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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41화 (241/317)

241화

정리

잔딜리엔의 예상 대로였다. 물어보고 왔다는 잔딜리엔의 말에 따르면 나연은 나를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오지는 않았지만, 다른 엘프를 시켜 말을 전해왔다.

처음 그 말을 들은 일행은 저쪽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과는 만나도 상관없다는 말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만약 거짓말이었다면 만나는 순간 거짓인 것이 들통 난다. 그딴 의미 없는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생각을 해 보았지만, 나연의 의견을 무시하고 나 또한 가도 상관없다는 말에 그 가설 또한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나야 상관없는 일이다. 잔딜리엔 님의 명령이라 수행할 뿐. 네가 같이 간다고 한들 막을 이유 따위는 없다.”

전달자로 온 엘프의 말에 나 또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나연이 내 얼굴을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과는 만나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 사실에 일행들의 표정이 괴이하게 변해버렸다.

“왜 언니가…….”

“…다녀와.”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일행들과는 다르게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이유가 있겠지.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나연이, 괜히 나와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래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나연이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럴 애는 아니니까요.”

주하연이 빠르게 덧붙였다.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하유진이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럼 저는 그냥 형이랑 있을게요.”

신경을 써 주는 것 같았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같이 다녀와.”

“하지만…….”

“뭔가 내가 가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인 거니까 그렇겠지. 나연이 괜히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한동안 고민하는 표정이던 하유진은 내가 재차 다녀오라고 말하자 별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칸스로프도 데리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안부도 전해 주시구요.”

“…그럼,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올게요, 신후 씨.”

일행이 안내역을 맡은 엘프를 재촉했다.

그들이 떠난 이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서 훼방을 놓을 것이 무엇일지를 모르겠다.

나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도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나를 떠나고 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는 새삼 누군가와 비교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으니까.

어지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나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는데, 나연이 개인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만한 사건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실마리가 없었다. 그나마 드는 생각은 무언가 당장 강해지는 것에 내가 방해되는 것 아닐까 하는 정도가 그나마 되는 의심이었다.

애초에 정령술에 대해 엄청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유는 더더욱 오리무중이었다.

시간이 제법 지나 일행들이 돌아왔을 때 들은 말도 결국 대소동이 했다.

그녀들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합신과 관련된 일이었어요. 지금 당장 말하기가 조금…….”

“…직접 말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물론 물어보면 대답을 해 주라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주하연과 한바다가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런 이들을 향해 심각할 정도의 일이거나 급박한 일이냐고 물었고, 일행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엘프의 술수가 들어간 것도 아닌, 순수하게 나연 자신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힐끗, 나서윤의 표정을 살피자 생각보다 심각한 얼굴이 보였다.

잠시 물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은 미루기로 결정했다. 직접 듣고 싶기도 했고, 급박한 일을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게 더 확실하기도 했고.

“몸은 괜찮아 보였습니까?”

“네. 몸은… 건강해 보였어요.”

다행히 큰 상처나 후유증이 생긴 모양은 아니었다. 내심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답을 받으니 조금 마음은 놓였다.

“볼일이 끝났으면 떠나 줬으면 하는군.”

이곳까지 우리를 안내했던 엘프의 말이었다.

주변에는 적지만 일부 엘프들이 남아는 있었다. 다만 우리가 순순히 떠나겠다고 말했기 때문인지 잔딜리엔은 아예 자리를 떠났고, 대부분의 엘프들은 그런 잔딜리엔을 호위한다는 명목인지 쪼르르 따라가 버렸다.

일부 남은 인원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 같았다.

엘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곧바로 올 때처럼 며칠에 걸쳐 안내를 받아 제국의 국경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약속된 장소에 엘프 몇몇을 보내 놓겠다. 일을 시작할 때가 되면 그들을 통해 말을 전하면 될 거다.”

엘프의 말에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는 제국으로 돌아가자, 황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마 우리의 귀환 소식은 제국 전체에 퍼질 터였다.

“기다리고 있었네. 엘프 쪽 일은 잘 해결이 되었나?”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비는 것 같군.”

“사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안위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내가 얻은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나 있었던 일들을 대강이나마 설명하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짓기와 물품 지원이라… 까다로운 목록이 있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들은 아니로군.”

몇몇 직접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제외하고는 황제에게 얻기 어려운 것은 없었다. 애초에 목록에 황제조차 까다로워한다는 것들이 있는 만큼 길드 단위로 올라가기 위한 조건이 그만큼 어려움을 알 수 있었다.

괜히 1회차에서도 길드 단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당시에도 나만큼 영향력 있는 길드가 있지는 않았지만. 서로 견제도 해야 했는데 반해, 나는 그러한 세력이 없다시피 했으니까.

황실의 전폭적인 신임도 받는 중이기는 했고.

“과연 그냥은 못 도와준다는 건가… 약속은 약속이니 돕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내 차례인가?”

황제는 나를 향해 방해되는 귀족들의 리스트를 넘겨왔다.

황제의 사전 작업으로 인해서 제국은 상당히 뒤숭숭한 상태였다.

