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들어와.”
나서윤의 기척이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마침 간섭력을 사용하기 위해 플로어 마스터를 부르려던 시점이었기에 반응이 늦었다.
“아, 오빠… 그게…….”
며칠 전 나연을 만나고 왔을 때부터 조금 심각해하던 나서윤이다. 그런 나서윤이 갑자기 이 타이밍에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의아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서윤은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은 최근 본 적이 없었던 만큼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연이 일이야?”
그것 말고는 짚이는 것이 없었다.
내 말에 잠시 흠칫한 나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얘기는 해결한 뒤에 직접 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던 문제가 다시금 튀어나오자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렇…기는 한데, 왠지 해결 안 돼서 올 것 같아서 그래.”
그런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나서윤이 조금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후우…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솔직히 직접 말하겠다고 했고, 뒤로 미뤄진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서윤이 심사숙고해 판단한 일이다.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나서윤의 판단은… 믿을 만하기도 하고.’
부길드장을 주하연이 맡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 그 역할을 나서윤이 했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는 더 엄중한 운영이 되었겠지만 그도 나쁠 것은 없었다. 지금 내가 길드에 덜 신경을 쓰는 것처럼 나서윤도 주하연마냥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인재였으며, 그렇게만 된다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으니까.
가진 직업상 바쁜 나서윤이 맡기에는 비효율적인 일이기는 했지만.
“그게…….”
또 우물쭈물 거리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쳐 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나서윤이 입을 열었다.
“오빠, 언니를 어떻게 생각해?”
“가능성 충분한 동료.”
나는 자르듯이 말했다.
저 의견이 무슨 뜻인지 정도는 안다. 다만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
내 단호한, 선을 긋는 듯한 대답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서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깨문다.
‘그게 문제였나.’
질문을 듣는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나연의 그런 감정이 무언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솔직한 말로, 나로서는 고작 그런 것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이용해 나서윤을 붙잡은 면도 없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알았다고 한들 그 성격의 나연이 그런 감정을 나에게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기에 이렇게 자르듯이 말할 수 있었다.
‘나서윤도 있고, 동료 관계를 깨기도 힘들겠지. 사적으로는 친구인 데다가 이제 와서 연애를 하려고 하기에는 상황도 그렇고…….’
도덕적, 상황, 타이밍 등 뭐 하나 맞는 것이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이전 튜토리얼에서 처음 무법자들을 죽였을 때와 타락한 정령의 동굴에 들어가기 직전, 나누었던 대화가 머리를 스쳤다.
그런 상황을 다 알고 이해하고 있을, 그 성격의 나연이 내게 자신의 마음을 밝힐 가능성은 정말, 극도로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서윤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나서윤은 지금 내게 말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나서윤은 멈추지 않았다.
“언니가… 오빠 되게 좋아해.”
“그걸 네가 밝히는 것은 나연에게 실례인 거, 알지?”
내가 차갑게 반문하자 나서윤의 표정이 조금 흔들렸다.
“내가 묻거든 대답해도 좋다고 했던가. 그걸 믿고 말하기에는… 내용이 좋지 못해. 나연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내가 서운해하거나 오해하는 상황이 더 좋지 않기에 그렇게 말을 했을 거야. 너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알아, 알아요.”
“나는 괜찮다고, 직접 듣겠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건…….”
“그거… 안 없어질 거야, 오빠. 사실, 꽤 오래되었어. 그거.”
꽤 오래되었다. 이전부터 눈치챘다는 뜻이거나 그 말을 듣고 짐작가는 상황들이 우르르 생각났다거나 뭐, 그런 뜻일 거다.
즉, 나연의 성격을 생각하면 진작부터 접으려고 했던 마음이라는 뜻이다.
“후… 그래. 나연이의 그,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 건데?”
“언니 말로는… 합신을 하려면 정령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한대. 보통의 정령이라면 지금의 상태로도 합신이 가능하지만… 그, 사샤는 특별하잖아? 태어날 때부터 언니 기억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태어나버렸으니까….”
그랬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나연에게 욕설부터 내뱉었었지.
“그래서 조건이 더 까다롭대… 마음도 완전히 개방해야 해고, 서로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런데 사샤는 그… 지금은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조금 직설적이잖아… 사실 오빠에 대한 마음도 잘 숨기고 있었는데, 그 엘프가 유도해서 끄집어냈더라고. 언니는 상관없는 엘프라 저도 모르게 풀어버렸고… 그걸 그대로 사샤에게 알린 거야.”
“…….”
“이제껏 그런 감정들을 꼭꼭 숨기느냐고 내심 사샤를 경계했었나 봐. 그래서 합신은 안 되고… 알려지고 나니까 사샤는 그냥 들이대라고 말하고 있고, 언니는 상황을 보라면서 막아서고 있고…….”
“그걸 이제는 나 빼고 다 알게 되었고?”
“사샤가 다 불어버렸지 뭐…….”
“후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인간의 감정이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나도 전투 때나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1년 365일 언제나 나 자신에게 객관적이기는 힘들다.
그랜드 마스터도 짜증 나고 분노할 수 있었다.
