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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40화 (240/317)

240화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하유진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게, 제가 엘븐하임에 잠입 성공했거든요?”

그런 지시를 내리기는 했다.

던전을 발견하는 순간 들어가는 척 은신하고 엘븐하임 내부에 잠입해 보라고.

우리가 있는 장소부터가 결계 내부인 데다가 세계수의 중심부에 가까울수록 더 뛰어난 엘프들이 머무는 만큼 도시 내에서도 하유진의 은신을 알아챌 수 있는 엘프는 없다시피 했으니까.

들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소환된 정령들은 소환자의 역량에 따라 힘이 다르고 자연 상태의 정령들은 볼 수 있다 뿐이지 일일이 이러한 것을 알려주고 소통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기에 조심해서 시도해 보라고 했던 것인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도서관이 있더라고요!”

“…도서관?”

“네. 아쉽게도 여기에 던전은 없었어요. 그래서 자는 척하면서 삭월의 가호를 이용해서 잠입했어요. 그런데… 마침 도서관이 있어서, 책을 베껴왔죠!”

그대로 가져오면 들킬 것 같았기에 열심히 베꼈다고 하유진이 자랑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었을 텐데, 정말 고생했다고 볼 수 있었다.

“잘했다. 고생했어.”

“뭘요! 저도 도움이 돼서 기뻐요. 이거라면 나연 누나에게도 분명 도움이 되겠죠?”

아마 정말 중요한 비전은 아닐 거다. 그래도 기초나 거기서 조금 나아간 정보이기만 하더라도 나연에게는 가뭄의 단비일 터다. 스킬이 알려주는 것 외의 정보들은 분명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실제로 나 또한 새로운 검술이나 비전 등을 수집한 것들이 도움이 되었었으니까.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 정령술에 대한 정보들이다.

‘온 사람이 다 도와주는군.’

확실히 상층에 대한 시련을 제외하고도 이곳에 온 보람은 있었다.

“그나저나, 보름 동안 던전이 단 하나도 없었어?”

“네. 마수들은 제법 있었어요. 못 보던 이들도 있었고, 짐승들도 있어서 조금 사냥을 하기는 했고요. 많이는 엘프들이 제지하길래, 그냥 안 했어요.”

“잘했다. 마찰은 피하는 것이 나아.”

‘던전은 없었다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발걸음이라고는 없다시피 한 곳에, 던전이 전혀 생성되지 않았다?

경계 쪽에 있던 타락한 정령의 동굴을 생각해 본다면 아주 없지는 않을 텐데…….

‘세계수와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면 잔딜리엔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나서윤과 하유진을 데리고 베이스캠프인 동굴로 돌아갔다. 다른 일행들은 모두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셨어요? 유진이가 마중을 나간다고 하더니, 잘 만나셨나 보네요.”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예.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주하연과 한바다의 질문에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자 둘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내 말투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러나 질문할 틈도 없이 남은주가 끼어들었다.

“서윤아, 그게 이번에 얻은 검이야?”

모랄타는 베갈타와는 조금 다르게 허리에 차기에는 조금 길었다. 그 때문에 모랄타는 나서윤이 등에 비껴멘 상태였다.

그것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나서윤이 웃으며 말했다.

“네. 전설급 무기에요. 그런데 저한테 너무 잘 맞아서… 보통 전설급 보다 상위 느낌?”

“엄청 좋은 거 얻었네?”

“네. 써 봤는데, 정말 딱 제 무기라고 느껴지는 것이…….”

나서윤이 평소 같지 않게 자신의 무기를 자랑하는 모습에 일행의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퍼져 나갔다.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모습. 나름 새로운 모습이 일행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하연이 대표로 대답했다.

“아직은 연락 없었어. 그래도 한 달이 되려면 아직 일주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니까…….”

주하연의 말에 나서윤은 불안한 보다는 안심을 느낀 모양이었다.

일단 나쁜 소식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구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나서윤은 곧바로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왔다.

“그러고 보니, 던전에서 거인이 나왔었어요.”

“…거인?”

단숨에 일행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네. 거인이요. 어리고 덩치도 작기는 했지만, 분명 거인이었어요.”

“크기가 어느 정도였길래 작다고 해?”

“5m 정도였어요.”

“…작기는 하네.”

대체적으로 지구에 쳐들어온 거인이 20m 이상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목격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전부 일정하지는 않아 50m가 넘는 놈도 있다고는 들었으니까. 물론 실제로 그 크기를 일일이 재지는 못하고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미국이라고 했던가?’

50m 크기의 괴물은 그곳에 있었다고 들었다.

“어땠니?”

많은 말이 함축된 질문에, 나서윤이 대답했다.

“덩치가 작아서 그리 강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아무래도 던전이다보니 이성도 없다시피 했고… 말도 못 하는 데다가 조금 마구잡이로 덤비더라고요. 물론 그래도 어지간한 마스터 이상으로 강하기는 했지만…….”

작고 약한데도 마스터 이상이다. 그 말에 일행들이 조금 심각해졌다.

“게다가… 마법 저항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긴 하더라고요. 그렇게 약한데도 하급 마법은 전혀 통하지도 않았고, 중급 마법도 여러 조치를 해야 통할 정도인 데다가 수로 밀어붙여도…….”

직접 겪은 경험담이 나서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래도 일단 저항력만 뚫으면…….”

“그럼 결국 너랑 아멜리아 씨의 힘이…….”

어느새 일행들은 거인의 정보를 나누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최종 목표가 거인을 몰아내고 지구를 구해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야 나 또한 목표인, 가족들과의 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엘프들의 정령술을 내가 분석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한바다가 중얼거렸다.

