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뒤처리
“도와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스킬을 확인하고 접근한 일행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뒤로 미루었을 때, 랭커 후보였던 셋이 내게 다가왔다.
어딘가 두려움이 담긴 모습으로 어떻게든 입을 열고 감사를 표한다.
내가 벽을 넘고 단숨에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서 어딘가 흔들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저었다.
왕춘은 어딘가 수치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이었고 톰 뮐러는 두려워하면서도 어딘가 동경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토퍼는 눈조차 쉽게 마주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라이칸스로프를 막 상대하는 시점, 전력으로 라이칸스로프와 싸우는 것에 미쳤다고 한 것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그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마고그 족의 전사들은 내가 대족장과 직접 이야기하겠다는 말에 더는 라이칸스로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정확히는 꺼내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라이칸스로프와 싸워 이겼을 때만 해도 그 살아있는 모습과 내가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점, 그리고 라이칸스로프에 의해 당한 부족민들에 대한 분노까지 합쳐 내게 강하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이전처럼 마냥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뱀파이어의 전투를 보며 내 실력이 더더욱 상승했다는 것마저 보게 되며 더는 내게 직접 의견을 제시할 용기를 잃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내 위치와 무력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직접 봤고 자신들의 부족이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영향을 미친 듯했다.
어쩌면 방금 뱀파이어와의 전투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실제로는 달랐지만 마력으로 느껴지는 감각만큼은 라이칸스로프와의 전투 때와는 다르게 어마어마하게 흉악했을 테니까.
벽을 넘었고, 얻을 것을 전부 얻은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현장을 뒤로 한 채 대족장이 치료하고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마고그 족의 대족장은 상처가 거의 아문 듯한 모습이었다.
주술사들과 의원들이 최대한 노력을 한 듯했다.
저들이 달라붙었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을 보면 상처가 심한 정도가 아니라 삐끗했으면 죽었을지도 몰랐을 터였다.
“처음 뵙습니다. 저는 마고그 족의 대족장, 시리타입니다.”
“…처음 뵙는군요, 대족장 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저희 부족의 전설을 재현하시고, 이름까지 그리 날리신 분은 이제껏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높이며 공손하게 대해왔다.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표정을 무척이나 차가웠다.
“이번 저희 부족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아 주셔서 무척이나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마고그 족에게 받은 것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라이칸스로프를 살려 두셨다고 들었습니다.”
대족장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그 짐승으로 인해 부족이 입은 피해가 한둘이 아닙니다. 수천, 그에 달하는 전사와 그 가족이 죽어나갔습니다.”
나는 침묵했다.
“유신후 님. 스스로를 마고그 족의 전사 중 하나라고 생각하신다면, 부디 그 짐승을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쓸 곳이 있습니다.”
나 또한 단호하게 말했다.
“그 짐승을 살려 두고 사용하는 것이 저희 부족의 원수를 갚는 것보다 중요하십니까?”
“이놈을 제게 넘겨주신다면, 그에 따른 보답은 해 드리죠.”
“보답은 괜찮습니다. 저희는 저희의 원수를 갚는 것을 원합니다.”
“부족의 재건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원한을 청산하지 않으면 재건을 한다 하여도 더이상 저희 부족이 아닙니다. 혼을 망가뜨린 채 후손들에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꽉 막힌 대답.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만,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처리해 드릴 수 없다고 말하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대족장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의 힘만으로 라이칸스로프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게 라이칸스로프를 죽이라 강제할 수 있는 힘도 없었다.
오로지 내 호의. 그것에만 기댄 말일 뿐.
대족장 또한 그것을 알고 있을 터다. 다만 여기서 순순히 보내줄 수 없기에 어떻게든 입을 연 것일 뿐이었다.
“…저희 부족을 외면하시렵니까?”
“저는 과거의 인연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내가 대답 대신 말을 돌렸지만 대족장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부탁하신 일은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마고그 족의 위기는 해결되었죠. 중간에 일이 하나 더 있기는 했습니다만…….”
뱀파이어.
내 말에 대족장의 표정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일을 처리했고, 그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제 마음입니다.”
선을 긋는 말에 대족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본다면 서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라이칸스로프를 전리품 취급하는 것, 위기를 극복했으나 원한까지 다 갚기 위해 얻은 전력을 그냥 죽이라고 하는 것.
하지만 대게 이런 경우는 힘의 우위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 힘의 균형은 분명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내게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마고그 족의 대족장이 아닌 황제 정도는 되어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내 경지와 세력, 명성, 라이칸스로프 등을 합한 이상, 당연한 결과였다.
“대가를…….”
힘겹게 대족장이 입을 열었지만 라이칸스로프라는 전리품의 반대쪽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고그 족의 전설은 이미 내 손에 있었으며 그것을 다시 빼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사실상 내가 마고그 족의 전사로 인정받았던 것은 없는 일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명목상 지우기는 힘들 터다. 내가 지금 보인 태도를 생각한다면 그런 사소한 행동조차 자신들 부족의 안위를 위협할 수도 있었으니까.
