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라이칸스로프를 얼마 남지도 않은 마법사들이 감시했다. 그들은 정말 도망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다. 마고그 족은 마법사들이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법사를 감시하는 인원은 과거 내가 전사의 시험을 받을 당시 함께했고 마법사들을 비판했던 마도스였다. 나름 문신을 활성화 한 그는 운이 좋게도 라이칸스로프가 날뛰는 현장에 없었고,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과거 마법사들을 탐탁지 않아 한 데다 이번에 사고까지 친 덕분에 그의 눈에는 살기가 돌 정도였다.
“유신후 님…….”
일그러진 표정의 마도스. 그의 눈에는 진한 복수심이 어려 있었다.
“이번 일은…유감이다.”
딱히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단순한 위로에 불과했다.
“꼭, 꼭 라이칸스로프를 쓰러뜨려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스스로 라이칸스로프를 죽이지 못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닌 다른, 대부분의 전사들은 하나같이 울분에 찬 표정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내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전투는 내가 아니다.
준비를 제법 철저하게 해 왔던 것인지 고용되기 무섭게 세 명의 랭커 후보와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쫓아온 길드원들이 달라붙었다.
우습게도 무림회 인원은 거의 없었다. 회주 자리를 거부한 왕춘에게 형식적인 지원 조금을 한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다이딘 대공이 조금 신경 써 준 것 같았다. 다들 하나같이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갈리아와 바이에른에서 나온 이들은 무척이나 의욕적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통해 다음 랭커 선발을 위한 업적을 쌓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였다.
마치 적과의 동침을 보는 듯한 느낌.
“…저럴 거면 도대체 왜 같이 왔는지 모르겠네요.”
“뭐, 그만큼 이 자리가 탐나나 봐요. 있어도 별로 체감은 안 되던데.”
“…우리 길드는 랭커라는 자리에 목멜 필요가 없는 특수한 경우니까. 솔직한 말로 수련자라는 이름을 떼더라도 중층에서 구축한 힘과 명성은 저들이 랭커가 되어도 건드릴 수 없을 수준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구축한 힘은 수련자임을 가정했을 때 이질적인 수준이기는 하다. 다만 수련자가 아니었다면 황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었을 테니 이만한 세력이 되기는 힘들었겠지만. 한바다가 말하는 것은 앞뒤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지금 우리 세력의 힘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신후 오빠. 그 그랜드 마스터에 달하는 존재를 막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기는 해요?”
남은주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아르테인 공작과 직접 대련도 해 보고 공작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나나 카바락의 공격도 정면에서 버텨 보았던 남은주다. 도저히 아이템 하나로 라이칸스로프와 싸우려는 저들이 이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단순한 방어라면 아이템 하나로는 힘들겠지. 가정이기는 하지만… 준신화 수준의 아이템이 있다고 해도 힘들 거다. 너만 봐도 알잖아? 스킬, 직업, 아이템이 다 있어도 카바락을 막기도 벅차지 않았어?”
“…솔직히 말해서, 공작님 공격은 지금도 조금…….”
경험을 쌓고 경지를 올리고, 스킬을 발전시키고 성유물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의 도움이 없으면 공작의 공세를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경지를 더 올리고 능력치를 더 많이 발전시킨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터다. 모든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능력치도 90 후반쯤 되면 어떻게 혼자서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만큼 남은주가 가진 스킬들은 상당히 상등급의 스킬이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도저히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지켜봐요. 뭐, 실패해도 자기들 책임인데요 뭘.”
하유진이 저들의 안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지 마렴. 그래도 훗날 지구를 위해 싸울 이들이잖아.”
“글쎄요. 바다 누나,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저놈들 하는 짓 보면 그냥 눌러앉을 것 같기도 한데요.”
“나도 하유진 말에 동의해.”
“그치? 네가 봐도 쟤들 그럴 거 같지 않아?”
사샤의 공감에 하유진이 반응했다.
“흠…….”
