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엘븐하임
독대 이후 우리는 황제의 명을 받아 엘프의 숲으로 가게 되었다는 왜곡된 정보를 흩뿌렸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왜 황제가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조금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안 그래도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 엘프와 드워프의 연합이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우리를 가장 위험하고 책임이 막중한 중앙 전선으로 보내기를 바랐지 애매한 관계의 타 종족에게 보낸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소문은 여럿이었다.
황제가 귀족들의 말을 받아들여 우리를 중앙 전선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이쪽이 거부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쪽으로 보냈다는 이야기와 수인 쪽과의 관계 및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니 그쪽이 움직이기 전에 엘프 쪽과 접선하려고 우리를 보냈다는 이야기, 엘프 쪽으로 가는 것이 중앙 전선 못지않게 위험한 임무일 수도 있다는 말 또한 있었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제국 외부로 간다는 것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여러 소문들이 퍼지고 있어요.”
“하.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할 놈들이… 오빠가 제국에 해준 것이 얼마인데…….”
“이런 걸 지구에서는 토사구팽이라고 한다며? 거 참, 말 잘 지었어.”
“확실히 짜증은 나네요. 대신전 쪽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요.”
“…그쪽에서도 저희가 라이칸스로프를 받아들인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니 말입니다. 신후 님이나 하연 씨 위치가 위치인 만큼 어떻게 하지 못할 뿐이죠.”
일행들은 하나같이 현재 제국의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특히, 귀족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남부에서 여러 확약을 하며 나름 도와준 영주가 몇인데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때려대니 마음이 좋을 수가 없기는 했다.
“뭐, 그래 봐야 얼마 남지 않은 발악일 테지만.”
황제와의 거래 내용을 대강 알려줬기 때문인지 일행들은 그래도 기분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형. 황제는 언제부터 움직인 데요?”
“일단 엘프의 숲에 다녀오면 그쪽에서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그때 움직이면 돼.”
“형, 그 처벌이요. 그런 거 저 잘할 자신 있어요.”
“…그러게. 오빠.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오히려 상당히 기다리는 눈치였다.
우리가 대화를 하는 동안 나연은 상당히 조용한 상태였다.
엘프의 숲이라는 말에 조금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정령술이 막혔고 사샤의 성장이 멈춘 지금 나름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마 이전처럼 다시금 수련을 하겠다고 했으면 나연이 먼저 엘프의 숲에 가보고 싶다고 따로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허락하지는 않았을 거다. 엘프의 숲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다.
나연이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거다.
내가 벽을 넘었고, 라이칸스로프라는 새로운 몬스터가 휘하에 들어왔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은 내 파티에는 어울리지 않는 전력에 가까워져 버리는 만큼 속으로는 조금 초조할 터다.
솔직히 이제 와서 나서윤과 떨어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내 파티에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내 길드원인 것은 변함없었고 어지간한 길드원들보다도 강하면 강했지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내게 받은 것들이 많은 만큼 미안하기는 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능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고 내가 그것으로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녀는 일행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하기야 향상심이 없다면 모를까 주변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좋아할 만한 인간이 어딨겠냐마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연에게는 나름의 기대를 갖고 있기는 했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연이 그것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대감이 없다면 애초에 이 정도의 지원을 해 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무장을 챙기고 약간의 피로를 회복한 뒤 곧바로 이전에 갔었던 재나 영지를 향해 이동했다.
과거 타락한 정령의 동굴을 찾을 때 갔었던 영지이자 엘프의 숲과 가장 가까운 영지였다.
“와, 여기 오랜만이네.”
“…그러게.”
사샤의 말에 나연이 가볍게 대답한다.
사샤의 입장에서는 직접, 처음 방문했었던 영지인 만큼 제대로 기억하는 모양이다.
이곳의 영주는 우리의 방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전, 영지에 방문했던 우리가 용병 신분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현재 우리는 나름 지위를 가진 귀족이자 황제의 명으로 반쯤 공식적인 방문을 하는 처지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방문에 재나 영지의 영주가 버선발로 마중을 나왔다.
