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감옥
잔딜리엔은 새로 만들어진 마을에 있었다. 다행히 그리 멀지는 않은 지점이라 이동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마을 자체는 빨리 만들어진 편이었는데, 제국 자체가 힘을 쏟은 것도 있었지만 사실상 돌을 가져와 건물을 쌓기만 하면 된다는, 어렵지 않은 작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편의는 엘프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인간이 정령술이나 엘프의 문화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빨리도 왔군.”
잔딜리엔은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1회차를 떠올리는, 수백에 달하는 엘프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엘프를 처음 보는 길드원들이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인지 감탄성이 여럿 들려왔다.
“잘 되었니?”
“…덕분에.”
잔딜리엔의 물음에 나연이 대답한다. 인간 자체를 싫어하고 특별히 거슬리지 않는 한 무관심하지만, 그래도 나름 정령사라고 먼저 근황도 묻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또 강해졌나? 뭔가 변했어.”
잔딜리엔의 표정에 약간이지만 질린다는 듯한 기색이 어렸다.
그녀가 그렇게 느낄 만했다. 현재 내 능력치는 100을 넘어서 상태 창에 표시가 되지 않고 있었다. 하나같이 100 대신 - 표시로 대체된 상태다.
받았던 자유 능력치들을 모두 투자했으니까.
한 차례 더 환골탈태를 해버렸을 정도였고, 지금이라면 잔딜리엔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참 좋겠어, 세계의 구원자는.”
갑작스러운 말. 아무리 봐도 비꼬는 듯한 모습이었다.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말이지?”
“플로어 마스터들이 하나같이 싸고돌더라?”
그거야 당연하다. 그들의 역할이 그것이고, 나는 충분히 기대를 받을 만한 성과를 내었으니까.
그러나 잔딜리엔의 표정에는 여전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일행, 특히 나서윤과 하유진의 표정이 좋지 못하게 변한다. 잔딜리엔의 태도가 무척이나 싫은 듯했다.
다만 힘의 차이가 명백하고, 잔딜리엔의 도움을 받아야 상층으로 갈 수 있는 데다가 내가 가만히 있으니 나서지 못하는 듯했다.
“부럽네.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리고 그렇게도 빨리 성장한다는 것이 말이야.”
어딘가 비꼬면서도 스스로 부럽다고 말한다. 인간을 상대로 부럽다고 말하는 것은 1회차에서도 없었던 일이기에 내심 놀랐다.
사정 자체는 대강 알고 있었기에 이해는 갔지만.
“알겠습니다. 바로 할게요.”
잔딜리엔이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플로어 마스터들이 간섭한 듯했다.
“재료.”
이전의,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나와 길드원들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품들을 모조리 넘겨주었다.
그러자 잔딜리엔은 물품들을 확인하더니 하나씩 허공을 향해 집어넣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인벤토리를 쓰는 모습과 유사했고, 그 광경에 길드원들은 조금 신기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잔딜리엔을 바라보았다.
준비되었던 재료들이 모두 사라지자 허공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빛무리가 커져갔다. 그리고는 점점 크기를 키운다.
종래에는 어지간한 2층 건물을 뛰어넘는 크기의 게이트가 완성되었다.
이만한 크기의 게이트는 처음 보았기에 나 또한 제법 놀랐다.
“지나가. 지나가면 곧바로 상층일 거야. 뒷일은 책임지지 않으니까.”
“…그래.”
“떠나면 못 돌아와.”
꿀꺽.
길드원 중 누군가가 침을 삼킨다. 그 길드원뿐만이 아니다. 모든 길드원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면… 아, 알겠습니다.”
잔딜리엔에게 또다시 무언가 말을 전한 듯했다.
“…정보 레벨 90 특전으로 상층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라네?”
‘…그런 것도 있었나?’
상층에 관한 정보는 방랑 상인으로부터도 극히 제한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마저도 가격이 미친 수준이고. 그런데 정보 레벨이 높으면 상층에 갈 때 정보를 갖고 갈 수 있는 모양이다.
“층에 대한 정보야. 너희가 가게 될 층은 60층. 몬스터는… 거인.”
잔딜리엔은 허공을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정보를 읊었다.
“10층 단위로 적이 달라지지만, 꼭 모든 층을 탐험할 필요는 없어. 60층도 마찬가지. 원한다면 다른 층에 바로 갈 수도 있으며 아무 층이나 상층을 10층 이상 탐험한다면 탑을 나갈 수 있다.”
이건 알고 있는 정보였다. 다만, 내가 상대해야 할 것이 거인이기에 과거에는 60층을 갔던 것이고. 상층에 도착하는 즉시 알 수 있는 정보다.
본래라면 한 구역만 클리어하고 나갔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 회차에서는 그래서는 안 되었다.
“또한… 상층에서는 죽어도 상관없어. 죽더라도 너희들의 고향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네.”
‘이 정보를 지금 준다고?’
놀라웠다.
나도 죽고 나서야 알았던 정보다.
“마지막으로… 죽은 이후, 고향을 포기하고 다른 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
“거인은 강대한 종족이지. 상층으로 진출해 싸워 본다면 알 거다. 정 방법이 없다면 다른 세계로 이주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거인 말고 다른 세력에 의해 침략된 세계도 있고, 안전한 세상도 있을 수 있다. 안전한 곳이라면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겠지만.”
