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재정비
이후 축제가 끝나는 날까지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덕분에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꿀맛 같은 휴식을 맛볼 수 있었고 축제가 끝나고 이틀이 지났을 때 그들은 텔레포트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그럼, 다들 최대한 휘젓되, 늘 그렇듯 목숨을 최우선으로 하세요. 경험치 효율이 조금은 떨어지더라도 되도록이면 다 같이 다니고요.”
전쟁 상황에서 안 그래도 인원수가 적은 데, 여기서 더 쪼개지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수가 적어진다.
기왕이면 산하나 일반 길드원들이 많은 전장에 합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휘권은 부길드장인 하연 씨에게 있습니다. 판단은 그녀에게 맡기죠. 기왕이면 많이들 도와주세요.”
“물론이죠, 신후 오빠.”
“걱정 마십시오.”
“오빠도 힘내. 오빠도 나름 원하던 것을 하려고 남는 거니까….”
“형,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어. 여기서는 한동안 별다른 전투도 없을 예정이고… 위험할 것도 없으니까. 걱정 말고.”
“게이트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마탑 소속 마법사의 말에 나는 배웅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에 걱정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일들의 말을 적당히 끊었다.
“다들 가고, 다음번에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몸 건강한 상태로 보자고.”
“알겠습니다.”
“길드장 님도 건강하십시오.”
“대공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대공은 조금 아닌 것 같은데….”
누군가의 말에 다른 길드원이 반박한다.
그사이 하나둘 텔레포트 게이트 내부로 모습이 사라져갔다.
이정도 인원이 모조리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이동하면 소모되는 마정석이 장난 아니지만 나는 이 짓을 재차 시도했다.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 여기만큼 큰 경험치를 먹을 기회도 거의 없을 텐데 기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이동하는 것이 좋았다.
정예 길드원들과 마법 병단, 거기에 더해 직속 파티원들까지 하나둘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저들은 계속해서 강해질 거다. 기왕이면 이번 전쟁이 끝나기 전에 다들 90레벨을 달성했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모든 길드원들이 남부로 이동했을 때 조금 감개무량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도 내 곁에 안 남는다는 것에 누군가가 질겁했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내가 혼자 남겠다고 해도 아쉽기는 하지만 나름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 주었다.
가기 전에 주하연과 나서윤에게 차례로 시달렸지만, 둘도 아쉬운 마음에 그러는 것인 만큼 짜증은 전혀 나지 않았다.
합신이 되지 않고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도 타 일행들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고 답답함을 느끼던 나연도 큰 케어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남은주도 그렇고 나연도 그렇고… 일행들이 정신적으로 상당히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일행들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다.
아마 한동안 자리를 비워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으니까.
일행들이 모두 떠난 후 나는 제자리에서 게이트를 바라보다가 브리앙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리앙은 연무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레이즈에게 조용히 쓸 수 있는 연무장을 요구했고, 레이즈는 흔쾌히 성주들을 위한 개인 연무장을 장기간 대여해 주었다.
“오셨습니까, 백작 각하.”
“기다렸습니까.”
“아닙니다.”
이전과 다르게 나는 말을 조금 높여주었다. 나름 가르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브리앙은 나를 향해 물었다.
“각하께서는 마스터시지요. 경지로 따지자면 오히려 저보다도 높습니다.”
브리앙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것을 알고 싶어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폐하께 들으셨을 텐데요. 저는 모든 정보를 원합니다.”
브리앙은 재차 입을 열려 하였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을 막아섰다.
“저를 마스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검술을 처음 가르치는 제자나 종자 정도로 생각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배워야 할 것들을 가르치세요.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전부 알아서 말을 할 테니, 아예 기초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기초 체력 단련법부터 알려준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방법만 알고 지나갈 것들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한 번씩은 모조리 체험해 볼 생각이었다.
내가 정말 뿌리부터 하나씩 더듬어 갈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브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걸 원하신다면….”
브리앙은 곧바로 정말 나를 검을 처음 잡아본 사람 취급하며 검을 쥐는 법부터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딱 원하던 모습이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한 가문의 비전을 접할 수 있었다.
