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애초에 나는 수준 높은 상대와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저들이 나서겠다고 했을 때 막으려면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만에 하나 내가 질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만약 내가 패배한다고 해도 쉽게 지지는 않을 거다.
완전한 그랜드 마스터인 아르테인 공작 또한 대련이기는 했으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나를 쉽게 쓰러뜨릴 수 없었다.
그런데 지능도 없는 반푼이 따위에게 일방적으로 진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다만 내가 진 이후에도 일행이 나를 구하지 못하거나 라이칸스로프를 쓰러뜨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기에 상대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저들이 분전한 덕분에 상대의 전력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진다고 해도… 괜찮아. 감당 가능하다.’
물론 질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반푼이라고는 하나 분명 최상위 종족이며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
지금의 나도 승률은 반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고삐를 풀지 못했을 때 달려들었다면, 십중팔구 내가 이겼을 터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말했듯, 나는 수준 높은 상대와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왔고, 내가 지더라도 일행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내가 먼저 달려들자 라이칸스로프는 이전과 다른 미친듯한 흉성을 보여왔다.
경계하는 기색이었던 앞전과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독을 가진 약한 놈들을 최대한 조심해서 상대하는 모습이었던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아예 죽여버리겠다는 듯한 반응.
나도 바라던 바였다.
순간적으로 파고든 손톱이 번들거린다.
마력을 최대한 집중한 듯한 모양새.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그냥 마구잡이로 마력을 욱여넣은 듯한 모습이었다.
억지로 압축했다고 해야 하나.
‘경지가 깡패네.’
아니, 종족이 깡패인가?
나는 성흔의 마력을 활성화하고 성자의 오라를 두른 채 곧바로 불완전한 무형 강기를 이용해 휘둘러오는 발톱을 베어갔다.
캉! 그드드득.
“미친…….”
불완전하다고는 하지만 압축 강기보다 상위인 무형 강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깎여 나갈 뿐 자르지 못했다.
그만큼 고밀도로 압축했다는 뜻. 어떤 의미로, 저것도 그랜드 마스터의 비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스터의 경지로는, 도저히 저 수준의 압축이 불가능하다.
내심 놀랍기는 했지만 예상은 했다. 저 무시무시한 마력량을 봤을 때부터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랜드 마스터인 아르테인 공작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마력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드래곤도 아닌 주제에 저만한 마력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능력치로 따지면 100은 그냥 넘는다. 마법사도 저만한 마력을 갖지는 못할 거다.
도대체 드래곤은 어느 정도의 마력을 가졌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자신의 손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라이칸스로프는 미친 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아우우우!
마치 오크의 워 크라이 마냥 계속해서 소리높여 짖는다. 그러나 단순한 위협으로 짖는 것은 아니었다. 짖어대는 소리에는 정신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큰 영향이 없었다. 단지 그간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미끼와 고기방팽를 하던 타 길드원들이 하나둘 주저앉았을 뿐.
일부는 귀에서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라이칸스로프는 나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이는 내가 가까스로 따라잡을 정도였다.
폭발적으로 마력을 터뜨리고 흉성을 드러내자 그간 보였던 속도보다 훨씬 빨라졌던 것.
“…장난이 아닌데?”
속도만으로 보자면 아르테인 공작보다도 훨씬 빠르다. 그러나 비효율적이다.
최적의 동선으로 막았을 뿐인데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아르테인 공작과의 대련을 생각하면 비교적 수월하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
물론 비교 대상이 아르테인이라 그렇지 방심을 해도 좋을 상대는 아니었다.
자신의 공격을 내가 계속해서 막아내자 라이칸스로프가 잠시 뒤로 물러나더니 바닥을 디딘다.
그리고는 네 발로 폭발적인 가속을 해 왔다. 이전보다도 훨씬 빨라진 속도.
내 동공이 커짐과 동시에 나는 호신강기로 앞을 막고는 마주 공격해 들어갔다.
콰앙! 드드득.
바닥이 쓸린다.
제자리에 선 채 몇m나 밀려났다.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니가 소냐.”
마치 들소가 돌진해 온 것 같았다.
“크르르…….”
이번에도 내가 막아내자 라이칸스로프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마력을 강하게 압축했다.
“…설마.”
라이칸스로프가 입을 벌리기 무섭게 마력의 포격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이게 뭔!’
라이칸스로프가 브레스를 사용한다고?
아니, 모습만 저럴 뿐 본질은 강기 뭉치를 날린다고 볼 수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랜드 마스터쯤 되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맞았다.
단지 저런 형태로 쏠 줄은 몰랐을 뿐.
나는 급하게 몸을 틀었고 강기 덩어리가 바닥과 충돌했다.
쿠아아앙!
바닥이 초토화된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타 길드원들이 포격에 휘말렸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쉴 틈이 없었다.
라이칸스로프는 곧바로 나에게 다시 달려들었고, 나는 다시금 방어를 하며 빈틈을 찾고 있었다.
막상 틈 자체는 많았다. 다만, 속도가 문제였다. 내가 공격을 하려 하면 귀신 같은 타이밍에 위험 지역에서 벗어난다. 본능으로 이루어진 괴물. 정말 말 그대로였다.
이건 오크보다 더하다.
직감 스킬을 가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투가 지속됨과 동시에 몸 안에서 잠들어 있던 오크의 감각이 깨어남을 느꼈다. 그간의 훈련 덕분에 억누를 수는 있었지만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실전에서 써먹을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천천히 시야가 붉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조금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러나 이전처럼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매혹이 가끔 발동되었지만 아쉽게도 걸리는 기색은 없었다. 저항이 강하다.
