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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39화 (239/317)

239화

“아, 이거 가지려면 죽여야 하는구나?”

나서윤이 허락을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차피 곧 죽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나서윤이 이미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했고. 대부분 내가 알고 있는 정보기는 하지만 나서윤의 직접적인 경험담이 있는 만큼 일행들에게 들어갈 이야기는 충분했다.

나서윤은 곧바로 작은 거인의 목을 날려버렸고, 곧바로 검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작은 격노 베갈타보다는 조금 큰, 약간 긴 장검 같은 형태로 변한다. 크기가 이전의 반 정도로 팍 줄어든 느낌이다. 나서윤이 쓰기에 약간 긴 듯한 기분이었지만 나서윤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

나서윤은 곧바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큰 격노 모랄타]

―등급 : 전설

―전설로 전해지는 한 쌍의 검, 작은 격노 베갈타의 짝으로 사용하는 이에 따라 그 위력과 형태가 변하는 전설의 무기다.

―공격력 : 100(+근력 및 마력에 비례)

―옵션 : 대 격노 사용 가능

―소유자 : 나서윤

나서윤으로부터 얻은 아이템의 정보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기본 공격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그 설명이 상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까 거인이 사용했던 그 위력을 생각한다면 가볍게 볼만한 무기는 아니다.

나서윤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휙―.

나서윤은 검을 몸에 익히려는 듯 가볍게 이곳저곳에 검을 휘둘러댔다.

한 손에는 베갈타, 한 손에는 모랄타. 탑 초기에 얻은 것이나 다름없는 무기였지만 오히려 어지간한 전설급 무기보다 더 좋다 보니 무척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나서윤이 검을 몸에 익히는 사이에 나는 잡아두었던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깨어난 상태인 그들은 묶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말할 수 있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런 기능은 없는 듯했다. 예상을 했기에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잡아 놓은 이들이 하나같이 정령사인 덕분에 하나둘 정령을 소환해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마력 자체는 제한하지 않은 만큼 자유롭게 소환되는 정령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가 나를 공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게임 속에서 정해진 역할만을 수행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탑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곳인지 새삼 느껴졌다.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자 대부분의 시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거인의 시체는 남아 있기는 했지만 아마 오래가지는 않을 터다. 스킬의 효과 때문인지 피들은 대부분 남아 있어 주변이 엉망이기는 했지만.

나는 혈마법과 워 크라이, 단순히 마력을 방출하는 방법 등을 이용해 엘프들을 최대한 방해하고 기술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경지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인지 내가 단순하게 마력을 방출하고 주변 공간에 간섭하기만 해도 엘프들의 공격은 먼지처럼 부스러졌다.

새삼 새롭게 알게 된 마력 운용법이라고 할까. 될 것 같아서 해 봤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상당했다. 마력을 제법 소모하기는 하지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양민 학살이 특기였는데…….’

이쯤 되면 일정 수준이 되지 않는 이상 적이 얼마나 많더라도 상관이 없을 듯했다.

마법 저항력이 없다시피 한 인간도 이런 방식이라면 마법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랜드 마스터 한정이라는 것이 웃기지만.

종족을 뛰어넘는다고 해야 할까.

엘프들의 발악을 바라보며 그들이 사용하는 마력, 정령력의 운용 등을 자세히 살폈고,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들을 최대한 수집했다.

엘프들의 공격 패턴을 분석하면서 새삼 나연이 제법 정령을 잘 다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디테일은 부족할지 몰라도 같은 수준이라면 정면으로 붙었을 때 그리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스킬을 통해 배운 것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상당히 연구를 잘한 모양이었다.

‘사샤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본인 능력이다.

확인은 엘프들이 완전히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들이 탈진하자 가볍게 처리해 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서윤이 다가왔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최고인 것 같아. 오빠가 잘 보관하라는 말을 한 이유가 있었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심상치 않은 무기인 것 같았거든. 당시에.”

나서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오빠는 당시부터 감도 좋고 대단했었으니까. 마력도 제일 먼저 각성하고… 듣기로 상태 창 얻고 그렇게 빨리 마력을 각성한 사람은 오빠 말고 없었어. 처음 물어봤을 때도 마력이 5였다고 했던가…? 각성한 순간부터 마력이 3이라고 했었고. 심지어 나도 엄청 빠른 거였다고 하던데.”

“…….”

할 말이 없었다.

‘…저렇게 기억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었지만…….’

진짜 천재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미묘했다.

“이대로 보름만 버티면 돼?”

“응. 하루에 한 번씩 습격이 올 거래. 검을 뺏으려고. 마지막까지 버티면 출구가 나온다고 했으니까, 굳이 여기서 있을 필요도 없고, 살아만 남으면 된대.”

엘프와 수인들이 같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그냥 숨어만 다녀도 저들끼리 경계하고 싸우지 않을까? 잘만 이용하면 한 번도 안 싸울 수도 있었다.

별로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나오면 족족 처리하고 끝내자.”

“응.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이거 실험도 해 보고 싶고.”

눈을 빛내며 말하는 나서윤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게다가 미리 처리하면 하루씩 오빠랑 보낼 수 있는 거잖아?”

틀린 말이 아니기는 했다.

확실히 둘이 같이 보낸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뭔가 특별한 일들이 있지는 않았다. 여기가 지구도 아니고 고립된 공간에서 할만한 것들이 넘치는 곳도 아니고. 다만 고립된 공간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단둘이 지낸다는 것 자체에 나서윤이 만족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은근히 자신의 독점욕을 만족시키는 상황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기에 별다른 참견을 하지는 않았다.