***
검을 쥐는 방법부터, 아인모가 가문의 검술이 추구하는 바와 그를 위해 주로 단련하는 신체 부위 등 정말 그 검술의 뿌리부터 알아가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행들과의 연락도 당연하지만 끊어지지는 않았다. 편지는 제국을 가로질러야 하기에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주로 마탑에 들러 서로 통신 수정을 통한 오래전 전화와 같은 방식으로 주기적인 연락을 주고받았다.
황제나 티드린드 영지의 영주와도 거의 하지 않던 행동이지만 길드원들은 특별한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오빠, 검술은 잘 배우고 있어?”
“응. 스킬도 생겼어.”
“그래? 다음에 만나면 나도 알려 줘.”
“얼마든지. 그런데 너랑 맞는 검술은 아니야. 어디까지나 참고만 해야 해.”
“당연하지. 요새는 뭘 배워, 오빠? 정말 체력 단련법을 배운다는 말 듣고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었는데….”
사실 나 정도 되는 경지면 검술만 배워도 대충 어느 근육이 주로 쓰이는지 등은 손쉽게 알아챌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체력 단련부터 시작한 것은 나름 검술을 배우며 파악하는 것보다 이쪽도 배우고 난 이후 검술에 들어가는 것이 더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금은… 명상.”
“명상…?”
나서윤의 조금 당황스러운 말이 수정구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그래. 그 명상 맞아. 솔직히 나도 당황스럽기는 한데….”
사실 검 잡는 법부터 체력 단련 등 검술을 배워나갈 때까지는 큰 무리가 없었다.
심지어 검술은 무척 체계적인 방식 배운 데다가,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모두 정성을 다했기 때문인지 스킬화도 무척이나 빨랐다.
슬롯을 차지하거나 웨폰 마스터리를 변형시키지는 않았다. 아인모가 가문의 검술은 매혹의 검술처럼 웨폰 마스터리의 하위 검술 카테고리로 생성되었다.
웨폰 마스터리는 여전히 슈퍼 레어에 머물고 있었다.
그렇게 검술을 스킬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익히고 순조롭게 검술의 복구 과정에 대해 배우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명상을 거의 안 하신다고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하기는 합니다.”
“아니 각하, 그걸 설마 진짜 명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그게 무슨 명상입니까, 집착이지.”
브리앙은 내가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안 자는 데다가, 휴식을 취할 때도 몸은 쉴지언정 머리는 결코 쉬는 법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경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그런 비효율적인…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 데….”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강해졌다. 내가 재능이 아예 없다고는 못 하지만 그래도 진짜 괴물들에 비하면 모자라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평범한 인간과 다르게 수련자들은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다.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자 브리앙이 어처구니없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련자의 육체는 정말 뛰어나군요. 솔직히 수련자들이 마스터의 경지에 드는 방식은 정말 비상식적인 것 같습니다.”
브리앙은 내가 어째서 전통있는 가문의 비전을 그것도 검을 쥐는 법부터 하나씩 배우려 하는지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비전의 검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 브리앙이 수련자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을 정도.
“육체를 먼저 만드는 방식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1회차 시절부터 대부분의 수련자 출신 마스터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경지에 올랐다.
‘하기야 1회차 시절부터 수련자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방법으로 경지에 올랐지.’
마법사들도 수련자 출신은 전투에 미친 사도라고 외쳤었다. 이는 도적, 궁수도 마찬가지였으며 사제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다른 조건들을 최대한 맞추고 스킬에 의한 자연스러운 배움으로 다음 경지로 나아간다.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 수련자들이나 가능한 방법이다.
그리고 내 몸의 현재 상태를 파악한 브리앙은 경악했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육신이라고. 이미 반쯤 완성된 몸이라고 말했다.
“이게 마스터의 몸이라고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같은 경지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검 머리랑 손에서 놔 버리십시오. 그리고 당분간은 명상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군요.”
