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56화 (256/317)

256화

“들어와.”

끼이익.

“리더님아. 시간 돼?”

“괜찮아.”

막 회의가 끝난 상태였고, 개인적으로 다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뿐 엄청 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괜찮다는 말에 사샤가 곧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앉는다.

정령이기는 하나 상급에 도달하면서 인간과 비슷한 크기가 된 사샤는 주변이 몽땅 인간인 덕분인지 평소에는 인간과 별다를 것 없는 행동을 보이고는 한다.

그래도 정령 자체는 좋아하는지 나연의 귀걸이에 사는 바람의 정령을 제법 아끼는 것 같기는 하지만.

“무슨 일이야?”

“할 말도 있고, 생각난 의견이 있기도 해서.”

개인적인 용무와 보고할 일이 동시에 있다고 말한다.

솔직히 지금 고민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후자에 더 관심이 갔다.

“리더님아. 혹시 그 미궁 조각이라는 거, 지구에서도 쓸 수 있어?”

“…글쎄. 아이템인 이상 가져는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탑을 나간 사람은 다시 탑에 관여할 수 없을 터. 확실히 애매하기는 했다. 내 공간이 있기는 하다만 현재는 거의 통로 수준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니까.

주로 이용하는 것은 미궁 그 자체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하는데…….”

“뭐 때문에?”

“그게, 이번에 사상자가 많았잖아.”

그건 그렇다.

덕분에 이기기는 했지만 분위기 자체가 좋은 편이 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이것저것 알아봤거든. 어떻게 하면 희생을 줄일 수 있을지.”

현재 길드 전체에서 생각하는 주제다. 대부분의 결과는 더 강해진다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만.

이번 전투는 상대가 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못했고, 세력도 약소 세력이 연합한 것을 각개 격파한 수준이었다. 즉, 상황은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상대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마법이라는 공격을 당했고 인간과의 전투 경험이 부족했으며 이쪽이 기습까지 했는데도 사상자가 60을 넘는다. 그것도 대부분이 전사도 아닌 계급에게 당했다.

전력이 고르지 못한 폐해였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마침 내가 정령이잖아? 나는 싸워도 안 죽고.”

확실히 그렇다. 사샤는 고대 정령이라는, 특수한 존재이기는 하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면 육체가 무너지고 역소환된다.

역소환된 장소가 정령계 같은 것이 아닌, 나연의 몸에 새겨진 계약의 증표라는 것이 다를 뿐.

차차 회복한 이후 재소환을 한다면 큰 문제는 없었다.

“대신 싸워줄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정령사는 아무나 될 수 없어. 나연 정도의 친화력은 인간들 중에서는 극히 드물어.”

나연 정도의 정령 친화력은 엘프에 비하면 떨어졌었지만 업적과 세계수 주변에서 수련한 영향으로 현재는 어지간한 엘프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과거 초기 시절만 해도 인간들 중에서는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는데, 그만한 친화력을 가진 사람조차 없다시피 한 것이 인간이다.

종족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

“직접 계약하라고는 안 해. 아이템으로 소환하는 경우도 있잖아?”

“그렇게 소환된 정령은 제 힘 내기가 힘들어. 그리고 그런 아이템은 극히 수량이 모자라고.”

애초에 황실 창고에서 나온 정령이 봉인된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전설급인데도 불구하고 봉인된 정령은 중급에 불과했다.

상급 정령 정도 되면 어지간한 장비에 담기조차 힘들고, 그만한 기술도 없었다.

“그런데 너, 그런 거 안 좋아했을 텐데?”

정령을 아이템에 봉인하는 행동을 사샤는 좋아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사샤 또한 정령이었으니까.

“물론 안 좋아해. 그리고 꼭 정령일 필요는 없지 않아?”

“라이칸스로프를 말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존재를 입에 담자 사샤가 긍정했다.

“응. 사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아이템에 봉인된 정령에서 힌트를 얻었거든.”

이후 사샤의 설명은 간단했다.

