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순간적으로 시야가 뒤틀렸다.
“크으…….”
“크르릉…….”
머리속의 무언가가 바뀌는 기분이다.
깨달음? 아니,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젠, 장.”
정신이 흔들린다. 꾸준한 하울링. 그것이 무언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상태 이상. 지독하게도 걸리지 않았던 그것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런 것에 걸릴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오크의 감각도, 바리치의 문신도, 오크의 워 크라이도 내 정신에 간섭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내 정신력은 강건했고 스킬이 지지하고 있는 이상 결코 무너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심했다. 정확히는 착각했다고 봐야 한다.
오크의 감각과 바리치의 문신 극한 활성화. 그것이 내 정신력을 깎아 먹은 상태였고 라이칸스로프의 하울링은 계속해서 내 정신을 흔들었다.
무언가 머릿속의 자극이 그랜드 마스터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카바락의 예를 생각해, 내게 도움이 되는 자극이라고 생각했다.
직감의 경고 또한 없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광기가 머리를 잡아먹는다.
가까스로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몸이 반쯤 통제를 벗어났다.
이전 최대한 오크의 본능에 몸을 맡겼을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크아아아아!”
내 몸이 멋대로 워 크라이를 사용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라이칸스로프를 향해 돌진한다.
라이칸스로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딘가 웃음 같았다.
쿵, 쿵쿵쿵!
연속적인 공격이 서로의 몸을 향한다.
라이칸스로프는 상당히 방어를 하는데 반해 내 몸은 상대를 죽이기 위해 몸에 상처를 입는 것을 막지 않았다.
어느새 몸의 신성한 오라가 비활성화된 상태였다.
광기에 빠진 몸은 성흔에 마력을 공급하는 대신 몸을 더 강화하고 더 흉포한 움직임을 위해 마력의 사용처를 바꿔버렸다.
몸이 한층 더 가속한다.
과도한 마력이 빠져나가고 일대의 피라는 피는 더 빨아들이고 있었다.
시체의 썩은 피마저 강제로 뽑혀 내 몸으로 흡수된다. 역겨운 피가 몸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내게 전해진다.
정신이 구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외면했다. 이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 이 작은 의식마저 놓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라이칸스로프는 전투가 지속될수록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전의 밸런스 잡힌 움직임 따위는 없었다. 살해를 위해, 적을 죽이기 위해 최적화된 움직임들.
어떤 의미로 오크보다도 저돌적이다. 이 정도의 공격성은 오크들에게서도 드문 경우였다.
원천이 카바락이었던 이상 이러한 모습은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움직임이 미쳐 날뛰었다.
그러한 내 모습을 관조하며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공격성인가?’
내가 이렇게까지 공격적이었다고?
지금 미친 듯이 날뛰는 내 모습은 정말 광견병에 걸린 개 같았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기 위해 움직인다.
라이칸스로프의 손톱이 어깨를 스치고 옆구리를 긁는다. 그사이 내 검은 상대의 갈비뼈를 그어버렸고 발끝은 상대의 무릎 관절을 부서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라이칸스로프가 발길질을 막아내고 내 턱을 갈라버리려 하자 내 몸은 상대에게 더 가까이 붙어 검 끝으로 상대의 턱을 뚫어버리기 위해 움직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라이칸스로프의 공격은 자연스럽게 피해졌으며 반대로 내 섬뜩한 공격에 몸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라이칸스로프를 놔 주지 않았다. 최대한 가까이 달려들며 어느새 반대 손에 든 단검으로 옆구리, 배, 명치, 어깨를 차례로 찔러갔다.
설마 이 정도의 공격성을 보일 줄은 몰랐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몸이 이렇게 느려질 줄은 몰랐는지 라이칸스로프가 어딘가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정말 치명적인 공격도 때로는 감수해가며 같이 죽자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광기, 그 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속된 공격성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는데도 상대가 계속해서 버텨내자 스스로 열불이 뻗쳤는지 안 그래도 붉었던 시야가 더더욱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인간의 광기에, 오크의 감각이 동기화한다.
거기에 마력이 감각을 끝없이 강화하자 내 작은 의식은 태평양 한가운데의 조각배 마냥 미친 듯이 흔들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의식이 작살날 판이다.
‘안 돼. 위험해.’
라이칸스로프가 생각보다 강했지만 동시에 상상보다는 약했다.
아니, 내가 더 강했다. 여러모로 특별하기는 했지만 나에 비하면 조금, 아주 조금 모자랐다.
아마 전투 중에 내 공격을 몸에 익히기라도 했다면 그멧 뒤집힐 우위이기는 했지만 분명하게 라이칸스로프는 현재의 나보다는 아래였다.
이러다가 라이칸스로프가 죽기라도 했다가는 이 광기의 칼끝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일행에게 향했다가는 끝장이다. 저들은 나를 공격하기도 꺼려할 터. 작정하고 죽이려고 들어도 바리치의 문신까지 극한 활성화한 내가 우위일 것이 뻔한데 저들이 주저까지 한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몰살.’
그딴 짓을 했다가는 랭커고 뭐고 황제 쪽에서도 분노할 것이 뻔했다.
그뿐인가? 이 자리에는 다이딘 대공과 애슐란 변경백 휘하의 수련자들과 길드까지 있었다. 내 일행들의 목숨마저 위험한 마당에 그들을 내가 살려둘 리가 없었다.