최근 귀족들과 사이가 좋지 못한 만큼 그 태도가 한층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말로 수틀리면 이 영지는 그대로 멸망이다.
하루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엘프의 숲 접경지로 향했다.
“이대로 그냥 가도 될까요?”
“황실 측에서 이미 연락을 했을 겁니다. 아마, 마중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쪽이 아무리 제국과 사이가 좋지 못하더라도 단일 세력으로는 제국보다 약하며 저쪽도 우리와의 전쟁까지 원하는 것은 아닌 만큼 무시는 할 수 없을 터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숲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반응이 왔다.
“멈춰라.”
차가운 목소리.
모습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어디서 들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하지만 일행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일행의 수준이 다르다.
고작 엘프 전사 하나가 모습을 감춘다고 한들 못 찾아낼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대들이 제국 측에서 말한 그 수련자들인가?”
자신이 들켰다는 것을 깨달은 엘프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와.”
“저게 소문의…….”
모습을 드러낸 엘프는 남성 엘프로, 수준은 상급 수준의 엑스퍼트로 보였다. 그러나 실력 정도는 이미 기척을 느낀 순간 내려다보듯 알아챌 수 있었다.
일행들이 감탄한 것은 그 외모였다.
제국에는 엘프가 정말 전멸하다시피 없었다. 아니, 사실상 전혀 없다고 봐도 되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인간을 싫어하는 엘프들은 제국에 오기를 꺼렸고, 엘프와 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제국은 엘프들이 자신들의 숲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애초에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정말 특이한 괴짜들 빼고는 제국에서 엘프를 볼 수는 없었다.
덕분에 내 일행들 또한 탑에서 엘프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성 엘프는 금발에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남자임에도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외모를 갖고 있었다.
마르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가냘프다는 말이 절로 어울리는 외모였다.
게다가 특징인 긴 귀는 한눈에 그가 엘프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냥 그런데?”
“그러게… 오빠가 훨씬 나은 것 같아.”
“…신후 님의 외모는 지금 물이 오른 상태니까 말이죠…….”
순간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우스운 것은, 나 또한 반박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현재 내 외형은 직업 보정과 수차례의 환골탈태, 높은 경지의 도움을 받아 어지간한 엘프도 외모로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에 다다라 있었다.
솔직히 연인 관계인 주하연이나 나서윤을 제외한 다른 여성진들도 때때로 나를 보며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해하는 만큼 어색해지지는 않았지만, 정말 별 쓸데없는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있어도 나쁜 것은 아니니 그러려니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열세 번째 꽃이 나름 노력해서 준 도움이기도 했고, 이 덕분에 환골탈태도 했으니 견딜 만한 부작용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설마 제국에서 말한 수련자라는 놈들이 아닌 건가?”
남성 엘프는 우리가 대답은커녕 저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자 극도로 경계하며 활을 꺼내 들었다.
엘프의 경계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우리 맞아. 이것만 봐도 알 텐데?”
나는 손을 들어 내 뒤쪽에서 따라오던 라이칸스로프를 가리켰다.
라이칸스로프 위에는 주하연과 나연이 타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는 후열인 그녀들을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내게 복종하는 라이칸스로프는 일행들의 귀여움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 저래 보여도 수천의 인간을 찢어 죽인 놈이다. 외형도 그리 귀여운 것은 아니고. 근본적인 원인은 마탑 놈들이기는 했지만.
단지 내가 받아들였으니 일행들도 그러려니 하는 것일 뿐이다. 그나마 하유진이 조금씩 관심을 주는 것 정도가 다였다.
하유진은 나름 신기하게 생긴 개 정도로 인식하는 듯했다.
“…그렇군. 그게 이번에 부활했다는 라이칸스로프인가…….”
최상위종인 만큼 타 종족들도 나름 관심을 가진 모양이다. 최고로 관심을 갖는 종족은 수인 쪽이겠지만… 그쪽은 최근에 전쟁까지 치른 사이인 만큼 우리에게 접근할 입장이 아니다.