마수를 길들여서 소환수로 삼자는 이야기였다.

“불가능해. 마수는 못 길들여. 라이칸스로프가 특별한 경우일 뿐이야.”

실제로 습격한 연합에는 마수를 길러 병사로 쓰는 경우는 없었고, 거인들 또한 마수를 척결 대상으로 볼 뿐 길들이거나 노예로 쓸 대상으로는 보지 못한다.

라이칸스로프가 특수한 경우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에 의해 실험되었기 때문인지 내게 치명상을 입고 패배하기 무섭게 꼬리를 내렸다.

“마법이 있잖아. 이번에 셋이 익힌 것이 정신 계통 마법이라면서? 합동 마법도 있고. 합동 마법은 하급 마법사들이 대량으로 같은 마법을 사용하면 상위 마법사가 그 힘을 엮어 같은 계통의 상위 마법으로 바꿔치는 기술이라는데, 정신 마법도 가능한 거 아냐?”

“…대충 맞기는 한데…….”

정신 마법 중에서 낮은 등급이 있던가?

‘매혹.’

내 검에 걸린 스킬이기도 하다. 그렇게 쉬운 마법은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고등급 마법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갖춰야 할 조건도 많고 효과도 미미하기는 하지만 분명 정신 계통에 속하기는 한다.

문제는 부가 효과이기는 해도 스킬로 만들어져 사용되는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길게 유지되지 않을 만큼 효과가 작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나야 한 순간의 틈만 있어도 죽일 수 있지만, 테이밍은 다른 경우다.

하지만 확실히 지속적으로, 그것도 합동 마법을 이용해 힘을 증폭시킨다면 아주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마법의 위력 증폭 수준이 보통은 아니었으니까.

‘대상을 바꿀…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나? 확실하게 복종만 시킬 수 있다면 길드원들에게 각자 분배하면 그만이니…….’

내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사샤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셋이서 정신 마법으로 2등위 거인을 무너뜨리는 수준이라면 지배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라이칸스로프 때처럼 힘으로 굴복시키고 마법까지 곁들이면 가능성 있을 것 같은데.”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사샤의 이야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네비오스에게 물어보니까 테이머 관련 아이템으로 대량 구매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건 계약한 존재를 다른 공간에서 소환하는 형태래. 본래 차원 단위는 안 되지만, 미궁 조각의 입구를 연 상태라면 차원간 통로가 생겨서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 차원 단위가 안 되면 여기서만 쓸 수 있다는 건데, 그러면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내 미궁 조각에 대해 물어본 모양이다.

‘확실히 그런 형태라면…….’

정령을 사역하는 모습을 보고 떠올렸다는, 정령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이기는 했지만 이쪽에 도움만 된다면 알 바 아니었다.

나연의 계약자이고 같이 지구로 갈 생각이기 때문인지 상당히 진지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플로어 마스터와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아키밀리와. 그가 바로 미궁의 진짜 주인이니까.

힘으로 제압한 뒤 정신 주문을 통해 시간을 들여 길들인다.

이런 방법이라면… 전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마수들은… 거인 만큼이나 강하다고 했었지…….’

모두가 그 수준은 아니다. 상당수는 사냥감에 불과하다고는 했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 중에는 전사급이 아니라면 상대할 수 없는 존재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이들을 포획할 수 있다면…….

준비할 것이 많기는 했지만, 시도해봄 직했다.

던전에서 처럼 완전히 만들어진 이들만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다. 실제로 테이머 직업도 있기는 했고.

다만 관련 스킬이라도 있지 않는 한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만, 그건 정신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스킬 없이 라이칸스로프를 다루었던 예 또한 있으니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좋네.”

한참의 생각 끝에 뱉어낸 내 말에 사샤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확인해 볼 것들이 많고 알아볼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야.”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지구에 데려갈 수 없고, 상층에서도 제한적으로밖에 쓸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당장 희생 자체를 줄일 수는 있었으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레벨업과 시스템 상점을 통한 스펙업이 가능해지고 결과적으로는 전력이 강해져 희생이 줄어들 터였다.