보정된 외모 덕분에 인간이라면 통했겠다만, 아쉽게도 상대가 인간은 아니다.
‘아르테인 공작에게는 가끔 통했었는데.’
조금 아쉬운 마음을 오크의 감각이 찍어 누른다.
전투에 최대한 집중하기 시작한다. 점점 방어 일변도에서 각이 나오는 순간마다 약간의 상처를 감수하고 반격을 시작했다.
하나둘 몸에 상처가 늘어난다. 재빨리 신성의 오라와 불굴의 육체가 그 상처들을 지워나갔다.
내가 상처를 감수하고 공격하기 시작하자 라이칸은 더더욱 흉성을 터뜨린다.
이전과 다르게 내 공격은 라이칸스로프의 방어를 뚫는다. 일방적인 공격이 아님에도 라이칸스로프는 물러나지 않았다.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늘어난다. 조금씩 피가 흐르고 그 피를 바리치의 문신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흡수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이칸스로프는 나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상처를 재생시켰고, 자잘한 공방이 오고가는 와중에도 어느 한 쪽에 큰 손해를 입는 경우는 없었다.
한참의 공방이 지나가는 와중 주변이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우리 입장에서야 자잘한 상처가 나는 지루한 공방이었으나 주변인들에게는 파편 하나만 스쳐도 죽어 나가는 지옥 같은 공간이었으니까.
이전의 전장에서 네임드간의 전투에 일반 병사들이 끼어들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강기가 미친 듯이 춤을 춘다. 길어지고 짧아지고, 본능적으로 물러나는 라이칸스로프를 끝도 없이 추적한다. 움직이는 속도가 강기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르기에 닿지는 못했지만 슬슬 경로를 차단하는 식으로 움직이자 라이칸스로프는 까다로움을 느꼈는지 도망치는 것을 슬슬 포기하고 근거리에서 끝없이 공격을 주고받는 것을 선택한다.
이전, 오크의 감각에 휘둘렸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운용. 본능과 이성을 반씩 섞어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용했던 카바락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못했다. 그는 조금 더 자유로웠던 반면에 나는 조금 더 계산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둘이 마치 형제마냥 닮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새삼 어째서 과거 라이칸스로프를 잡기 위해서 문신을 새겼던 둘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안 끝나.’
이대로 체력전으로 간다면 누가 이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마침내 아껴두었던 카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극한 활성화.”
두근.
몸 안의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후우…….”
피에 대한 통제력이 크게 상승한다. 되도록이면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대로 간다면 끝이 나지 않는다.
일대의 피가 내게로 빨려들기 시작한다.
인간의 피를 흡수해 사용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 소모전만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뭔가가…….’
라이칸스로프의 움직임, 본능적인 마력의 운용, 그 흉성과 야성.
그 모든 것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극한 활성화의 효과로 일대의 모든 피가 자동적으로 내게 흡수되었고 덕분에 추가 피해가 생겼으며, 평소와 다르게 그 위력이 강화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몸 전체에서 서서히 혈무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빠져나가. 이거에 닿으면 안 돼.
나는 일행에게 빠르게 전음을 날렸다.
움찔한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쓰러진 타 길드원들도 어떻게든 챙긴다. 이대로 죽게 둘 수는 없으니까.
천천히 주변에 혈무가 퍼지고 내 기세가 달라지자 라이칸스로프가 조금 주춤거린다.
혈무가 라이칸스로프의 몸을 파고들었지만 당장에 큰 효과는 없었다.
독 효과지만 저항 자체는 엄청나다. 하지만 분명, 천천히 몸에 쌓일 터. 게다가.
“아우우우우!”
쾅!
이전과는 피해량 부터가 다르다.
쩌적.
순식간에 핏방울이 튀어 나가며 손톱의 강기에 쩍 금이 가버린다.
눈, 귀, 코, 입. 그곳을 통해 혈무가 빨려들었다. 하지만 속도를 가속시킬 필요를 느낀다. 나는 피를 흡수함으로써 마력이 회복되자 이번에는 아낌없이 마력을 풀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마구잡이로 강기를 날리고 폭발시킨다.
핏, 핏핏.
라이칸스로프의 전신에 상처가 늘어나고 그 틈으로 혈무가 빨려 들어간다.
“크르르…….”
분명 상처의 회복 속도가 느려졌다.
게다가 움직임이 약간이지만 느려짐을 느꼈다.
어느새인가 나는 여유롭게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었고, 더 편하게 반격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속도는 올라갔고, 상대의 속도는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다.
나는 얻은 여유를 바탕으로 나를 자극하는 상대의 움직임을 더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뭐지? 도대체 뭐가…….’
이렇게까지 나를 자극하는 것인지.
상대의 본능이 내 본능마저 자극하는 것 같았다. 머리가 미친 듯이 가렵다.
일부러 오크의 본능을 최대한 발휘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었다.
어느 순간, 내가 일부러 페이스를 늦췄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라이칸스로프가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광기가 나를 자극한다.
“아우우…크아아앙!”
갑자기 느려졌던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쾅쾅쾅쾅쾅!
사방을 미친 듯이 찍어대는 라이칸스로프.
위력 하나만은 어마어마했다만,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분명 비효율적이고 이제는 본능보다는 광기에 더 미친 것 같은 모습인데도 꾸준히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바리치의 문신을 극한 활성화했기 때문일까, 그 속도마저 가속되는 기분이다.
조금 멍하니 몸을 지켜가며 그것을 관찰한다.
머리가 미친 듯이 가려웠고, 라이칸스로프가 미쳐 날뛴 이후 후유증인지 조금 거친 숨을 쉬고 있을 때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게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콰득.
머릿속 무언가가 부서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