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우리가 복귀하기 무섭게 길드원들이 반색한다.
“괜찮아요? 별문제는…….”
“괜찮습니다. 큰 문제 없었어요. 전부 제 눈으로 확인했고요.”
내 말에 주하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가 강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가 거인인 이상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이해는 한다.
그래도 곧 있으면 날이 샐 텐데 아직까지 잠든 길드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들 잠이 오지 않은 듯했다.
“…확인 결과, 강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내 말에 길드원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러나 하유진과 나연, 사샤의 표정에는 아직도 아리송하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돌아오기 전에 내가 느꼈던 바를 하유진과 나연, 사샤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경비병이나 죄인들에 관해서는 내 의견에 동의했지만, 마지막 나를 죽였던, 간부로 보이는 간수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동의하지 못했었다.
“고작 마흔, 그것도 저희가 포함되면 더 적게도 상대 가능하다고요?”
“솔직히 말해서, 내 직속 파티원인 너희들만으로도 충분히, 여유롭게 잡을 수 있는 수준이야.”
“서윤이 누나의 소환수를 제외하고도요?”
“그래.”
나서윤의 소환수는 중층에서 내게 복종을 표했던 라이칸스로프였다.
그냥은 상층으로 올라올 수 없기에 네비오스를 통해 포인트로 스킬을 구입했고, 슬롯에 여유가 있었던 나서윤이 익혀 소환수로 삼아 상층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다만 이전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없었다. 나서윤의 수준이 부족했고, 내가 없으면 사용이 불가능했다. 나서윤의 명령에 쉽게 복종하지 않았으니까. 나서윤이 벽을 넘는다면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만.
나와 함께 정찰을 했던 이들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눈치챈 주하연 또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일, 아니 이제는 오늘이군요. 오늘 낮, 곧바로 감옥을 공격할 생각입니다.”
“…너무 급한 것 아닐까요?”
“괜찮습니다. 충분해요.”
“…신후 씨가 그렇다면…….”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도 내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자 결국 주하연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일행들 중 가장 강한 것은 나고 내 판단은 어긋난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하유진을 비롯한 이들의 표정이 이상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경험을 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대립을 해 봐야 좋을 것도 없었다.
나는 이제껏 제대로 잠을 자지 않은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명령했고, 다들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일행들은 하유진과 나연, 사샤를 통해 정찰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듣고 있었다.
“그렇게 강해 보였다고?”
“네. 하지만 형은 괜찮을 거라고…….”
“오빠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 아냐?”
“하지만 느껴지는 힘이…….”
하유진과 나연, 사샤의 반응은 농담이 아니었다. 나서윤과 함께 타 일행들보다 한층 더 내 말을 끔찍하게 신뢰하는 하유진이 내가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함에도 의심을 할 정도였으니까.
나서윤이 끼어들어 봤지만 그래도 말꼬리를 흘리며 중얼거릴 정도다. 그런 하유진의 반응에 일행들의 표정에도 작은 흔들림이 생겨버렸다.
이 둘의 수준은 부족하지 않았다. 하유진도 이미 상급의 마스터고, 사샤는 상급 정령이며, 나연은 그 계약자다.
다른 길드원들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윗줄에 속한 실력이며 나와 함께 행동하며 보는 눈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런 판단을 한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경지인가?’
근본적인, 종족적인 한계일 수도 있었다.
드래곤 피어라는 것이 있었다.
중층에서 얻은 기록에 의하면 드래곤이 등장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피어를 내뿜기만 해도 어지간한 몬스터는 물론이요, 오우거를 비롯해 어지간한 마수들도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다. 일정 수준이 되지 못하면 피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고, 약한 이들은 피어에 노출되는 즉시 죽는 경우가 흔했다고 들었다.
