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감옥과 거인. 그리 어울리는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무게는 보통이 아니었다.
막상 직접 상대를 해 본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서윤이 경험이 있기는 했으나 그건 실제 우리가 싸워야 할 거인에 비하면 거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덩치는? 덩치는 어땠어?”
가장 먼저 나서윤이 묻는다.
“전부 10m는 넘었어요.”
지구의 거인에 비하면 작다고. 하지만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뒤로 물린 채 확인을 해야 할 정도였어요. 처음에 멀리서 보기만 했는데 등골이 오싹할 정도라서… 몇몇 녀석들은 근처에 가기 힘들 정도였어요.”
‘간수군.’
대강 짐작이 간다.
간수가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이전 회차의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을 만한 자격조차 갖지 못했었으니까.
“그래도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은 한 녀석뿐이었어요. 밖을 돌아다니는 거인들도 약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를 찾을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해서… 덕분에 내부는 대부분 확인했어요. 거인이 진짜 100마리 이상 갇혀 있더라고요. 대부분이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많기도 하네.’
“그럼 멀쩡히 돌아다니는 애들은? 얼마나 되었어?”
“정말 강해 보이는 것 하나, 부하로 보이는 이들이 열 정도 되었어요.”
총 열한 개체다.
일행과 길드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결정을 원하는 듯했다.
‘열하나라…….’
하유진이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은 간수 하나뿐이다. 하지만 나머지 열 개체도 10m는 넘는 괴물이다.
모든 거인 하나하나가 드래곤 마냥 규격 외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상위 종족이 그렇게 약하기만 할 리가 없었다.
위험은 분명히 있었다.
“일단 직접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이 근처에서 입구를 열고 쉬도록 하죠.”
아직까지는 베이스캠프를 갖지 못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감옥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지기로 결정한 후 쭉 뒤로 물러난다.
이후 미궁 조각을 꺼내 길드원들 대부분을 미궁 내부로 이동시킨다.
“셋 다 조심해요.”
주하연이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말한다.
“걱정 마세요. 걔들 못 알아채요.”
“그래도 하나는 격이 다르다고 했으니까. 자만은 안 돼.”
“물론이죠. 형도 같이 있으니까 큰일은 없을 거에요.”
하유진의 대답에 주하연이 슬쩍 나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있으면 접근을 눈치 못 챌 일은 없을 테니까.
나와 하유진, 그리고 정령을 통한 정찰이 가능한 나연까지밖에 남았다.
미궁 입구를 지킬 인원 몇몇도 외부에 남기는 했지만, 정찰에는 참가하지 않는 인원들이다.
이대로 입구를 닫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만에 하나지만 정말 무슨 일이 생겨버린다면 길드원들이 미궁 내부에 고립이 될 수도 있었다.
뭐 본래의 정석적인 방법을 통하면 곧바로 상층으로 이동이 되니 완전한 고립은 아니었지만.
본래라면 하층을 통해 위로 올라가야 하지만 상층으로 올라오며 다시는 중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려서 곧바로 상층으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외부에 남는 인원들은 만에 하나 우리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역할도 부여받았다.
만약 진짜 우리가 고립을 당한다면 내부에 소식을 알리는 역할이다. 그렇게 된다면 구출 조가 편성될 터. 물론 내가 잡힐 정도면 답이 없기는 하지만.
해가 완전히 지기 무섭게 하유진이 삭월의 가호를 통해 나와 나연에게 은신을 공유했다.
사샤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감추었다.
“여전히 대단하네.”
사샤의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하유진이 감옥이라 칭한 장소를 향해 이동했다.
제법 이동하자 천천히 그 감옥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나연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왜 하유진이 멀리서부터 혼자 정찰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건물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1층 건물에 불과했는데도 어지간한 아파트 크기에 육박하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여기 지하도 있어요.”
1층 지하도 아니라고 한다.
하기야 10m 되는 크기의 거인을, 그것도 100단위로 가둔 감옥이라고 하는데 1층으로 될 리가 없었다.
정말 규모 하나만큼은 어마어마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기척이 더 생생하다. 확실히 거대하고, 위협적이다. 그러나 조금 이상했다.
‘대단하기는 한데…….’
확실히 하유진이 경계할 만하고, 나연의 표정이 쉽사리 풀리지 않을 만큼은 된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게까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못했다.
‘생각보다… 할 만할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직접 봐야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건물 전체에서 미약하지만 기척을 어지럽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이런 것이 있어도 저 거대한 존재감을 숨기지는 못했다.
거대한 건물을 살짝 돌자 입구가 보였다. 거기에는 두 명의 거인이 서 있었다.
“…….”
그것을 보는 나연의 입이 굳게 다물어진다.
거대한 덩치. 경장에 가깝기는 하지만 무장을 갖췄고 몸집은 듣던 대로 건물 크기다.
그런 주제에 뿜어져 나오는 기세도 보통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거인이었다.
하유진이 살짝 굳어있는 나연을 향해 말했다.
“안 들켜요. 강해 보이기는 한데, 딱 그 정도? 저들은 제가 말한 놈이 아니에요.”
보면 안다. 느껴지는 기척부터가 입구가 아닌 더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슬쩍 경비병들의 주변을 돌았음에도 그들은 서로 입조차 열지 않은 채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약해.’