특히 계속되는 감정을 영원히 잘라내는 것은 나도 불가능한 만큼 그런 감정을 잘라내지 못했다고 나연을 탓하기는 힘들다.
나는 씁쓸한 얼굴로 나서윤을 바라보았다.
이런 말을 내게 하는 나서윤도 엄청나게 복잡하기는 할 거다.
“아, 아하하… 오빠가 인기가 많아서 피곤하네. 너무 친절하고, 잘나서 그래.”
어딘가 어색한 한마디.
그녀도 사람인데 독점욕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태연한 척 말한다.
“나는 언니들이면 다 괜찮아, 오빠.”
“…….”
“그게 친언니여도.”
어딘가, 이해하기 힘든 말. 친언니여도 상관없다. 탑이 사람을 어딘가 비틀어버린 기분이다. 나 또한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사샤가 들이대라는 이유는 있었다. 애초에 내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잉여 같은 신세도 벗어나고, 나연에게도 좋은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틀린 생각은 아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가장 가까운 파티의 사람이, 고백을 해 온다면 거절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나연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거절로 인한 관계의 애매함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나연이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만약, 내 예상을 깨고 정말 다가온다면, 받아들이기는 할 거다.
‘진짜 하렘이군.’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나연이 마음을 정리하고 온다면 쓸데없는 대화가 되겠지만, 나서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보다도 더 오래 나연을 보아온 데다가 그녀의 판단력은 믿을만한 만큼… 진짜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러나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올 가능성은 별개다.
“언니는 여기 와서 진짜 많이 변했으니까, 정말로 고백해 올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정말로 그러면.”
“…….”
“어차피 오빠가 정하는 거기는 하지만… 혹시, 정말 낮은 가능성이지만 나 때문에 보류라도 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 거야.”
보류. 조금 따갑게 들리는 말이었다.
“하연 언니도… 같은 의견이고.”
일행들에 한해서.
그 말을 끝으로 조금 어색하게 웃은 나서윤이 방을 나섰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은 했다. 결국, 이런 상황이면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연이 밖으로 나왔을 때 상황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뭐하면 내가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선 생각을 멈추고 곧바로 보상을 위해 플로어 마스터를 불러내었다.
* * *
핑크빛 머리카락에 현대적인 원피스. 중층의 플로어 마스터인 피니아였다.
“오랜만이에요. 인기 많네요?”
시작부터 달갑지 않은 주제로 말을 걸어오는 모습에 미간이 조금 찌푸려진다.
“…오랜만입니다. 피니아 님.”
플로어 마스터와는 적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조금 화제를 돌렸다.
“제가 부른 이유는 아실 테죠?”
“간섭력… 대단하네요. 그걸 또 얻을 줄이야. 이전에도 얻었던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랬었다.
나를 훑어본 피니아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대단하네요. 고작 5년 만에 그랜드 마스터에, 뱀파이어 로드의 각인까지…….”
“…각인이요?”
“피의 주인을 말하는 거랍니다. 보통은 인간인 채로는 가질 수 없는데… 그 문신 덕분이네요. 그것만 있으면 하급이기는 해도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부릴 수 있어요. 당신이 인간이라 그 이상으로 승격시켜주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일종의 로드가 될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있다는 뜻이다.
“원한다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생각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타 종족으로 변해 봐야 약해질 뿐이다. 인간으로서 여기까지 강해진 자신을 부정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혈족이라…….’
얼핏 나중에 쓸만한 수단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그래서 간섭력은 어디에 쓸 예정인가요?”
본론이다.
나는 침을 삼킨 이후 말했다.
“…자유 능력치를 수정하고 싶습니다.”
“자유 능력치요? 음? 당신의 능력치는 이미…….”
그러나 곧바로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100을 넘길 생각이군요.”
“네. 능력치가 100을 넘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스템 보정이 한계를 넘어서겠죠. 언제나 그 능력치에 한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테고, 신체에 적용하는 스킬의 효율이 올라가고… 어쩌면 세 번째 환골탈태를 할지도 모르겠네요.”
피니아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얻은 간섭력이… 충분하네요. 후우. 최초의 그랜드 마스터… 그것도 5년 만에…….”
피니아가 새삼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까지 성장한 회귀자는 손에 꼽힐 거에요. 게다가 상황도 최상이고……. 훌륭해요. 확실히 당신을 지지한 보람이 있네요.”
피니아가 가볍게 미소 짓는다.
나를 지지한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피니아가 대답해 주었다.
“모든 플로어 마스터들이 당신을 지지하지는 않아요. 여러 하층이 존재하고 튜토리얼이 존재하는 만큼 생각보다 관리자는 많답니다. 중층만 해도 메인이 셋이고 필요에 따라 다른 하층이나 튜토리얼을 관리했던 플로어 마스터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거든요.”
잠시 말을 멈춘 피니아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일을 마치고 생각하죠. 우선 이건 해 드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 혼자는 불가능하니, 잠시 다른 마스터를 좀 부르겠어요.”
곧바로 피니아가 허공을 향해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곧이어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찢어진 공간으로부터 칠흑빛 머리카락에 샛노란 눈동자를 지닌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