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3차 전직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이할 정도로 따스한 느낌이 몸을 지배했다.
감각에 취하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건 조금… 이상한데?’
직업 보정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어차피 줄 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이런 화려한 이펙트가 나온다고?’
게다가 감각도 이상하다. 묘하게 힘이 피부에 스며드는 것 같기도 하고….
우득. 우드득.
신체가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조금 길어진다. 전신의 뼈가 부서지고 다시금 재구성되고 있었다.
뼈 자체의 크기가 조금 커지고 두꺼워진 데다 무척 튼튼하게 재구성되고 있었다. 머릿속에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미친, 환골탈태?’
전신에 커다란 고통이 느껴졌지만, 고통 자체는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기에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에 걸림돌은 없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현상이다. 정말 극히 일부분만 겪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었다.
직업의 보정 효과에 도움을 준다더니, 뜬금없이 환골탈태가 시작된다.
아무리 3차 전직이라고는 하지만 보정 효과가 이렇게까지 뛰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현시점에 환골탈태는 큰 득이 될 거다. 육체 자체의 스펙이 증가한다는 뜻이니까.
순수 능력치의 상승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갑작스레 얻은 결과. 길 가다 영약을 주운 기분이었다.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 나는 환골탈태가 끝났음을 느꼈다.
환골탈태 이후 있다는 악취는 거의 없었다. 약간 구린내가 나기는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노폐물이 거의 없으니 냄새가 날 일도 없겠지.’
최상급 마스터에 달하는 신체에 과거 전설급 영약을 섭취한 후 일종의 벌모세수도 끝냈고, 비약을 통해 마력 회로를 재구성하기까지 했다.
노폐물이 거의 없을 만했다. 평소에 관리도 상당히 잘 해왔으니까.
무척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웅웅.
성흔이 무언가에 반응하고 있었다.
‘마력이….’
약간이지만 마력이 빠져나간다. 거부하려면 거부할 수 있었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마력 일부가 신성력으로 변환되고 자연스럽게 신성의 오라가 발동한다.
환골탈태가 막 끝났기 때문일까 육체에 약간의 피로가 있었는데 회복되는 기분이다.
굳이 이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불사의 육체가 알아서 회복을 시켜주었겠지만.
“오오오….”
“성자님….”
“여신이시여….”
‘흠?’
나는 이상한 소리에 몸을 돌렸다.
문득 나는 몸이 옅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성의 오라 때문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신성의 오라뿐만이 아니라 추가적인 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여신상에서 빛이 아직 나를 내리쬐고 있었다. 성흔이 반응한 원인인 듯했다.
주변 사람들, 정확히는 내 일행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되나?’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챘다. 여신상에서 빛이 내리쬐고, 거기에 신성의 오라 덕분에 내 몸에서 은은한 신성력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즉, 나는 후광을 받으며 신성력을 주변에 퍼뜨리는 모습이다. 여신상의 빛이야 3차 전직이 원인이고 내 몸의 신성력은 스킬의 힘이지만 저들이 보기에는 이전의 계시가 생각날 터다.
이미 전례까지 있는 마당이니….
“…신후…씨?’
“…오빠, 맞아? 기운은 맞는데….”
“잠, 잠깐만요. 정말 신후 오빠라고요?”
일행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묘하게 얼굴을 붉히는 점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달라진 몸을 확인하기 바빴다.
‘시선이 높군.’
나는 단숨에 내 몸의 상태를 알아챘다.
키가 컸다.
몸을 내려다보자 확실히 높아진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팔다리가 길어졌다.
경지에 오를 대로 오른 이상 길쭉한 팔다리가 이전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재적응이 필요하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환골탈태의 결과다. 뼈 자체가 튼튼해진 것은 오히려 이득이고, 신체 능력치가 올랐을 테니 종합적으로 보면 큰 이익을 보았다고 할 수 있었다.
‘적응이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고… 응?’
나는 미묘한 차이를 느꼈다.
