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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28화 (228/317)

228화

인간 측이 자리를 거의 잡아갈 쯤이 되어서야 라이칸스로프가 그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우습게도, 움직였다고 생각한 순간 라이칸스로프의 모습이 사라졌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순간적으로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만약 근접해 있었다면 큰 손해를 보았을 터였다.

마력의 눈동자를 활성화하고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촤아악.

“커헉.”

“끄아아아아!”

한 무리의 수련자들이 단숨에 육편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주변에 깔아둔 함정 따위는 의미도 없었다. 정면으로 돌파해 한 파티를 그대로 몰살한다.

압도적인 속도에 전원이 당혹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저 덩치에 저 속도라…….’

확실히, 위험하다. 찢어진 수련자들을 내려다보는 라이칸스로프. 놈의 손톱에는 붉은 피와 함께 흐릿한 마력이 머물고 있었다.

“이거… 봉인되려나?”

크리스토퍼의 중얼거림에 랭커 후보들이 침묵한다.

솔직한 말로 이성이 있는, 온전한 존재였다면, 최상위종이라는 라이칸스로프가 저런 것에 당해줄 이유도 없었고, 어지간한 것은 저항하거나 풀어낼 수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지능이 없었고 마력의 운용도 막무가내로 해대고 있었다.

마력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저항력이 보통은 아닐 거다. 육체 또한 카바락 때와는 다르게 완전한 육신이었고.

정신만 멀쩡했다면 아르테인 공작도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했을 터다.

그러나 저놈은 그렇지 못했고 따라서 제한과 봉인이 목적인 전설급 아이템이 5개쯤 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반푼이일 지라도 저 괴물을 붙잡고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지능이 없다고 해도… 저 정도 마력이면 한두개 쯤 걸렸다고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자동으로 박살 나겠군.’

할 거면 단숨에, 최대한 빠르게 해야 할 거다.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무엇을 의심하고 있나.”

“…하. 그래, 그랬지.”

왕춘의 말에 크리스토퍼가 허탈하게 대답했다.

한 파티를 찢어버린 라이칸스로프가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자 누군가가 발작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다른 먹잇감을 찾는 듯한 모습에 재빨리 왕춘이 외쳤다.

“준비한 것들 실행하도록!”

“으, 으아아아아!”

“젠장, 빨리!”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이 이어진다. 뒤늦게 공포심에 젖은 듯 발작적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확실히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준비 자체는 제법 해 온 듯했다.

화살이 쏟아지고 독 포션이 주변을 날아다닌다.

이미 해독제를 준비한 듯 이곳저곳에서 무언가를 삼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의미는 없었다.

이번에도 엄청난 가속을 선보인 라이칸스로프는 화사로가 독안개를 정면으로 뚫어버렸고 한 파티의 주변에 설치된 함정 따위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돌파해 다시금 파티 하나를 찢어버린다.

“끄아아악!”

도망은 용납되지 않았다.

비명 덕분에 라이칸의 위치를 알아낸 길드원들이 다시금 공간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쏟아부었다.

독안개를 뚫고 함정을 분쇄한 라이칸의 신체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윤기 나는 흰 털에는 인간의 피조차 닿지 못했다.

‘자연적인 호신강기인가?’

강기까지는 못 돼 보여도 어지간한 갑옷보다는 튼튼해 보였다. 일종의 마력 실드라고 해야 할까? 심지어 가죽 또한 그리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두 가지 모두를 뚫기 위해서는 진짜 강기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길드원들은… 고기 방패쯤 되나?’

미끼이자 고기 방패.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런 상황을 알 텐데도 불구하고 길드원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으아아아! 죽어, 죽어 이 괴물아!”

“뿥잡아! 작은 상처라도 입혀!”

“씨발, 씨발! 멈춰, 멈추라고!”

온갖 비명을 지르며 라이칸스로프의 관심을 유도하고 어떻게든 조금의 타격이라도 입히기 위해 기를 쓴다.

