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연합
완전히 분노해, 오롯이 나 하나에게만 집중하는 거인은 분명히 강했다.
그러나 이미 나를 뚫기 위해 많은 손해를 봤던 만큼 흐름을 꽉 잡고 있는 것은 나였다.
덕분에 조금씩 상황은 내게 유리해지는 중이었다.
‘집중은 이쪽이 낫군.’
당연한 이야기다. 같은 힘이라도 저쪽은 훨씬 면적이 넓은 편이었으니까.
게다가 상대는 인간과의 싸움에 능숙하지 못한 편이었다.
작은 존재를 상대하는 방법에 약간 미숙한 편이었고, 그에 비해 나는 나보다 큰 상대와 싸우는 것에 상당히 익숙한 편이었다.
1등위라고는 하나 일단 전사 계급과 싸워본 적도 있었고, 2달간 거인들에 대해 확인 또한 했었으니까.
“소인 놈들이! 고작 소인 놈들 따위가!”
미친 듯이 날뛰는 거인은 질릴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사방에 파편이 날아다녔고 대기는 일그러져 마력이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거인의 공격을 간단히 막아내고 피해내며 상대의 상처를 늘리고 있었다.
내리찍고, 휘두르고, 휩쓰는 동작들. 단순한 공격임에도 그 특유의 거대한 덩치와 거대한 무기까지 합쳐지자 가히 자연재해에 가까운 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사이에서도, 여유롭게 빠져나오는 편이었지만.
상대가 사용하는 기술 대부분을 알고 있던 덕분이었다.
감옥에는 전사 계급들 또한 충분했기에 거인들이 사용하는 여러 기술들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게 전투에 큰 도움이 되는 중이었다.
거인들은 그 압도적인 육체를 기본으로 기술은 그 육체의 활용을 위해 가볍게 얹는 편이었기에 대부분의 기술은 비슷한 편이었다. 대부분이 몽둥이를 사용했고, 일부 거인들, 특히 스스로가 작다고 생각하는 거인들은 냉병기를 사용했기에 내 입장에서는 그쪽이 더 까다로웠다.
그러나 내가 상대하는 놈은 몽둥이를 사용하는 놈으로, 이쪽 기술은 대부분 알아 놓은 상태라 내가 상당히 유리한 상태였다.
‘뭐, 뻔하네.’
크게 휘둘러 강하게 대지를 찍는 공격, 통칭 천둥이라는 기술을 가볍게 피해내고는 옆으로 파고들며 팔꿈치를 노린다.
격노하는 와중에서도 팔을 비튼 거인을 향해 검을 조준, 빠르게 무형 강기를 늘려 옆구리를 노리자 급하게 몸을 비틀었고, 그 자리에서 강기를 폭파, 피부를 대차게 긁어 놓았다.
흘러나온 피를 흡수하며 검을 강화하고 분노한 상대가 크게 옆으로 휩쓰는 공격, 해일이라는 기술을 쓰기 무섭게 하늘 밟기를 사용, 허공을 빠르게 밟아대었다.
대부분의 기술이 자연재해의 이름을 갖고 있었고 그 이름에 걸맞게 범위도 위력도 남달랐다. 다만 저렇게 무식한 공격을 당해줄 만큼 허술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얕볼 수는 없었다.
‘주변 마력이 미쳐 날뛰는군.’
기술을 알아볼 때 단순한 휘두르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봤지만, 수준 높은 거인이 사용하자 전혀 다른 위력이다. 당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만.
“네놈… 네놈이……!”
거인은 내가 자신의 공격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피해대자 상황 자체는 짐작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 번의 공격 때마다 주변의 마력이 거인을 돕듯이 강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어떻게든 범위를 넓혀 내 움직임을 방해하고 단 한 번에 으깨버릴 생각인 듯하다.
‘이렇게 인가……?’
주변의 마력을 이용하는 방식은 분명 저쪽이 위다. 그런 쪽으로 발전한 기술을 갖고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못 따라 할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마력의 눈동자로 어떻게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확인하고 내게 맞게 바꿀 뿐.
