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나서윤의 랭커화. 그것을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시기가 변하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기억을 뒤져보아도 나서윤을 랭커 취급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나서윤이 상급에 해당하는 마법사인데다 마스터, 그것도 중급에 달하는 마스터이기는 하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는 랭커라는 이름이 가벼워지지나 않을지 걱정이었다.
비록 그 시기가 더 빨라졌음을 고려해도 랭커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나를 데려온 황제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할지는 몰랐다.
그렇기에 나는 황제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서윤의 실력이 나쁘지 않기는 합니다만… 그녀를 랭커로 넣을 정도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황제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나서윤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예.”
내 대답에 황제가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마검사임에도 상급의 마법사, 거기에 더해 중급의 마스터라고 알고 있네만?”
“맞습니다.”
지금 당장은 중급에 속하기는 하지만 곧 있으면 상급이 될지도 모른다. 성장 속도가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수준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회귀자인 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었다.
‘애초에 내 도움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랭커의 조건은 대전사를 만나더라도 최소한 목숨 부지는 가능한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나서윤은 대전사를 만난다면 도망조차 칠 수 없는 실력에 불과했다.
‘흠… 과거 복수자를 생각한다면… 그것도 아닌가?’
복수자는 홀로 빠져나갈 수 없어 수많은 부하들을 희생시켰다. 나서윤도 도망치기 위해 일부를 희생시키면 도망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상급에 해당하는 마법사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실력적으로 보았을 때 그녀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명백했다.
1회차의 가장 약한 랭커도 지금의 나서윤보다는 강하다.
그러나 황제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시기의 차이가 크게 나는 만큼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 실력이라면 수련자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강자라고 생각한다네. 그 귀하다는 상급 마법사임과 동시에 중급의 마스터, 거기에 세운 공적은 그대 다음이지. 정보부에서는 그대를 제외하면 나서윤이 모든 수련자들을 통틀어 가장 강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정도일세.”
“그건….”
딱히 부정하기가 힘들었나. 그나마 한바다 정도라면 나서윤과 비견될 만 하나고 생각했지만, 상급 마법사인 나서윤은 조금 더 다양한 상황에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자네가 무척 규격 외라 그렇지 다른 이들은 달라. 솔직한 말로 이번 전쟁에서 이름을 떨친 이들도 나서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 왕춘은 재대결을 바라고 있는 것 같지만 정보부에서는 어림도 없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네. 참고로 왕춘 또한 중급 마스터에 발을 디뎠다고 하더군.”
확실히 과거 첫 번째 랭커의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다웠다.
“그대는 생각보다 주변을 낮게 평가하는군. 하기야 그런 실력을 갖고 있다면… 현 제국에서도 그대와 비견할 만한 존재는 사실상 손에 꼽힐 정도이니 말일세.”
말이 되지 않는 속도로 성장하고, 운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고는 하나 대전사에 도달한 오크를 죽였다. 황제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나서윤 정도라면 랭커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해질 터. 그대는 나서윤의 랭커 임명에 반대할 것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에는 약하지만, 황제는 괜찮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본인이 원한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나서윤이 반대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도 아니고 나와 같이 랭커가 되는 것이다. 의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나 때문에라도 황제는 쉽게 나서윤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서로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었고. 아마 기뻐하며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 수준을 랭커로 선발하면… 머지않아 내 직속 파티는 랭커 파티가 되게 생겼는데?’
이미 과거 거대 길드의 1군 수준을 넘어가고 있는 일행들이다. 하나하나가 랭커에 임명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물론 당장은 한참 부족하다. 나서윤은 상급 마법사라는 점까지 참작된 것이었으니까.
조금 어처구니가 없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정보와 자원을 독점했으니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나름 노리기도 했었고. 내 파티의 수준이 과거 랭커들 수준에 달하기를 기대하긴 했었으니까.
‘그래도 부족할 지경이니까.’
