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35화 (235/317)

235화

“와아…….”

“이건…….”

“…CG로나 보던 것을 실제로 보는 기분이네요.”

그간 조용했던 일행들이 순간적으로 감탄한다. 엘븐하임의 내부 모습은 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주하연이 CG로 보던 것을 실제로 보는 기분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닐 정도였다.

깊이 들어올수록 나무가 전체적으로 커졌었는데, 엘븐하임 내부에는 작은 나무와 큰 나무들이 서로 조화롭게 늘어져 있었다.

나무 하나하나가 집이나 다름없는 형태였고 수많은 엘프들이 나무 위, 땅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마을, 아니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입장과 동시에 시선은 우리에게 쏠린 상태였지만, 일행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들도 엘프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있는 것은 알지만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여기까지 왔다. 4일 정도의 시간 동안 직접 본 엘프라고는 우리를 안내한 저 남성 엘프뿐이었다.

그런데 도시 내부에는 수없이 많은 엘프들이 있었고, 그 모습이 일행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 나연만큼은 시선이 엘프나 도시 내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나연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행은 모르겠지만, 나는 나연이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이 허공을 떠다니는 정령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 정말로 볼 수 있었던 건가…?”

우리를 안내한 남성 엘프가 중얼거린다.

끝까지 이름도 안 알려준 놈이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엘프의 숲이라는 이름답게 결계 내부만이 아니더라도 종종 자연 상태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었다.

물론 일정 이상의 친화력이 있지 않은 이상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한 자연 상태의 정령을 볼 수가 없었다.

워낙 드물기도 했고.

대부분의 엘프들은 그런 자연 상태의 정령을 볼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나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동하는 도중 간혹 자연 상태의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나연은 그런 정령을 자주 쳐다보고는 했는데, 이 남성 엘프는 그것을 보고 설마 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나도 볼 수 있었다.

경지가 높아 마력의 감지력이 뛰어난 데다 마력을 직접 볼 수 있는 마력의 눈동자마저 있었다.

정령력 또한 마력이 변질된 것의 일부인 만큼 보는 것이 가능했고, 경지가 높아진 덕분에 항시 극한 활성화가 가능해지자 대강 자연 상태의 정령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친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무 명료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정령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친화력이 있으면 그걸 자연스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모양이다. 업적 덕분에 약간의 친화력이 생겨서 이전보다는 조금 더 제대로 보이는 느낌이었다.

“…예쁘다.”

나연의 중얼거림.

확실히 저 형체들이 모두 확실하게 정령의 모습이라면… 장관일 것 같기는 했다.

사샤는 그런 정령들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엘프들에게 제법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먼저 접근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자체는 있는 모양이다.

“…그만 보고 따라와라.”

남성 엘프의 말에 일행이 정신을 차리고 남성 엘프의 뒤를 따랐다.

엘프는 도시 깊숙이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미묘한 적의가 우리를 감싼다.

입구에서도 약간의 적의가 있기는 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적의가 강해졌다.

“…거슬리네…….”

나서윤의 중얼거림.

“참아, 서윤아.”

“인간과 엘프의 역사가 서로 좋지 않으니까. 오래 사는 이들인 만큼 제국 쪽보다는 그 원한이 깊기는 하겠지.”

일부는 직접적인 원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수백 년을 사는 엘프들인 만큼, 제국이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부터 살아온 엘프도 있을 터다.

세계수가 점점 가까워졌다.

세계수로부터 뿜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감각을 건드린다.

단순한 여파일 뿐인데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어지간해서는 여기를 점령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럴 의도가 없음에도 절로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국이 엘프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엘븐하임은 사정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처음 와본 이 장소는 어떻게 본다면 정말 철옹성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형태의 엘븐하임은 일정 지역 이상으로 지나자 엘프들의 모습이 급작스럽게 모두 사라졌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희미한 기척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껏 보았던 엘프들의 수에 비하면, 정말 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못 들어간다. 직접 들어가라. 기다리고 계실 거다.”

“엘프들에게도 성역인 장소인가 보군.”

“당연하다. 세계수께서는 우리를 가호하시지만, 가까이서 모시기 위해서는 합당한 자격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수련이 부족해 이 벽을 넘을 수가 없다.”

아마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 거다. 다만, 오래 지낼 수는 없고 엘프들끼리의 규율 또한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들어가게 한다라…….’

무언가, 이유가 있는 듯했다.

우리가 내부로 들어가기 무섭게 나연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크르르릉…….”

라이칸스로프가 그르렁거린다.

환경 자체가, 라이칸스로프에게 위협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여신의 가호.”

“…고마워요, 언니.”

자신 또한 제법 힘들었는지 주하연이 자신과 나연에게 여신의 가호와 축복을 내렸고, 그제야 나연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못 들어올 만하네.”

사샤가 중얼거린다.

확실히 아까 그 남성 엘프의 수준이라면 이곳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가혹한 일상일 터였다.

아직 완전한 중심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마력 유동이다. 중심부는… 나 쯤 되어야 접근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거기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

희미한, 정말로 희미한 기척이 천천히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은발머리, 새하얀 피부에 흰자와 구분이 힘든 섬뜩한 은빛 홍채. 여성형 엘프임에도 나보다도 큰 장신의 엘프.

외형 자체는 이제껏 보았던 어떤 존재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저런 아름다운 외형에도 그 무기질적인 표정과 분위기 때문에 접근조차 하기 힘든 엘프였다.

그녀가 다가와 말했다.

“너희니? 나를 보자고 한 게.”

“…잔딜리엔.”

“끄응…….”

라이칸스로프가 겁먹은 기색을 내비쳤다.