어디까지나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록이 사실이라면 최상위 종족이 갖는 일종의 무형적인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거인들에게도 비슷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 힘의 격차를 확인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셋이 저렇게까지 심각하게 힘을 착각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단 한 개체에서만 발견된 특성인 만큼 저 간수가 특수하거나 일정 수준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다.
문득 과거의 자신이 저 간수에게 당할 당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러한, 나 또한 몰랐던 무형적인 힘의 영향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 회차에서는 벽을 넘었고, 종족의 한계를 벗어버렸다.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환골탈태만 세 번에 바리치의 문신을 통해 피의 주인이라는, 최상위 종족 중 하나인 뱀파이어 로드의 기술을 손에 넣었다.
그렇기에 나는 저들의 무형적인 힘의 간섭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힘을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사실은 차후 만나는 거인들을 보며 확인이 가능할 터. 일단은 싸워 본다면 일행들도 납득을 할 터다. 분명히 상대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일행들은 하유진을 비롯한 셋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불안해하기는 했지만, 일단 나를 더 신뢰하고 있었기에 과하게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같이 정찰을 했던 셋 또한 상대가 강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강함 또한 선을 넘었고, 그 간수는 내가 직접 상대할 거라는 말에 일단은 마음을 다잡은 듯했다.
다음 날, 낮이 되기 무섭게 우리는 공격할 준비를 끝낸 채 감옥을 향해 나아갔다.
전투 자체는 내가 간부로 보였던 간수를 맡았고 나머지 거인들은 각자 손발을 맞춰온 파티들 단위로 상대하기로 결정되었다.
마법 병단과 궁수들은 적당히 나뉘어 지원을, 전위들은 서로 이제껏 맞춰온 이들이 있었고, 대형 마수 등을 상대로 꾸준히 연습 등은 해왔었기에 분배가 어렵지는 않았다.
목표가 거인인 것을 뻔히 아는 만큼 준비는 오랜 시간 해 왔었다. 그 결과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기회였다.
감옥이 가까워질수록 길드원들과 일행의 얼굴에는 옅은 긴장이 어렸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당당하게 다가갔기 때문인지 경비병들이 우리를 발견했고, 급하게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갑자기 우리가 습격했다고 한들 저들의 병력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확인했던 대로 11명의 거인이 나타났고, 예의 간부로 보이는 간수가 앞으로 나섰다.
“…인간? 인간이 어째서 여기에…….”
나타날 때부터 뿜어내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길드원들의 기세가 한 차례 꺾였다.
“…정말 괜찮겠어요?”
“…오빠. 라이칸 꺼내?”
“괜찮습니다. 꺼내지 마.”
각각 둘에게 대답해 준 뒤 나는 곧바로 정면을 향해 나섰다.
11명에 불과한 거인이었지만 그 크기가 10m나 되는 존재다. 수는 우리가 압도적이었으나 저쪽의 기세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내가 나서기 무섭게 거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미친 건가? 어떻게 인간이 이 땅에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겁도 없이 이곳에 찾아와?”
한 차례 우리를 훑은 거인이 말을 이었다.
“수준은 괜찮아 보이기는 한다만…….”
피식.
“그래 봐야 인간인 것을… 뭐, 잘 되었구나. 안 그래도 오지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당분간 쓸만한 장난감들이 생겼어.”
거인이 한차례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나는 쓴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과거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이제는 입장이 달라졌지만.’
“…말은 필요 없겠네. 실험할 것도 넘치고, 알아야 할 정보들도 있으니까. 마침 말도 할 줄 알고, 잘 됐어.”
내 말에 거인의 표정이 멍해진다.
“…지금 우리에게서 정보를 뜯어내고 실험을 하겠다고 한 게냐? 소인들 따위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 저럴 것 같기는 했다.
‘소인이라.’
저들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하다.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검을 꺼내 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
전설급에 도달한 흡혈검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도발로 느껴졌는지 거인의 표정이 흉신악살 마냥 일그러진다.
“건방진…!”
