격성이 비교적 덜한 편이었다. 그 대상이 나나 내 길드원들이 된다면 정말 주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 태도가 지금껏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도 저러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일 터다.
“몇 단계 거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요. 네비오스 씨를 통해 아이템을 구하기도 해야 하고, 사제의 도움도 필요해요. 오우거 마수쯤 되면 보통 사제는 힘들지만… 저희 길드에는 길드장님과 부길드장님이 계시니까…….”
신성력을 통해서 마수의 감지 능력을 엉망으로 만들고 골수까지 미친 마기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이후 아이템과 정신 마법을 통해 마수를 차근차근 길들인다고 한다.
과정이 고통스럽고 정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지만 어차피 마수들에게 원하는 것은 전투 능력뿐. 전투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하니 상관은 없었다.
신나서 설명하는 아멜리아의 말들 중 필요한 것들만 골라 듣는다. 요는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지만 가능은 하다는 이야기였고, 나는 즉시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는 사이 그간 준비해 왔던 쓸만한 마수들이 존재하는 위치를 재확인한다.
이 일대의 마수들 중 쓸만한 전투력을 가진 이들이 서식하는 장소를 정리해 놓았고, 오우거 마수를 지배하는 즉시 그들을 하나둘 지배할 예정이었다.
오우거 마수 수준의 존재는 고작 셋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들이라면 1등위 전사 하나 정도는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터다. 중요한 것은 시민 계급의 거인들로부터 내 길드원들이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고기 방패가 될 수준이라면 널려 있었다.
게다가 마수의 영역은 우리가 활동하는 곳 주변이 다가 아니다. 더 깊은 곳도 있었고, 더 먼 곳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괜히 거인들이 골칫거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다수를 잃더라도 보충할 방법은 충분히 있었으니 중요한 것은 지배할 방법과 걸리는 시간 정도였다.
네비오스를 통해 아멜리아가 필요로 하는 최상급 테이밍용 아이템을 구한 뒤 즉시 오우거 마수 길들이기에 돌입했다.
약 3일. 하루에 한 번씩 3일에 걸친 마법이 필요했고, 그 뒤 거짓말처럼 아멜리의 말에 복종하는 오우거를 볼 수 있었다.
나서윤도, 이연솔도 가능하지만 현재는 아멜리아가 가장 능숙하고 빠르게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한다.
“…와, 저게 되네…….”
길드원들의 신기하다는 듯한 웅성거림.
나 또한 희열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희생이 큰 길드원들이 마수들을 통해 희생을 줄일 수 있을 터다.
안정적인 성장으로 전원 마스터에 들고 난 뒤라면 마수들이 없더라도 이전과 같은 희생은 나오지 않을 터다.
“신후가 몇 달을 두들겨 패도 말을 안 들었던 놈인데… 마법이 대단하기는 하구나…….”
그간 내가 해 온 작업들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지켜보았던 나연의 중얼거림에 조금 동감해 버렸다.
“형이 마법에 신경을 쓴 이유를 알겠어요. 이런 쪽으로도 이용하시네요.”
아멜리아는 오우거 마수를 향해 이것저것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모든 마수를 조종할 수는 없었다. 몇몇 인원들에게 명령권을 나눠주고 그들이 대신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런 쪽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확실한 결과를 얻은 즉시 마수들을 사로잡을 것을 명령했고, 차근차근 마수로 이루어진 집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사이 나는 홀로 미궁 조각을 사용해 내부 공간으로 입장했다.
“음? 한창 바쁘신 때 어쩐 일이십니까?”
네비오스는 내가 나타나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수를 길들이는 것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네비오스는 발 빠르게 소환용 테이밍 아이템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과거 우리 쪽에서 먼저 물어봤었고 내게 협력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최고의 이익이 되는 만큼 네비오스의 움직임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이런 시기에 마수를 포획하는 것에 가장 도움이 될 내가 나타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모습이었다.
“던전에 볼일이 있습니다.”
내 대답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네비오스는 곧바로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플로어 마스터를 뵈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상층에서 마수를 쓰는 것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 마수들을 지구에서도 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방침을 정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뿐입니다.”
네비오스는 조금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름 중층에서 이룰 수 있는 최선을 이루고 왔다 생각했음에도 상층의 벽은 높았다.
그가 보기에도 내가 데려온 인원들의 수준은 괜찮았을 터다. 더 오랜 시간 중층에서 머물며 모든 인원들의 수준을 높이고, 통제가 쉽지 않더라도, 다른 귀족들과 부딪쳐서라도 가능성이 높은 수련자들을 모두 규합했다면 다른 요인 없이 상층에서 버텨나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희생은 컸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했을 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고 이렇게 다른 요인을 구해야만 했다.
“그래도 마수라는 수단을 얻은 이상 상층은 할만할 겁니다. 지구에서 쓸 수 없게 되더라도… 다른 수는 있으니까요.”