그러나 효과는 부족했다.

일방적인 학살.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톰 뮐러와 크리스토퍼, 양춘은 긴장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움직임, 눈에 익기는 하냐?”

“조금. 하지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답이 없다.”

“…….”

크리스토퍼와 뮐러의 대화에 왕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절그럭.

사슬을 집어 든 톰 뮐러는 어떻게든 라이칸의 움직임을 잡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작을 톰 뮐러가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불타는 사슬이라…….’

모든 전설급 아이템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5개의 아이템 중 2개는 아예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아이템이었다.

불타는 사슬은 그래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는 아이템이다.

‘사슬이 몸 중 어디라도 감기면 구속, 능력치의 하락과 동시에 스스로 불타오르며 지속적인 데미지를 준다고 했던가?’

나름 유명했던 아이템이다.

라이칸스로프는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수련자들을 죽이는 것이 지루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설렁설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망도 치지 않으며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저항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최선을 다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 잡은 고기 취급. 이쪽을 조금 경계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우리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틈을 톰 뮐러가 잡아챘다.

“흐아아압!”

또다시 한 파티를 습격해 죽여버린 라이칸스로프는 그나마 경계하던 이들 중 하나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달려든 톰 뮐러는 라이칸스로프의 공격 범위 내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자 라이칸이 빠르게 손을 휘저었고, 예상했다는 듯이 톰 뮐러는 즉시 속도를 줄여버렸다. 그리고는 급하게 몸을 멈춰 세운다.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급정지 이후 곧바로 몸을 뒤로 뺌으로써 공격을 회피해 냈다. 라이칸의 속도가 조금이나마 몸에 익지 않았다면, 공격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단 일격에 끝장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톰 뮐러는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즉시 기회가 찾아왔다.

급속한 방향 전환을 견디지 못한 바닥이 갈라졌지만 톰 뮐러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는 급하게 가장 범위가 넓은 몸통을 향해 사슬 끝을 던져넣었다.

움찔.

갑작스러운 공격에 조금 움찔거린 라이칸스로프였지만 별다른 기세조차 느껴지지 않는 공격에 방심했는지 사슬 끝을 발톱으로 쳐 버렸다.

그러나 상황은 라이칸스로프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력이 담뿍 묻은 발톱에 산산이 깨져 나갔어야 할 사슬이 튕겨 나가기 무섭게 크게 회전하더니 라이칸스로프의 팔을 감싸버렸다.

톰 뮐러는 급하게 사슬의 반대쪽 끝을 놓고는 자리를 이탈했다.

“성공, 성공했다!”

급하게 외치는 소리에 조금 처져있던 다른 둘이 빠르게 접근한다.

그사이에 사슬은 라이칸스로프의 전신을 감싸 안으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크하아앙!”

예상치 못한 공격에 라이칸스로프가 격하게 반응한다.

아마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에 당황했을 터였다.

사슬이 불타고 있기는 하지만 몸 외부의 마력`조차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조금 갉아 내는 정도? 하지만 이제껏 그만한 위력조차 보이지 못했던 만큼 분명 효과가 있기는 있었다.

“…오빠, 괜찮겠어? 저러다가 혹시…….”

“글쎄… 모르지.”

더 지켜봐야 한다. 만약 저들이 라이칸스로프를 잡아 싸워볼 기회를 놓친다면 아쉽기는 하겠지만 지금 끼어들기에는 늦었다.

나는 묵묵히 상황을 지켜봤다.

확실히 이전에 비해 라이칸스로프의 속도가 줄어들기는 했다. 미세하기는 했지만 그만한 차이만으로도 랭커 후보 셋은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라이칸이 느려진 자시의 모습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조금 답답해하는 듯했다.

‘특이하군.’

태생이 아닌 연구에 의해 등장한 놈이라서 그런 걸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연속적으로 봉인을 시킬 것 같았던 기세와는 다르게 쉽사리 추가적인 봉인구를 거는 것은 연신 실패했다.