거인이 크게 외치며 그의 무기인 채찍을 꺼내 들기 무섭게 나는 단숨에 기세를 개방했다.
“뭣!”
단숨에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세에 거인은 물론이요, 일행들의 표정까지 일변한다.
한 차례 더, 자유 능력치 포인트를 이용해 환골탈태를 마친 이후 일행들 앞에서 모든 힘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일이 없기도 했고.
순간 풍경이 급변한다.
동시에 안 그래도 커다랗던 거인의 신체가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속도.
그 속도에 거인이 급하게 채찍을 휘둘러온다.
나를 막으려는 듯한 모습.
그러나 의미는 없었다.
나는 단숨에 하늘 밟기를 이용, 허공을 박차고는 기묘하게 휘어지는 채찍의 틈을 파고들었다.
과거의 나는 단 한 번도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공격이,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느리고, 하찮다.
단숨에 내 검의 간격 안에 거인의 몸뚱이를 집어넣는 것에 성공한다.
단숨에 강기의 크기를 늘리고 팔을 베어낸다.
촤악.
붉은 피가 허공에 뿌려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단숨에 검이 피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크허어어엉!”
기괴한 음성을 내뱉은 거인은 급하게 반대 팔을 휘둘러온다. 마치 파리를 잡으려는 듯한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장비를 꺼낸다.
에고 웨폰 ― 자율방어
나타난 방패가 단숨에 경로를 차단한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일대를 울린다.
허나 나는 허공에 여전히 서 있었고, 거인의 손은 방패를 밀어내지 못했다.
상태 창은 표시조차 하지 못하는 마력. 어마어마한 마력은 에고 웨폰에 무시무시한 추가 방어력을 선사했고, 거인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내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성공적.
짧은 에고 웨폰의 읊조림에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는 저놈에게 저항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입장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제는 저놈이 내게 저항조차 하지 못한다. 그만큼의 차이가 벌어졌다.
저열한 감정이고, 아직 입구에 불과하며 고작 잔챙이에 가까운 존재에게 보이는 일종의 횡포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지금은 이 감정을 거부하지 않았다.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는 피들이 검과 몸에 지속적으로 흡수된다.
확실히 최상급에 달하는 종족이라 그런지 피의 효율이 달랐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공급된다.
‘마법 저항 테스트는 나중에.’
우선은 제압부터다.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판단이 들었다.
생각 이상으로 약하다. 전투 경험이 생각보다 부족해 보인다. 하기야 인간들 중에서 거인과 싸울 만한 존재가 얼마나 될까. 경험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거인은 두어 걸음 물러나며 뒤늦게 상처를 지혈했고, 다시금 급하게 채찍을 휘둘러왔다.
허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거인의 눈에는 분명한 당황이 깃들었고, 동시에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는 슬금슬금 공포라는 감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명확하게 보였다.
날아오는 채찍을 향해 마주 검을 대어간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터다.
무형 강기는 눈에도 보이지 않고 수준이 부족하면 느낄 수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 존재했다.
압축되고 정련되어 한없이 날카로워진 내 무형 강기는 상대의 채찍을 그대로 갈라놓았고, 단숨에 두 동강을 내어버렸다.
쿵.
지름만 m 단위인 채찍이 바닥에 떨어지며 큰 소리를 내었다.
거인이 침묵한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상대는 무기를 잃었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 수준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훨씬, 압도적으로 강했다.
길드원들 사이에, 수그러들었던 기세가 다시금 일어선다.
아주 잠시, 전장이 고요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찰나에 불과했다.
“…가이아 길드를 위하여.”
“우리의 고향을 위하여……!”
“길드장님이 앞장서신다!”
“공격! 공격! 1조는 이쪽으로! 나서윤 님을 따라라!”
“으아아아아!”
길드원들이 빠르게 나머지 거인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쪽의 사기가 오른 것과는 반대로 저쪽은 기세가 죽어버린다.
피식.
그런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