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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14화 (214/317)

# 214

강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다.

전초전이기는 하나 붙어보면서 절절하게 느꼈다.

카바락은 무척이나 강했다. 솔직한 말로, 지금의 나와도 상당히 비슷한 수준이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승률은 반반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카바락과의 전투에서 내가 유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붙어보니 아니었다.

“크하하. 강하다라…. 너에게 들으니 기분은 좋군.”

내가 웃으며 강하다는 말을 흘리자 카바락은 기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나와 싸우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최대한 보충했다. 앞서던 것은 유지하지 못했지만.

‘하기야 앞서던 것이 경지니 올라갔으면 위험했겠군.’

유리한 승부를 위해서는 최대한 오래 싸우는 것이 맞을 거다. 아무리 기본 능력치를 나와 비슷하게 맞췄다고 하더라도 기본 마력량과 불사의 육체, 성자의 오라를 통한 전투 지속력만큼은 나를 따라올 수 없을 테니까. 지금은 반반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승률은 올라간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 당장은 내가 조금 불리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가볍게 붙어보며 느낀 것이지만 오히려 효율적인 전투는 저쪽이 우위였다. 어쩔 수는 없었다. 더 격렬한 전장에서 싸워온 것은 저쪽이었으니까.

조금씩 손해를 봐도 내가 단번에 죽지만 않는다면 내가 이길 테지만 카바락도 준비한 것이 없지는 않을 거다.

“너와 비슷한 수준의 육체를 만들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 과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늘… 역시 유신후라고 해야 하나?”

준비한 것이 그게 다라면 실망할 거라더니, 생각 이상으로 나를 의식하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조금 안일했나?’

아니, 그건 아니다. 이미 보정이 최대치에 달한 내가 능력치를 올리겠다고 발악을 해 봤자 조금 앞서는 수준에서 멈췄을 것이 뻔했다. 그 정도로는 지금과 어마어마한 차이를 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새로운 검술을 익히고 새로운 관점을 얻은 것이 더 나았다.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역시 괴물들이 즐비하다. 수련자도 아닌 오크가 수련자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다. 이건 나에게도 기회였다.

중층에서 현재의 나와 비슷한 수준의 상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로 미묘한 경지는 정말 드물었으니까. 내가 새롭게 얻은 검술을 여기서 제대로 활용해 볼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이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기도 했고.

“그럼 장난은 여기까지다. 제대로 붙어보자, 유신후.”

카바락의 눈동자가 붉어진다.

기본적인 워 크라이가 전장을 강타하고 동시에 몸집이 부풀기 무섭게 전신이 단단하게 압축된다.

‘온다.’

그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일 거다. 장기전은 불리하다는 것을 아는 만큼 단숨에 승부를 내고 싶은 것이다.

이전에는 쉽게 보지 못했던, 불완전한 무형 강기가 눈에 들어온다.

대게 마력을 생각하면 검보다 약간 긴 선에서 멈췄어야 할 강기가 검 길이의 두 배는 되는 길이가 되어 있었다. 마력을 상당히 투자한 모양새였다.

게다가 그마저도 압축된 것인지 느껴지는 기운이 무시무시했다.

‘원한다면, 해 줘야지.’

나는 뒤로 빠지는 대신 마주 크기를 키우고 압축해 카바락의 공격을 맞아갔다. 어차피 마력은 이쪽이 우위다. 신체 능력은 맞춰왔지만 마력만큼은 아직 내가 앞섰다. 카바락의 마력이 성장하기는 했으나 아직 모자랐다.

콰아아앙!

이전의 전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굉음이 주변을 울린다. 부서진 강기의 파편이 주변을 휩쓸고 이어 거센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어버렸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 둘의 격돌이 주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나와 카바락의 몸에서 거센 마력의 기류가 흘러나왔다.

황금빛 오라가 내 주변에서 넘실거리는 것으로 모자라 마력마저 흘러나오자 강기 파편은 다가오지도 못한 채 소멸하고 있었다.

카바락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기가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진다.

검을 회수하고 다시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흡!’

나는 빠르게 몸을 놀렸다. 카바락의 공격이 기괴했다.

길이가 이상하다. 이전의 검의 두 배에 달했던 강기의 길이가 다시금 1.3배 정도 늘어난 상태였다.

나는 급하게 반격이 아닌 방어를 택했고 방어 직후 카바락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강기는 다시금 짧아져 있었다.