이전과 다르게 라이칸스로프가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빨리 좀 해 봐, 거지 같은 새끼야!”

“기다리라고! 나도 하고 있다고!”

거친 톰 뮐러의 욕설에 크리스토퍼가 강하게 반발한다. 그의 손에는 설인의 족쇄가 들려 있었다. 새장은 아무래도 공간 내에 가둔다는 특성상 당장은 힘들었다. 워낙 빠른 라이칸스로프의 움직임 때문에 빗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사지 중 하나에 걸어야 하는데 이전에 당한 것이 있는 만큼 상당히 조심하는 듯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라이칸스로프의 저항력 때문인지 천천히 사슬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랭커 후보들 사이에 동요가 오고갔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흐압!”

톰 뮐러가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순간적으로 무기를 들고는 위험한 거리로 파고들었고 이전 사슬을 걸었던 장본인인 만큼 라이칸스로프는 견제만 하며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틈을 크리스토퍼가 놓치지 않았다.

단숨에 발목 쪽을 향해 족쇄를 던졌고, 라이칸스로프는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 위로 점프를 뛰어버렸다. 그리고, 왕춘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으하하하하!”

단숨에 머리에 그리폰의 고삐가 걸린다.

라이칸스로프의 팔이 들린다. 가슴이 드러나기 무섭게 크리스토퍼가 눈을 빛냈다.

“뮐러!”

평소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목표가 있기 때문일까 마침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다.

손에 들어온 저주받은 말뚝을 즉시 가슴에 박아버린다.

“됐…!”

촤악.

한순간이었다.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인 라이칸스로프가 제 범위 안으로 들어온 톰 뮐러와 왕춘에게 각각 발톱을 휘둘러 버렸다.

왕춘의 몸통이 그대로 찢겼고 뮐러의 팔이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어마어마한 치명상이었다.

“…젠장!”

크리스토퍼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이탈했고, 나는 즉시 뛰쳐나가며 입을 열었다.

“살려요!”

“네!”

주하연이 빠르게 달려나갔고 그런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한바다와 나서윤이 뛰어나갔다.

“은주, 너도 가.”

“…네.”

내 곁에서 달리는 남은주에게 지시하기 무섭게 나는 단검을 꺼내 들어 라이칸스로프에게 집어 던졌다.

동시에 숨겼던 마력을 그대로 개방한다.

콰아아아아!

순간 공기가 흔들린다.

라이칸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이제껏 보였던 여유가 아닌 흉포한 시선 그 자체.

자신의 영역을 노리는 또 다른 포식자를 보는 듯한 표정이다.

아우우우우우-!

그의 흉성에 반응했는지 마력이 불길하게 흔들린다.

그의 가슴을 바라보자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주에… 저항력이 있었나?”

하기야 최상위 종족이다. 그런 거 하나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없는 것이 이상하다. 육체 자체에 다양한 내성이 있을 테니까.

저렇게 급하게 말뚝을 꽂아 넣을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제대로 박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달려들었어야 했다.

사슬의 힘이 약해지는 모습에 너무 조급해졌다.

내가 등장했기 때문일까.

기껏 중상을 입힌 둘을 라이칸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날아온 비도를 으깨버리고는 훌쩍 물러났고, 그사이 고삐가 걸림으로써 불길을 조금 되찾았던 사슬을 거칠게 뜯어낸다.

그리고는 고삐를 잡고는 찢어내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빨리! 빨리 쓰러뜨려, 뭘 구경을……!”

크리스토퍼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직접 상대한 라이칸스로프의 실체에 공포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크리스토퍼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에 크리스토퍼는 순간 움찔하더니 새하얗게 질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라이칸스로프는 괴물이지만, 지금 내가 내뿜는 마력 또한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내가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는 사이 라이칸은 끝끝내 자신에게 걸렸던 고삐를 찢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망, 망했어…….”

피식.

나는 그런 크리스토퍼를 비웃으며 라이칸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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