남성 엘프가 중얼거렸다. 느껴지는 기척은 여럿이었지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남성 엘프 하나가 다였다.
어차피 어딨는지는 다 알지만.
“그래. 그럼 우리가 사전에 말한 일행이라는 것은 증명이 되었을 테고… 우리 용건은 알고 있겠지?”
내 말에 라이칸스로프로부터 시선을 거둔 엘프가 말했다.
“…잔딜리엔 님을 뵙게 해 달라고 했다지? 네놈들, 어떻게 그분의 성함을…….”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이야기일 텐데?”
“…엘프의 일이며 그분의 존재는 극비에 가까운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알아야 할…….”
“그래서, 엘프 측은 우리의 방문을 거절하겠다, 그렇게 알아들으면 되는 건가?”
내 차가운 말에 엘프는 입을 닫아버렸다.
아마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 터다.
“…방문은 허락한다. 하지만 주변에 언제나 감시하는 동족이 붙을 것이며 지정된 장소 외에는 움직일 수 없다. 따로 행동하는 것 또한 허락하지 않는다.”
남성 엘프가 일그러진 얼굴로 설명했다.
“받아들이지.”
내가 짧게 대답하자 남성 엘프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오도록.”
“몸을 숨긴 이들은 저렇게 계속 둘 건가? 의미도 없는 행동일 텐데?”
“…그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싫다면 돌아가면 된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엘프는 빠르게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숲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엘프답게 속도는 무척 빠른 편이었지만 일행들 중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이는 없었다.
하물며 나연도 가능할 수준이다. 단지, 라이칸스로프가 있는 만큼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숲은 길게 이어졌다.
내부로, 내부로 끊임없이 이동했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주변이 어둡게 변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정글보다도 울창한 숲이었다.
나무는 점점 높아졌고, 어둠은 점점 깊어졌다.
이동은 짧지 않았다.
약 삼일에 걸친 이동이 이어졌다.
일행들은 숲의 넓이에 조금 질린 기색이었다.
“…뭐 이런 넓이가… 아마존보다 넓은 거 아니에요?”
그것까지는 모른다.
1회차에서도 자세한 넓이는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아보려다 죽은 수련자들은 많았지만,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숲을 조사하겠다는 인간을 엘프가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적대 국가의 내부를 전부 확인하겠다는 뜻인데, 현대 지구도 출입 금지 구역이 있는 마당에 그게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대놓고 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깊군.’
1회차에서는 잔딜리엔의 존재가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로 조건을 받았고, 잔딜리엔은 이렇게까지 깊숙한 곳에 있지 않았다.
아마 나중에 제국의 국경에 가까운 장소로 몸을 옮긴 듯했다.
벌써부터 자신을 찾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점점 어두워지던 숲이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다시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선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응…?”
“와…….”
“이건…….”
“이게 설마 그 소문의 세계수라는 건가요?”
“그래. …인간 놈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을 줄은 몰랐지만. 장로님들은 어째서…….”
남성 엘프의 중얼거림. 솔직히, 나 또한 동의했다.
설마 이런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세계수. 엘프들의 성목이자 성지.
비록 아주 멀리 보이기는 하나, 세계수를 눈에 넣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것이었다. 그 높이도, 넓이도 보통의 나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저 정도 크기라면 한참 전부터 봤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보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방금 우리가 결계를 지나친 모양이었다.
‘나조차 감지가 되지 않는 결계라…….’
확실히 그랜드 마스터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세상은 만만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오며 본 나무도 인간의 숲에서는 보기 힘든 크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수와 비교하면 어린나무에 지나지 않았다. 시야에 다 넣는 것조차 벅차다는 느낌이었다.
솔직한 말로, 1회차 시절에도 세계수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와, 나 업적 달성되었어…….”
보상은 대단치 않았다. 자연 친화력이 조금 상승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업적 달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달성할 정도라는 것부터가 세계수가 얼마나 보기 힘든 것인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엘프들의 도시, 엘븐하임.
우리는 처음으로, 그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