팔다리뿐만이 아니다. 피부가 빛났다. 가볍게 쓰다듬자, 엄청나게 부드러운 피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신성의 오라가 가진 효과가 아니다. 직업의 등급이 준신화가 되었다고 해도 신성의 오라에 이런 효과가 추가되지는 않았다. 스킬 효과가 변했다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나는 문득, 열세 번째 꽃이 내게 내린 직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름다운 전사.
나는 즉시 마력으로 강기를 만들어냈다. 표면을 매끄럽게 만든 이후 얼굴을 비춰보았다.
나는 내 일행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내 얼굴이다. 얼굴이기는 한데….
‘아니, 이게 뭐야?’
뭔가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타고난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간의 꾸준한 직업 보정의 힘으로 제법 미형이 되었던 얼굴이 최종 진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피부는 뭐 이렇게 좋아졌는지… 미묘한 흉터까지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현재 후광에 신성한 오라까지 합쳐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는 상황이다.
솔직한 말로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내가 봐도 이제껏 본 모든 사람의 얼굴 중 가장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르시스트가 된 기분이다.
[열세 번째 꽃이 성공했다며 기쁨의 환성을 지릅니다.]
순간적으로 열세 번째 꽃에게 보정한다는 것이 이딴 것이었냐고 쏘아붙이려다가 환골탈태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최소한의 직업 보정과 일부 잠재력 보정 말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받은 선물이다.
여기에 대고 뭐라 할 만큼 뻔뻔하지는 않았다. 일말의 아쉬움은 있었다. 추가적으로 다른 곳에 도움을 준다면 어땠을까.
[열세 번째 꽃이 환골탈태가 한계였고, 외모 보정은 어디까지나 부수입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직업 보정의 힘을 믿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3차 전직을 끝마친 직업 덕분에 부수입이 저렇게 돌아왔다는 뜻이다. 의도하기는 했지만, 힘을 낭비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열세 번째 꽃의 욕망이 있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이득이다. 어차피 결과적으로 내게 해가 되는 것은 없었다.
나는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추슬렀다.
사실, 흔들릴 이유도 없었다. 상상치 못한 상황이 닥쳐서 조금 당황했을 뿐이다.
모든 일이 끝나자 천천히 여신상에서 비치던 빛이 사라져갔고, 곧이어 나는 성흔에 공급되던 마력을 끊어 스킬을 종료시켰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빛과 신성력이 사라지자 무릎을 꿇었던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일어나세요.”
내 말에 교황이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허허… 별일 없을 거라고 하시더니….”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되신 일입니까?”“3차 전직과 함께 축복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육체를 재구성했습니다.”
나는 상황을 짧게 축약했다.
“그렇다면 외모는….”
“…부수가적인 효과입니다. 여신님이 돌봐주신 덕분이죠.”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과연… 여신께서 특별히 선택한 성자님 답습니다.”
교황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등장한 이후 여신의 기적이 두 번째 일어난 상황이다. 신도들의 신앙심이 더더욱 깊어질 터. 이 이야기는 아마 이전처럼 상당히 널리 퍼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혹여 교황은 다른 특이한 것은 없었는지 내게 물어왔고 나는 3차 전직을 끝마쳤고 방금 본 것이 다라는 사실을 밝혔다.
나는 육체의 재구성이 막 끝나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었고 교황은 푹 쉬시라며 주변 사람들을 뒤로 물려주었다.
내 방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시선이 내게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하기야 내가 봐도 한없이 바람직하게 변한 얼굴인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오죽할까.
나를 성공적으로 환골탈태시킨 열세 번째 꽃은 그 성격이면 으스댈 만도 한데 조용한 것을 보면 또 제한을 받는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가기 무섭게 일행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괜찮냐, 3차 전직을 하면 어떠냐는 질문들이 다수였으나 어느새 질문이 변해갔다.
“오빠, 피부 좀 만져봐도 돼?”
“3차 전직하면 그런 효과가 있는 건가요?”