잔딜리엔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 방법이 없다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너 정도의 수준에 저 정도의 전력이라면 다른 세계도 얼마든지 환영…….”
“그럴 일 없으니 닥쳐.”
흉포한 기운이 몸에서 뿜어진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졌다.
주변의 엘프들이 흠칫하며 빠르게 잔딜리엔 주변을 감싸온다. 그러나 하나같이 엘프들은 몸을 떨고 있었다.
과거, 멸망한 지구의 풍경이 떠올랐다. 거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죽었을 가족들이 생각난다.
그들의 선택을 이해는 한다. 이미 망해버린 곳이다. 정확히는 기회가 없었다. 속은 것에 원망이 들기는 했으나 그들도 어쩔 수 없기는 했다. 먼저 간 이들도 이미 지구가 그 꼴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한들, 원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모든 것을 바쳤는데, 얻은 것을 모두 가진 채로 복수조차 포기한 채 다른 세계로가 잘 살았을 그들을 좋게 볼 수는 없었다.
기회가 있음에도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라는 잔딜리엔의 말에 쌓였던 분노가 작게나마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의 일이고, 묻어두었다고 한들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정보를 말할 뿐이다. 화를 낼 이유는 없을 텐데?”
설마 내가 이렇게 분노할 줄은 몰랐는지 잔딜리엔 또한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금세 사라지기는 했지만.
나는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계속 분노해 봐야 나와 잔딜리엔의 싸움이 될 뿐이다. 우리 둘이 여기서 싸워버리면 피해가 장난이 아닐 거다.
“실례했다.”
내 말에 잔딜리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잔딜리엔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정보는 끝이다. 그만 떠나라.”
그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헤어질 사이에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길드원들을 향해 손짓했고, 곧바로 게이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게이트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몸이 뜨는 기분이 들었고, 곧바로 세상이 일변했다.
* * *
잔딜리엔이 제공한 정보대로, 또한 내 과거의 기억 그대로였다.
60층. 그 직전의 경계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물론 선택은 당연하게도 60층의 거인이다. 선택할 수 있는 종족은 4가지였다. 거인과 드래곤. 악마와… 천사.
침략하는 종족이 이 네 가지뿐인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탑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저 넷이 다였다.
‘마족은 악마를 선택하면 볼 수 있다고 했던가?’
천사의 경우에는 특수한 경우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여러 정보들이 읊어진다. 자신의 세계를 침략한 이들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하나같이 거인을 선택했고, 무운을 빈다는 말과 함께 60층으로 이동되었다.
“…천사? 천사도 선택지고 침략한 이들을 선택하라는 것은…….”
주하연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내가 전직을 할 때 천사가 나온 것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게 진짜는 아니기는 하지만.
“꼭 천사라고 성경의 그 천사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기는 합니다.”
“…하기야. 고정관념이기는 하네요. 그래도 천사 하면 그런 이미지는 없을 것 같았는데…….”
“다 사람이 만들어낸 이미지니까요.”
확실히 천사가 선한 존재라는 것은 거짓일 터다. 내가 만나본 천사도 그렇게 착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한 명뿐이었지만.’
침략하는, 최상위 존재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60층에 도착하기 무섭게 보인 것은 황무지였다. 생각보다 무더운 날씨였다. 그렇게 특수한 환경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조금 익숙한 풍경이다.
오래 지내지는 않았지만 일단 왔던 곳이기는 했으니까.
정확히 내가 왔던 지점인지는 모르겠다. 보이는 풍경은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하지만 만약 소환된 장소가 같은 장소라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인의 감옥이 존재한다.
범죄자 내지는 벌을 받은 죄인들. 하나같이 약해진 이들이 가득한 곳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조차 이길 수 없었다.
게다가 당연하게도 감옥에 범죄자들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간수.’
거인의 간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일단 베이스캠프를 정합니다. 혹시 모르니 주변을 정찰하고 식량이나 도구를 얻을 수 있는지, 혹여 NPC나 거주민들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일대를 정찰하도록 지시했고, 나연과 하유진을 필두로 도적, 궁수 계통의 길드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전한 위치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미궁 조각이 있다고 해도 필요한 일이었다. 대뜸 이곳에 입구를 만들어 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태양의 위치를 봐서는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정찰은 충분히 할 수 있을 터다.
해가 지기 전에 정찰조들이 하나둘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계속 황무지입니다.”
“별다른 사냥감도 없습니다. 수원도 없는 수준이라… 한참 이동해야 할 것 같은데….”
가져온 식량은 많고 미궁으로 이동할 수도 있으니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마을은 전혀 안 보여.”
늦게 돌아온 나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60층부터는 나도 경험이 없다시피 했다.
마을 같은 것은 찾지도 못했고, 처음 발견한 것이 감옥이었다.
‘같은 장소면 바로 발견될 것 같은데…….’
나는 3일 이상 걸렸지만 하유진의 수준은 당시의 나와 천지차이니까.
하유진을 그쪽 방향으로 보냈고, 하유진의 수준이라면 오늘 안에 찾을 터다.
“형!”
정찰조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하유진이 복귀했다.
여럿이서 함께 갔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달려오는 것을 보면 뭔가를 발견하기는 한 모양.
“무슨 일이야?”
나는 예상하면서도 확인차 물었고, 하유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감옥! 감옥이에요!”
하유진의 말에 길드원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에 거인들이 잔뜩 있어요!”
거인. 그 한 단어에 모든 이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