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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53화 (253/317)

253화

슬슬 때가 되기는 했었다.

거인들이 접근해오고 있다는 길드원의 말에 빠르게 준비가 이루어졌다.

애초에 정보가 있었던 만큼 다들 대비 정도는 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규모는?”

“제법 큽니다. 전사 계급으로 보이는 이들은 둘 정도였지만, 그 이하 계급으로 보이는 이들이 거의 쉰 가까이 되었습니다.”

식량 규모를 생각하면 규모 자체가 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도 자신들의 영역인 만큼 인원은 적게 보낸 것 같습니다. 주변에 마물들도 없고…….”

옳은 말이다. 연합의 영역 중 외곽에 가깝다고는 하나 일단은 연합이 점령한 영역이다. 마물들마저 제대로 저지하지 못하는 곳에 시설을 두었다면 이곳에 있던 병력 수준만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얻은 정보에 따르면 강력한 마물은 생각보다 많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점령하기 전에 이곳에 존재한 거인은 백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중 11개체를 제외하면 전원이 감옥에 갇힌 신세였고, 보급되는 식량은 정말 최소한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이 넘는 거인들이 계절 하나 동안 사용할 식량들이다. 그 규모가 작을 턱이 없었다.

“…그래도 그 정도라면 충분히 정면으로 붙어도 될 것 같은데요?”

나서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우리의 전력은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지구로 갈 수는 있다. 게다가 누군가가 먼저 죽어 지구로 간다고 한들 멈춘 시간이 흐르지도 않는다.

시간이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계약자인 내가 완전히 죽어버리거나 지구에 도착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니 먼저 죽는다고 해도 지구 자체에 큰 위험이 닥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소멸하니 결국에는 손해라고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최대한 안전하게, 많은 수를 살릴 필요가 있었다.

‘저 정도 전력이면 손실은 없겠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안전하게 가고 싶었다.

“합동 마법, 기왕에 얻었으니 한 번 사용해 보자.”

“익히기는 했지만 다들 숙련도도 낮고 준비도 오래 걸리는 데다가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아요. 스킬화가 되기는 했지만 발전의 여지가 많은데…….”

미완성인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완성이라도 충분해. 스킬화가 된 시점에서 충분히 기술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거잖아?”

게다가 전설급이다. 어지간해서는 그렇게 되기가 힘들었다.

그 무공들 중에서도 전설급으로 인정받은 것은 정말 적었다. 그나마 왕춘의 팔선무 정도나 전설급 스킬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셋이서 만든 스킬이 전설급으로 인정받았다. 그건 그만큼 가능성과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그 마법이면 일단 인원 손실은 줄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실전 데이터는 충분히 도움이 될 터다.

실전에서 사용할 경우 위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인 듯했다.

“그럼 저도 직접 나설게요.”

처음인 만큼 그녀를 포함한 셋이서 직접 나설 셈인 듯했다.

아까운 전력이기는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라이칸스로프 또한 소환을 해 놓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래 유지는 할 수 없으니 아마 도착하면 소환할 터. 우선 준비를 위해 나서윤이 자리를 비웠다.

거인들이 접근해 오는 사이 하나둘 준비를 마쳤고, 육안으로도 크게 보일 정도에 다다랐을 때 합동 마법마저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였다.

커다란 마법진 위에 하급 마법사들과 중급 마법사들이 나누어져 서 있었다. 위치 자체는 정해져 있는 듯했다. 보이는 마법진은 3개로 한 마법진에 각각 100여 명의 마법사들이 올라가 있었다.

‘본래는 마력을 모으는 마법진이었다고 했던가?’

그마저도 시스템 상점에서나 볼 수 있는 고난이도의 마법이었고, 그걸 변형해 마법진 위의 마법사들이 같은 마법을 사용하면 상위의 마법으로 변형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말로는 쉽지만 그걸 위해서는 보통 어려운 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상급 마법사의 부담이 상당하다고 한다. 특히 하급 마법을 중급도 아니고 상급으로 변형시킨다는 것부터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다수의 하급 마법사와 상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상급 마법사가 필요하다고.

즉 상급 마법사를 필두로 하급 마법사들이 힘을 보조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수준이 부족해 100명 정도의 힘을 모으는 것이 고작이고, 일일이 마법진까지 다 그려야 한다고. 훗날 목표는 300명 이상의 힘을 모으는 것이며 특별히 마법진까지 그릴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접근하는 거인들이 순간 멈추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 이곳은 우리 뤼터 연합의 영역이다. 누가 감히… 비셉은 어디에 있지?”

마력이 담긴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비셉. 내가 상대했던 전사 계급의 간수 이름이었다.

‘전사 계급이라는 건가…….’

하기야 비셉은 언제나 자신의 기운을 숨기지 않았었다. 그러니 하유진이 미리 알아챌 수 있었던 거였고.

그런데 그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의아할 수밖에.

우리들이 기운을 숨기기는 했으나 상대는 보통이 아니었다.

‘저 문양은…….’

2등위 전사.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대강 자신의 계급을 증명하는 표식 정도는 있다고 한다. 나머지 한 명의 전사는 1등위 전사로 보였다.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방심하기 힘든 수준. 확실히 1등위보다 위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쉽게 상대할 놈은 아니다.

어차피 숨어 봐야 의미가 없었다.

나는 나서윤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마법 목표는 1등위 전사와 일반적인 거인들로.

―네.

나는 곧바로 앞으로 나섰고, 그런 내 뒤로 길드원들이 따라붙는다.

“…소인?”

그런 우리를 본 거인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타 세력 거인 정도를 예상한 듯했다.

“여기는 우리가 점령했다. 꺼져.”

일부러 짧게 끊어 말한다.

