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남은주가 말한 곳은 지하가 아닌 1층의 구석진 공간이었다.
거인들이 보기에는 쥐구멍에 불과한 크기. 사람 하나가 허리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이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졌고, 내부 공간은 상당히 넉넉했기에 들어갈 때 빼고는 불편하지는 않았다.
안을 둘러보기 무섭게 중앙에 방치된 익숙한 형태의 여신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은주의 말대로였다.
이건 대신전에서 보았던 여신상과 같은 형태였다.
특별히 느껴지는 기운은 없었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다가 슬쩍, 여신상에 손을 올려보았을 때였다.
띠링-.
[상층에 거점을 마련하였습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메시지 창.
이어서 연속적으로 메시지 창이 튀어나왔다.
[미션이 부여됩니다.]
[상층]
-상층, 거인의 지대에 거점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거점을 중심으로 거인의 층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조건 : 모든 거인의 세력을 무너뜨릴 것.
-보상 : 시련의 탑 수료.
그리 길지 않은 메시지. 하지만 무척이나 중요한 정보였다.
목적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다.
가설이기는 했지만 여기서 벗어나려면 모든 거인을 죽이거나 적어도 대부분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영역 전체를 수색해 출구를 찾던가 그마저도 아니라면 있는지 모를 NPC라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군. 목표가 명확해졌으니까.’
물론 미션이 NPC를 찾는 것이라고 했어도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 거인을 상대해봐야 하기에 결국에는 비슷한 일이 될 터였다.
지구의 거인을 상대하기 위해 거인에 대해 알아야 하고, 수많은 경험을 쌓아야만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쪽이 한없이 불리하다.
‘안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조건도 있고.
내 휘하 모든 길드원들이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능성이 있는 이라고는 다섯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솔직한 심정으로 나서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에게는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었다.
가능성이 없다고는 하지 못한다. 다만, 큰 기대를 하기에는 벽을 넘어본 입장에서 어지간하면 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서윤이야 나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자원을 갖고도 나를 바짝 추격해 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나서윤의 능력치만 봐도 전체가 100에 근접하거나 이미 100을 달성했다. 이전보다도 더욱 성장한 능력치다.
듣기로는 잘 오르지 않는 근력이나 체력이 99에 달하면 자유 능력치를 쓸 예정이라고.
마력은 이미 100을 달성한 상태였다.
내가 온갖 스킬과 영약, 장비의 힘을 최대한 이용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나서윤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이런 식이었구나…….”
내가 미션을 받기 무섭게 나와 함께 이동해왔던 인원들 또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드 단위로 이동해 온 만큼 대표인 내가 미션을 받기 무섭게 공유가 된 모양이었다.
다른 곳에 있는 이들도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목표는 알았네요.”
“뭐, 원래 계획이랑 일치하기는 하네.”
주하연과 사샤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인다.
미션을 주고 나자 평범했던 여신상에서 강렬한 신성력이 피어올랐다.
그러자 곧바로 눈앞에 또 다른 메시지 창이 떠오른다. 내용은 무척이나 익숙했다.
“…제단의 역할도 하는가 본데.”
전직이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장소인 모양이었다.
스킬 목록을 훑자 중층에 비해 한결 좋아진 스킬들이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중층에 비해서다. 나름 유용한 스킬들이 몇 눈에 띄었지만 이미 내 슬롯은 더 좋은 스킬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골드로 구매 가능한 상점표의 한계였다.
‘차라리 여기서 살 바에야 네비오스와 거래해서 시스템 상점을 이용하는 것이 낫지.’
그쪽은 정말 귀하고 유용한 스킬들이 넘쳐 흘렀다.
게다가 포인트를 얻을 방법도 생겼다.
네비오스는 상층 거인의 시체를 비싼 값에 사 주었다.
‘거인의 몸은 쓸 데가 많다고 했던가?’
덕분에 포인트 공급처마저 생겨버렸다.
하기야 거인은 드래곤과도 비견되는 최상위 종족이다. 그 몸이 전혀 쓸모가 없을 리가 없었다.
‘마법 저항력이 존재한다고 했었지.’
거인 자신은 실드 같은 개념을 빌리기는 하지만 거인의 육체, 그 부산물들은 특수한 처리만 한다면 가죽부터 피까지 전부 마법 저항력을 띠게 만들 수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눈과 같은 기관, 뼈, 치아 힘줄 등도 여러모로 사용된다고 하니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버릴 곳이 없는 생명체라고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길드원들도 많지는 않지만 하나둘 네비오스와 거래를 할 포인트를 분배받을 수 있었다.
길드원들의 등급이나 활약상에 따라 차등을 주는 편이기는 했지만.
“고생했다. 은주야.”
“아뇨. 저도 우연히 찾은 거라서…….”
결국 누군가가 발견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최초 발견자는 남은주다. 그것도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덕분에 상층에서의 목표를 한층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정보를 중요시했지만 목표를 보아하니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할 듯했다.
거인들은 여러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좋은 꼴을 보기 힘들 터다.
물론 여기는 외진 감옥이고 주변에 있는 도시는 약소 도시들이 연합한 이들이라고 하니까 하나둘 조심스럽게 잡아먹을 필요가 있었다.
‘2달. 2달 안에 거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뽑아야겠네.’
정확히는 우리가 거인을 상대할 방법에 관한 실마리들이다.
마법사들이 적극적인 만큼 성과는 나올 터다.
상층에 대한 정보는 마땅히 얻을 곳이 없었다.
