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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47화 (247/317)

247화

네비오스의 환한 미소에 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아이템에 집중했다.

정보 레벨이 90에 도달하기 무섭게 보인 새로운 길을 따라 마력을 돌린다. 평범한 수련자들은 따라 하기도 힘든 조율 능력이 필요했지만,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가볍게 끝내고 나자 즉시 새로운 기능들이 개방된다.

귀속된 공간에 허가만 해 주면 몇 명이라도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하다는, 일종의 제한 조건이 모조리 해제되었다. 항시 입구를 열어둘 수 있으며 필요한 마력은 주변에서 알아서 충당까지 하는 듯했다.

즉, 미궁에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출입구 설정이 3개로 가능하도록 추가되었다. 추가된 입구는 최상급에 가까운 마정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구하려면 못 구할 것도 없었다.

다만 마정석의 성능에 따라 출입구의 유지 기간이 달라지기는 하는데, 시간도 제법 길고 수명이 다해도 교체하면 그만이다. 상층에서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는 대가로는 엄청나게 싼 것이었다.

‘확인이 필요하겠는데…….’

순간적으로 다른 인원도 상층에 출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될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미궁을 향한 자유로운 출입이 보장된다면 엄청나게 유용하다. 고난의 신전을 통한 길드원들의 꾸준한 성장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미궁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음식이 나온다.

일종의 보급로가 되는 셈. 적어도 굶는 일은 없다는 거다. 게다가 실력이 부족하면 안전하게 움직일 수도 있고. 심지어 내가 허가하지 않은 인원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움직이는 베이스캠프인가?’

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이것만 하더라도 이미 준신화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아이템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거래자 등록?’

처음 보는 기능이었다.

“만족스러우십니까?”

네비오스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방금 그의 미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설마…….’

나는 즉시 거래자 등록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했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거래자 등록은… 방랑 상인 한 명과 상호 동의 하에 내 공간 안에 일종의 상점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이었다.

즉, 나는 한 명의 방랑 상인과 언제든지 거래가 가능한 장소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건 나 혼자만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점인 만큼 내 귀속된 공간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뭐 이런…….”

“보셨군요?”

아무래도 네비오스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던 듯했다.

“이거… 사실입니까?”

“상점에 관한 이야기라면… 맞습니다.”

네비오스의 눈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단숨에 저 기대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랑 상인 입장에서도 고정된 장소를 확보하면 좋다. 수련자가 방랑 상인을 만나기가 어렵듯이, 방랑 상인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방랑 상인은 한 명이 아니다. 나 또한 만난 방랑 상인이 모두 네비오스인 것은 아니니까.

강제로 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손님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손해일 리가 없었다.

‘뭐 대신 수준이 높은, 엄선된 이들 위주로 만났었겠다만…….’

우리 길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확실히 이 자리는 네비오스로써는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점을 얻어 고정된 자리를 확보한다고 해도 방랑 상인 일을 아예 못 하게 된다는 것은 아닐 터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고용을 하던 직접 움직이던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계약 내용에 따라 달라지기는 합니다.”

네비오스는 평소보다 한층 더 성실하고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약간 의아한 기분을 느끼자 그 기색을 눈치챈 네비오스가 순순히 입을 열었다.

“그거야 그 공간은 오롯이 유신후 님의 공간이니까요. 아무리 계약을 통한다고 하더라도 건물주나 집주인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절로 이해가 되는 비유였다.

“신후 님께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왜냐면 공간 일부를 빌리는 대가로, 일종의 대여료를 신후 님께 납부하니 말입니다.”

“대여료…….”

“그거, 포인트입니다. 제 순이익 중 일부를 받기도 하시고요.”

“…허.”

포인트를 구하기가 힘들지 그 유용성은 어마어마하다. 네비오스의 말 그대로, 내가 손해를 볼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득투성이지. 그만큼 네비오스 또한 이득을 얻는다는 뜻이겠지만. 말 그대로 윈윈이었다.

“그러니 저와 계약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그간 제가 유신후 님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허술하게 대한 적이나 속여먹은 적도 없었고. 물론 방랑 상인들 중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 정도는 하지만.

“조건은 최상의 조건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나름 표준 계약서도 있는데…….”

확실히 네비오스는 조금 필사적이었다. 하기야 내가 굳이 네비오스를 택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일이 다른 방랑 상인을 찾아다니는 것도 귀찮았기에 정보 자체를 구입해 확실히 조건을 설정했다.

제법, 아니 내게 상당히 유리한 계약서가 탄생했지만, 그마저도 네비오스는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드디어 저도 상점을…….”

“그게 그렇게 대단한…….”

“당연합니다! 이러한 탑은 한 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모든 탑을 통틀어 상점을 가진 방랑 상인은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상점의 효능은 통칭 경매장이나 타 상점과 거래가 가능한 만큼 하나만이라도 갖고 있으면 거상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제가 성장하는 만큼 신후 님께는 이익이 돌아갑니다.”

일종의 대주주라고 볼 수 있었다.

새삼 내가 얻은 미궁 조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네비오스는 하루라도 빨리 상점을 만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계약 덕분에 언제든지 대여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만큼 이제는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내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들은 일행들은 그 유용성에 하나같이 감탄했다.

“미궁 내부에 건물도 지을 수 있겠는데요?”