“서윤이랑 둘 모두 불러야겠네. 고맙다 사샤. 좋은 생각이었어.”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

내가 바로 마법사들을 부를 기색을 보이자 사샤가 막아섰다.

‘개인적인 용무도 있다고 했었지.’

고민하던 것에 대한 해결책이 생각나자 나도 모르게 조금 급해진 모양이었다.

내가 진정하는 기색이 보이자 사샤가 입을 열었다.

“할 말이 뭔데?”

“…나연 이야기야.”

“나연? 왜?”

“망설이고 포기하려던 애, 붙잡은 게 리더님이라면서?”

맞는 말이었다.

나연은 도저히 선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내가 넘어도 된다는, 아니 넘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그렇게 행동했었다.

내가 긍정하자 사샤가 말을 이었다.

“고마운 일이야. 솔직히 많이 답답했거든. 내가 너무 나선 것 같기도 했고. 받아들여 줘서 고마워.”

“…네게 감사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 나름 계약자니까.”

그러고 보면 내가 자리에 없었지만 사샤가 상당히 나섰다고 들었다. 일행에게 폭로한 장본인이라고.

“그때 다 말했다고 엄청 싸웠었어. 그러면 안 되었다고.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었대. 계약자라고 해도 너무 끼어들었다고 하더라.”

솔직히 과하게 끼어들었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뭐, 지금도 이해는 안 가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합신이 꼭 필요한 중요한 순간에 고작 그런 것에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래도 계약자니까 나름 생각해서 끼어든 거였는데 말이야. 앞으로는 그럴 일 없겠지만, 주의 정도는 해 보려고.”

현명한 선택이다.

“그래서, 나연이 왜?”

“요새 바쁘다는 것은 알아.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근데 리더님아, 너무 방치하는 거 아냐?”

“……….”

딱히 할 말이 없기는 했다.

내게 최우선은 침공한 거인들을 죽이고 가족들을 만나는 것인 만큼 중층 후반부부터는 바쁘게 움직였었다.

“처음에는 그래, 먼저 애인이 된 둘도 있었고, 이야기하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쳐. 그런데 아예 같이 밤을 보낸 적도 없다면서?”

황제의 일을 도운 이후로는 거의 따로 활동했었고 나연이 돌아온 이후로도 그건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층에서는 그럴 시간이 없기도 했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지금 당장 신경을 써 달라고는 못 하겠어. 그만큼 중요한 시기니까.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나연이랑도 시간 좀 보내. 얘기도 해 주고. 기껏 먼저 행동했으면서 옛날이랑 다를 바가 뭐야?”

“그게 용무냐.”

“응. 이러다가 다시 합신 안 될까 봐 걱정돼서 그래. 기껏 익혔는데 얼마 쓰지도 못할 상황이라고.”

실제로 합신을 한 나연의 능력은 약하지 않았다.

마력이 아닌 정령력을 사용하는 만큼 거인의 저항력을 부분적으로 덜 받기도 한 덕분에 이번 습격전에서 제법 괜찮은 활약을 펼쳤다.

물론 시민 계급의 거인 한정이었다. 상급 정령인 사샤의 힘과 나연의 현재 역량으로는 그게 한계였다.

전사 계급만 되어도 크게 힘이 약화된다.

1등위까지라면 어떻게 피해를 줄 수 있기는 하다만 2등위 수준이 된다면 답이 없었다.

다만 사샤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만큼 미래가 없지는 않았다.

나연이 그 힘을 다 다룰 수 있는지가 문제일 뿐.

친화력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엘프들도 최상급 정령을 다루는 존재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사샤는 나연의 영향을 크게 받기도 하는 만큼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말했듯이 당장은 중요한 시기인 만큼 이해는 하니까.”

“노력은… 하지.”

“그거면 충분해.”

내 대답이 나오고 나서야 사샤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확실히 너무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이지,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한숨을 내쉰 이후 나는 마법사들을 불러들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