힘에 대한 탐욕을 계속해서 부리고 부려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1회차의 랭커과 비교해도 오히려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뿐, 시기가 빨라 전체적인 수련자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황제의 눈이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았다.
나서윤에게 소식을 전하자 나와 함께 랭커가 된다는 사실에 나서윤은 즉시 찬성했다.
예상했던 그대로기에 나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우리 둘만 랭커인 거야, 오빠?”
“그래.”
“하연 언니나 바다 언니 정도면 랭커에 들 정도 아닐까?”
“황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건 아쉽네. 하지만 기쁘다….”
나서윤이 받아들이자 이 사실을 일행들에게도 알렸고, 그들은 하나같이 나서윤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나는 조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확실히, 과거의 어떤 파티와 비교해도 그 유대감이나 존중은 최고로 손꼽힌다고 볼 수 있었다.
나서윤이 랭커의 지위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는 만족스러운 기색을 비추었다.
다음 날이 되자 예정된 논공행상이 시작되었다.
***
“왕춘. 그는 목숨을 걸고 구아난 영지와 시루안 영지를 지키는 것에 도움을 주었고 네임드 오크 셋을 베었으며….”
영웅들을 만들기 위함이라서일까. 대대적인 전공을 읊고 훈장을 수여받는다. 5급에 달하는 이들의 공적마저도 하나하나 읊어주기 때문인지 시간은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현재 왕춘은 나름 3급에 해당하는 공훈을 세웠고, 수련자의 지위이기 때문인지 황제가 직접 훈장을 수여하고 있었다.
참고로 두 번째에 해당하는, 2급에 달하는 공훈을 세웠다며 그 이름을 올린 이들은 3대 대귀족가였고, 최고 등급인 1급 공훈을 세운 곳은 내 길드인 가이아 길드다.
본래 대부분 1등급 공훈은 주로 아르테인 공작가나 애슐란 변경백이 많이 차지하는 편이었다.
애슐란 변경백은 3대 전선 중 하나를 통째로 맡고 있었고 아르테인 공작은 주로 가장 중요한 중앙에 파견되는 만큼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전투에서는 애슐란 변경백 쪽에 많은 이들이 쳐들어오기는 했지만 전선이 그쪽뿐만이 아니라 남부까지 넓어져 더 많은 이들이 같이 막아 주었고, 중앙은 북부가 무너지면서 싸움이 사실상 없다시피 했기에 나를 포함한 가이아 길드가 1급에 해당하는 최고 공훈을 받을 수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개인이 2급 이상의 공훈을 받기는 어려웠다. 내 길드가 1급 공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 산하 길드 및 파티들, 따로 흩어져 의뢰를 받았던 길드원들, 그리고 마법 병단의 힘과 북부에서의 공훈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애슐란 변경백이 올라가 그가 세운 공을 공표 받는 사이 아르테인 공작이 내게 접근해 왔다.
황도에 오자마자 황제에게 불려 갔기 때문에 대부분의 귀족들과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논공행상을 시작해서도 마찬가지로 황제의 곁에 있었기에 접근하는 귀족은 없다시피 했었다. 황제가 탐탁지 않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황제는 3급부터는 직접 공치사를 하기에 내 곁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르테인 공작은 다이딘 대공과 함께 면식이 있는 몇 안 되는 귀족이다. 다이딘 대공 또한 이쪽으로 오고 싶어하는 기색이었지만 애슐란 변경백 다음이 본인 차례이기 때문인지 그는 내게 접근하는 것을 포기했다.
“오랜만이군.”
“예. 잘 지내셨습니까, 공작 각하.”
“그대 덕분에 이번 전쟁에서는 한 일이 없었지. 그나저나 소식은 들었네. 대전사 하나를 죽였다고?”
“…운이 무척이나 따라주었습니다.”
“나도 들었지. 그대와 싸우는 과정에서 벽을 넘었고, 벽을 넘는 순간 그대가 반병신을 만들어 주었다지?”
“…….”