상상하지 못했던 존재가, 예상치 못했던 말을 했기 때문일까. 순간 거인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곧바로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소인이 이곳에 있는 것도 모자라 감히 점령을 운운해? 비셉! 비셉은 어디 있느냐!”

당연하지만 이미 죽은 놈이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저 거인도 그 정도는 금세 알아챘다. 다만 사실을 의심하는 듯했다.

“하. 모자란 놈. 소인에게 감옥을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 죽기까지 했다고? 전사라는 놈이? 후방에 빠져있으니 그리 녹슬었나!”

곧바로 분노가 터져 나온다.

“전원, 전투를 준비하라! 저 건방진 소인 놈들을 모조리 찢어버리리라!”

가장 높은 계급을 가진 거인의 말에 타 거인들이 하나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호송인원이라고는 하지만 전원이 병사거나 노예인 것은 아닌 듯 장비의 차이가 심하게 느껴졌다.

빠르게 달려오는 거인들을 보며 나는 힘을 개방한 채 가장 강한 2등위 전사를 향해 홀로 달려나갔다.

그러면서도 약간 경로를 트는 것을 잊지 않았다. 휩쓸리면 우리 쪽 피해가 당연히 더 크다.

동시에 뒤쪽에서 라이칸스로프가 소환되는 기척이 느껴진다.

단숨에 이쪽 전력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거인의 얼굴이 누렇게 떠버렸다.

“소인이… 벽을 넘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숫자의 힘으로 당했다고 믿은 모양이다. 이쪽에 마스터가 다수고 벽에 근접한 이들도 보였던 만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늦었다. 경지가 가장 높은 나와 2등위 전사는 이미 서로 상당히 근접해버린 상태였다. 우리 둘의 충돌은 개전의 신호가 되어버렸다.

“흐읍!”

콰아아아앙!

마력을 끌어올리고 강렬한 힘으로 상대를 쳐버린다.

단숨에 거인이 몇 발자국이나 밀려났고, 인간인 내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함에 경악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방심했던 거인은 자칫하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진지한 얼굴로 수비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나는 상대를 전장에서 최대한 이탈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정보가 없는 거인은 그러한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고, 그게 패착이 되었다.

어느새 거인들은 대비를 하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거의 근접한 상황이었다. 전장에서, 나와 2등위 전사만이 한걸음 떨어진 상태였다.

후웅―.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전장을 휩쓴다.

거인의 표정이 다시금 일변했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격류.

이 정도 마력으로 사용되는 마법이라면 거인들도 쉽게 방심하기는 힘들 터다.

‘합동 마법에… 마력을 증폭시키는 힘도 있던 건가?’

대략적인 이야기만 들었기에 나 또한 살짝 놀랐다.

화르륵.

전장에 거대한 불의 벽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그 크기가 범상치 않았다.

10, 20, 30…….

단숨에 거대한 크기의 벽이 생성되어 순식간에 달려드는 거인을 가두기 시작했다.

쾅! 콰쾅!

내부에서 강렬한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려온다.

‘폭발 속성까지 섞은 건가?’

상급 마법에 속성을 부여한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서윤도 하급 마법을 사용할 때나 자주 했던 방식이다.

중급이나 상급쯤 되면 마법 자체에 여러 속성이 붙어 있고 굳이 추가로 속성을 부가하는 것보다는 한 차례 더 마법을 쓰는 편이 낫기는 하다.

그러나 거인의 마법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마법 하나를 강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렇기에 저런 방식을 선택한 듯했다.

거기다 마법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한 차례 더 마력의 파동이 스쳐 지나간다.

이전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 마력의 파동이 불의 벽을 하나 더 전장에 등장시켰다.

이전에 사용한 것보다는 조금 작으나 만만치 않은 크기였고, 이어 같은 과정이 또 한 번 이어짐으로써 또 하나의 불의 벽이 등장, 거인들은 3개 벽에 갇힌 꼴이 되어버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벽이, 천천히 중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내부의 공간이 좁혀질수록 높이가 높아지고 불꽃의 색깔이 점점 진해져 갔다.

쾅!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내부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벽이 움찔거리며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온다.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내 눈앞의 거인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비켜! 비켜라, 소인!”

웃기는 말이다. 순순히 비켜줄 이유가 없었다.

최대한 나를 지나치기 위해 노력하는 거인은 상당히 빈틈이 늘어나 버렸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인의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늘어난다.

그러자 늘 그렇듯 피가 빠르게 뽑혀 나오기 시작했고 거인은 점점 수세에 몰려갔다.

서로의 입장이 바뀌어버린다. 나는 최대한 방어에 몰두하고 상대는 어떻게든 나를 지나치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단지 다른 점은 아까의 거인처럼 뒤로 쉽게 물러나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작 2m도 채 되지 않는 내가 10m를 가뿐히 넘기는 거인을 막아서는 것은 멀리서 본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처럼 보였겠지만, 내가 가진 에고 웨폰과 거대한 마력, 선을 넘어버린 능력치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거인이 더이상 무리를 한다면 내 손에 손쉽게 죽어버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마법이 끝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중앙을 향해 뭉쳤던 불길이 완전히 사그라졌을 때, 남은 것은 완전히 익어버린 거인 한 개체뿐이었다.

아마도 전사 계급이었던 거인일 터. 나머지 거인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광경에 공세를 취하던 거인의 공격이 무뎌진다.

상상 이상의 마법의 위력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거인의 마법 저항력을 완전히 뚫어버리는 마법. 드래곤의 마법이 저러할까.

심지어 아직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는 마법이다.

“크허어어어엉!”

완전히 분노해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달려드는 거인. 더는 수세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상대를 향해 마주 달려나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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