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전투 자체는 일방적이었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집중된 거인도 있었고, 강기로 전신이 난자된 거인들도 있었다.
여유가 된다면 최대한 생포하라고 했지만, 첫 전투인 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거대한 마수 등을 상대로 연습을 하기는 했으나, 진짜 거인은 그 수준이나 힘이 달랐고 전투 방식이나 그 특성도 달랐다.
저들은 부족하나마 분명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포가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이쪽이 부족하거나 그 힘이 비등비등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상대하는 간부 간수를 제외하면 아무리 미숙해도 길드원 10명 선에서 정리가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내가 데려온 길드 소속 마법사는 500명을 초과했고 정예 길드원들 또한 500에 가까웠다.
전투에서 잃은 이들이 있었지만, 산하나 길드 가입 희망자들 중에서 엄선되고 힘든 과정을 거친 이들이 조금씩이나마 포함되었고, 덕분에 상층에 온 전력은 최정예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천에 가까웠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진짜 거인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다. 아마 제대로 경험을 쌓기 전에 거인들이 먼저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살아남은 거인은 고작 셋에 불과했다.
내가 상대한 놈 또한 상처가 이곳저곳 있기는 했으나 숨은 붙여 놓았으니 11명의 거인 중 4명은 생포한 셈이었다.
‘뭐 지하에 갇힌 놈들은 많으니까.’
부족하겠지만 정보나 실험은 충분히 가능하다.
전투가 끝난 직후 나는 내 검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주변의 피를 게걸스럽게 챙기고 있었다.
[흡혈검(吸血劍)]
―등급 : 전설
―피를 머금고 성장하는 마검. 피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공격력이 상승하며, 주인의 상처를 회복시킨다. 동시에 마검답게 주인을 잡아먹으려는 악독한 본능을 간직하고 있다. 소유자는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공격력 : 100(+흡수한 피의 양에 비례, 마력에 비례)
―옵션1 : 피를 먹을 경우 일정 시간 동안 추가로 공격력 상승.
―옵션2 : 피를 먹을 경우 소유자의 상처 및 마력을 회복시킨다.
―옵션3 : 상처 회복 시 일정 확률로 상태 이상 '광기'에 빠져들 수 있다.
―정보 추가 : 등급 상승 가능(조건 미충족)
전설급으로 진화하며 공격력이 상승하고 옵션 일부가 변경되었다.
피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끝도 없이 강해지고, 마력에 비례해 공격력이 상승한다는 점은 나서윤의 모랄타와 닮았다. 물론 피를 통해 올릴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게다가 이제는 상처뿐만이 아니라 마력까지 회복시켜준다.
물론 여전히 광기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것에 무너질 내가 아니었다.
‘살해 본능이 걸리기는 하지만…….’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다.
옵션에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과거에도 있었던 피를 먹이면 부서져도 수복하는 기능까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과거의 소문이 사실이기는 했었지…….’
정보 추가 덕분에 흡혈검은 전설 등급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전설급 흡혈검이 더 상위의 무기를 얻기 위한 재료라고 했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지 아직은 조건을 하나밖에 알지 못해서 그렇지.
‘수준 높은 적의 피를 먹이라고 했던가?’
여기 있는 거인들의 피는 저기 간부 놈의 피 말고는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0.1%도 채 오르지 않았다.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다.
가만히 피를 흡수하는 흡혈검을 바라보는 사이 일행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어마어마하네요. 언제 또 그렇게 강해졌는지…….”
“환골탈태 한 번 더했다고 했을 때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형. 의심했어요.”
하유진 뿐만이 아니었다. 나연과 사샤 또한 조금 어색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책하지 마라.”
나는 내가 생각했던 가설, 거인에게는 그 힘을 더 거대하게 느끼게 하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했다.
“확실히… 강하기는 했는데, 솔직한 말로 라이칸스로프보다 조금 위 수준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그러게. 신후 오빠가 워낙 쉽게 때려잡은 것도 있었지만, 처음 느꼈던 것만큼 강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았어.”
“라이칸스로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것 같았는데 막상 보면…….”
확실히 직접 보니 힘의 판단을 제대로 해낸다.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스킬 숙련도와 백업인 길드원들과의 합까지 맞춘 지금의 일행들이라면 라이칸스로프 정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특히 마법사들의 수준과 새롭게 배워온 협동 마법들의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전투의 승리로 다들 얼굴에 기쁜 표정이 어렸다.
생각보다 쉬웠다거나, 아직은 초입이니 방심하면 안 되지만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들 사이에 가득 차올랐다.
“다들 고생…….”
“빌어먹을… 어쩌다가…….”
“…깨어났나?”
내 손에 반쯤 죽어버린 거인이 중얼거린다.
“너희들은… 뭐냐? 우리의 땅에… 인간은 없을 터인데…….”
‘…정말 하나도 없는 건가?’
그렇다면 조금 아쉽다. NPC의 마을 같은 것도 없다는 뜻이니까.
“거인들이 있다는 말에 찾아왔다만?”
“…크하하하. 미쳤군. 고작 우리를 이겼다고 기고만장해하는 꼴을 보니 실력은 몰라도 정신은 딱 소인의 그것이로구나.”
거인의 비웃음에 길드원들의 표정이 좋지 못하게 변했다.
하기야 저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 거다.
죄인만 백 단위가 있는 교도소다. 거인의 구간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인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탑의 특성상 위 구역으로 올라갈수록 수준이 높아질 것을 감안하면…….
‘아니 오히려 낫지.’
