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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21화 (221/317)

# 221

랭커 임명

나의 3차 전직과 함께 업적의 보상을 받은 이후 일행들의 이전 전투로 인한 피로와 정신적 충격이 해소가 된 이후 우리는 다시금 전장에 나서야만 했다.

이후 나는 전투에 거의 참가하지는 않았다.

남은주 또한 한동안은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고, 내 호위를 명목으로 남은 충격을 해소하는 것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건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내가 카바락을 쓰러뜨린 모습을 본 것이 도움이 된 건지 아니면 내게 기대라는 말이 유효했던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남은주 또한 천천히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몸이 되었고, 그녀는 몸이 전투에 돌입해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곧바로 전투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방해가 될 정도도 아니었기에 나 또한 막지는 않았다.

‘조금 웃기기는 하네.’

남은주도, 주하연도 과거에는 위험을 극도로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구가 그 꼴이 되었음을 알고 가족들이 위험에 처했으며 우리가 충분히 돌아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 이후에는 제법 위험도 감수하고 그와 관련된 간섭들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남은주가 다시금 전투에 참여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정말 괜찮겠냐는 말들이 나오기는 했으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간간이 전투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주로 오크의 감각 스킬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나 참가했을 뿐 거의 일행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할 뿐이었다.

“은주 언니! 오른쪽!”

“응!”

“누나, 지휘관 죽었어요! 저쪽 이제 오합지졸이에요!”

“잘했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사샤! 벽 세워! 길을 제한해!”

끝없는 전투의 참가로 인한 일행들의 성장은 극적인 속도는 없어도 꾸준히 이어졌다.

남부의 무법자들과 수인들은 슬슬 무공의 엉터리인 부분들을 직감하고는 전쟁에 회의를 느끼는 와중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왕춘과 야마모토의 이름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었다.

최근 왕춘이 전설급 팔찌를, 야마모토가 전설급 갑옷을 노획했다는 소문이 이쪽에까지 들어올 정도였다.

수인들의 보물 중 하나라고 했던가? 과거에도 존재했었던 물품이지만 내가 탐낼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전쟁의 시기도 바뀌어서 찾아내기도 힘들기는 했고.

물론 그들이 쫓아와 봤자…….

“나서윤 님, 아멜리아 님. 준비되었습니다.”

“네.”

나서윤과 아멜리아가 빠르게 마법을 영창하고 마법 병단이 둘을 보조할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아이스 코어.”

“아이스 코어!”

모든 인원이 통일된 빙속성 마법을 난사했고, 단숨에 수천에 이르는 수인들이 소멸한다.

“진짜 수인들 숫자가 많기는 하네… 경험치도 꽤 괜찮고….”

“숫자만 따지면 수인이 최고라고 들었어. 하기야 하층의 놀들도 그렇게 많았는데 뭘.”

“놀이랑 수인이랑 같은 취급 했다는 거 알면 수인들이 미쳐 날뛸걸?”

“하, 지들이 그래 봤자….”

“그나저나 마법사 길드는 도대체 왜 이런 놈들을 잡아 달라고 하는 거야?”

“뭐 어때요. 가져다주면 연구자료들을 그렇게 제공해 준다는데, 우리야 좋죠.”

“그런데 무법자들은 요새 안 보이네?”

“걔들, 이제 가이아 이름만 들리면 줄행랑을 치고 있다던데.”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마법사들. 긴장감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간섭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압도적인 전장이었으니까.

북부에서 커다란 공을 세웠던 내 길드는 남부에서 그 위세를 더더욱 키우고 있었다.

사실상 자신들의 영지를 위해 우리를 초청하는 귀족들은 하나같이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름 높은 네임드 오크 카바락이 내 손에 명을 달리했고 나의 세력은 3대 귀족이라 불리는 애슐란 변경백, 아르테인 공작가, 다이딘 대공쯤은 되어야 비교할 만한 세력이 되어버렸으니까.

전투를 치르면 치를수록 마스터의 숫자는 불어났고 마법사들의 마법 폭격은 사나워졌으며 명성은 높아져만 갔다.