덕분에 내 주변의 마력은 내가 지배하고 있었다. 솔직한 말로, 거인의 기술은 경지에 다다른 자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돕게끔 만들어진 기술이 대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경지로 찍어 누르는 기술들이라고 할까. 높은 신체 능력과 최상위 종족이라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사 계급은 되어야 기술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내게도 도움이 되는 중이었다.
모든 공격이 무효화되고 내 쪽의 공격은 상대를 갉아먹는다. 점점 상황이 유리해지기 무섭게 조심스럽게 공격을 하나둘 박아넣는다.
실전에서 노릴 수 있는 약점은 어디인지, 2등위 전사의 신체 능력은 어느 수준인지, 내가 가진 것들 중 2등위 이상의 전사들에게 통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본다.
그러면서 차츰 깨달아갔다. 내가 가진 기술들은 하나같이 범위가 너무 좁았다. 다른 죄수들을 상대로 실험을 할 때는 몰랐는데, 2등위쯤 되는 전사와 싸워보자 그 차이가 두드러졌다. 강한 거인들은 그만큼 더 큰 공격을 사용하고 그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마력의 크기도 어마어마하고.
다만 이번 전투는 앞서 말했듯, 내가 너무 유리했다.
“어떻게… 어떻게 소인 따위가 벽을… 그것도 지배하는 자라니…….”
‘진짜였나…….’
지배하는 자. 2등위 전사의 특징이다.
1등위가 막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전사라면, 2등위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마력을 조종하고 뜻대로 다루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등위인 3등위 전사는 공간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사실일 터였다.
‘그거군.’
중층에서 플로어 마스터들이 사용했던, 공간을 찢는 듯한 이동 방식이 떠오른다. 그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아직 거기에 닿지는 못했다.
즉, 내 수준은 눈앞의 거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3등위 전사는 극도로 희귀하다고 했지만 없지는 않을 터다.
이 수준의 전력으로 왔는데도 상층이 전혀 만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여라.”
“…….”
아쉽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눈앞의 거인이 살아남은 마지막 거인이다. 마법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라 연합에 대한 정보를 얻을 놈이 이놈밖에 없었다.
‘못 빼낼 것 같은데…….’
어지간한 고문으로는 단시간에 정보를 뽑아낼 자신이 없었다.
극도로 약화된 죄인들 수준도 아니고, 경지가 낮은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데 아쉽게도 이쪽에 이변이 발생했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아챌 터였다.
그래도 일단 잡기는 해야 한다.
거인이 쓰러지자 일행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겼네. 이게 2등위 거인이구나…….”
“이런 수준이 한둘이 아니라니…….”
“…더 노력해야겠군요.”
“도대체 지구는…….”
지구에 쳐들어온 거인의 수준은 보통이 아니었다. 당시 내 수준이 부족해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최소로 잡아도 2등위, 속 편하게 생각하면 전원 3등위라고 생각해도 될 터였다.
게다가 왕자가 하나.
‘왕족은… 버프였던가.’
일종의 버퍼. 거인들을 축복하고 자신의 수족으로 삼으면 왕족의 수준에 따라 거인들이 더 강해진다.
그렇기에 강한 전사는 더 우수한 왕족을 찾는다고.
왕족의 힘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전사를 거느리면 힘이 나뉜다고 들었다. 게다가 전사의 수준에 따라 차등을 둘 수도 있었고.
지구에 쳐들어온 왕자는 백 개체나 되는 거인을 거느렸고, 그 거인들의 수준은 하나같이 높았다.
도대체 얼마나 강대한 세력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쯧… 빠져야 하나?’
모조리 죽이고 흔적을 지우면…….
아직 힘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문득, 주변에 나서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윤이는?”
게다가 남은주와 주하연 또한 보이지 않았다.
“아직 감옥 내부에 있어.”
의외였다. 곧바로 이쪽으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많이 힘들었나.’
하기야 합동 마법은 실전에서 처음이었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그럼 다른 둘은 도대체 왜…….’
갑작스러운 의문이 들기 무섭게 나연이 내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셋 모두, 지금 중요한 순간이야. 무언가 실마리를 얻은 것 같았어.”
실마리.