강기를 늘리고 줄이는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거리감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준비해온 것들 중 하나로 보인다.

나는 달려드는 카바락을 향해 횡으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준비했던 카바락만큼 나는 자연스레 강기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없는 만큼 차라리 긴 상태로 상대를 견제하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카바락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가볍게 검 중앙을 쳐버린 카바락은 극도로 압축된 강기를 바탕으로 내 강기를 파손시켰다.

그리고는 폭발적인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급하게 뒤로 물러났으나 달려드는 속도만큼 빠르지는 못했고 결국 위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카바락은 또다시 급격하게 늘린 검을 바탕으로 올라가는 나를 저격했다.

수 미터 가까이 길어진 검으로 나를 향해 내리찍는다.

검을 막아내기는 했으나 발판이 버티지 못했고, 나는 다시금 지상으로 추락했다.

급히 인벤토리에서 꺼낸 단검에 강기를 씌워 카바락을 향해 뿌려댔고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카바락은 빠르게 단검들을 쳐냈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시간 덕분에 지상에서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미쳤군.’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대로 무방비로 지상에 떨어졌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카바락은 무척이나 아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하하. 단검을 사용할 줄은 몰랐군. 그런 수도 있었나?”

인벤토리에서 급하게 단검을 꺼내 던진 적은 처음이다. 검만으로 싸워온 카바락이기에 품도 아니고 허공에서 검을 꺼내 던지는 것은 예상치 못한 듯했다.

‘중앙에 진출한 수련자들은 아직 없으니까.’

가장 앞선 나도 중앙 전선에는 가지 않았다. 그런 만큼 한순간 틈을 얻어낼 수 있었다. 두 번은 없다. 나는 자연스럽게 카바락을 경계했다.

내가 긴장한 것을 깨달았는지 카바락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시금 달려들었다. 마치 장난하듯 강기의 길이가 들쭉날쭉 실시간으로 변해댄다. 잠시 전투를 위해 늘렸다 줄이는 것도 아니고 초당 몇 번씩이나 길이가 변해댄다. 얼마나 연습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것을 이곳에서 선보이는 것이다.

‘나는 못 쓰겠군.’

하루 이틀 연습해서 될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사용할 수도 없었고. 인간이 사용하기에는 힘든 기술이다. 인간이 사용했다간 본인의 검술에 맞춰서 패턴이 정형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오크들은 본능적으로 싸우는 만큼 실시간으로 자신에게 맞는, 유리한 길이를 설정해 단숨에 맞춰 공격하는 거다.

보통 오크도 불가능할 재주. 본능에 맞춰 싸우면서도 이성을 완전히 잃지 않아야 하는 기술이다. 카바락이니 가능한 것일 터다. 하지만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마력의 눈동자로 보이는 카바락의 몸은 마력이 쉴새 없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마력의 소모가 제법 클 텐데도 불구하고 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정말 장기전 따위는 전혀 염두하지 않은 듯했다.

나는 달려드는 카바락을 향해 먼저 검을 휘둘렀다. 설마 선제공격을 해 올 줄은 몰랐는지 카바락의 눈이 조금 커졌다.

길이로 대응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단기전을 원하는 것은 저쪽이다. 나는 새로 제대로 배운, 아인모가 검술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카바락은 내 공격에 전혀 힘이 실리지 않은 것을 눈치챘는지 가볍게 쳐내고는 즉시 길이를 늘리며 효율적으로 공격해왔다.

길이가 늘어나고 동시에 돌진하니 검이 다가오는 속도가 두 배는 되는 듯했다. 하지만 착각이다.

가볍게 튕겨저 나간 듯한 내 검에 단숨에 거력이 깃든다.

길이가 늘어난 강기가 박살 났다.

카바락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페이크라 생각했던 공격에 거력이 실렸다. 같은 경지임에도 무형 강기의 특성에 속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와 다르게 마력의 눈동자가 없으니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강기가 박살 나기 무섭게 나는 그대로 검을 돌려 카바락을 찔러갔다. 카바락의 대응은 기민했다.

즉시 박살 난 강기를 복구하고 내 검을 막아왔다.

그러나 거력이 실렸던 검은 어느새 깃털이 되어 카바락의 검을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 카바락은 검에 전해져 오는 충격이 너무나도 적음에 당황했다.

“허초!”

무협지냐.