“공동은 많으니까… 거기 몬스터들도 약해서 정리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게다가 바로 근처에 고정 안전 구역도…….”

“그런데 신후 오빠에게 배정된 공간은 작잖아요. 나머지는 본래 미궁의 주인인 그 플로어 마스터, 아키밀리였던가? 그 사람의 것 아니었나요?”

“괜찮을 거다.”

플로어 마스터들, 특히 아키밀리는 초반부터 나를 지지했다고 들었으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양해 정도는 구할 필요가 있겠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이익에 조금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일 하나가 늘었다.

나는 미궁 조각 내부로 들어가 아키밀리의 영역에서 그를 불렀고, 그는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목소리만 내게 보내었다.

―마음대로 해라.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 외에 이걸 이용해 타 수련자들을 상층으로 데리고 갈 수 있냐고 묻자,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들어왔다.

그건 신화급 아이템도 불가능하다고.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허가와 대답에 대한 감사를 표한 뒤 즉시 미궁 내부에도 살만한 공간을 짓기 시작했다.

임시로 인부들에게 출입을 허가해 일종의 마을을 조성했고,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미궁 조각 내부의, 일종의 새로운 길드 하우스가 완성되었을 때는 이미 상층으로 가기 위한 조건을 모조리 마친 뒤였다.

나는 사실을 황제에게 알렸고, 그는 떠나는 우리를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어주었다.

제국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황권을 완성한 황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간 고마웠네. 그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군.”

“거래였을 뿐입니다.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크하하하하. 여전하군. 그래, 그랬지. 거래라. 최고의 거래였어. 그대는 믿을만한 사람이었고. 결국 모든 약속을 지켰군.”

그에게는 자신을 위해 일해줄 검이 필요했고, 모든 것을 이룬 뒤 공을 나누지 않을 존재가 필요했다. 거주민이라면, 그런 사람이 있을 수나 있을까.

내가 수련자이기에 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그런데 그대는 묻지 않는군. 어차피 떠나기 때문인가?”

“무엇을 말입니까?”

“아르테인 공작과 다이딘 대공이 순순히 항복한 이유를 말이야.”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가 떠날 입장이고, 사실상 끝난 일에 관심을 갖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로군.”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새삼 궁금해지는군요. 여쭤봐도 됩니까?”

내 말에 황제가 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둘 모두에게 독립을 약속했지. 유입될 수련자들은 아직도 남은 모양이더군. 게다가 이미 있는 수련자들도 상당수고, 그대에게 비교하기는 미안하나 재능이 넘치는 수련자들은 꽤 많지.”

틀린 말은 아니다. 크리스토퍼, 톰 뮐러, 왕춘… 그 외에 황제 휘하에도 과거 랭커였던 이들이 있었다.

“게다가 수인들은 한차례 무너진 데다 엘프들과 교류의 물꼬도 틀었지.”

“…설마…….”

“그렇네. 이후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수련자들을 키워 오크들과 한 번 제대로 붙어볼 생각이라네. 그 이후라면 둘 모두 독립할 수 있도록 돕겠다 하였네.”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당장 둘 모두와 전쟁이라도 치렀다간 제국이 오크들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었다.

황제가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았을 터다.

‘신성 계약서라도 쓴 모양이군.’

그렇지 않더라면 둘 모두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을 터다.

“그렇군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게 황제의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일정 수준이 되었을 때 오랜 시간 중층에 남으려고 한다면 플로어 마스터들이 개입할 터다.

실패한다고 해도 황제로서는 나쁘지 않다. 이미 권력을 잡았으니까.

황제와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엘리자베스 공주가 찾아왔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뒤를 쫓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가이아 길드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기대가 되는 길드는 영국 왕실 길드다. 타 길드보다 지구로의 귀환 의지가 강하니까.

랭커급 강자는 없지만… 길드로서는 정상의 위치에 오를 거다. 이후 강자들을 육성하거나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랭커는…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득 과거의 2대 권왕이 생각났다. 이번 회차에서도 멀쩡히 나타날지는 모르겠다만…….

만약 제대로 나타난다면 새롭게 랭커가 될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어차피 떠나기도 하고…….’

“폴루노.”

“…예?”

“언젠가 갑자기 등장할, 아마 높은 수준의 힘을 지닌 수련자일 겁니다.”

“그게 무슨…….”

“따로 얻은 정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로는 많다. 아마 방랑 상인을 생각하고 있을 터다.

“그를 영입하고 많은 지원을 해 준다면 제법 도움이 될 겁니다.”

내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엘리자베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인지 엘리자베스 공주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왔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중층에서 인연을 만들었던 교황과 추기경들, 티드린드 영지의 토펜, 황제파에 속해 목숨을 부지한, 과거 우리가 도왔던 영주들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심지어는 왕춘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톰 뮐러까지 찾아와 인사를 건네왔다.

“언젠가는 우리도 지구로 돌아갈 것…겁니다.”

“…늦겠지만 따라가겠습니다.”

“염치없지만,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희망이신 것 같으니까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톰 뮐러가 입을 열었다.

“다음에 뵈면 가르침을 청해도 됩니까?”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과거와는 다르게 지구로 오겠다는 이들이다.

“원한다면.”

내 말에 톰 뮐러가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지었다.

“기대하겠습니다. 실망하시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가 끝나고 나는 길드원들을 이끌고 잔딜리엔을 찾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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