“원래 아무리 무에 미친 전사라 한들 백작 각하만큼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보통은 몸이 먼저 망가져서 멈추게 됩니다. 인간에게 휴식은 무척 중요합니다. 아무리 스킬들의 도움을 받으신다고 한들 그렇게 하루 종일 경지에 대해 집착해가며 생각해 봤자 점점 지리멸렬하고 단순한 생각 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차라리 휴식을 통해 충분히 재충전을 하고 명상 와중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생각을 떠오르게 만들어야지 다른 생각들은 원천적으로 대부분 차단하고 강해질 방법에만 몰두하면 매몰될 뿐입니다.”
브리앙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아니, 그렇게 몇 년을 사셨다니… 솔직히 그게 가능한 지도 의문입니다. 어떻게 그런 삶을….”
그러나 곧바로 내가 수련자 출신임을 다시금 상기했다는 표정을 보였다.
수련자들의 사정은 이미 제국에서 유명한 편이니까.
“후우… 아무튼 그런 방식으로 강해지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나, 지금은 저희의 방식을 배우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제 말을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죠.”
수련자의 특성이 어떻고 나는 이런 방식으로 경지에 올랐다며 고집을 피울 수도 있었다. 다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방식을 알기 위해 브리앙 같은 이를 구해 달라고 한 것은 나다. 그런 만큼 기껏 새로운 관점을 얻을 기회가 있는데 해보지도 않고 고집을 부려 기회를 날리는 것은 머저리 같은 행동이다.
나서윤은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진짜 평소에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어?”
“…대부분은?”
“나나 언니들이랑 있을 때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그러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도, 심할 때는 황제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가끔 강해질 수 있는 실마리가 생각났다 싶으면 그것에 더 집중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계속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들킨 적은 없었지만.
브리앙에게 걸린 것도 내가 명상이라고 하면서 명상을 하는 것이 전혀 명상 같지 않다는 이유로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된 것이었다.
“비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그 방법밖에는 몰랐으니까. 그래도 나름 전투 후에는 얻는 것들도 많았고….”
“…오빠는 진짜….”
그래도 어딘가 이해는 간다는 얼굴이다. 하기야 나서윤 또한 나 못지않게 수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그래도 내 수준으로 미쳐있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런 방법 말고는 없었다.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1회차에서도 상층에 도달조차 하지 못했을 터다.
1회차 시절부터 해 왔던 방식을 잠시 손에서 놓자 최근 몸이 어색해하는 상황이 오기는 했다만, 어떻게든 참아내는 중이었다.
나에 대한 화제가 끝나기 무섭게 저쪽에서 있던 일들에 관해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전투 자체는 제국 쪽이 우세해. 아무리 저쪽에서 밀어붙여도 잘 버티고 있는데다, 우리도 나름 활약하고 있고….”
알고 있었다. 가이아 길드의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제국에 알려지는 편이었다.
“다른 수련자들도 나름 이름을 알리는 중이고. 왕춘이라는 할아버지랑 야마모토라는 공작의 제자 말고도 마스터들이 둘 정도 더 등장한 데다 중국 쪽 무공 수련자들도 나름 이름을 알리는 중인데… 근데 오빠, 최근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
“뭔데?”
“그, 무공을 쓰는 수련자들이 뜬금없이 전투 중에 허무하게 죽는 일들이 제법 자주 발생하는 중이야.”
‘…시작되었나?’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전선에 그런 소문이 퍼지고 있어. 저 무공이라는 기술, 뭔가 이상하다고.”
전생보다 훨씬 빠르다. 전쟁이 빨리 일어난 만큼 자주 사용되고 덕분에 성취가 늘고 부작용이 빠르게 밝혀지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잘 써서 이름을 날리는 이들도 많으니까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 그나저나 오빠, 황제 쪽에서 너무 귀찮게 굴어. 자꾸 자기 휘하 수련자들을 우리 쪽으로 붙이는데….”
나서윤의 불평이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보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끝마쳤다.
나는 곧바로 브리앙이 시키는 대로 강해질 방법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지우며 시간을 죽일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