정말 그 혼이 중요하다면 자신들의 전멸을 각오하고라도 내게 대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만약 그럴 정도로 혼이 중요했다면, 애초에 황실 쪽으로 사람을 전혀 보내지 않았을 터다. 결국, 자신들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말만 앞설 뿐이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부족을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백작 각하.”
“같은 제국민으로써 당연한 일이죠. 대가는 괜찮습니다. 이번 전리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거든요.”
사실상 대화의 끝이었다.
동시에 마고그 족과의 관계도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상관은 없었다.
내게 큰 손해가 오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마고그 족의 세력은 크게 축소되었으니까.
인도적 차원이라며 도움 정도는 줄 수 있겠지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어차피 곧 있으면 상층으로 넘어가는 이상 알 바 아니었다.
나와 대족장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우리는 마고그 족의 영지를 떠나버렸다.
일행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는지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내 휘하에 라이칸스로프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개인의 세력이 보통이 아니라며 라이칸스로프를 회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조금씩 떠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내 앞에서는 함부로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알음알음 귀족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최소한 나를 중앙 전선으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3대 대귀족 또한 쉽게 입을 열지는 못했다.
내 경지가 그랜드 마스터에 들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라이칸스로프라는 강력한 전력까지 휘하에 들어온 이상 경계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대로 간다면 더이상 중층에서 내 자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들려면 만들 수는 있었으나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여기서 평생 살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황제와 독대하기를 원했고, 황제는 나를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 * *
“…….”
황제가 기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기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그대와 만난 것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리도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수련자들의 성장이 빠르다고는 생각했고 그 가능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자네는 그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더군. 도저히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야.”
찬사에 가까운 말. 그러나 저것이 순전히 찬사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그대 또한 귀족들이 어떤 말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을 테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먼저 내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 테지.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가? 설마 중앙 전선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을 테고…….”
“…당연합니다.”
“다행이로군. 이전에 무법자들을 내 휘하에 집어넣겠다는 말을 할 때처럼 이번에는 오크라도 몰살시켜 오겠다고 할까 봐 걱정했다네.”
그건 불가능하다.
지금 내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 졌다고는 해도, 오크 대전사 둘 정도가 뭉치면 상대가 불가능할 터였다.
더 익숙해지고 가진 것들을 더 갈고 닦고 휘하 길드원들이 더 성장한다면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설마 라이칸스로프를 내놓을 셈인가? 그대의 목표를 생각하면 그건 아닐 터인데?”
라이칸스로프를 지구로 가져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만 100%는 아니다. 다만 가져가지 못하더라도 탑에서 충분히 써먹을 수 있으니 지금 내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황제를 향해 말했다.
“제국을 떠날까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황제가 침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에 다른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협박을 가장한 협상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그럴 놈이 아니라는 것은 황제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떠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처음, 약속드렸던 것도 이행해야 하니 말입니다.”
처음 그리고 약속.
내 말에 황제의 눈에 이채가 스쳐 갔다.
“그 말뜻은…….”
“3대 대귀족, 아르테인 공작이나 다이딘 대공은 몰라도 애슐란 변경백 정도까지는 가능 하시지 않겠습니까?”
다이딘 대공이야 일단 명목상 대공이고 그 역사의 깊이가 보통이 아니며, 아르테인 공작은 본인이 그랜드 마스터인 점만 생각해 보아도 아주 쳐낼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끌어안아야 할 대상이다.
그래도 세력이 축소되기는 할 터.
그것이 한계였다.
사실 그것만 해도 황제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황제에게 상층에 관한 이야기와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엘프의 숲으로 갈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제가 황제 폐하를 적극 지지하는 점과 지금 커진 세력을 적극 이용하십시오. 최대한 협력하겠습니다.”
이 수준의 세력이 황제의 뜻대로 움직인다면 황제의 뜻을 이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만큼 커지는 것이 어렵지 이 정도 세력을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막을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모든 귀족이 뭉치기 전에, 움직일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뭉치는 것도 힘들겠지만.
전쟁이 막 끝났고 제국이 어지러운 상황이다. 귀족들의 세력도 상당히 약해진 상황이다. 황제의 세력 또한 깎인 것은 사실이나, 내 길드와 내가 포함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황제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에 대한 대가는? 그대라는 검을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지?”
나라는 검을 휘두른다. 어차피 귀족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자신들의 세력이 축소되는 데 가만히 있을 인간은 없었다.
피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과정이 끝나고 권력을 움켜쥐는 것에 성공하고 나면 이제 나의 존재는 황제에게 큰 방해가 될 터다.
그때가 바로 중층을 떠야 할 시기이고 내가 원하는 때이기도 하다.
애초에 중층을 떠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련을 받아야 하고, 길드 단위의 시련은 복잡하고 성가시며 오래 걸린다.
그 해결에 제국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중층을 떠날 때까지 최대한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결코 싸지 않은 대가일 겁니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성이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간, 그렇게도 오래 염원했고 기다려왔던 일이다. 이만한 준비가 갖춰졌고 상황마저 나쁘지 않은 지금, 이 기회를 놓칠 황제가 아니었다.
“그래, 그대가 손해를 볼 위인이 아니지. 허락하지.”
황제의 눈에는 야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