내 검은 카바락의 방어를 타고 그의 공격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드러난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을 때 위험하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는지 카바락이 즉시 뒤로 물러섰다. 따라가려는 순간 직감이 경종을 울렸고, 나는 즉시 뒤로 물러났다.

콰아앙!

“…미친.”

내가 사용했던 강기가 터지는 기술을 카바락이 사용했다.

나처럼 제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제자리에서 자신의 강기를 폭발시키며 뒤로 물러난 것.

게다가 호신강기마저 사용했는지 크게 마력을 사용한 모습이었다. 나는 내게 쏟아지는 강기의 파편을 빠르게 쳐냈다.

“쿨럭!”

호신강기를 사용했지만 아예 데미지가 없는 것은 아닌 듯했다.

기회임을 깨달은 즉시 나는 카바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인모가 검술은 상당히 나와 잘 맞는 편이었다. 공격에 치중하지도, 방어에 치중되지도 않은 적당한 검술이고 덕분에 공수 변환이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그 덕분인지 이런 마력의 조절이 검술의 최대 장점이었고 나는 그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

이전의 내 전법과 완전히 다른 공격에 카바락이 한순간 넘어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숙련도가 한참이나 모자랐다. 하기야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술이 계속 유리함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데미지를 입은 카바락은 잠시 주춤했으나 그것도 잠시 어느새 자신의 장기를 살려 나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공격을 막고 튕기고 기회를 봐 반격한다. 하지만 이미 검술에 익숙해져 버린 카바락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파훼하고 나를 밀어붙여 온다.

내 움직임을 쫓다 못해 거의 예상해오는 수준의 공격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이 준비를 했어….’

예상했어야 했다. 나에 대해 공공연하게 떠들어댄 만큼 그는 나에 대해 끝없이 연구를 해온 모양이었다. 내 회피 경로를 거의 근접하게 예상했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완전히 봉인했다.

신체 능력도 부족하지 않다 보니 예상이 틀려도 어렵지 않게 따라붙어 왔다.

그러나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초반의 강렬한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카바락의 힘을 갉아먹었고 나는 점차 카바락의 공격에 익숙해져 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인모가 검술에 몸이 엄청난 속도로 적응하고 있었다.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의 싸움이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1초에 몇 번씩 변하던 카바락의 강기가 어느새 그 속도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직감은 이상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분명 카바락의 공격은 점점 속도를 잃어가고 있었는데도, 장기전은 내게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직감은 꾸준히 경고를 내게 보내오고 있었다.

무언가가 있었다.

‘뭔가를 또 준비했나?’

강기의 길이를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는 기술만 해도 익히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뭔가를 또 준비했다고?

나는 마력의 눈동자를 극도로 활성화한 상태로 카바락의 새로운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갈수록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카바락의 공격이 어딘가 느슨했고, 눈은 반쯤 풀려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빈틈을 찌르기가 어려웠으며 내 공격은 번번이 막히고 있었다. 게다가 묘하게 익숙한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이 새끼가.”

그는 내 검술을 훔치고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전법에 그것을 추가로 적용하고 있었다.

내가 익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검술을 베끼고 있었던 것.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게 실시간으로 가능하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자신의 전법에 추가로 그걸 적용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좋지 않았다. 모조리 베끼고 도망쳐버리면 다음 전투 때는 확실히 밀린다. 나는 안일한 마음을 접고 마력을 폭발시켰다.

마력을 상당수 소모한 카바락과는 다르게 나는 마력이 남았다. 마력량 자체도 내가 많았는데 카바락에 비해 효율적으로 전투를 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마력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카바락의 마력이 폭주하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주변의 마력을 엄청난 속도로 흡수해간다. 직감이 미친 듯이 내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설마.”

나와의 전투를 통해… 경지가 오른다고?

그제서야 이 미친듯한 경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급하게 마력을 검에 압축하고 압축시켰다. 동시에 전신의 마력을 폭발시켜 방어를 도외시하고 카바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바락의 검이 내 몸을 가른다. 급소는 피했다. 설마 방어를 포기할 줄은 몰랐는지 카바락의 눈이 움찔한다.

가볍게 뒤로 물러나려는 모습을 보이는 카바락. 검이 닿기에는 늦다. 나는 즉시 전신에 두꺼운 호신강기를 둘러버렸다. 마력이 미친 듯이 소비된다.

동시에 극도로 압축한 강기를 폭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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