말이 끝나는 즉시 나는 감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나서윤과 아멜리아, 이연솔 셋의 몸에서 마력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합동 마법이 끝나는 순간 셋 모두 제자리에 주저앉더라고요. 그리고는 쭉 이런 상태에요. 마력을 모두 사용해 탈진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더라고요. 마력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벽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일단 지켜보고 있었어요.”
만약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사실상 남은 거인은 내가 상대하고 있는 한 개체뿐이었고,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이는 데다가 끼어드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기에 그냥 이쪽을 우선했다고 덧붙였다.
옳은 선택이다.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셋 모두 사실상 막바지인 상태였다.
회로가, 끊임없이 확장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긴장된 표정으로 셋을 바라보고 있자 가장 먼저 나서윤이 눈을 떴고, 곧바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깜빡.
“오빠?”
“축하한다.”
상황은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서윤이, 벽 하나를 넘었다. 정확히는 그랜드 마스터는 아니다. 마법사로서 발전한 듯했다.
“최상급 마법사인가?”
“응. 합동 마법으로 증폭된 마력을 몸에 받아들이고 조종해 봤더니, 몸 전체의 회로가 확장되어 버렸어.”
동시에 새로운 관점으로 마법을 고찰하다 보니 벽을 넘어섰다고.
생각지도 못한 효과였다.
“마력 자체도 크게 늘어났어. 그래도 아직은 100이네.”
최상급 마법사. 다른 말로는 마도사라고도 부르는 존재.
마법사와 전사는 그 발전 방식이 다르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그랜드 마스터에 비해 약간은 떨어지는,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도 방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준비만 된다면 그랜드 마스터에게 죽음을 선물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괴물들.
그게 최상급 마법사였다.
곧이어 아멜리아와 이연솔이 깨어났고, 셋 모두 벽을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회차의 아멜리아 수준에 근접했군.’
당시의 아멜리아 또한 최상급 마법사였다.
다만 스킬과 갖가지 아이템이라는, 수련자 특유의 힘이 더해지자 평범한 마도사보다는 분명 강했기에 대마도사라 불렸었다.
아직 그 수준은 되지 못했다.
‘본인은 그 별명을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았었지만.’
진짜 대마도사라 불릴 수 있는 존재는 중앙 마탑의 탑주 뿐이라고 말했었다.
최상급 마법사가 셋. 전력이 크게 상승한다.
나서윤이 그랜드 마스터까지 된다면,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나머지 둘에게도 축하의 말을 전했다. 곧바로 나서윤이 물었다.
“오빠, 어땠어? 2등위 전사는?”
“…나랑 비슷한 수준이야. 일단 사로잡기는 했는데…….”
내가 2등위 전사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에 주변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워낙 내 수준이 독보적이었기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없기는 했다. 그런데 내가 내 입으로 2등위 전사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해버리자 거인들의 강함이 조금 더 크게 체감이 되는 듯했다.
“…도대체 3등위라는 놈들은…….”
길드원들의 표정이 굳는다.
“일단 수송단원을 몰살시킨 이상 이쪽에 이상이 생겼다는 정보가 알려질 거야. 그 전에 공격을 하거나… 힘들면 이쪽에서 철수할 생각이다.”
“철수를요?”
“네. 상대가 얼마나 강한 세력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공격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력의 보충이 불가능한 이상 최대한 안전하게 갈 생각입니다.”
최대한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마물이라도 잡으며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여신상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 말에 길드원들이 침묵한다.
정보를 얻어야 할 대상이 하나 빼고는 모조리 죽어버렸고, 내 수준이 정확히 파악이 된 상태로 나보다 더 강한 거인이 있을 수도 있는 곳에 함부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오빠. 일단 하나는 잡았다고 했지?”
“그래.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가장 강한 놈인 만큼…….”
“일단 걔 데리고 오자.”
나서윤이 조금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정보,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나서윤이 아멜리아와 이연솔을 바라보며 말했고, 둘 또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대답을 구하듯 셋을 바라보았고, 아멜리아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시스템 상점에, 정신 계통의 마법이 있었어요. 그쪽 계통이 너무 어려워서 저희 수준으로는 어려웠었는데…….”
셋은 막 벽을 넘어섰고, 지금 마도사라 불리는 최상급 마법사가 된 상태.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