“연이가 실패해서 나와도 큰 손해는 아니겠는걸.”

나 또한 동감했다. 물론 하유진이 가져온 것들이 더 도움이 될 테지만.

나와 나서윤이 일을 끝내는 동안 하유진이 해온 성과 이외에 별다른 일은 없었고, 우리는 소식을 기다리며 하나둘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약속된 한 달이 하루 남은 날. 그간 우리를 전혀 찾지 않던 엘프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 * *

밖에서 느껴지는 여러 기척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당연하게도 나였다.

새삼 경지가 높아진 것이 느껴진다. 혹시 몰라 꾸준히 불침번은 서 왔고, 현재 불침번이 한바다인데도 내가 먼저 알아챘다.

나는 빠르게 일행들을 깨웠다.

“…오빠? 무슨…….”

나서윤이 반쯤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뒤늦게 엘프들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표정이 빠르게 냉정해졌다.

“신… 이미 일어나셨군요.”

“기척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말이죠. 후. 이른 아침부터 이게 뭔 일인지…….”

“…나연이의 소식이겠죠? 슬슬 올 때가 되기는 했으니까…….”

주하연의 말에 내심 동의했다.

우리는 빠르게 장비를 갖춰 동굴 밖으로 향했고, 주변에 보이는 수백의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뭐가 이렇게 많이…….”

일행들이 약간 의아해하는 기색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잔딜리엔…….’

저 멀리서, 그녀의 기척이 느껴진다.

기억에 있었다. 확실히, 그녀의 위치가 특별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크르릉…….”

라이칸스로프가 주변을 경계한다.

엘프들은 자신들이 우리를 포위하면서도 한껏 긴장한 표정이었다.

수백의 엘프들 사이로 잔딜리엔이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유신후.”

“호위가 과한 것 아닌가?”

“나도 좋아하지는 않아. 하지만 필요한 일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잔딜리엔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감이 있었다.

하기야 있어 봐야 큰 도움도 안 되는 이들이 우르르 자신을 모시며 따라오는데, 그간 조용히 지내왔을 잔딜리엔이 편할 리가 없었다.

“나연은?”

“…통과야.”

“나이스.”

귀찮게 되었다는 듯한 잔딜리엔의 말에 나서윤이 작게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잔딜리엔의 시선이 잠시 나서윤을 향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약속했던 대로… 가르침은 주겠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급 정령에 도달하는 것을 돕는 것 정도와 상급 정령을 다루는 방법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 다야. 그 너머까지 바라지 않았으면 하는데.”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다. 그녀의 기초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상급 정령을 다루는 방법 정도만 알려준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뿌리가 부실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잔딜리엔의 표정은 완고했다.

하기야 나연의 기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스킬이 있는데 아주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다만, 엘프들의 정령술이 그 이상일 뿐.

그러나 그 기초는 이미 이쪽에서 제법 훔친 상태다. 인벤토리 내부에 있는 이상 알 방법은 없겠지만.

“합신은?”

“그건 원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 해결은 내가 못 해줘. 직접 해야 해.”

“…그렇군. 알겠다. 그거면 충분해.”

“뭐,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버틸 줄은 몰랐지만 세계수와 가까운 장소에서 한 달이나 버티며 수련을 쌓았고… 자격 또한 왜 상급 정령에 도달하지 못한 건지 이상할 정도로 충분하니까. 하지만.”

잔딜리엔이 차갑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냥 해 주기는 조금 그러네. 네가 이전에 주기로 한 것 정도는 받고 싶은데?”

“마을을 말하는 건가?”

“검문소도.”

피식.

조금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기에 진 이상 그냥 해 줘야 할 판인데 그건 또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들어 주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기에 허락했다.

“요구 조건이나 말해.”

내 말에 한 엘프가 다가와 양피지 하나를 건넸다.

―석조 건물

―1천 이상의 엘프가 지낼 수 있는 규모

―위치

여러 조건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절로 헛웃음이 나왔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중층을 떠나고 나면 사실상 재물들은 필요가 없다. 황실도 반대할 이야기는 아니고. 대화 창구 역할도 할 수는 있겠지.

‘그나저나 역시 석조인가.’

1회차와 달라지지 않았다.

“해 주지. 최선을 다해 가르쳤으면 한다.”

“…해주기로 한 이상 대충은 안 해. 걱정하지 말았으면 하네.”

“거래 성립이군.”

“그럼 나가.”

“…뭐?”

“약속은 지키겠지만… 더이상 인간들이 우리의 영역에서 활개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나가. 세계수의 이름을 걸고 약속은 제대로 지켜줄 테니.”

세계수의 이름에 걸고. 확실히, 믿을만한 말이다. 엘프들이 세계수까지 들먹이며 한 약속을 어기지는 않는다.

여기서 거부해 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저렇게까지 말한 이상 나연에게 해는 없을 터다. 나연이 수련을 하는 사이 상층으로 가기 위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게다가 애초에 저쪽이 작정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주변 엘프들의 기척부터가 다르다. 우리가 거절하면 전투도 불사할 것 같은 모양새다.

‘고기 방패군.’

명분용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엘프들과 싸우게 된다면, 잔딜리엔이 나설 수 있게 되겠지. 나연이 저것에게 배워야 하는 마당에… 무조건 손해다.

나는 슬쩍 나서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얼굴 정도는 보고 가게 해 주지?”

내 말에 잔딜리엔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걔가 네 얼굴을 보려고 할까?”

의미심장한 말에 잠시 멈춘다.

“뭐, 물어는 봐 줄게. 기다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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