아니다. 저건 내가 상대했던 그 간수가 아니었다.
나연은 그 존재감에 속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약했다.
이전에는 그 힘조차 짐작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예 길드원 열다섯이면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충분히 사냥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충분히 호흡이 맞아떨어져야 하고,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는 한다.
저들이 거인이기는 하나 그 수준이 그리 높은 이들은 아니었다.
‘호흡이 맞아가면 열 명 이하로도 가능하겠는데?’
“건물에 틈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도 내부로 들어갈 수 있기는 한데, 어차피 쟤들은 우리를 확인도 못 해요. 그러니까 그냥 정면으로 갈게요.”
샛길. 과거 내가 이용했던 곳일 터다. 거인들에게는 작은 틈이지만 인간들에게는 충분한 틈이다.
이미 한차례 내부를 확인한 하유진을 필두로 감옥 안으로 진입한다.
내부는 역시 넓었다. 길, 건물을 밝히는 불, 천장의 높이까지 하나같이 작은 것이 없었다. 마치 동화 속의 거인국에 온 기분이었다.
“…크네.”
나연이 작게 중얼거린다.
하유진은 우선 아래서부터 확인하자는 말과 함께 우리를 내부로 끌어들였다.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빠르게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고, 이곳에서도 입구를 지키는 듯한 거인 둘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약했다.
이후 감옥 내부에 갇힌 거인들을 확인하자, 경비병들과 비교해 그 수준이 확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에 딱 보기에도 수준이 떨어져 보였는데, 지금은 더 확실히다. 저 정도면 그냥 나서윤이 상대했던 5m 거인, 그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마력을 제한당하고 식사마저 최소한만 배급받은 채 갇혀 지내는 거인들은 정말이지 허약해 보였다.
내심 과거 죽었던 장소인 만큼 크게 느껴졌었는데, 실망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방심하기는 일렀다. 나를 죽였던 간수가 남기도 했고 애초에 이곳은 상층의 입구다.
지구에 쳐들어온 거인들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정말 약한 수준의 존재들이 모인 곳에 불과했다.
솔직한 말로 희소식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래도 내가 중층에서 나름 성공적인 성장을 해 왔다는 증거였으니까.
여기서부터 벅차면, 미래가 어둡다.
“생각보다 약해 보여요. 솔직히, 내부에 갇힌 이들은 저 혼자서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거 같네. 확실히 밖에 있던 이들과는 비교도 힘든 수준이야.”
“정말 하나 빼고는 다 별 볼 일 없어 보이기는 하네.”
나연과 사샤의 의견 또한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긴장이 완화된 모습. 그러나 완전히 풀 수는 없었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커다란 기척은, 갇힌 거인들이 약해 보이더라도 머리에 방심이 침입할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부를 다 살피고 휴식 공간에서 쉬고 있는 경비병들과 감옥 주변을 도는 이들까지 전부 확인을 마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이 존재감. 이 존재감의 주인도 보고 간다.”
순찰을 돌던 이들이나 입구를 지키던 경비들도 간수이기는 할 거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간수는 사실상 하나다.
“…형, 그건 조금 위험해요. 삭월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안 들킬 자신이 없어요.”
현재는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달이 명백하게 보였다.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 수준을 몰라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최대한 멀리서라도 확인할 필요가 있어. 내 예상이 맞다면… 내일 바로 습격해도 될 거야.”
“…알겠어요. 그래도 느낌 이상하면 바로 빠져야 해요? 아무리 약하다고는 해도 이 수면 정말 위험하니까…….”
하유진의 걱정어린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커다란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거대한 기척을 가진 존재는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간수들 마냥 순찰을 하는 듯했고, 그의 뒤에는 한 명의 또 다른 간수가 따르고 있었다.
익숙한 외모다. 거대한 크기에 타 경비병들보다는 한층 나아진 무장을 한 채 뒷짐을 지고 돌아다닌다.
확실했다. 저건 나를 죽였던 그놈이다.
아슬아슬한 거리. 하유진이 조금 불안해하고 있었다.
잠시, 움직이는 그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들키기 전에 빠르게 행동하는 내 모습에 하유진의 표정이 밝아진다.
나는 빨리 돌아가자는 손짓을 해 보였고, 우리는 빠르게 감옥을 탈출했다.
밖으로 나서기 무섭게 하유진과 나연, 사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후와… 진짜 세네……. 공기부터가…….”
“후우, 그래도 안 들켰어요. 그거면 돼요. 진짜 세 보이기는 하네요. 붙으면 이길지가…….”
“지구의 거인들은 20m가 넘는 이들 투성이라고 했었지? 쟤들도 저 수준이면 어떻게…….”
일행들의 대화를 들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강한가?’
확실히 기운은 거대했다. 육체는 단련되어 보였고, 아마 거인인 만큼 마법 저항력 역시 강할 터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과거 나를 죽였던 거인임에도 나는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솔직한 말로, 일행들의 말이 나는 호들갑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당연히 이긴다. 솔직한 말로 길드원 서른에서 마흔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내 직속 파티원들이 끼어들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유진과 나연, 하물며 사샤마저도 빠져나온 것에 안도를 하고 있었다.
내 눈에 그 거인은, 너무나도 약해 보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