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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38화 (238/317)

238화

“…오빠, 저거…….”

나서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투 자체는 삼파전에 가까웠다.

엘프와 수인이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거인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던전에서 거인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랬다면 분명 화제가 되었을 터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구를 침공한 것이 거인인데, 퀘스트 던전에 거인이 나왔다면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비록 작고, 볼품없기는 했지만.

‘던전의 난이도가 다른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원인은 레벨이 아닐까 추측되었다.

“아, 오빠. 퀘스트 갱신됐어…….”

“퀘스트가 뭔데?”

“저거 뺏어서 15일간 버티라는데?”

나서윤이 허술한 거인의 손에 들린 무기를 가리켰다.

“…너무 크지 않나?”

아무리 작아도 거인은 거인이다. 키가 5m는 되는 놈이 손에 들고 있는 무기였다. 대부분의 거인은 작아도 키가 10m는 넘어간다.

어려 보인다는 것을 고려하기는 해야 하겠지만.

‘마법이… 통할지 모르겠네.’

거인 종족의 마법 저항력은 보통이 아니다. 드래곤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 중 하나로 거인은 스스로의 강함과 관계없이 대부분 마법 저항력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다. 일종의 실드 같은 개념인데, 일정 수준의 마법이 아닌 이상 깨지지도 않는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완전히 부서지면 그때부터는 결국 마법이 통하기는 한다고 했으니까…….’

가이아로부터 얻은 정보였다. 나로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상층에서 죽어버렸으니까.

그렇다고 수준 높은 마법 한 번에 깨지는 단순한 개념은 아니라고 들었다. 상급 마법이라도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하고 약간의 데미지를 주는 것이 다이지만, 수준, 위력에 따라 여러 번 정통으로 맞으면 감소세가 점점 줄어들고 끝내 부서진다고 들었었다.

그 이후라면 하급 마법으로도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마법이 잘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수준 높은 마법을 써야 할 거야.”

나는 나서윤에게 거인의 마법 저항력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물론 강기도 그리 쉽게 통하지는 않을 거야. 마법 저항력이 높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물리 공격에 약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마법에 비하면 훨씬 낫다. 강기만 뽑을 수 있어도 괜찮은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물론 허수아비가 아닌 이상 그리 쉽게 당해주지는 않겠지만.

“응.”

나서윤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내가 정보를 많이 모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별다른 생각은 없는 듯했다.

‘산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모처럼 거인을 직접 겪어볼 수 있는 기회다. 상층에서도 보기는 하겠지만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엘프들까지. 여기 엘프들이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다. 저기 보이는 엘프들 중에는 정령을 다루는 이들도 보였으니까.

던전 속의 몬스터인 만큼 말이 잘 통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용하는 기술들을 마력의 눈동자로 관찰만 해도 나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터다.

‘면은 서겠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나연에게 도움이 되기는 할 거다. 자연 상태의 정령도 아니고 정령사가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게다가 내 경지가 그랜드 마스터에 도달하면서 마력의 눈동자의 효과 및 효율이 좋아진 만큼 나와는 계통이 다르더라도 마력을 운용하는 모습과 보이는 효과 정도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바락을 분석했던 것 수준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지만.

우리는 곧바로 전투에 끼어드는 대신 상황 파악에 힘을 더 실었다.

수인들은 대부분이 늑대나 멧돼지 종류로 보였으며, 으레 수인들이 그렇듯 대부분이 전사 계통이고 일부만이 궁수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그에 반해 대부분의 엘프들은 궁사였으며 전위는 정령사들이 정령을 이용하는 듯 보였다.

거인은 뒤따르는 이들 없이 홀로 싸우는 모습이었다.

거의 포위된 상태로 위태위태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거인이, 자신의 검을 크게 가로로 휘두른다.

쿠아아아앙!

“…와.”

“허.”

나서윤이 감탄한다.

모랄타의 기능, 대 격노. 나도 저 기술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위력이 보통이 아니다. 물론 사용한 이가 거인임을 감안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충분히 시간을 낼 가치가 있는 무기였다.

크게 휘둘러, 전방을 쓸어버리는 참격을 날리는 기술. 거기에 폭발까지 한다. 그 위력이 마력에 비례한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검임에도 전사들보다는 마법사들의 호신용 무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검이다.

그러나 나서윤은 다르다. 마검사. 검도 잘 다루면서 마법까지 수준급으로 사용한다.

현시대의 랭커. 저 모랄타를 손에 넣으면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나서윤만을 위한, 맞춤형 무기라고도 볼 수 있었다.

“저게, 저게 모랄타일까, 오빠?”

“…아마도.”

“갖고 싶다. 조금 크기는 한데…….”

“설마 저걸 그대로 쓰라고 하지는 않겠지. 조정이 될 거야, 아마. 두 개가 한 쌍인 검이라고 알고 있는데, 딱 봐도 2m가 넘는 대검을 한 손으로 쓰기는 힘들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모랄타가 2m가 넘는 대검이라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거인이 휘두른 일격에 수백의 엘프와 수인이 그대로 죽어나갔다.

참격의 궤도상에 있던 이들은 그대로 동강 나버렸고, 폭발지점 주변에 있던 이들은 그대로 폭사했다.

괜히 기능만큼은 전설을 뛰어넘어 준신화에 가깝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무기 자체의 성능도 준수하고, 사용하는 이의 능력에 따라 위력이 증가하는 참격을 몇 번이고 쏘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전설 그 이상의 취급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저건 주인 의식도 없어서 손에 넣기만 하면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단, 전 주인이 죽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어떤 의미로는… 마검에 가깝네.’