내 공격이 끝도 없이 날카로워진다.
전생의 방어적이었던 나, 현생의 최대한 공수의 밸런스를 중요시했던 내가 아닌 상대를 죽이고 부수는 것에 중점을 둔 새로운 방식이 탄생한다.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 소름 끼치도록 상대를 죽이기 위해 집착하는 검 끝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문득, 이제껏 저렇게까지 죽이기 위해 집착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럴 리가.’
그럴 이유도 없었고. 나는 상층도 되지 못한 곳에서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되었고, 그렇게까지 죽이기 위해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성장이 더 중요했고 지구에 무사히 도착해 거인을 몰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위험을 아주 감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성장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만큼 저렇게까지 극단적인 검을, 내가 쓰게 되는 것은 상상한 적도 없었다.
정말 광기에 미쳤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저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하다고 느꼈다.
‘배움도, 스킬의 도움도 없이 내가 저렇게 검을 다룰 수 있었던가?’
나름 재능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검술 관련 스킬의 보조도 없이 저렇게까지 검을 다룰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극도로 공격적이고 죽이는 것에 미친 검이었지만, 라이칸스로프의 공격과는 달랐다. 오크들의 검술과도 미묘하게 달랐다.
어딘가, 정말로 죽이는 것을 위해 고안된…….
순간적으로 시야가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비치는 시야에 집중하자 라이칸스로프가 밀리다 못해 자신의 목숨마저 위기에 처하자 더는 버티기 힘들었는지 슬슬 빠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이성도 없는 짐승을, 광기로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물러나던 라이칸스로프가 어느 순간 멈췄다.
마탑의 잔해. 나와의 싸움으로 그마저도 초토화된 잔해를 바라보더니 으르렁거린다. 그리고는 목숨을 도외시하고는 내게 달려들었다.
이전처럼 손톱으로 그어대는 수준이 아니다. 때로는 근거리에서 강기를 모아 날렸고, 이로 물어대었으며 때로는 내 몸을 붙잡으려고 하는 기괴한 모습마저 보였다.
광기에 미쳐있는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반겼지만.
한 손에는 단검을, 반대 손에는 장검을 들고는 라이칸스로프를 썰어대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밀리고 밀리고 밀린다. 사실, 이성도 없는 놈이 이미 압도된 순간부터 정해진 결말이었다.
마침내 라이칸스로프를 갈가리 찢어놓았을 때, 내 몸이 멈췄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생명이었다면, 진작 죽었을 몸이다. 전신이 독에 중독되어 보랏빛으로 몸이 물들었고, 내장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전신을 썰어 놓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몸이 재생하고 있었다.
그런 라이칸스로프를 내려다보며, 나는 어떻게든 몸을 통제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몸이 멈춘 순간부터 덜컥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대로 몸이 날뛰면, 정말 위험하다.
그러나 나는 육체의 주도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즉, 몸은 여전히 광기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꼼짝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 창이 내 눈을 가렸다.
[오크의 감각 스킬이 살해 본능 스킬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몸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어색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설마.”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몸이 변화한다.
콰콰콰콰.
주변의 마력과 혈무가 몸 안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시야가, 하얗게 물든다. 나는 급하게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며 외쳤다.
“내 몸 지켜!”
그리고, 나는 즉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기 무섭게 눈에 들어오는 하나의 방패가 시야을 채웠다.
“…고생했다.”
―별말씀을.
주변은 이미 깜깜해진 상태였다.
방패의 정체는 과거 황실 창고에서 얻은 물품이었다. 3차 전직 이후 훈련 과정에서 주인 인식을 마쳐 놓았지만 쓸 일이 없어 사용하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다만 지금은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혈무가 몸으로 흡수되는 과정이었던 만큼 주변에 내 일행이 다가온다면 중독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러나 에고 웨폰은 독에 걸리지 않는 만큼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나저나 의외였다. 처음 듣는 목소리는 일행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했었…….
“크르릉…….”
“…뭐지?”
고개를 돌리자 라이칸스로프가 반쯤 죽어가는 모습으로 곁에 누워 있었다.
“안… 죽었다고?”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라이칸스로프로부터 전혀 위협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딱 봐도 전의가 없어 보였다.
“오빠!”
“컹컹!”
나서윤이 접근하기 무섭게 라이칸스로프가 경계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주인이 환골탈태를 하는 사이에 재생한 늑대가 주변을 지켰음. 적의가 없는 듯해 죽이지는 않음.
“…이게 날 지켰다고?”
―그러함. 상처 입은 몸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가로막음. 지능은 없는지 주인의 동료라고 말해도 말을 듣지는 않았음.
어처구니없는 기분이 들었다.
의식을 잃기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주제에 지금은 되려 나를 지켰다고?
시선을 돌리자 재빨리 엎드리는 늑대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몸에 집중했다.
전신에… 마력이 넘쳤다.
사실, 의식을 잃기 전에 반쯤 깨닫고 있었다.
벽을 넘었다.
원인은 광기 때문인 듯했다.
그것이 무언가를 건드렸고, 공작과의 훈련으로 실금이 가 있던 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결과 육체의 통제력을 되찾고 환골탈태까지 했다.
나는 문득, 아직까지 문신의 극한 활성화가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것을 끄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것 또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더이상 내 몸에 무리를 주지 못한다.
나는 즉시 상태 창을 확인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