귀족들의 힘과 권한을 축소하고 황제 자신의 힘을 늘리는 작업이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덕분에 그간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도 않았고 보기도 힘들었던 황실파와 귀족들의 대립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이대로 제국이 다시 예전처럼 여러 왕국으로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랬다간 오크의 공격을 막지도 못 할 거다.

단일 최강의 세력이라도 비등하거나 언제든지 제국을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는 세력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당장 갈라지는 순간 인간은 멸망이나 다름없었다.

황제로부터 받은 리스트에는 여러 귀족들의 이름과 명분으로 쓸 수 있는 일들이 수두룩하게 적혀 있었다.

이러한 목록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실제로 이것을 행하느냐가 문제였다.

이 일들을 터뜨리기 시작한다면 중간에 멈출 수도 없었고 많은 피가 흐를 터이며, 수많은 위협과 압박이 찾아올 터였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감수할 생각이었으며, 그것은 황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엘프의 숲에 있는 동안, 아니 꽤 오래전, 제국을 중앙 집권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을 때부터 생각해 왔던 것들일 터다.

황제를 바라보았고, 역시나 표정에서부터 흔들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처리하죠.”

“고맙군.”

거래일 뿐이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한 뒤 황실을 떠나왔다.

“하연 씨.”

“네.”

“외부에서 활동하는 길드원들에게 연락하세요. 최대한 규모 있게 행동할 것, 사방에서 습격을 해 올 수 있으니 최대한 주의할 것. 이것은 산하 길드에게도 포함되는 조건입니다.”

“…시작이군요. 알겠어요. 바로 전하도록 할게요.”

주하연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이야기를 알리기도 했고, 황제와의 거래를 이행하게 된다면 당연하게 일어날 일이기도 했다.

나는 일을 벌이기 전에 우선 그간 모아 놓았던 공적 중 일부를 사용해 무기 하나를 요청했다.

“…흡혈검이요?”

“예. 3급 쪽에 있을 겁니다.”

공적치는 충분하다. 내 말에 담당자가 내 검을 슬쩍 바라본다. 같은 종류의 검이다. 그간 오래 써 오고 피를 흡수해 오며 타 흡혈검과는 차별화된 모습이기는 했으나 내 검이 흡혈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제법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성자가 사용하는 검 치고는 흉흉하다는 말들이 있었지만, 수련자가 아이템을 쓰는 것일 뿐이라는 말에 어떻게든 납득을 한 모양들이었다.

“공적치는 충분하시니… 알겠습니다. 바로 꺼내 드리겠습니다.”

지금 흡혈검을 꺼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진화.’

나서윤의 검 모랄타. 그것을 보고 슬슬 상층에 가기 전에 무기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의 주인이나 그것을 통해 만드는 혈신의 갑옷을 생각하면 새 무기도 가능할 것 같기는 했으나,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 상황에 한 번쯤 시도를 해 보고 싶었다.

‘모랄타가… 워낙 대단하기도 했고.’

나서윤의 맞춤에 가까운 무기인 만큼 내심 부러운 면도 있었다. 흡혈검도 내게 딱 맞는 무기에 가까운 만큼 조금 기대를 하게 만들었고, 그렇기에 어차피 쓸 곳도 없는 공적치를 사용할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한 자루.’

대략적인 위치 정도는 안다. 황실 정보 단체 또는 도적 길드를 이용하면 더 빨리 구할 수도 있었고. 흡혈검 세 자루를 이용하면 전설급 흡혈검을 만들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사실 흡혈검보다 더 좋은 검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검들 중 지금의 내 수준에 맞는 검은 사실 없다시피 했다.

그랜드 마스터. 다른 것을 다 떼고 지금 경지만 거론해도 사실상 대부분의 전설급 아이템들은 내 눈 아래로 보게 된다.

거기에 내심 모랄타 수준의 대단한 검은 생각이 나는 것이 없었다. 전설급 아이템들은 많이 알고 있었지만, 수련자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을 높이는, 특히 그중에서도 지금 내 수준에 걸맞은 무기는 없었다. 수련자의 수준에 맞춰 능력을 높이지 않고 고정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수준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전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소문의 흡혈검에 작은 기대를 걸었다.

관리자를 통해 흡혈검을 얻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어급 흡혈검이 손에 들어왔고, 다른 한 자루는 도적 길드를 통해 의뢰했다. 황실 정보 단체는 현재 제국이 어지러운 만큼 손을 빌리기가 조금 꺼려졌다.

도적 길드 쪽에서는 제법 큰 의뢰비를 제시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레어급 장비를 얻는 것 치고는 과소비이기는 했으나, 감당 못 할 재력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내 검으로 유명해진 만큼 누군가가 얻어서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추가 비용이 붙기는 하겠지만…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그래 봐야 돈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거면 된다.

새로 얻은 흡혈검과 도적 길드를 통해 의뢰한 무기 역시 레어급에서 슈퍼 레어급으로 성장시키기는 해야 하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길드 전체에 지령을 내려 안전을 중시할 것을 지시하고, 몇몇 길드원들을 소환한다. 갑자기 소환되어 얼떨떨해하는 아멜리아와 프레드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엘리자베스 또한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며 불러들였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간섭력을 사용하기 위해 플로어 마스터를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똑똑.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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