마력을 엄청나게 잡아먹어서 그렇지 저 위력만 본다면 마력만 높아도 마법 하나를 쓸 수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마력에 따라서는 상급 마법이 될 수도 있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이 검의 과거 주인들은 자신이 소지했다는 사실을 되도록이면 숨겼다. 결국 드러나서 죽은 이들이 몇 명이나 되었고, 끝내는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저런 모자란 거인이 써도 저 위력인데, 나서윤이 쓰면 얼마나 강대할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위력이 강하기는 하지만 상대가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대량 학살은 좋은데, 대인 공격으로는 나나 나서윤이 피하기도,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력은 조금 들겠지만, 주변에 피가 널렸다. 호신 강기를 이용해서 정면으로 뚫어도 괜찮을 수준이다.

주변의 수인과 엘프의 군대도 그리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었고.

나와 나서윤은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기 무섭게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서윤이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아이템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엘프와 수인의 시선이 우리를 향한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단지 시야에 들어오기 무섭게 우리에게도 병력이 분배되며 곧바로 공격해오기 시작한다.

핑-.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쳐내며 전장 한가운데를 향해 가속했다.

엘프와 수인들이 빠르게 대응한다. 우리가 전장 한가운데로 끼어드는 것을 막으려는 듯한 모양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템페스트!”

정면에 아예 바람 계통의 상급 마법을 뿌려 일대를 찢어버리고는 순식간에 앞으로 파고든다.

날아오는 화살들은 소용이 없었고 길을 막아도 순식간에 뚫어버린다.

나와 나서윤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와 시체만이 가득했다.

거인의 눈동자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수인과 엘프를 기계적으로 베고 찢으며 희열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던 모습이 변한다.

조금 경직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수인과 엘프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역시, 말은 못 하나?’

마치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듯, 짐승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더니 쿵쿵거리며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설마 먼저 찾아와 줄 줄은 몰랐다.

나는 슬쩍 나서윤을 바라보았다.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 나름 5m 덩치의 거인이 다가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윤의 표정에서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나서윤 혼자서도 이길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긴장되는 것이 이상했다.

“혼자 상대해 볼래?”

“그래도 돼?”

나서윤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고, 나는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고마워, 오빠!”

나서윤이 거인을 마중 나간다.

“…나는 주변 청소나 할까.”

가볍게 검을 빼 든다. 나는 빠르게 달려오는 엘프와 수인들을 맞이했다.

나는 연습이나 할 겸 주변의 피를 내 지배하에 두며 피를 이용한 마법을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핏덩이를 쏘아내는 것부터 작은 바늘 모양, 역삼각형 모양, 칼날 형태의 모양으로 다듬어 날리는 등 마치 최전선에서 싸우는 마법사처럼 움직였다.

그러면서 나서윤의 전투를 챙겨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서윤은 거인 자체에도 호기심이 있었는지 이것저것 마법을 쏘아내며 거인을 농락하고 있었다.

물론 거인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갓 마스터에 들었거나 초급 수준이었다면 거인에게 그대로 썰려 나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지간한 마스터 수준은 된다는 뜻. 한참 모자란 주제에, 타고난 종족 자체가 좋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거인은 어거지로 만들어진 듯한 강기를 사용했고, 나서윤은 아무렇지 않게 강기를 파괴해 버렸다.

이후 하급 마법을 날려보고, 하급 마법에 마력을 더 추가하거나 개수를 늘려 때려보는 등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모습을 보였다.

거인은 그런 와중에도 분노하며 나서윤에게 끝없이 달려들었지만, 나서윤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일방적인 농락.

‘…지구 거인도 저 꼴이면 참 좋을 텐데.’

아쉽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지구에서 봤던 거인들은 아무리 작아도 20m는 가볍게 넘으며, 진짜 큰놈은 그 크기가 50m나 된다고 들었다. 말이 50m지, 아파트가 걸어 다닌다고 보면 된다.

거인의 힘이 몸 크기에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큰놈치고 약한 놈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일정 수준이 보장된다고 할까.

왕자도 한 덩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와, 진짜 튼튼하네. 숫자로는 안 되는구나?”

나서윤이 웃으며 거인을 상대한다. 나는 그런 나서윤을 위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아무리 내가 피를 이용한 공격에 미숙해도, 마력이 100이다. 형태도 애매한 피 뭉치에 불과해도 쏘아지는 순간 궤적 안에 있는 존재는 모조리 터져나간다.

부족한 숙련도를 마력을 때운다고 볼 수 있었다.

수인과 엘프들 중에는 강자도 없어서 내 특기인 양민학살이 제대로 드러나 버렸다.

피를 이용해 마법과 비슷한 짓까지 가능해지자 일대를 학살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고, 나서윤이 거인을 죽이는 것보다도 빠르게 수인과 엘프들을 먼저 쓸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정령사인 엘프 일부는 살려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화가 통하지는 않겠지만 깨어나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을 관찰할 셈이었다. 아마 다양한 정령술을 보여줄 터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서윤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상처투성이에 일어날 힘조차 없이 바닥을 꿈틀거리는 거인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 거인이 모두 이렇게 약하지는 않겠지?”

“제국에서의 기록만 봐도 최소가 10m야. 지구에서 목격된 이들은 최소가 20m고. 당연히 더 강하지 않을까?”

“그러면 마법 실력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아. 오빠 말대로 마법 저항력이 장난이 아냐. 이렇게 약한데도 중급 마법을 강화해야지만 저항력을 뚫을 수 있었어. 약하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안 뚫려.”

동시에 육체 능력도 약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지간한 마스터 급이야.”

“길드원들 더 굴려야겠네.”

내 가벼운 농담에 나서윤이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그래야 할지도.”

나서윤은 거인의 팔 한쪽을 잘라내 모랄타를 빼앗아 들고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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