죽더라도, 수준 높은 거인들과 싸워 봐야 한다.
지구의 상황을 생각하면… 고작 이런 수준의 거인들을 쓰러뜨렸다고 좋아하기는 힘들었다.
길드원들도,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을 터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가 막 도착해서 이쪽에 대한 정보가 없다. 거인들의 마을이나 성은 어디에 있지?”
“…제대로 미쳤군. 제정신인가? 고작 나를 이겼다고… 컥!”
나는 거인의 팔을 검으로 찔러버렸다.
단순히 찌른 것이 아니다. 흡혈검이 산채로 피를 뽑아내고 내게 귀속된 피를 이용해 피의 주인 스킬을 사용, 내부에서 가시를 만들어 마력 회로를 건드렸다.
고작 팔에 존재하는 마력 회로를 건드렸을 뿐인데도 거인이 고통에 몸을 떨었다.
“너 말고도 정보를 줄 놈들은 많아. 순순히 줄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군.”
나는 가볍게 비웃음을 지었다.
“형, 그런 것은 제가 할게요. 일단 쉬세요. 내부도 점령해야 하고… 여기 우리가 쓸 거죠?”
“그렇기는 한데…….”
하유진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애가 할 말은 아니기는 한데, 솔직히 나보다 전문가인 것은 사실이라 말문이 막혔다.
이곳을 써먹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일단 거인만 100단위로 있는 곳이다. 그들을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든 만큼 이곳을 점령해야 하기는 한다. 마법사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확인할 것들이 한둘이 아닌데 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결국 특별히 큰 문제만 없다면 이곳은 당분간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될 터였다.
내가 반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하유진이 외쳤다.
“윤형이 형! 암살자 애들 데리고 이쪽으로 와 주세요! 몸이 커서 혼자서는…….”
“바다 씨, 우리는 안쪽을 점령해야 할 것 같아요. 나연아, 내부도 확인했다고 했지?”
“네. 사샤도 같이 갔으니까 길은 다 알아요.”
“당연히 다 외웠지. 내가 어떤 정령인데?”
“그럼 일단 내부를 점령해야…….”
“저도 따라갈게요.”
“거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당연히 가야죠. 서윤이만 실험해 봤다고 해서 얼마나 부러웠는데…….”
이연솔과 아멜리아 또한 내부 점령에 손을 보탠다.
순식간에 이뤄지는 협력에 나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역할을 알고 빠르게 행동한다.
처음에는 거인과 처음 부딪치며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도 한 번이다.
가장 어려운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이후로는 더더욱 수월할 터.
안 그래도 수준이 올라갈 텐데, 정예로 모아온 이들이 그딴식으로 행동하면 곤란하다.
주변의 분주함을 뒤로 한 채 나 또한 감옥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 * *
“그러니까… 진짜 인간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네. 일단 여러 이종족을 노예로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중에는 인간도 있는 모양이에요. 하지만 그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냥 노예니까.”
마을을 이루고 우리와 협력 내지는 거래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하는데, 거인들의 노예라면 별 쓸모가 없었다.
“그래도 주변 지도나 거인들의 도시 위치도 알아 왔어요. 도시로 가려면 감시탑 몇 개를 뚫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몇 개밖에 못 알아냈어요.”
“충분해. 잘했어.”
“뭘요, 제 일인걸요?”
하유진이 가져온 정보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상층, 거인의 구역에는 거인들이 서로 싸우는 일종의 춘추 전국시대 같은 곳이었다.
도시 단위로 부족을 이루고, 여러 부족들이 전쟁을 하는 형태.
이곳은 변방의 작은 부족 연합의 영토 중 하나였다.
공동으로 관리하는 감옥 중 하나라고 했던가?
다행히 정원이 가득 차는 바람에 이쪽에서 먼저 비었다고 연락을 하지 않는 한 저쪽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일은 없을 듯했다.
식량은 계절 단위로 오는 모양인데, 아직 2개월 이상의 시간이 남았기에 당분간 걱정은 없었다.
“마법사들은 다 같이 지금 실험에 미쳐있어요.”
“고생이 많네.”
“감옥의 힘 때문에 약해진 이들투성이라 잘 먹이고 잘 재우면 제대로 된 거인의 힘을 되찾아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저번처럼 전사인 것 같으면 바로 부르고.”
“네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전사 계급. 거인들의 계급 체계는 단순했다. 노예, 시민, 전사, 왕족. 이렇게 넷뿐이었다.
물론 전사라고 모두 같은 전사는 아니었다. 각자 1등 전사니 2등 전사니 하는 계급이 있었다. 높을수록 강하다고 했던가?
내가 싸운 간수는 고작 1등 전사에 불과했다.
이 감옥에는 포로로 잡힌 전사들 또한 있었고, 그들은 힘을 회복하기 무섭게 날뛰어 우리를 상당히 성가시게 만들었다.
그래 봐야 큰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제압당했지만.
“신후 오빠.”
“음?”
남은주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기 감옥 맞지? 그것도 거인 전용의.”
“…그렇다만?”
“근데… 조금 이상한 게 있어.”
잠시 멈칫거렸던 남은주가 입을 열었다.
“여기 신전이 있어. 사제가 없기는 한데, 제단도 멀쩡하고, 여신상도 있어. 그런데…….”
‘거인도 종교가 같았던가?’
조금 이상하다.
“그게, 거인 사이즈의 여신상이 아니라 우리, 그러니까 인간들이나 사용했을 법한 크기야. 게다가… 대신전에서 본 거랑 모양이 똑같은 여신상이었어.”
나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