아르테인 공작은 무척이나 흥분한 듯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그대는… 무척이나 변했군. 경지 자체는 아직 그대로인 것 같지만… 분명 변했어. 어쩌면 그대도 벽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넘지 않으면 곤란하다.
아니, 나는 반드시 벽을 넘어버릴 생각이었다.
어느새 애슐란 변경백이 2급 훈장과 함께 많은 포상을 받으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가 받은 포상들은 대부분 영지를 복구하기 위해 사용될 터다.
곧이어 다이딘 대공이 황제의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기야 무공의 약점에 대해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기술. 일종의 계륵 같은 기술이다. 그녀라면 잘 써먹겠지만.
“유신후 백작.”
“네, 공작 각하.”
“혹시, 나랑 대련 한 번 할 생각 없나?”
공작의 갑작스러운 제안. 나는 순간 혹하는 기분을 느꼈다.
“…어째서입니까?”
“그대가 대전사를 죽였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지.”
당장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현재 내 감각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실은 제가 카바락과의 싸움에서 운이 닿아 특수한 감각을 손에 넣었습니다. 다만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여….”
“그런가? 잘 되었군. 적응을 도와주지.”
그랜드 마스터가 해 주는 대련 제안과 그와 더불어 새로운 감각의 적응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까지. 나는 순간 의심이 들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 주시겠다는 겁니까?”
아르테인 공작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말했지 않나, 그대의 실력에 흥미가 생겼다고.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지.”
아르테인 공작이 말을 이었다.
“그대에게 대전사인 카바락의 시체가 있다고 들었네.”
나는 공작의 말에 멈칫했다.
“그 시체를 조사하고 싶군. 그것을 허락해 준다면, 자네와의 대련과 자네의 훈련을 도와주도록 하겠네.”
***
나는 당장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만나서 하기로 했다. 아르테인 공작의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공적에 대한 치하는 짧았다.
그가 이번에 한 일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2등급인 이유는 그만큼 중앙 전선이 위험하고 중하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가이아 길드의 이름이 불렸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이번 전쟁의 최고 공훈자인 가이아 길드의 훈장 수여를 시작하겠습니다.”
훈장. 각 등급에 맞는, 공훈의 증표다.
“가이아 길드는 북쪽, 지노가드 요새에서 붉은 갈기 부족을 몰살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지원군 오크 학살, 북쪽에서 죽인 네임드와 남부에서 죽인 네임드만 스물이 넘었으며, 지킨 영지가 여섯 군데, 싸운 전선은 사실상 남부 전체다.
내 길드원들과 산하 길드원들의 활약 또한 널리 퍼졌다.
길드의 업적을 읊으면 읊을수록 내 공훈을 발표하는 시종의 얼굴이 질려가기 시작했다.
가이아 가이아 하길래 어느 정도인지 몰랐으나 확실히 3대 대귀족을 제치고 1등급 공훈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대중을 지배했다.
“…고 가이아 길드의 길드장, 유신후 백작은 악랄한 오크, 외팔의 카바락을 직접 상대해 그의 심장을 갈라놓았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네임드 오크였던 외팔의 카바락은 전투 도중 대전사로 각성하였다고….”
“…허,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말인가?”
“유신후 백작님은 수련자로 알고 있는데… 벌써 대전사를 상대할….”
“미쳤군. 수련자들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은데….”
웅성웅성.
기나긴 가이아 길드의 업적 발표가 끝나고 나자 황제가 직접 나서서 내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었다.
“제국을 위해 일해 주어서 고맙군. 고생했네.”
“…감사합니다.”
나를 마지막으로 논공행상이 끝났다. 그러나 연회는 끝나지 않았다. 보통은 이후 사실상의 행사가 없기에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황제가 앞으로 나섬으로써 그것을 뒤로 미루었다.
“중대 발표를 하나 하고자 한다.”
황제가 나서 직접 입을 열기 무섭게 연회에 참가한 귀족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짐은, 랭커 제도라는 것을 신설하고자 한다.”
곧바로 예정된 이야기가 황제의 입을 통해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