대부분의 전투는 초청보다는 정보에 따라 괜찮은 전장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루어졌지만 간혹 저들의 초청을 받아줄 때도 있었다.

대게 우리의 초청을 원하는 이들은 영지가 몰살당할 만큼 대규모 습격을 받는 경우였으니까.

전선이 넓은 만큼 모든 영지를 방어할 수 없기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전쟁이 끝날 때쯤이면 이연솔도 상급 마법사가 되려나?’

슬슬 되려 이쪽이 밀어붙이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수인과 사생결단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중립, 온건파에 속하는 수인들이 움직인다.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중재를 시작 할 때까지가 날뛸 수 있는 한계였다.

‘오크들이 난감하겠군.’

다행히 카바락의 시신 때문에 습격을 당하는 것은 없었다. 오크의 대전사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조금씩, 전쟁이 끝나가고 있었다.

제국은 이번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되려 수련자들로 인해 세력이 커졌고 오크들과 수인들의 힘이 깎였다고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무법자들이 대부분 남부로 이동하면서 위치가 드러나고 더는 제국에서 말썽을 부리기가 힘들어졌다.

모든 것을 잃기만 한 상황은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무슨 생각 해요, 신후 오빠?”

남은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기대라는 말을 들은 이후 남은주는 은근히 자주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주하연과 나서윤이 조금 떨떠름해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지만, 딱히 막는 모습은 없었다. 사정이야 둘도 알고 있을 테니까.

“…슬슬 전쟁이 끝나겠다 싶어서.”

“아, 하긴. 요새 점점 밀려오는 애들이 줄어들기는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그냥 우리 길드 근처라 쟤들이 피해 가는 건가?”

‘그것도 없지는 않지.’

일종의 자랑,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기는 하나 그런 생각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레벨은 어때?”

“저는 조금 늦어서 88이에요. 유진이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89. 아, 서윤이는 곧 90찍을 것 같다는데요?”

그 뒤를 쫓는 것은 아멜리아였다. 상급 마법의 힘으로 급속도로 경험치를 포식해 순식간에 마법 병단들을 따돌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내 레벨은 90에서 고정된 상태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괜히 대부분 홀로 움직였다고 알려진 랭커들이 중층에서 100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 전쟁 끝나면 저희야 그렇다 치더라도 휘하 정예들은 어떻게 해요?”

“수인들과 휴전한다고 해도 오크들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아. 늘 그렇듯 계속 전투가 이어지겠지. 한동안 줄어들 수도 있지만….”

그거야 이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당연하게도 오크들은 우리를 피하지 않을 거다. 전력이 더 오면 왔지.

남은주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설마 고작 그거 물어보려고 왔냐 묻자 남은주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안 돼요?”

“…그건 아니다만….”

이상하게도 그것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남은주를 바라보자, 남은주가 조금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내 눈에 더 들어온 것은, 미미하게 떨리는 손끝이었다.

“오늘도 그런 거냐.”

“…네.”

“뭐 더 해줘야 하는 것은 없고?”

“딱히요.”

“…역시 본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뇨. 괜찮아요. 그러면 엄청 오래 걸릴 수 있다면서요. 이쪽이 더 좋아요. 계속 성장할 수 있고. 신후 오빠에게 의지하는 것으로 충분히 괜찮아 지니까, 어떻게든 극복해 보일게요.”

남은주는 전투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주 후유증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종종 후유증으로 전투 직후 스트레스와 육체의 떨림이 발생하는데, 나와 같이 있으면 상당히 호전된다는 듯했다.

본인 말로는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내심 제대로 장비를 동원해 치료를 시키고 싶었으나 지금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90레벨을 달성할 때까지는 치료를 거부했다. 그 전에 스스로 극복해 보이겠다면서.

물론 3차 전직 이후에도 그런다면 당장 장비를 동원하겠다고 했고, 남은주는 거기까지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휴전 제안이 금세 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수인들은 여전히 제국과의 전쟁을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수련에 탑에 들어온 지 5년째가 되고도 한 달이 지난 이후에야 수인들이 휴전 협상을 제안해 왔고, 그사이 내 직속 파티원과 아멜리아가 3차 전직 조건을 만족했다.