그나마 죄수인 거인들로부터 뽑고 있기는 한데, 대부분 장시간 이곳에 갇힌 이들이기 때문인지 생각만큼 많은 정보를 얻지도 못했다. 심지어 감옥인 이곳의 위치조차 잘 모른 채 잡혀 온 이들이 대부분이라 대략적인 정보는 몰라도 도시의 위치나 현재의 세력의 크기 등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상당히 부족했다.
조각 정보들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 식량을 주기 위해 찾아온 이들을 처리해 필요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적어도 식량을 가져오는 만큼 감시탑에 대한 정보나 부족 연합에 대한 정보 정도는 갖고 있을 테니까.
여신상을 끝으로 감옥을 완전히 접수한 우리는 2개월간 거인에 대한 분석에 몰두했다.
조각 정보라고는 해도 얻은 정보에 따르면 현재 우리 수준으로 미션을 정면으로, 완전히 완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딱히 동맹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있을 정도의 도시쯤 되면 못 해도 전사 계급이 열은 넘는다고 한다. 가장 큰 두 부족은 백 가까이 된다고. 전사가 되지 못한 거인들도 위협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애초에 종족이 다르니까.
그런 도시가 몇 개나 된다. 조각으로 얻은 정보만 모아도 연합을 포함해 벌써 6개가 넘는 도시가 확인되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터다.
개인 전력은 떨어지지만 지구를 침공한 이들은 넓게 흩어진 것에 비해 이쪽은 뭉친 만큼 지금 상황에 한정해 난이도는 이쪽이 더 높을 지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냥감이기는 하나 곳곳에는 마수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수준이 낮지 않다는 정보도 들었다.
일부 마수들은 전사가 아니면 사냥조차 불가능하다고.
이전 나서윤이 가져온 적은 정보 때문에 거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지구를 공격해 온 직접적인 종족인 만큼 마법사들은 광기에 차 그들을 연구했다.
나서윤과 아멜리아, 이연솔을 필두로 실제 거인에 대한 연구를 한 결과는 처참했다.
500의 마법 병단 중 절반은 하급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전혀 전투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진짜 10m가 넘는 거인들의 마법 방어력은 보통이 아니에요. 하급 마법은 아무리 많이 써도 별 도움이 안 되네요.”
“저희가 마법 방어력을 무너뜨린 뒤라면 어떻게 되기는 하는데… 그마저도 그렇게까지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서…….”
“시스템 상점을 확인해 봐야겠는데요 뭐 쓸만한 거 없으려나?”
게다가 내가 상대했던 놈처럼 전사 계급쯤 된다면 마법 방어력은 더 증가하고 상대하기가 더더욱 까다로워진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외의 길드원들은 거인 몇몇을 풀어둔 채 끊임없이 덤벼들어 수많은 전투 데이터를 쌓아갔다.
때때로는 목숨을 걸어가며 전법을 연구했고 조금이라도 더 적은 수로 수월하게 거인을 상대할 방법들을 찾아갔다. 팀워크를 맞추고, 전문적인 사냥 방법을 체득해 간다.
고난의 신전이나 개인 수련 등을 통해 부족한 자신의 실력을 키우려는 행동은 흔하게 보이는 풍경이 될 정도였다.
원체 우리 길드 자체가 개인의 기량 발전을 당연시했었던 데다가 점점 지구로의 귀환이 가까워지자 초조해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특히 마스터의 벽은 다들 어떻게든 넘으려는 모습이었다.
나와 내 파티원들 또한 당연하게도 노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나는 내 신체를 한층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과 가진 스킬들을 체화시키기 위해 움직였고 다른 파티원들은 길드원들을 활용할 방법과 나를 제외하고도 자신들의 힘으로 전사 계급 이상의 거인을 상대할 최선의 조합 및 전법을 개발해 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서윤이 희소식을 들고 찾아왔다.
마법사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다는 소식이었다.
“어떻게?”
“합동 마법. 도저히 지금대로 마법사들을 쓸 수가 없어서, 새로 개발해 냈어. 아직 준비가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 냈다고?”
“응. 정확히는 완벽한 창조까지는 아니야. 수정해야 할 곳도 많고. 시스템 상점에서 힌트가 될만한 마법서 등도 사야 했고, 우리가 쓸 수 있게 개발도 해야 했으니까. 운도 제법 따라줬어.”
실험할 재료, 즉 거인이 많았던 덕도 보았다고 덧붙였다.
나서윤과 아멜리아, 이연솔.
상급 마법사에 도달한 셋이 지금 상황에 필요한 마법을 만들었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법을, 변형이라고는 하지만 만들어 냈다는 것부터가 미친 일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초기 단계고, 아직 수정할 곳이 많아서 완전해진 이후 자세히 알려주겠다는 말에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가능성을 찾았고 효과는 있어서 일단 보고차 왔을 뿐이라고.
아무리 상급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완전한 창조가 아닌 기존 마법을 베이스로 두고 상황에 맞게 변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수십 년을 마법에 매진해 온 거주민 마법사들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걸 셋이 해냈다는 말이다.
‘…대단하군.’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더 지났을 때 대강 초안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가능성을 확인했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셋이 만들어낸 마법은 전설급 스킬로 시스템의 인정을 받았고, 두 가지 형태로 분화되었다.
전설급 스킬인 덕분에 모든 수련자들이 마법을 익혀내는 것이 가능했다. 셋은 그 결과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스킬화가 되지 않았더라도 익힐 수는 있게 만들었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릴 것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킨 것이었으니까.
최소한의 준비가 끝났을 때, 식량을 지원하기 위한 거인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