환골탈태를 하면 무력적으로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해 묻는 듯하더니 어느새 조금 바뀌어 피부와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둘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일행들이 성장을 위해 힘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상당히 마모된 이들도 아닌데 외모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인간인 이상 당연하다. 저 어린 나서윤마저 피부에 관심을 갖는 마당에 눈앞에서 내 외모가 실시간으로 진화한 상황이다. 호기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딱히 내가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3차 전직을 한다고 모두가 환골탈태를 할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조금 특수한 경우니까. 내 직업이 2개인 것은 알지? 그 영향이 있었어. 외모는… 솔직히 말해서 검사 쪽 직업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
내 검사 직업명을 떠올린 일행들. 표정이 조금 굳었다.
“정 이 피부가 탐나면 경지를 올리는 것이 좋아. 꾸준히 몸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그러면 조금 나아지기는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단, 지금의 내 피부처럼 되기는 힘들 터다. 이건 직업적 영향이 크니까. 팔다리가 길어진 것도 그렇다. 단순히 길어진 것이 아닌, 비율이 그림으로 그린 수준이다. 이건 단순히 환골탈태의 효과라기보다는 직업의 영향을 받았으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에 가까웠다. 원래라면 균형이 깨지지 않는 선에서 단순히 길어지는 수준이거나 내 무술에 맞는 형태로 조금 조정되고 말았겠지.
나는 일행들의 질문에 상당히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잠시간의 휴식이다. 내 3차 전직과 이들이 카바락과의 전투로 인해 지친 마음의 안정까지 겸한.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나름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제대로 쉬고 있는 모습이니까.
하유진이나 정령인 사샤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심지어 한바다마저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일행들이 서로 외모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사샤가 슬쩍 내게 다가와 물었다.
“리더 님아, 혹시 저 답답이가 3차 전직을 하면 합신이 가능할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직업 보정이 크게 들어가니까. 2차 전직과는 비교하기 힘들 수준이기도 하고.”
어쩌면 사샤가 상급의 정령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1회차 시절에도 3차 전직은 랭커가 아니면 도달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정령사 중 3차 전직을 한 사람도 없었기에 예측은 힘들었다.
내 말에 사샤가 상당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유진은 그런 것보다는 무형 강기에 더 관심을 가졌고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실마리인 카바락의 감각 체험에 관해 물어왔다.
“형, 꼭이에요. 그거 끝나면 저한테도 알려주시는 거.”
“설마 내가 숨길까. 말로 전해 봐야 효과가 적기는 하겠지만, 얼마든지 알려 줄게.”
무형 강기가 어지간히 욕심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하유진이 무형 강기까지 얻으면 안 그래도 최고 수준의 암살자가 날개를 다는 격이었으니, 탐나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화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일행들은 오래간만에 상당히 즐거운 듯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고 묘하게 얼굴을 붉히는 것이 느낌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신경 써봐야 의미도 없으니 가볍게 차단했다.
이후 나는 며칠에 걸쳐 달라진 몸에 적응해야만 했다. 팔다리가 길어지고 뼈 자체의 크기가 커진 덕분인지 중요한 무게 중심부터가 달라졌다.
물론 경지가 경지다 보니 적응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상당히 귀찮기는 했지만. 일행들과 돌아가며 대련을 함으로써 서서히 변화한 몸에 적응해 갔다. 재미있는 점은 대련 중에도 묘하게 매혹이 잘 걸린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전의 대화 같은 것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연습 삼아서 제법 이용해 먹기도 했다.
‘타 종족은 몰라도… 인간에게는 효과가 큰데?’
특히 성별이 다를수록 효과도 크다. 동성에게도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혹 하나만으로는 경지가 높을수록 저항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일부에 한정하지만 제법 큰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몸에 적응을 마치고 난 이후 나는 업적 창을 불러들였다.
일행들에게는 호위를 맡긴 뒤 곧바로 보상을 수령했다. 동시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