나는 열세 번째 꽃을 떠올렸다.
상층으로 올라온 이후 연락은 딱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지금 연락을 할 정신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가능하다는 답이 들어왔으면 좋겠군요.”
네비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패는 많을수록 좋았다.
행운을 빈다는 그의 말을 뒤로한 채 미궁으로 진입했다.
미궁 내부에는 연합을 무너뜨리며 흡수한 노예들이 주민이 되어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이 노예 출신이기는 하나 그 무력이 하찮지만은 않았다. 나름 상층에서 거인들의 장난감이거나 잡일들을 하는 역할을 맡았던 이들이고 모시는 이들이 거인인 만큼 평범한 수준이라면 그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이들이 미궁에서 식량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우리는 주거지를 제공하는 대신 청소를 비롯한 잡일이나 식량을 구해오는 역할을 떠넘길 수 있었다.
저들 입장에서는 목숨이 위험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며 상당한 자유가 보장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저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연의 영향 때문일까. 비록 가이아 길드는 중층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나름 기사 이상의 대우를 받은 특권층에 가까운 위치였으나 타 계급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누릴 시간도 부족했다고 할까. 가이아 길드는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니까. 그런 만큼 저들과는 제법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상하관계가 명확하기는 했지만.
그런 우리들의 태도에 저들은 더더욱 극진한 모습을 보여왔으며 동시에 그러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우리를 상당히 어려워했다.
“기, 길드장님…….”
“유신후 님이시다……. 여긴 어쩐 일로…….”
내가 나타나기 무섭게 하나둘 고개를 숙여온다.
나는 그런 이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하, 하지만 길드장님께 어찌…….”
처음에는 주인님이라고 부르던 이들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길드원들, 특히 나연과 친한 이들일수록 그런 호칭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덕분에 그 호칭은 금지되었다.
그 때문인지 혼란을 느끼는 듯했으나, 어느새 대부분은 이름을 기억해 존칭을 붙이는 상황이 되었고, 나 같은 경우에는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길드장이라고 부르기 때문인지 저들 또한 나를 길드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노예 출신들의 우두머리를 맡은 인간 하나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나름 최상급 엑스퍼트에 든 인간임에도 그게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나는 반쯤 포기한 어조로 물었다.
“식량은?”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모으고 있습니다.”
“입이 늘어날 예정이라서. 미안하지만 수고 좀 해 줘.”
“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앵무새 같은 대답에 반쯤 포기한 채 용무가 끝났다는 듯이 손을 휘젓자, 일대의 노예 출신 주민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소리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지간한 대귀족 가문의 노예들을 보는 듯했다.
조용히 고개를 젓고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플로어 마스터를 불러낸다.
“아키밀리님.”
내 말에, 이전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반응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목소리만 전달한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작은 균열이 생기더니 공간이 깨져나가며 아키밀리가 등장한다.
힐끗 균열을 향해 잠시 눈길을 보내곤 곧바로 아키밀리에게로 돌린다.
“너. 재미있는 것을 생각하더군.”
아무래도 내가 왜 부른 것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려워.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겁니까?”
혼자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키밀리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돕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네가 원하는 것은 나로서는 무척 바라는 바다만…….”
아키밀리가 은근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희 세계의 관리자인 가이아, 그녀의 협력이 필요하다.”
가이아의 협력. 즉,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 가이아와는 연락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니까.
“…어쩔 수 없군요.”
“너는 그녀의 계약자니 네가 강하게 요청한다면 그녀 또한 진지하게 생각해 주겠지. 확실히 마수들 중에는 쓸만한 놈들이 많으니 도움이 되기는 할 거다.”
나는 가만히 아키밀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에 아키밀리가 슬쩍 눈을 돌린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말했듯 나로서도 무척 바라는 일이니 적극적인 것일 뿐이니까. 타 차원과의 연결은 세계의 관리자라면 당연히 꺼릴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너희 세계는 이미 늦었지 않나. 열세 번째 꽃이라고 했던가. 그녀와의 세계와도 협력하는 사이니 나 하나 추가된다고 해도 더 해가 될 것은 없지.”
그의 세계인 미궁은 탑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미 망해버렸고, 탑에 협력함으로써 일부나마 건졌다고. 그런데도 연결이 가능한 모양이다.
“연결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뭐겠냐.”
아키밀리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다.
“탑에 연결된 채로는 끔찍할 정도로 오래 걸리지. 하지만 탑에서 벗어나 다시금 정상적인 차원과 연결될 수 있다면… 잃어버린 세계를 조금씩이나마 회복할 수 있어. 정확히는 성장이지.”
아키밀리가 짙은 감정이 깃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기회가 갖고 싶은 거다. 이건 관리자라면, 관리자였던 존재라면 누구라도 욕심을 낼 수밖에 없을 거다.”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영락해버린 관리자, 수련의 탑의 일개 플로어 마스터에 불과한 존재.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욕심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