검에 적응하는 일을 주로 했지만, 심심해지면 명상을 하거나 피의 주인을 이용해 마법을 연습하는 나를 구경하다가 가끔 마법에 관한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서윤이 해 주는 조언이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응. 오빠는 속성이 하나인 데다가 영창도 필요 없고, 정형화도 덜 되었잖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확실히 평범한 마법은 아냐.”

“…그건 그렇지? 이건 종족 특유의 기술이니까.”

뱀파이어 특유의 피를 이용하는 기술은 혈마법이라고 불리기는 하나,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과는 그 궤가 다르기는 했다.

“그렇지만 오빠는 뱀파이어가 아니잖아. 혹시 종족이 변했어?”

“당연히 아니지.”

“그렇지. 그러니까 이렇게 엉성하게 나가는 게 이상한 것은 아냐. 오빠도 알겠지만 시스템 보정이 만능은 아니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래. 조금 엉성하기는 한데, 결국 오빠 스스로가 기술을 만든다는 느낌이 더…….”

나와 다르게 이론적인 면도 스킬로 습득하고 마탑에서까지 배웠던 경험이 있는 덕분인지 생각보다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다.

마법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는 나임에도 확실히 조언을 받을 때마다 성장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천재들은 가르치는 것을 잘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나서윤은 가르치는 것에도 능숙하다는 느낌이었다.

“새삼 신기하네. 오빠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경험은 처음 해 보는 것 같아. 맨날 배우고 받기만 했었는데…….”

솔직한 말로, 나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나는 1회차에서도 누군가에게 이러한 친절한 조언을 받은 적이 없다시피 했었다. 특히 수련자에게는 더더욱.

2회차에서는 모든 수련자들 중 선두인 만큼 더더욱 그런 경험을 할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그나마 2회차에서는 거주민들에게 여러 가지를 배우기는 했었지만.

언제나 수련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멍하니 같이 주변을 구경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 가끔은 가만히 나를 끌어안고 있다거나 품에 안겨 실실 웃어대기도 했다.

나름 귀엽기도 했고, 엘프의 숲에 있는 기간은 휴식이나 다름없는 기간으로 정한 만큼 그런 나서윤을 말리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매일 쳐들어오는 엘프와 수인들을 처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서윤이 사용하는 대 격노의 위력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대 격노!”

나서윤이 말기를 굳이 대 격노 스킬 이름을 외칠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다만 아직 스킬을 사용하는 방식이 익숙하지는 않아 직접 스킬 명을 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콰아앙!

일격에 수백에 달하는 이들이 베이고 터져나간다.

확실히 이전 거인이 사용했던 것보다 위력이 더 뛰어나다.

나는 곧바로 나서윤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신체 능력

근력 : 92 민첩 : 96 체력 : 89 마력 : 99

―자유 : 2(100미만)

‘근력이 92에 마력이 99라…….’

확실히 시기를 생각하면 미친 성장 속도라고 볼 수 있었다. 보통의 수련자라면 기대할 수도 없을 마력 100을 머지않아 달성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조차 순수 능력치 100은 환골탈태를 2번이나 하고 나서야 달성했었는데, 나서윤은 내 지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새삼 아까 들었던 천재라는 말에 부끄러운 감정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아직 상급 마스터에 상급 마법사 수준이고…….’

벽을 넘고 보니 그랜드 마스터라는 경지는 재능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서윤이라면 반드시 이곳에 도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만큼 저 위력도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나서윤의 끝은 그곳이 아니다. 아직도 비활성화 상태인, 전설 죽이기 스킬에, 남은 스킬 슬롯도 있었다.

즉, 나서윤은 아직까지 그 성장의 끝이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나서윤을 얻은 것은 2회차에 들어서 한 일들 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나서윤이 소환된 모든 수인과 엘프들을 지워버렸다.

모든 이들을 정리하고 난 뒤 나서윤은 이전처럼 몇몇 엘프들을 사로잡은 채 내게 넘기며 말했다.

“이게 언니에게 도움이 될까?”

“내가 정령사가 아니라 잘 모르기는 하지만… 도움이 되기는 할 거야. 너도 마법 익힐 때 운용에 관한 정보가 있으면 도움이 되잖아?”

“그건 그래.”

잠시 말을 멈췄던 나서윤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언니는 잘하고 있을까?”

“잘하고 있겠지. 사샤도 그렇고, 본인들이 직접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나는 일부러 무십한 듯 말했다.

솔직한 말로 실패 가능성도 많다고 본다. 그만큼, 세계수가 보인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걱정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잔딜리엔이 거지 같은 엘프라고는 하지만 내 일행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한다. 나도 있고, 라이칸스로프 또한 있었다. 게다가 플로어 마스터들 또한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터다.

문득, 중층으로 올라갈 때 리베리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는 당신을 지지할 겁니다… 인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다만, 나를 지지하는 플로어 마스터가 있는 이상 나연의 안전 자체가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죽거나 병신이 되어서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나서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만큼, 아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혈육인데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나서윤의 걱정은 당연한 면이 있었고, 그렇기에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여전히 걱정이 남아있는 듯했지만, 나서윤은 내 말에 더는 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의 시간을 보낸 이후 우리가 밖으로 나갔을 때, 우리를 향해 하유진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형! 형! 대박, 대박이에요!”

나와 나서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을 교환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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