한바다도 크게 할 말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저들이 가고 싶지 않아 해도 플로어 마스터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이것은 몇 년 후에나 알게 될 사실이다. 당장은 일행들이 알 방도가 없었다.
저들은 우리가 뒤따라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정확히는 우리 쪽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왕춘은 나서윤을, 크리스토퍼는 주하연을 비롯한 일부 여성진들에게, 톰 뮐러는 나에게 상당히 관심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눈치만 볼 뿐 쉽게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전원,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쪽에 오면서 길드원들은 데리고 오지 않았다. 내 직속 파티만 챙겨왔을 뿐이다. 별 도움이 안 되기도 했고, 지금도 3차 전직과 아이템을 위해 사냥 및 던전을 계속 돌고 있는 만큼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유일한 예외인 아멜리아는 마법 연구에 한창이었고.
즉, 우리 숫자가 훨씬 적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전원 내 눈치를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죽하면 저 갈리아와 바이에른이 임시로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서로 눈빛으로 약간의 적대감을 표출할 뿐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허락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저쪽이 막무가내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고, 그냥 단순히 덤벼들기에는 그간 쌓아온 이름과 지위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애초에 랭커 후보인 셋부터가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저들이 바보도 아닌데 이쪽을 향해 꼬투리 잡힐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왕춘은 생각보다 나서윤에 대해 엄청 의식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야마모토는 이전에 한바다에게 크게 패했지만 지금처럼 과하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애초에 공작과의 거래를 통해 간 이상 공작이 경거망동하게 두지도 않았고, 야마모토 자신도 몇 차례 대련을 통해 재도전할 기회가 있는 만큼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뭐, 몇 차례의 대련에서 계속 무참하게 깨졌고 그 뒤로는 아예 행동조차 조심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에 반해 왕춘은 아직 재도전의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올려 당당하게 재도전을 하겠다는 멍청이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몰랐다.
내가 보기에는 영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발전한 것은 인정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봐야 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왕춘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나서윤의 재능은 사상 최고 수준이며 동시에 그랜드 마스터와의 대련, 공작가의 최고 수준의 기사들과의 대련 등을 통해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귀한 경험과 수련을 해 왔다. 왕춘과의 차이가 벌어지면 벌어졌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았을 터다. 보통이라면 해 봐야 안다지만, 이건 솔직히 안 해봐도 뻔할 정도였다.
“흠…….”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까워졌군.’
과거, 마탑이 있던 장소이자 라이칸스로프가 쉬는 장소, 즉 그의 영역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를 시작으로 내 일행과 왕춘을 비롯한 이들 또한 역한 냄새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심하군. 대체 얼마나 죽었기에…….”
왕춘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당연하지만, 하나나 둘 수준은 아니다. 마탑을 좋아하지 않는 마고그 족 특성상 대족장이 거하는 부족과는 조금 떨어져 있기는 했다. 마탑의 마법사 수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시중을 드는 이들이 많았고 또한 대족장이 마탑의 이상을 눈치채기 무섭게 다수의 병력을 이끌고 지원을 한 상태다.
대족장이 패퇴했지만 전사들 대부분이 죽음으로써 일대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간 순간이었다.
아우우우우우!
커다란 하울링. 평범한 하울링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살기와 마력은 순간적으로 내 몸을 긴장시켰다.
내가 이 정도인데, 다른 이들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순간, 모든 수련자들의 몸이 한순간 굳었으며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거리가 가까웠더라면 일부는 기절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포식자의 기세. 그 기세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으득.
자칭 랭커 후보들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였고, 자신들이 움츠러들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그들은 이를 갈았다.
그렇지만 그간 경험이 없지는 않았는지 방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이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했었던 듯했다.
‘그런데도 간다는 것은… 어지간히 좋은 아이템을 얻었나 본데?’
이쯤 되면 도대체 어떤 아이템을 믿고 있는지 기대가 될 지경이다.
우리의 접근을 알아챈 라이칸스로프는 하울링을 통해 경고만 보낼 뿐 그 자리에서 움직이는 기색은 없었다.