***

예상보다 훨씬 늦게 휴전 제안이 온 것 치고는 휴전 협상은 쉽게 끝났다. 제국이 많은 것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당장 전선이 넓어진 상태에서 강짜를 부리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고 수인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중립파와 온건파는 강경파를 막겠으니 공격하지 말 것을 주문했고, 제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지금 당장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기는 하지.’

사방이 적인 이상, 어쩔 수 없기는 하다. 다른 전선의 병력을 함부로 뺄 수는 없으니까.

무법자들의 신변을 요구했지만 수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 나름대로 무공을 구해오고 수인들과 힘을 합쳐 행동한 점도 있었기 때문인지 무법자들은 수인 휘하로 완전히 흡수되었다. 수인들이 그들의 행태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수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조건으로 무법자들을 받아들여 주었다.

무법자들도 전쟁을 통해 많은 노예들을 확보했고 타 종족이라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에 수인들 휘하에 흡수되는 것을 반겼다.

어차피 수인 내부에서는 제국에서처럼 날뛰지도 못한다. 전쟁을 통해 수가 줄어들기도 했고.

제국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였던 무법자들 대부분이 수인 쪽으로 가버리자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당장에는 해소가 되는 것이라 막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배령은 풀리지 않는다. 제국 입장에서는 직접 처단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수인들이 제국과의 전쟁을 멈추자 오크들은 천천히 군을 물리기 시작했다.

수인들과 연합해 크게 공격해 들어왔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북부의 균형이 어그러진 것부터 시작해 가장 중요한 중부의 전력을 나누어야만 했고, 남부에서는 수련자들이 날뛴 덕분에 큰 효과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이번 침략도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수개월에 걸친 전쟁이 끝나자 제국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곳들을 하나둘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무너진 영지도 몇 개나 되었고 사상자 또한 어마어마했다. 최근 전쟁 중에서는 가장 대규모였고 가장 피해가 컸다.

과거 인간끼리의 전쟁과 다르게 타 종족과의 전쟁은 사실상 인간 전체의 명운을 건 전쟁인 만큼 결사항전 말고는 답이 없었고 그만큼 많은 피해를 입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제국은 승리했고, 살아남았다.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만큼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죽은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되나 언제까지나 그것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기에 제국은 한동안 제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렸고, 그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논공행상을 시작했다.

영웅들을 앞에 내세움으로써 분위기를 바꾸려는 목적이었다.

3대 대귀족을 포함한 수많은 귀족 가문들과 인상적인 공을 세운 몇몇 장군 및 병사들이 선발되었다. 그중에는 왕춘을 비롯해 대귀족 휘하의 수련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와 내 길드원들, 그리고 가이아 길드는 최고 수준의 공을 세웠고, 최고 수준의 공적을 세운 것으로 인정받아 논공행상에 정식으로 초대되었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수많은 귀족과 전쟁영웅들이 황도로 집결했다.

물론 그들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가이아 길드와 3대 대귀족들이었다.

황제는 정식 논공행상에 앞서 조용히 나를 불러들였다.

“이번 논공행상에서 랭커 제도를 발표할 생각이네.”

생각보다 전쟁이 오래갔기 때문인지 제법 늦게 발표되는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전쟁을 통해 랭커에 들만한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선별할 필요가 있었을 테니까.

일종의 후보자들을 알아보는 시간이랄까.

“알겠습니다. 약속드린 대로, 이름을 올리는 것 정도는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1회차를 생각하면, 현시점에서 랭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는 사실 나 말고는 없었다. 아마 랭커 제도라고 거창하게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이름이 올라가는 존재는 고작 나 하나일 터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나름 알아본 결과 이번에 등록할 랭커는 둘로 정했다네.”

“…둘,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하나는 자네. 다른 하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황제는 결심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나서윤. 그녀를 두 번째 랭커로 임명할 생각이라네.”

나는 떨떠름한 기색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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