“잘 아는구나. 벌써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참… 능력 하나는 좋구나. 던전의 방랑 상인들에게 정보를 샀니?”

무기질적인 표정. 그런 주제에 친절한 듯한 말투가 무시무시한 괴리감을 일으켰다. 내용은 혐오와 비꼼을 담으나 말투 자체는 무척이나 친절하다.

일행들 또한 커다란 괴리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NPC도 이런 느낌은 아니다.

‘히든 NPC.’

NPC처럼 시스템의 보정과 강제를 받으나 그녀는 거주민이다. 스스로 NPC가 되기를 선택한 존재로, 후천적인 NPC라고 볼 수 있었다.

선천적인, 진짜들과는 다르지만.

‘미치겠군.’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이 눈앞의 괴물보다 강한 이는 없었다.

일행은 그 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잔딜리엔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내게 온 용건은… 뻔하지.”

“상층으로 가고 싶다.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수련자들이 원하면… 알려 줘야지. 개인, 파티, 길드. 뒤로 갈수록 난이도는 높단다. 뭐로 할 거니?”

잔딜리엔은 말을 꺼내기 무섭게 곧바로 용건부터 물어왔다.

마치 이 자리가 끔찍하게 싫다고 말하는 듯했다.

“…길드.”

“나는 분명히 말했단다. 네가 강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길드 단위의 시련은 너라도 골치깨나 썩힐걸? 그 시간에 너 혼자라도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니? 지금도 너희 고향은…….”

“시간은 멈춰져 있다. 그러니 네가 알 바가 아니야.”

움찔.

처음으로, 잔딜리엔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너무 순간적이었고 너무나 미묘한 변화였기 때문인지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렇니? 그것까지는 내가 잘 몰라서.”

잔딜리엔은 허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으음, 너…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었구나. 하긴 몇 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벽을 넘었으니까… 어디 보자… 산하가… 너무 많은데? 이들은 허락할 수 없단다. 영국 왕실 길드? 이들 또한 마찬가지고.”

가능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 직속의, 최정예로 이루어진 길드들뿐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은 되도록이면 받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정도 길드의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내려질 시련의 난이도가 짜증 날 정도다.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비효율적이다. 거인들과의 싸움에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부 인원은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받아들였지만 대부분은 재능과 능력이 있는 이들 위주로 길드를 만든 이유였다.

“거주민들은 안 돼.”

“라이칸스로프는 괜찮나?”

“그건… 음… 플로어 마스터들에게 물어봐야겠는걸?”

잔딜리엔에게 주어진 권한에 한계가 있는 듯했다.

상층으로 올리기 위한 일들을 플로어마스터들을 대신해 총괄하고 있음에도 물어봐야 한다라… 여기서부터 물어봐야 할 수준이면 외부로 가지고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좋아. 일단 내용은 전해 줬단다. 확인해 보렴.”

나는 곧바로 상태 창을 열었고, 그 내용을 보고는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오빠?”

나는 말 없이 일행에게 내가 받은 시련을 공유했다.

“…이게 뭐야? 시스템 판정 S등급 길드원 10%, A등급 30% 이상에, 골드, 재료, 재산, 명성… 뭐 이런…?”

심지어는 지정 던전 클리어와 희귀 아이템과 재료들을 모아오라는 것들도 있었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이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요구야? 이거 다 하려면 우리 길드라도 최소 1년은 걸릴 것 같은데? 미궁이랑 중층 올 때도 이런 것은 없었는데…? 오빠, 혹시 저 엘프가 일부로 우리 농락하려고…….”

“아니란다. 서윤아.”

“친한 척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 미안. 하지만 내가 나이가 좀 많아. 이해하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란다. 이건 시스템에서 내려온 거야. 그나마 너희 길드가 수는 적은데 수준이 높아서 이 정도지. 게다가 대부분의 조건의 거의 클리어 했잖니? 어차피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재료는 많이 들어.”

“왜?”

“간단하지. 그 재료들과 지정 던전, 마수를 잡아 오라는 조건은… 전부 너희가 상층으로 가기 위한 게이트를 만드는 재료인걸?”

명성, 재산, 길드원들의 수준 등은 최소한의 자격 요건일 뿐이다. 길드이기에 퍼센트로 표시될 뿐 개인이나 파티였으면 정수로 표기된다.

“미궁이나 중층으로 보내주기 위한 게이트는 그냥 주어졌지만… 상층은 아니거든. 거기는 특별한 장소야. 그렇기 때문에 가기 위한 게이트는 직접 제작해야 해. 여기 내 의견은 없어. 전부 시스템이 해 주는 거고, 나는 전달자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의심되면 방랑 상인들에게 정보라도 사렴.”

잔딜리엔의 말에 나서윤은 반박하지 못했다.

증거가 없기도 하고,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데 뭐라 할 말도 없었다.

“자, 그럼 재료를 구해오면 다시 찾아오렴. 얘기는 해 놓을 테니 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단, 재료를 구하지 않으면 접근하지 마렴. 사냥한답시고 숲을 들쑤시지도 말고. 그랬다가는… 엘프족 전체가 너희를 쫓을 거야.”

잔딜리엔의 친절하면서도 무감정한 말에 일행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그러나 저쪽의 용건은 끝났을지 몰라도, 이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긴장감 때문인지 가슴이 조금 뻐근한 기분이었다.

“잔딜리엔.”

“뭐니, 유신후.”

“내 일행들 중 정령사가 하나 있다.”

“알아.”

나는 잠시 말을 멈춘 뒤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수련을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대가는…….”

처음으로, 잔딜리엔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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