‘배가 부르다 이건가?’
하지만 자신의 영역이 침범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
조금의 찝찝함. 그러나 랭커 후보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긴장을 풀지 않은 체 시체들의 밭을 지나 마탑이 서 있던 장소로 향했다.
마탑은 이미 반쯤 부서져 폐허가 되어있었다.
전투의 중심지였던 곳답게 시체가 사방에 가득했다. 일부 장소에는 마치 산처럼 시체가 쌓여 있었다.
“크르르르…….”
라이칸스로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흰 털에 뒤덮인 이족보행 늑대.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크기는 대충 봐도 5m는 거뜬히 넘어갔다.
게다가 전신에서 느껴지는 불길하고도 섬뜩한 기운은 도저히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들었다.
게다가 마스터 이상의, 아니 엑스퍼트만 되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라이칸스로프의 마력은 어마어마했다.
그것을 전혀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었다.
라이칸스로프는 우리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으르렁거릴 뿐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오빠, 저거 이상한데?”
나서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하다. 한참 전부터 보았듯 라이칸스로프의 활동 반경은 최소로 잡아도 처음 보았던 시체가 있던 장소까지다. 그런데 우리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본능만 남은 주제에 자제를 한다고? 무언가 이상하다. 우리가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것도 아닐 터다. 나를 포함해 길드원들 대부분이 기세를 숨긴 상태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세는 크지 않을 터.
숫자에 겁먹었다는 가정은 재고할 가치도 없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랭커 후보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기회로 여긴 듯하다.
“톰, 크리스토퍼. 사슬과 새장을 꺼내게.”
“그러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셈이지? 나는 뮐러다.”
“시끄럽게. 아직 귀족도 아니면서 무슨 그런 것에 집착하나? 대부분 이름으로 쓰는데. 하여간…….”
“너는 닥쳐라, 크리스토퍼.”
“그만. 집중해.”
두 개의 길드와 왕춘을 따라온 소수의 무림회 인원들까지. 하나둘 주변을 경계하며 각자 정해진 듯한 위치로 움직인다. 대부분 궁사들을 중심으로 진형을 짠 듯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인벤토리에서부터 이상한 물품들을 꺼낸다.
“…독. 거기에 함정들이네요.”
하유진이 중얼거린다. 도적 길드에서 훈련을 했을 때 많이 다뤄보았다고 한다.
“…고작 저걸로?”
준비한 것들을 보면 하나같이 보통의 재료로 제작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큰 도움은 되지 않을 터다. 아니나 다를까 저것들은 어디까지나 보조라는 듯 왕춘을 비롯해 톰 뮐러, 크리스토퍼가 각각 하나씩의 물품을 인벤토리에서 꺼낸다.
“…흠.”
나는 빠르게 관리자의 눈동자를 통해 아이템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폰의 고삐]
[불타는 사슬]
[천공의 새장]
전부 전설급에 달하는 아이템이며 동시에 ‘제약’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주받은 말뚝]
[설인의 족쇄]
거기에 더해 두 개의 봉인 아이템이 추가된다.
전설급 아이템 다섯 개. 그것도 모두가 상대를 제약하고 힘을 깎아내고 봉인하는 종류의 아이템이다.
확실히 내 길드에 전설급 아이템이 많은 것일 뿐 1회차에서도 1군들이 1개 많아 봐야 2개 정도 가졌던 것이 전설급 아이템이다. 심지어 없는 이도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5개나 되는, 그것도 주류인 무기나 방어구도 아닌 저런 종류의 아이템 5개를 구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대공가와 변경백의 지원인가?’
황실 쪽에서 전해 들은 바는 없었다. 모든 것을 밝히지는 않았겠지만, 이 상황에서 감출 이유는 없다. 뮐러가 배를 갈아탔거나 개인이 구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버프 아이템 5개. 가능성이 0은 아니었다. 저것을 다 적용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물론 다 적용한다고 해도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